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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nd the City

추석의 교훈-송편은 사 먹자! 이쁜아짐 (ejpkryan) 2013-9-19  18:31:08

내가 좋아하는 명절 추석.

 

 

음력 설에는 온 가족이 열광하는 김치 만두 해먹는 날이고

추석은 

역시나 온 가족이 열광하는 녹두 빈대떡을 해먹는 날로 굳어 졌는데

올해는 안 했어요.

 

 

녹두를 갈려면 블랜더가 있어야 하는데

이거 고장나서

여름에 산다 산다 하면서 안사고 그냥 지나가서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뭘로 사야할지 몰라서 아직도 생각하는 중이요)

올해는 그냥 조용히 지나 가는 중이었는데

 

 

어젯 밤 남편이

정말로 뜬금없이

올해는 송편 안 만드시냐고.

 

 

송편은 원래 안 하거든요?

작년에도 안 했고 재작년에도 안 했고 그 전해에도 안 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게

2006년도 였는데

왜 갑자기 자기는 먹지도 않는 송편 얘기를?

 

 

빈대떡 안 하시면 송편이라도 조금 만들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명절인데 그냥 이렇게

정말 아~무 것도 안 해먹고 지나가실 거냐고.

 

 

이 시간 7시 30분.

 

 

그래?

그럼 쌀가루 사러 갔다 올께.

 

 

하고 장바구니 들고 동네 수퍼마켓가서 쌀가루 두 봉지 사와서 반죽 시작.

 

 

그래서 어제는 반죽까지만 하고 잤어요.

반죽 여섯 덩어리 하려니 한 시간 반 걸리더라고요.

이거 저거 색내서 한다고

반죽을 여섯 가지나 따로 해 놓고.

색은 잘 나온 것도 있고 안 나온 것도 있고.

 

 

 

오늘 아침엔 일어 나서

큰언니, 둘째 언니한테 송편 한다고 얘기해 놓고

노여사 전화 하려는 찰나에

노여사가 전화를 친히 하셨길래 받았더니

 

 

추석인데 송편은 먹었냐,

너네 동네는 한국 마켓이 없지 않냐,

내가 오늘 사다 주마,

 

 

이러시길래

 

 

사오지 마시라고.

안 팔면 내가 해 먹으면 돼지.

이따 와서 드시라고.

 

 

 

그러고 전화 끊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송편을 안 먹어요.

밥순이라

밥만 먹어요.

 

 

맨날 밥, 밥, 밥 하지

빵이나 떡, 이런거 취급 안하거든요.

 

 

어찌어찌 해서 송편을 빚기는 빚고

찌기도 쪘는데

바람잽이 남편은

말은 자기가 꺼내서 시작한 일인데

한 개 먹고 도망치고

 

 

남편이 일 보러 나간 후

노여사와 큰 조카가 등장.

신발 벗으면서

배가 너무 너무 고프다고.

저희 집 오는 사람들은 다들 항상 신발 벗으면서 배 고프다는 소리.

 

 

제가 먹을거 아무 것도 없다고.

맛대가리 없는 송편 밖에 없다고 하면서 내 놓았더니

너무 배 고픈 이 두 사람

송편을 하나 둘 셋 넷 계속 드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죽이 뻑뻑해서 그렇지 속은 맛있다고.

두 사람의 후기.

 

 

 

아니 반죽이 쫄깃해야 진짜 맛있는 송편이지

속이라봐야

깨에 꿀에 설탕에 잔뜩 들어가서 맛이 없을래야 없는데 말이죠.

반죽이 황이면 송편 맛이 그냥 황인거지 ㅎㅎㅎ

 

 

노여사 왈,

집에서 송편하기가 그래서 어려운거야.

너 생각안 나?

이모 집에 절구통 있던거?

반죽을 그걸로 얼마나 치대고 만들어야 하는데..

 

 

 

허걱!

나 옛날에 먹고 자란 송편이,

그 반죽이

절구통에 치대고 치대고 또 치대서 그렇게 만든 반죽이라고라????

 

 

 

어렸을 때도 송편은 잘 먹질 않았어요.

저희 집은

깨 송편, 콩 송편 두 가지를 했는데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깨 송편을 좋아하므로

다들 깨 송편이 어떤 송편이냐,

한 개 고를 때마다 심혈을 기울이고,

저는 이 피로감이 싫었어요.

 

 

겉모습으로 깨송편과 콩송편을 확실히 판별하는 노하우 자랑도 해가면서

나의 형제들과

사촌들과

골라먹기 하는 것도 저는 영 재미가 없어서

송편 별로 안 먹었어요.

 

 

 

어른들이 콩 송편이 맛있어서 그래서 꼭 그게 있어야 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구분이 확실한 뭔가를 가지고 만들던가

왜 우리로 하여금 그 어린 나이에

복불복 이런 스트레스 만땅인 상황를 겪게 하는지.

 

 

온갖 노하우를 동원하여 심혈을 기울여 고른 것이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콩송편이었을 때,

그 당혹감, 낭패감, 상실감...

