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어머니의 외삼촌,

그럼 증조 외삼촌? 이렇게 되나요?

저한테는 시어머니의 외삼촌이니까 한국말로 올바른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아 복잡해...

 

 

영어로 정확한 호칭은 '그레잇 엉클 밥'이 되겠지만

보통 때는 남편도 단순히 '엉클 밥'이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그냥 외삼촌 성함도 '밥'. 그래서 이 분도 '엉클 밥'

어떤 엉클 밥인지 굳이 구분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엉클 밥 어쩌고' 내지는 '엉클 밥 어쩌고'

이렇게 뒤에 성을 붙여서 저한테 말을 하고요.

 

 

저는 그럼 한국말로 정하자면,

시증조 외삼촌, 이게 맞나요?

 

 

암튼지, 이 분이 병원에 입원을 하셔서 지난 주에 병문안 다녀 왔어요.

 

 

내년이면 아흔 살 되시는

카톨릭 신부님이세요.

 

 

넘어지셔서 골반뼈 부러지는 바람에 입원하셔서 수술 받으셨는데

퇴원하시는 날 갔습니다.

 

 

남편 왈,

 

 

퇴원이 정확히 몇 시 인지는 모르겠다고

병원 갔다가 못 만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가 보자고.

날씨가 좋으니 증조외삼촌은 못 만나고 오더라도 데이트 삼아 다녀 오자고.

 

 

 

저는 속으로만 혀를 차죠.

문병 갈 수 있는 날들 혼자는 안 가려고 자기 엄마 전화도 안 받는거 제가 다 알고 있었거든요.

(셋째 성이 이럴 때마다

그저 니네는 또옥같은 아들 하나 키워서 고대로 당해 봐야 하는건데...

맨날 이럽니다)

제가 같이 갈 수 있는 날로 하려고 자기 엄마 전화도 피하면서

부인이 같이 가주려나...하면서 제 눈치 보고 간 보느라고.

 

 

그러느라 퇴원 하시는 날 가게 된 거예요.

무슨 병 문안을 환자가 병원 떠나고 없을 수도 있는 날로 가나요.

그리고 허탕을 치더라도 날씨 좋으니 데이트 갔다 치면 된다고?

나이 마흔 넘어서 마누라 데리고 데이트를

뉴욕 이 쪽 끝에서 뉴욕 저 쪽 끝까지 지하철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합니까?

 

 

이런 사람이 나의 남편인 것을

제가 모르지 않으니까

그냥 조용히 따라 나섭니다. 한심함은 혼자 속으로 삭히면서.

 

 

퀸즈에서 브롱스 저 쪽 까지 지하철 세 번 갈아 타며

집에서 병원까지 한 시간 반도 넘게 걸려 도착했더니

환자 분 계시더군요.

 

 

충격 받았어요.

 

 

마지막 뵌 게 일년 쯤 전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정말 정정 하셨는데...

먼저 떠나 보낸 조카 장례 미사 집전 하시면서

정말 활기차고 재미나게 장례 미사를 그렇게 집전 하시는 모습이 지난 번 뵌 모습이었는데

 

 

침대에 누워 계신 그 분이 그 분 맞나 싶게

몸이 딱 반으로 줄었고

어린 아이같은 체구로...

정말 충격 받았어요.

 

 

계획은 문안 잠깐 드리고 나와서 병원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 온다 였는데

(남편은 아침도 안 먹었음)

인사만 하고 나오기는 너무 심난한 상황이더군요.

 

 

병원 측 복지사가 왔다 갔다 하면서

앰뷸런스가 금방 올 것 이다,

그런데 아직도 양로원 측하고 합의가 안됐다,

아무래도 먼저 계시던 곳으로 가셔야 할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요는, 퇴원 후 가실 양로원으로 환자가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가 없는 상황.

예정되어 있는 곳은 환자가 가기 싫다 하고.

거기는 재활 치료도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안해 주고,

주말엔 의사도 없고,

거기 간호사가 한 번은 나한테 어떤 약을 먹이려고 했냐면...기타 등등

증조외삼촌 불만 사항은 저런 것들.

 

 

가족 중에서 다른 친척 조카 분이 일차적으로 이 외삼촌 일을 도맡고 있는 분이 있어요.

그 분하고 이 복지사하고 카톨릭 교단 측하고

분주하게 전화로 양로원 문제를 막판까지 논의 중인 상황이더라고요.

 

 

저희는 아무 것도 모르고 가볍게 병 문안 차 갔지만

이 상황을 본 이상

가볍게 바이 바이하고 나올 수는 없더라고요.

 

 

앰뷸런스가 왔는데도 결정이 안 나서

한 시간 정도 더 복지사가 왔다 갔다 하면서 얘기하고

마침내 앰뷸런스 사람들이 지금 안 가면 자기들은 대기 시간 끝나서 가야 한다고 최후 통첩을 해서

일단은 원치 않던 그 곳으로 가시게 됐습니다.

 

 

남편한테

앰뷸런스 사람들한테 우리도 탈 수 있냐고 물어 보라고 시켰어요.

흔쾌히 된다고 했다는 군요.

그래서 저희 부부도 앰뷸런스를 탔어요.

 

 

친척 분도 두 시간은 있어야 그 곳에 도착한다고 하는데

구십된 노인네를 보호자 한 명 없이

짐짝처럼 실려서 그렇게 혼자서 가시게는 못 하겠더라고요.

양로원 도착해서 입실하고.

친척 분 도착하고 남편이랑 저랑 셋이 잠깐 얘기 나누고.

