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마음 잡고 일 조신하게 잘 다니고 있고요,

점심 도시락도 조금씩 더 성의있게 싸가기 시작했고,

한 동안 주로 남편이 해주는 저녁밥 받아 먹다

이번 주는 하루 빼고 제가 다 했고요.

 

 

남편이 해주는 저녁 밥은 성의를 봐서 먹어 주는 거지

사실 그의 메뉴 한계 상

몇 달 째 접어 드니 힘들어 지더라고요.

 

 

남편이 할 줄 아는 너댓 가지의 요리를 석달 째 무한 반복으로 먹다 보니

좀 힘들더라고요.

거기다 그 너댓 가지 중 하나의 메뉴인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는,

제가 워낙에 우유나 유제품하고 잘 안맞는데

그걸 저녁으로 먹고 나니

소화가 안되서 밤 새 괴롭기도 했고요.

 

 

이번 주는 월요일 화요일 뭘 먹었더라..

암튼지 제가 해서 같이 먹고

수요일은 남편이 또 햄버거를 한다길래

제가 입 크게 벌리고 고기랑 다른 내용물이랑 빵이랑 한 입에 베어 먹기 힘들다고

햄버거 스테이크로 먹는 게 어떻겠냐고

그나마 약간의 변형을 제안해서

남편이 햄버거 패티 만들어 익히고

감자로 홈 프라이 하고

제가 스트링빈 후딱 볶아서 해 먹었고요,

 

 

목요일 부터는 남편이 몸살 감기 기운이 오셔서

몸져 누우시는 바람에

(아우... 속 터져...)

일 가기 전에 급하게 수퍼 마켓가서 캔에 든 치킨 스프 두 개 사다 놓고

낮 동안은 저걸로 연명하고 있으라고 한 다음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돈까스 튀겨 줬고요.

 

 

저는 몸살 감기 오면 돈까스 같은 거 못 먹겠던데

잘 먹더군요.

금요일도 상태가 여전히 그렇다고 하길래

뭐 해 먹었더라...

암튼지 제가 집에 오자마자 뭔가를 후딱해서 해 먹였어요.

 

 

어제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제 기분도 너무 좋았어요.

봄이...이렇게 그냥 왔으면 좋겠다...

햇살이...너무나 좋네...

 

 

어제 아침에도

간 밤에 추웠다 땀났다 계속 그래서 잠을 제대로 못 잤네 어쩠네 그러길래

저 혼자 장바구니 들고 동네 한 바퀴 돌았거든요.

 

채소 가게 갔다가

정육점 갔다가

수퍼 마켓 갔다가

오는 길에 세탁소 들러서

정장 한 벌 드라이 클리닝 얼만지

치마 허리 줄이는데 얼만지 가격 물어 보고

 

 

많이 안 비싸면 지금 가져 오고

비싸면 나중에 월급 탄 다음에 가져 오려구요~

 

 

했더니

주인 아줌마가

 

일단 가져 와서 맡기고 월급 타면 찾아가면 돼지 뭘~

 

 

이러시길래

 

 

집에 와서 장본 것들 내려 놓고

옷 가져 가서 맡기고요.

 

 

허리 줄일 치마는

드라이 크리닝도 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시길래

일단 좀 입고 나서 하겠다고 했더니

(새 옷 이거든요. 얻어 온 것이긴 하지만.

옷은 깨끗해요. 너무 커서 그렇지.

수선비가 비싸서 할까 말까 하다가

공짜로 얻은 옷이고 모양 이쁘니까, 수선비 투자하고 그럼 고쳐 입자,

하고 큰 맘 먹은 것임)

 

 

어머머...

이쁜씨는 남편이 돈 벌어서 안 가져다 주나 봐..

이쁜씨 쓸 돈은 다 혼자  해결하나 보지?

돈이 많이 쪼들리나 봐...어떡해...ㅉㅉ...

 

 

제가

 

남편이 요즘 돈 많이 못 벌어요. 쪼들리긴 해요.

 

했어요.

 

 

제 의지대로 치마는 수선만 하기로 했고

수선비랑 정장 드라이 클리닝 값 합해서 3불 할인 받고

급하지 않으니까 천천히 해주셔도 된다고 하고 나왔어요.

 

 

가격 물어 보러 들어 갔을 때

왜 이렇게 오랜 만이냐고 하시길래

그 동안 일을 안해서 옷 맡기고 할 일이 없었다고,

다시 직장 잡아서 출근하다 보니

이것 저것 드라이 크리닝 할 게 많더라고 말씀 드리는데

뜬금없이 제 배 쳐다 보시면서 저 임신 했냐고.

 

 

아니...

몇 달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허리가 무려 거진 2인치나 줄어 들었는데

아직도 나는 이렇게 임신 했냐는 소리를 들어야 하면...

 

 

그래도 이런 저런 아무 얘기 없이

1불도 안 깎아 주는 아저씨 보다

꼭 듣기 싫은 소리 한 두마디 해도 어쨌든 1,2불이라도 꼭 깎아주는

아줌마 있을 때 옷 맡기는게 저한테는 이득이예요.

