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스무번째 겨울을 나면서 이런 겨울은 처음입니다.

그 날 그 날 날씨가 좋을 때 마다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게으름으로 인한 생활고와 엎친데 덮친 이런 저런 가정 불화로 인하야

산뜻한 바깥 날씨와는 반대로

우중충한 날들을 보내던 이쁜아짐은

지난 주말부터 무기력의 정점을 찍은 듯한 생활을 청산하고

회복세에 접어 들었습니다.

 

 

일단 주에 20시간 파트 타임 일을 시작했고요,

크하하!

제 시간도 아직 많지요.

미래 대비형 영어 공부로 시간을 쓸 계획입니다.

(계획이 이래요. 실천은 별개의 문제ㅋ)

 

 

 

밥을 해 먹기도 싫고

해 먹이기도 싫어서

부엌일도 거의 작파 했다가 어제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일단 아침 먹자 마자 빨래부터 하고

(오옷 이렇게 생산적일 수가...얼마 만에 이렇게 오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보는지)

 

 

한동안 이리 저리 뜯어 봐도 이쁜 구석이 없던 서방마저

대충 귀여워 보이길래

연어 요리 해줬습니다.

 

 

마침 연어가 협찬이 들어 왔거든요.

친히 인터넷 검색을 하여 된장 소스를 만들어 재워 뒀다가 오븐에 구워서

푸성귀 밑에 깔아서 줬더니

평생에 이렇게 맛있는 연어 요리는 처음 먹어 봤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조상이 아이리쉬라고

한국 사람이 설이면 꼭 떡국을 먹듯이

3월 중순에 있는 성 패트릭 날에는 반드시 찾아 먹는 콘드 비프를

지난 달 부터 뜬금없이 계속 해 먹어 보자고 하는 걸

무시로 일관 했더랬는데...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 먹던가 알아서 할 일이지

집에서 '해 먹어 보자'는 무슨 소리랍니까.

차마 해 달란 소리는 못하고 저렇게 말 돌려서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요런 소리가 더 얄미워요.

만들면 누가 만드는데.

고기 사다 자기가 직접 만든다면 제가 말리지는 않죠.

자기가 할 것도 아니면서 해봅시다는 무슨.

만들어 바칠 기분 아니라서 못 들은 척 했습니다.

 

 

오늘 아침,

드디어 조리법 검색 했습니다.

기분입니다.

만들어 보죠 뭐 까짓거.

지금 고기 고고 있는 중입니다.

 

 

둘째 언니한테 전화가 왔길래

어쩌고 저쩌고 얘기 하다 디카가 완전히 망가 졌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연어 요리 성공한 것 사진 찍고 싶었는데 못 찍었고

지금 하는 콘드비프도 완성되면 사진 찍고 싶은데 못 찍을 것이고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까지는 우여 곡절 끝에 몇 장 찍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 완전히 사망.

 

 

전원을 켜면

메모리 카드가 버젓이 들어 있는데

메모리 카드가 없다는 메세지가 뜨고

껐다 켰다를 수십 번 쯤 하다 보면 운좋게 메모리 카드 읽혀 질 때 몇 장 찍고. 이랬거든요.

배터리 들어 가는 자리는 이미 깨져서 몇 년 째 덕테잎 부쳐서 쓰고 있었고요.

사진만 찍히면 난 새거는 안 산다, 버틸 때 까지 버틴다,

이러고 쓰고 있었는데 이제 완전하게 기능을 안 하네요.

10년도 채 못 썼구만.

아쉽지만 9년 간 나의 취미 생활이 되어준 이 디카와 작별을 하고

새 것을 장만할 계획을 세워야 겠다...라고 말을 했더니

 

 

 

생일 선물로 사줄테니 사라네요? 우헤헤.

 

 

대단한 건 안해도

음식 해 먹을 때 사진 한 장씩 찍어 놓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는 것이 

소박한 취미 생활이었는데

디카가 없어서 취미 생활에 적신호가 켜지고 심심하다고 했더니

사줄테니 사라고.

