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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nd the City

조카 시집살이 이쁜아짐 (ejpkryan) 2013-7-3  12:04:21

시골가서 시아버님의 조촐한 팔순 잔치 잘 치르고 왔습니다.

 

조촐이란 말이 이보다 더 잘 맞을 수는 없을 만큼 정말 조촐했던 팔순 생신 잔치.

내가 이 사람하고 결혼하길 잘 했다 이런 생각은

지난 십여년간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듯 하지만

이 남자가 자라 온 가풍 때문에 시집을 잘 간 것 같다라는 생각은

수도 없이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 완전 정점을 찍었습니다.

 

 

오로지 직계 가족들만 모여서

(6년 만에 사남매가 한 자리에 모임)

문에다 큰 종이에 매직팬으로 팔순 잔치라고 써서 붙이고

사남매가 기존의 어떤 노래에 가사만 바꿔서 재롱잔치하듯 노래 서너 곡 불러 드리고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유 80가지를 사남매가 돌아가며 한 가지씩 낭독하고

샴페인 한 병 터트리고.

 

 

그리고 끝.

근사한 선물 없음.

샴페인이 선물이었음.

 

 

장성한 자식 넷이 있는 집에서 아버지 팔순 잔치를 이딴 식으로 했다는 얘기는

한국이건 미국이건 듣도 보도 못했는데

감동한 아버님 눈물 훔치기 시작하시고  어머님 따라서 눈물 흘리시고

자식 사남매 다 코 찔찔짜기 시작하고.

피날레는 다 같이 껴안고 또 울고.

 

 

타이틀로 치면

이 집안의 외아들이자 장남이 결혼한 맏며느리인 저는

열심히

이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제 역할 이걸로 끝.

 

 

이번 7박 8일의 시골 체류 기간 동안

이쁜아짐은

맛난 한국 음식으로 제 몫을 하고자 했고

올라갈 때 남편 친구 차로 편하게 가는 잇점을 최대한 살려

냉동실에서 소고기 꺼내 챙겨

먹다 남은 부추도 챙겨

오로지 이번 여행을 위해 전 날 담근 파가 엄청 들어간 깍두기도 아주 조금이나마 챙겨

고추장, 고추 가루, 깨소금도 챙겨 가서는

 

 

바로 다음 날

마당에서 수거한 차이브로 파무침까지 곁들인

차돌박이 디너.

 

 

다음 날은

온 식구가 열광하는, 특히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부추 애호박 전을 부쳐서

시아버님이 너무나 좋아 하시는 양념 간장을 만들어

애피타이저로 내 놓고,

 

 

저녁엔

역시나 마당에서 수거한 마늘쫑으로

간장과 메이플 시럽으로 볶음을 해서

폭챱 먹을 때 사이드로 내 놓아 이 또한 빅 히트.

 

 

 

둘째 시누 합류한 날 저녁엔

코리안 스파이시 치킨 스튜(일명 닭볶음탕) 로 또 온 가족을 행복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가운데

회심의 깍두기를 상에 올렸더니

시누들 셋,

서로 갯수 세어 가면서 나눠 먹으며

정말 고맙다고 감사 인사 세례.

 

 

 

그 다음 날은

간식으로

라면 부셔서 올리브 오일에 볶아 위에 설탕 뿌려

라면땅 내 놓았더니 시누들 다 기절.

 

 

남편 둘러싸고 한 말,

 

 

이 복 많은 인간 같으니라구.

 

 

둘째 시누가 합류한 날 부터는

저는 저 집 딸래미 전담하느라

사실 제가 푹 쉬지는 못했어요.

 

 

한 번 효녀는 영원한 효녀이므로

저 집 효녀는

친정에 온 자기 어머니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항상 이 외숙모 껌딱지를 하므로

이 아이가 서너 살 때 까지는

제가 오줌도 제대로 못 눴답니다.

 

 

 

이제는 여섯 살이 되어

화장실까지 쫒아 오진 않고

하와이에서 온 이모들까지 합세해서

자기랑 몸으로 놀아 줄 사람은 외삼촌 말고도 많아

제가 체력 소모는 훨 덜 했는데

 

 

여전히

효녀인 그녀는

외숙모의

껌, 딱, 지.

 

 

이모들과 외삼촌과 마당에서 놀 때도

할머니와 거실에서 단 둘이 마술 놀이를 할 때도

체력 딸리는 외숙모가 직접 참여는 안해도

의자에서 자기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이 외숙모가 어쨌든 항상 자기 시야에 있어야만 하는.