 

 

아직도 임신 했냐는 소리를 들을 지언정

실상은 저는 분명 허리 둘레가 줄었어요.

지금은 보면 그냥 통자 허리 몸매구나 할 정도지

예전처럼 밥 잔뜩 먹은 두꺼비같은 복부 미만 체형은 더 이상 아니랍니다. 우하핫!

그러다 보니

옛날 옷들이 헐렁해서 좀 바보 같아요.

 

 

이번에 수선 맡긴 옷처럼 주먹 두 개가 들어갈 만큼은 아닌 것들은

대충 스웨터 위로 빼서 입고

안에 셔츠 넣어서 입고 그러고 입고 다니는데

바지가 큰 건 정말 바보 스럽더라고요.

11불 짜리 하나

14불 짜리 하나

바지는 새로 두 개 사 입었었고요.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매일 매일

옷 이것 저것 갈아 입으면서 출근하고

여자 동료랑 사장님한테 

옷 잘 입었다고 칭찬도 듣고 그러고 다녀요.

 

 

나이 먹고 오랜 만에 다시 사무직 직장을 잡으면서

업무를 잘 해야 겠다는 다짐에 뒤지지 않는 각오가

추레해 보기 싫다...거든요.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보는 내 얼굴은

항상 많이 지쳐 보이긴 하지만

남들 보기에 겉모습이 후줄근해 보이기 싫다, 흰머리도 보이면 안된다,

하는 굳은 각오.

 

 

 

그저께는 사장이 저한테

입을 옷을 그 날 아침에 결정하냐,

아니면 그 전 날 결정하냐,

물어 보더라고요.

 

 

주로 전 날에 미리 준비해 놓는다고 대답 했습니다.

 

 

위, 아래, 스타킹, 스카프, 귀걸이, 신발까지.

 

 

 

그럴거 같았다면서

사진도 찍어 놓냬요.

 

 

아뇨 사진은 안 찍습니다.

 

 

뭐 이 정도로 사진을 찍나..

꽃단장하고 좋은데 놀러 가는 쌈박한 차림도 아닌 것을..

진짜 내가 맘 먹고 꾸민 모습 보면 기절하겠네 후후~~~

 

 

좋은 것만 보자,

감사한 것만 생각하자,

 

 

많이 노력했어요.

 

 

석 달 넘어 가니

이 직장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내가 이 사장하고 일하면서 스트레스 덜 받을지

감이 조금 왔어요.

 

 

하루 하루 버티면 일주일이 되고

한 주 한 주 버티면 한 달이 되서 월급이 나오고

두 달 지나면 나는 흰머리 염색을 하러 큰 언니네 가야 하고

염색 여섯 번 하면 내가 목표했던

이 직장에서의 일 년이 채워진다!

 

 

지난 주말에 월급 세 번째로 받고

이제나 저제나

이모 다시 취직했고

그 새 월급이 한 번 올랐는데

언제 우리 외식 시켜 주나...기다리던

 

 

중학교 일학년 부터 대학 졸업반 까지의 조카들 밥 사줬어요.

 

 

우리 애기들 이모가 밥 사주는거 오래 기다리느라 수고 많았다고

한 놈 한 놈 껴안아 주고 뽀뽀해 주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애기들 밥 먹이고 나니까

 

 

마음 고생 몸 고생을 해도

이렇게 내가 돈을 벌어야

이런 행복도 가지는 구나...싶었어요.

 

 

작은 놈이나 큰 놈이나

오랜 만의 외식에 기분이 들떠서

이모 사랑해, 이모 고마워,

이러는데

 

 

진짜 마음 잡고 일 열심히 다녀야지...다짐 했고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 버니라 받는 스트레스가

돈 못 벌면서 받는 스트레스 보다 낫다!

하면서.

 

 

남들은 임신 했냐고 엄한 소리를 해도

막내 이모 또 끔찍히 좋아하는 큰 언니 아들은

아우..왜 이렇게 말랐어. 이모 잘 먹어야지..

이러더라고요. ㅎㅎㅎ

 

 

긴 겨울 지나면

봄은 오고야 말듯이

그렇게 살아야 겠다.

 

 

원래도 잠이 많고

장하고 큰 일 하시느라

(집 청소, 빨래)

수고가 대단하신 남편님은 아직도 주무시고 계신 이 일요일 아침,

 

 

저는 주말 시간이 아깝다는 잠재 의식의 발로인지

오늘 새벽부터 깼어요.

다음 주 점심 반찬으로 하려고

멸치 볶았고

미역 줄기도 볶아 놨고

좀 있다

교회 마치면 둘째 언니가 우엉도 배달해 주기로 했어요.

우엉 조림 해가지고

내일은 저렇게 점심 반찬으로 해가려고요.

 

 

오늘은 흐릿하고 춥고 스산해도

열심히 오늘 하루 버티고 나면

봄 날은 올 것이다,

봄 날은 온다.

 

 

이런 마음이면

내 마음은

 

 

이미 봄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