 

 

저 집이 요즘 잘 나가는 구나...

한 두푼 짜리도 아니고 디카를 사준다고라...

 

 

마음에 찜 해 놓은 게 있긴 한데 비싸다고,

세금이랑 배송비랑 이렇게 저렇게 다 하면 거진 200불 될 텐데? 했는데도 흔쾌히 사라네요.

세금 환불 받을 거에서 쏜다고.

생일은 거진 반 년이나  남았는데 명목은 생일 선물이라고.

이쁜아짐의 언니들은 꼭 뭘 사주면 그냥 안 사주고 생일 선물이라고 갖다 부칩니다.

그냥 사주면 동생 버릇 나빠질까봐 그러는가 봅니다.

 

 

 

콩나물과 시금치 두부 그리고 냉면, 비빔국수로 연명하다

오늘은 나도 먹고 싶은 고기를 먹겠다 하고

큰 돼지고기 덩어리 사다 칼로 얇게 썰어서 고추장 돼지 불고기 양념해 놨어요.

옆에서 남편이 고기가 양이 아주~~ 많은데 그걸 다 매운걸로 하실 거냐고 소심하게 질문하길래...

또 인심 썼습니다.

3분 1은 남편이 좋아하는 베트남식 달달한 양념으로 재웠습니다.

 

 

마눌님 기분 좋아진 이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몸을 반쯤 돌려서 마파두부 어쩌고 중얼중얼...

 

 

뭐라고???

 

 

했더니

돼지고기가 어쩌고 저쩌고 마파두부 먹은지가 오래 됐고 어쩌고 저쩌고.

 

 

이건 며칠 기다리라고 했어요.

 

 

식단을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난 그 동안에

새로 담근 단무지 맛 들었을 때 김밥도 싸 먹어야 하고

올 정월 대보름 못 챙겨 먹은 말린 나물들도 해 먹어야 하고

냉동실에 지난 번 노여사가 사다 주신 한치도 녹여서 오징어 볶음도 해 먹어야 하고

여차하면 녹두 반 봉지 남은거 불려서 빈대떡 해 먹을 수도 있고

딱 한 번 해보고 너무 귀찮아서 다시는 해 먹지 말아야지 했던 월남쌈도 재도전 가능성이 있고

어쨌든 이런 저런 식단 구상 중에 있으니

일단은 양념해 놓은 돼지고기 부터 먹고 나서 마파두부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디카는 며칠 더 알아 보고 주문 하려고요.

 

 

 

새로운 카메라가 생기면 뭘 해 먹고 사진을 찍을까...

뭘 해 먹고 찍어야 미전역과 한국 대만 두바이 유럽 남극까지 잘 해 먹고 산다고 소문이 날까...

일단 위에 적힌 것들 찬찬히 하나씩 해 먹으면서 즐거운 상상을 해보려 합니다.

 

 

첫 기념 사진으로는

빌딩 뒷 편에 있는 화분 사진 찍으려고요.

고추 다 따 먹고 난 늦가을에

시어머님이 마늘은 가을에 심는거라고 하셔서

과연 정말 그럴까? 반신반의 하면서

작년 11월에 마늘 한 쪽씩 떼서 노는 화분에 하나씩 박아 놓고는

완전히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나가서 보니 마늘이 자라고 있더라고요.

 

 

 

내가 지지부진 게으름 피우며

이불 뒤집어 쓰고 구들장을 베프삼아 온돌 공주하며 겨울을 나는 동안

밖에 내버려둔 마늘은 열심히 저희들 혼자 이렇게 잘 자라고 있었다니...

새 봄을 기다리는 제 마음에 큰 희망이 되어준 이 기특한 마늘을

첫 사진으로 찍어 보려 합니다.

 

 

 

며칠 더 알아 볼 것 없이 그냥 지금 확 주문해 버릴까...

아~~ 좀이 쑤시네~~

손가락이 근질근질...

일초도 더 기다리기가 이렇게 힘드네. 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