거기까지 하고 외삼촌한테 인사하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의 고맙다는 인사가 백번쯤 되어 가려는 찰나에

그렇게 고마우면 짜장면이나 사 줘. 해 가지고

한 시간 반의 귀가길을 중간에서 잘라서 중국집 가서 짜장면하고 군만두 먹고 왔어요.

 

 

 

음식 주문해 놓고는

의기양양하게 어머님한테 전화를 하더군요.

전 날 까지는 피하던 전화를 이제는 자진해서.

이제 할 일 했다 이거죠. 포인트 받겠다, 이거.

 

 

남편은 좀 화가 났더랬어요.

60년 넘게 신부로 봉사 했는데

말년에 기껏 가고 싶다는 양로원으로 보내 주는것도 안해 주냐고 씩씩 거렸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 쪽이나 저 쪽이나

다 교단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신부님들만 가시는 그런 양로원인데

왜 희망하는 그 곳으로는 안된다고 하는 건지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그 쪽은 의료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는 곳이고

지금 계신 곳은 아주 최소한의 의료 시설만 되어 있다 합니다)

일 봐주는 친척 분이 아주 야무지게 말씀 하시더라고요.

될 때 까지 추진할 거라고.

지금 가신 곳은 한 눈에 봐도 아직은 운신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셨고

지금 저희 증조외삼촌 상태는 화장실도 가실 수가 없는 상태.

당분간은 의료진을 집중적으로 봐야 하는 상태고.

 

 

 

지금 계신 곳이 불만스러운 이유들 중 마지막은,

 

 

너희들 사는 데서도 너무 멀어!!!

 

 

 

(허걱. 저희더러 자주 찾아와 보라는 말씀??? 저 클났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일 년 만에 몸이 반으로 줄어든 노인의 병문안을 하면서

이제 또 한 번의 장례식을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가...이런 생각도 하고

사람의 노년, 말년,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늙어 가고 병들고 죽음을 앞두고 기타 등등

이런 생각이 다각도로 들면서 심난하기도 많이 심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많이 웃었던 하루였어요.

 

 

 

아침에 외출 준비하면서 부터 저는 옷장에서 화려한 색의 원피스를 꺼내 입었었고요.

잠깐이나마 병원에 입원해 봤던 경험으로

병 문안 오는 사람들이 밝은 모습으로 웃은 얼굴로 병 문안을 오는게 환자에게는

더 좋다는 걸 배웠거든요.

나를 염려하는 마음, 다 아니까

이제 우리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인 얘기, 웃긴 얘기, 재밌는 얘기 그런거 하자, 하는 마음.

나를 보고 웃고 간다고 해서 내가 걱정이 안되는게 아닌거

환자는 다 알거든요.

웃는 게 좋아요.

 

 

화사한 모습으로 예쁘게 하고 가서 밝은 모습으로 병 문안 해야지~

 

 

이게 제 미션이었습니다.

 

 

환자도 워낙에 유머 감각이 엄청나신 분이거든요.

2인실이었는데 옆의 환자가 젊은 아이리쉬 남자였어요.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얼마 전에 이민 왔다고 하는.

앰뷸란스 곧 온다는 소리 듣고는 커튼을 확 제치고

신부님, 가시기 전에 축도해 주세요.

 

 

했더니 외삼촌 왈,

 

 

물론이지.

 

 

그러고는 축도는 안 하시고 계속 딴 소리만.

 

 

우선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신부로 평생을 살았다고 해서

내가 당신보다 신과 더 가깝다고 생각은 하지 마라 로 시작을 해서

신부만 사람들을 축복해야 하는 건 아니야,

너도 나를 축복해야 한다.

 

 

그래서 이 남자 분이 외삼촌한테

 

 

갓 블레스 유 파더.

 

 

결국 먼저 했고

 

 

계속 수다를 이어 가시는데 너무 웃겨 가지고 병실 안 환자 두 명과

그 쪽 보호자 그리고 저희, 이 다섯 명이

한 삼십 분 쯤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병실 안에서 이렇게 큰소리로 웃음이 끊이질 않으니 사람들이 지나 가면서 구경하고.

 

 

제가 병실 들어 가자 마자 병상 옆으로 의자 바짝 끌어다 앉아서

외삼촌 손을 잡고 계속 얘기 중이었거든요.

 

 

남편한테

다른 남자 손 잡았다고 싸우려거든 집에 가서나 싸워라.

역시 손은 여자 손을 잡아야 제 맛이라고

남자 놈들 손은 잡아 봐야 아무 쓸 데가 없다고.

 

 

저도 많은 축복을 받고 왔습니다.

 

 

저한테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을 몇 번씩 하셨어요.

 

 

 

 

이 말씀을 제가 마음에 다 담았습니다.

특별하다고 말씀을 해 주시니 정말 특별한 사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돌아 가시기 전까지 몇 번 더 뵙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날 병실에서의 즐거운 '수다 축도'를 내내 마음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마무리는 신부님답게ㅋ

옆 환자가 바라던 대로 그렇게 축도해 주셨습니다.

저희 모두를 축복해 주셨어요.

 

 

모두가 큰 소리로

아멘~~~~~~~~! 하고 박수 치면서 끝냈습니다.

박수는 왜들 쳤는지 모르겠음ㅋ

 

 

짜장면 먹고 마지막 30분의 귀가길,

정말로 피곤하더군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오늘 지하철만 세 시간을 탔네.

꿀물, 오늘 데이트 자알 했어.

 

 

했더니

남편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자기도 그렇답니다.

 

 

역시....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는구나....

이 사람과 사는 나는...

맞아 난 특별하구나. 난 특별해..

 

 

이렇게 저희 부부, 지하철 데이트를 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