그냥 다 올 깨송편으로 만들었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을

어른들은 왜,,,,

자라나는 새싹들한테 이런 인생의 좌절을 보게 했어야만 했었는지..

 

 

아마 그 당시에

깨가 많이 비싸서

깨 송편만으로는 감당이 안돼서 그랬던 걸까요??

 

 

아무튼 이쁜아짐은

이런 저런 이유로

유년기 이후로 송편을 끊었더랬습니다.

추석이야

송편 말고도 맛있는거 많은데

굳이 좋아 하지도 않는 떡을 먹을 이유는 없었으므로.

 

 

음식 솜씨 좋았던 외할머니가 명절이면 꼬박 하셨던 것 중에 빠지지 않았던 것,

식혜, 수정과.

 

 

식혜는 다들 좋아 했지만

저는 식혜 별로 안 좋아했어요.

저는 쌉싸름한 수정과를 더 좋아했어요.

 

 

다른 손주들은 다들 식혜만 찾고

수정과는 쓰다고 안 먹는데

저는 수정과 좋아했거든요.

할머니가 이런 제가 기특 하셨는지

제가 수정과 달라고 하면 꼭 항아리 국자로 휘휘 저으신 다음에 건지셔서

곶감 한 개 꼭 넣어 주셨어요.

 

 

복시렵게도 잘 먹네, 망광냥이.

(복스럽게도 잘 먹네, 말량광이)

 

 

이렇게 말씀 하시면서.

애같지 않게 어른들이나 먹는 것도 잘 먹는다고

저보고 항상 복스럽게 먹는다고 예뻐해 주셨어요.

뭐든지 잘 먹는다고.

 

 

내가 먹고 자란 음식이라고 추억하는 것들은

사실

내 엄마의 음식이라기 보다는

할머니 음식이 많고

그 손 맛 이어 받으신 이모 음식이 더 많아서,

아니다,

더 많다기 보다도 아니고 만두 빼고는 거의 다 임ㅋ

 

 

2006년 도에

미국에서 15년을 살면서 한 번도 안 해 봤던 송편을 했던 이유는

 

 

하릴없이 텔레비젼에서 한국 방송을 보다가

추석 앞두고

전라도 어느 마을의 송편 빚는 모습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였어요.

 

 

지금은 인터넷에 '송편'이라고 치면

엄청나게 휘황찬란한 자태의 송편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저 당시,

저는 '꽃송편'이라는 걸 머리털 나고 처음 봤을 뿐더러

 

 

어느 시골

무슨 양반가 종갓집 며느리라고 나오면서

한복 곱게 입은 단아한 모습의 아주머니가 빚는 것도 아니고

한 평생 일만 많이 하고 살았을 시골 할머니들이

두텁고 투박한 손으로

송편에 앙징맞은 꽃 문양을 박는 모습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미국 생활 15년 여 만에

송편이란걸 빚어 보고

때깔은 괜찮구나 하면서 나름 뿌듯해 했다가

 

 

맛도 별로고

나는 먹지도 않는거고

해서 때려치고

녹두 빈대떡에 집중을 해오다

이번에 이차저차 해서 또 하게 된건데

결론 났어요.

이제 다시는 안 할 거예요.

집에 절구통 장만하지 않는 한.

 

 

노여사 배웅하는 길에

노여사가 그러시더군요.

블랜더가 얼만지 당신이 사주시겠다고.

 

 

그니깐 내년부터는

송편하지 말고 하던대로 빈대떡이나 부쳐라, 이 말씀 이시죠.

 

 

다행히 저 빼놓고는 다들 떡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제가 노여사한테

이렇게 맛없는데 언니가 먹으려나?

하고 여쭸더니

 

 

아니 주면 먹지 왜 안 먹어?

 

 

하시길래

 

 

셋째 성 먹으라고 한 통 싸고

 

 

큰언니한테 중간에 전화 왔길래

맛 없으니까 그냥 신경 꺼. 했는데

큰 조카 양이 지네 엄마한테 말하기를

먹을만 한데 이모가 자꾸 맛없다 그러네.

그러고.

 

 

일 마친 둘째 언니한테 전화 왔길래

 

 

맛 없으니까 가지러 올 필요 없고

그냥 집에 가서 쉬라고.

근데 엄마랑 큰 조카양이랑 얼마나 배가 고팠었는지

그 맛없는 걸 자꾸 먹더라고, 만들어 놓은 거 대충 다 해결했다고 하면서 웃었더니

둘째 언니가 ㅋㅋㅋ 하고 알았다고 하고 전화 끊었어요.

 

 

송편은

한국 마켓에서 맛나게 파는거 사 먹기로 하고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만들지는 않겠다,

나는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련다, 로 결론 내렸습니다.

 

 

그래도 섭섭하니까 사진은 몇 장 올려 봅니다.

 

 

 

 

 

 

 

 

 

 

 

 

 

 

 

 

 

 

 

 

 

 

 

 

 

 

정성은 많이 들어간 반죽

 

 

그러나 맛은 없는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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