 

 

엄마는

밤에 졸려울 때랑

눈 뜨고 일어 났을 때나 옆에 있으면 되므로

나는 효녀니까.

외숙모 껌딱지를 하련다.

 

 

 

이게 첫 날은 할만 했고

둘째 날은 견딜만 했고

셋째 날은 피곤했어요.

 

 

 

 

 

집에 돌아 와서

얘가 나한테 왜 이러나...하고 생각해 보니

태어났을 때 부터 이모들은 하와이서 살고 있었고

저 역시 일년에 몇 번 못 봐도

어쨌든 저는 자기 이모들 보다는 자주 봤었고

간간이 보는 이모들은 자기한테 싫은 소리를 꼬박 하는 사람들인데

저는 자기한테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싫은 소리도 한 번 안하는 사람이라 그러는가 싶어요.

 

 

내 조카들이야

내 언니들의 아이들이니까

저도 훈육이란 걸 하지만

저 집 딸래미는

남편의 여동생의 아이이므로

저는 일절 아무 말도 안해요.

 

 

내 조카들이야

내가 맛있는 것도 해먹여 가며

맛있는 것도 사 줘가며

더 어렸을 때는

똥 기저귀도 갈아 주고 업어도 주고 학교 행사에도 가고

내가 맡아 며칠씩 내 집에 데리고도 있었고

여름 방학이면 먼데 사는 친구들 집에 데리고 놀러도 다녔고

성장 과정에 내가 참여를 하는 게 조금이라도 있어서

잔소리도 하는 거고

 

 

자기 새끼한테 뭐라고 하는게 어떤 엄마가 좋으랴 마는

그래도 내가 애들한테 뭐라고 한다고 언니들이 섭섭해 해도

애들 엄마가 내 언니니까

나중에라도 우리끼리는 자매니까 얘기하면서 풀 수가 있잖아요.

언니들 역시 고까운 마음 보다는 이런 이모 있어서 애들한테 좋은 거라고

기본 적으로 생각을 하니까

저도 맘편히 애들한테 야단도 치고 하는 건데

 

 

남편의 여동생과는 제가 그럴 수가 없잖아요.

내가 저 아이 기저귀를 갈아줘 봤나,

둘 다 일하는 엄마 아빠 급할 때 땜빵 베이비 싯을 해줘 봤나,

생일이라고 선물을 안겨줘 봤나,

(이건 내 조카들한테도 해 본 적 없음)

그렇다고 아이 엄마인 남편의 여동생과 내가 그렇게 살갑고 다정하길 하나

저 아이와 나의 관계는

내가 결혼한 남자의 여동생의 아이로

남편의 부모님들 뵈러 갈 때 일년에 며칠 함께 보내는게 다인데

고 며칠 동안

자기 엄마 아빠가 알아서 잘 키우는 애를

저까지 이러고 저러고 잔소리 할 건 아니지 않다 싶어서

저는 아이한테 어쩌고 저쩌고

예의니 뭐니 이런 말 안 하거든요.

 

 

저 집 이모들은 다르더라고요.

 

 

저 집 이모들은 아이한테 요래 조래 그 때 그 때

아이 언행을 바로 잡아 주고

(아이 엄마랑 아빠 없을 때 ㅋㅋㅋㅋㅋㅋ)

 

 

나는 내 조카들한테는 무섭고도 엄격한 이모지만

저 아이한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보는 외숙모는

할머니 텃 밭으로 딸기 따 먹으러 가자고 하면 같이 가주는 사람

디즈니 영화 보자고 하면 같이 봐주는 사람

공주놀이 하자고 하면 절대 자기가 요구한 시녀는 안해도 옆 나라 공주로 같이 놀아주는 사람

저녁 밥 접시에서 자기가 먹다 남긴 음식

엄마 아빠한테 혼나기 전에 몰래 먹어 주는 사람

 

 

(엄마 아빠가 그냥 모른 척 해주는 거겠죠 이런 상황일 때.

아이도 집 떠나면 아이대로 이런 저런 불편한 것이 있을 것이고

부모는 부모대로 평소 훈육 기준보다 겸사 겸사 그냥 조금만 너그러워 보자 이럴 수도 있고

평소 집에서 규칙은 자기 접시에 놓인 음식은 남기지 않고 다 먹기, 여도

아이도 집 음식 아니고 할머니 집 음식이니까 뭔가 입에 안 맞았을 수도 있고

어른들이야 입에 안 맞아도 예의상 어떻게 처신한다 해도

아이한테는 이런 게 분명 더 힘들테고

부모가 아이한테 남기지 말고 다 먹기, 이런 원론적인 훈육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걍 옆에 앉은 외숙모가 슬쩍 먹어 치워 주고

부모는 슬쩍 눈 감아 주고 이런 분위기)

 

 

 

그냥 마냥 친구같은 사람

그런 거겠죠.

 

 

 

 

아이의 무한 애정과 관심에 제가 매우 지쳐 있었던 아이와 함께 하던 셋째 날 오후,

시어머니께서

영혼이 반쯤은 육체를 벗어난 상태인 저를 보시고

저녁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조금이라도 눈 붙이고 오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제가 저희 묵는 방으로 올라갔어요.

 

 

아이 엄마는 샤워를 하고 있었고

아이는 잠깐 그 자리에 없었어요.

 

 

방으로 올라 가자 마자

열린 창문으로 아랫층 덱에서 하는 말이 들리는데

역시나 아이는 제가 어딨냐고 찾고

남편과 막내 시누는

피곤해서 윗 층에 쉬러 올라 갔다고 하고

아이는 자기도 올라 가겠다고 하고

난처한 남편은 그 성격대로 더 이상 말 않고 속으론 안절부절하지만

차마 더 이상 아이한테 뭐라고 말을 못 하겠어서 입 닫은 듯 하고

 

 

막내 시누가

확고하고도  강경하게

외숙모 피곤해서 쉬러 올라간 거니까

네가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올라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니

아이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딱 요 타이밍에 아이 엄마 샤워 마치고 나와서

자기 아이 울고 있는 상황에 기분 상하고.

 

 

아이 엄마랑 막내 시누랑 어쩌고 저쩌고 얘기 시작하길래

이러다 어른 싸움 되겠다 싶어서

저는 책 몇 장 읽으면서 스르르 자야지, 하고 뉘었던 몸 억지로 일으키고

결국 다시 아래로 내려 왔어요.

 

 

남편은 속이 엄청 상했고

저는 저대로 짜증이 났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이층 올라가기 전에

아이 눈 피해 올라가지 말고

아이한테 내가 지금 피곤해서 좀 쉬어야 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올라 갔었어야 옳았던 것 같아요.

 

 

제가 내 자식은 안 키우는 사람이라도

조카들한테나 친구들 애들한테나

아이들 대할 때

올바른 어른의 태도로 아이들 대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육아 정보 이런거에 아주 무심하게 살지는 않았어요.

여기 저기서 찾아 보고 읽어 보고 줏어 들은 것 중에

 

 

아이가 애착 장애가 있어서

학교에 내려 놓을 때 마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아이가 운다고

아이 한 눈 파는 사이

엄마가 몰래 사라지는거 아이 정서에 더 안 좋다고 한 거 생각 났어요.

아무리 아이가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어도

아이 보는 앞에서

아이한테

엄마는 지금 집에 간다, 일하러 간다,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하고 가야 한다고.

 

 

 

어차피 내가 사라지면 저 아이는 엄마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바로 나를 찾을 것이 분명할 것을 알았는데

아이가 안 보이는 틈에 그렇게 휘리릭 이층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

아이한테

외숙모가 지금 많이 피곤해서 딱 한 시간만 쉬다 내려 오려고 해.

그렇게 얘기를 해주고

외숙모 쉬고 있는 동안 외삼촌이랑 이모들하고 놀면서 외숙모 다시 내려올 때 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냐고

아이한테 양해를 구하고 사라졌어야 했는데

 

 

피곤하다고

도피의 수단을 쓴 내 잘못이었다.

 

 

 

다음 날

모닝 커피를 들고

공교롭게

막내 시누, 둘째 시누, 이쁜 아짐

이렇게 세 사람이 뒷 마당에 마주하게  됐는데

 

 

막내 시누가 아이 엄마한테

전 날 아이한테 너무 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 하더라고요.

둘째 시누가

괜찮다, 라는 말은 절대 안 하더라고요.

그 애도 그 애 나름대로 입장이 있었던 거라고

아이 입장 얘기만 하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좀 놀랐어요.

 

 

 

 

참...

저는 당사자라면 당사자인데

저는 그냥 입 꾹 쳐닫고 있었어요.

오해를 풀어 볼까 싶어 말 한 마디 보태 봐야

저들은 자매

나는 한 다리 건너의 사람이라

엇박자 나면 나와 둘째 시누는 풀 길이 더 어려우므로

걍 입 쳐닫고 있는게 더 나을 것 같다 싶어서.

 

 

 

아이들이 자기한테 친절한 사람을 알아 본다고 하는데

제 경험 상

아이 엄마들은 자기 아이한테 친절한 사람에 대해

아이들이 보여주는 것 보다 대략 열 배는 더 민감하게 반응하더군요.

 

 

둘째 시누가

이번에

자기 동생, 언니하고 말싸움까지 하는 동안

뭘 느낀 바가 있었는지

 

 

전에는 절대 해주지 않았던

기차역 롸이드를 해주더군요.

저희가 시댁에서 자기 집 까지 차를 얻어 타고 갈 때

집에서 2분 거리인 버스 정거장으로 데려다 주지

집에서 30분 거리인 기차역까지는

가끔 저 집 신랑이 컨디션 좋을 때 해주지

시누는 그렇게 안 해 줘요.

 

 

 

저는 버스 타는 것도 괜찮은데

남편이 버스보다 기차 타는 것을 훨씬 좋아하고

무엇보다 차비도 버스보다 반 정도 싸요.

저희는 어디든 데려다 주는데로 가서 버스든 기차든 타고 집으로 오는데

 

 

이번엔

시누가 자청해서

손수

30분 운전해서 저희를 기차역으로 데려다 줬어요.

그 집 닭들이 낳은 알도

열두 개 챙겨서 담아 주더군요.

달걀 봉투 들고중간에 넘어지거나 자빠지는 일 없이

하나도 안 깨 트리고 집까지 잘 가져 왔어요.

 

 

 

헤어지는 인사할 때

해준 음식을 너무 맛있었고 또 고마운 건...

하면서 말을 더 안하길래

저도

나도 좋은 시간 보냈다고 그냥 그렇게 간략히 마무리 짓고.

 

 

 

집에 와서

자기 애지 당신 애냐,

자기 애면 자기가 봐야지,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애 데리고 밤마다 영화 같이 봐주고 했는데

고맙다는 말도 안한다고

내내 분기 탱천했던 남편한테는

 

 

글게 왜 고맙다는 말도 이번엔 안 하는지 나도 좀 의아했는데

(아이 어렸었을 때는 꼬박 내내 고맙다는 말 엄청 했었거든요)

내가 그만큼 더 가깝고 편하게 느껴졌는가 보지?

생각해 보니까

내 언니나 여동생 아이 였으면 아마 나는 고맙다는 말 같은거 안 들었던거

신경 안 쓰였을 것도 같아.

그냥 서로 고마워 하고 고마워 한다는거 서로 느끼면서 그렇게 넘어갈 거 같아.

우리 언니들하고 처럼.

그래도 우리 기차역까지 태워다 줬잖아. 생전 안하더니.

말은 안 했어도 그게 고맙다는 마음의 표현 아니겠어?

다 당신 마누라가 당신 여동생 아이 베이비 싯 잘한 덕분이라고.

 

 

 

 

제가 발이 엄청 크기도 크고  발가락도 비정상적으로 길고

암튼 전체적으로 험하고 우락 부락해요.

얼굴 못생긴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발 못생긴 것 까지 깊게 고민은 안하고 살아도

컴플렉스라면 컴플렉스인데

 

 

큰 시누랑 얘기하다 어쩌다 발 얘기가 나왔어요

'내 발은 참 못생겼어. 늑대발이야' 했더니

조 꼬맹이 하는 말이

 

 

아니야.

 

 

그럼 어떤 발 같아?

 

 

했더니

 

 

공주님 발.

 

 

 

 

나흘 동안....

조카 시집살이 한다고 힘들어 했던 이 외숙모....

시댁에 와도

나 괴롭히는 사람 하나 없다고 좋아라 하다

저 아이랑만 겹치면

제대로 시집살이 하고 간다고 푸념했던

이 저질 체력의 외숙모는

 

 

 

 

공주님  발이라는 한 마디에

그간의 노고가 다 풀리는구나.

기특한 것.

 

 

 

내가 엄마였다면

나는 어떤 엄마가 됐을까.

좋은 엄마는 못 됐을 거라는건

자타가 100% 인정하는 바이지만

이모로써나

외숙모로써는

제법 괜찮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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