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웬 눈이 이렇게 내리나요 올 겨울.

 

 

남편은 그제 볼 일은 오늘로 미루고

어제 볼 일은 제대로 다 소화하고.

외려 눈은 어제 아침이 더 많았구만.

 

 

그제 아침엔 일찍부터 울리는 전화를 받아서는

그럼 금요일로 합시다, 괜찮습니다, 이러고 통화 마치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오늘 일은 금요일로 미뤄 졌어요. 우리 오늘 하루 종일 함께 있을 수 있어요.  

방긋 방긋 방긋 방긋

저 오늘 많이 먹을 거예요. 지난 주말에 못 먹은 것 까지.

방긋 방긋 방긋 방긋

냉장고에 두부 있다고 하셨죠? 그럼 혹시 마파두부 먹을 수 있을까요?

부인님의 마파두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먹은 지가 참 오래네요.

방긋 방긋 방긋 방긋

그렇다고 절대 부담은 갖지 마시고요.

방긋 방긋 방긋 방긋

 

 

몰라. 검색 좀 해 보고 말해줄께.

 

 

남편이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친구들하고 모여서 포커치고 왔거든요.

1박 2일간 먹은 건

무작시런 양의 맥주와 피자 한 조각.

토요일 오후에 나가서 일요일 오전에

초췌한 몰골로 들어 와서는

포카 쳐서 딴 돈이라고 1불 짜리 두 장을 저한테 주길래,

 

 

왜 이거만 줘? 액수가 틀리잖아!

 

 

했더니 화들짝 놀라서는 자기는 결코 100% 결백하다고 그게 전부라고 그러길래

 

 

어제 새벽에 보고 전화 했을 때는

2불 25전 땄다고 했잖아.

25전은 어디 갔어.

 

 

 

어머나 어머나 우리 부인님은 참으로 날카롭기도 하시지.

25전 여기 있습니다.

 

 

 

오랜 만에 친구들하고 놀고 들어온 남편은

술 마셔대고 난 다음 날의 숙취로 인한 육체적 고통보다 잘 놀고 들어 온 정신적인 만족감이

확연히 더 크다는 증거 행위로

25전도 마저 내 놓으라고 호통친 이쁜아짐을 끌어 안고

 

 

아유 귀여우셔라 아유 귀여우셔라.

대체 왜 이렇게 귀여우신 거예요.

집에 오니까 이렇게 좋네~

 

 

25전 마저 내 놓으라는 말 한 마디에

저렇게 애간장이 녹아 난다고 난리를 치니

저 사람이나 나나

참으로 우리 둘이 붙어 사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돕는 일이구나..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생각이 없는 남편에 비해

아주 똑같이 함께 생각이 없는

칭찬 몇 마디면 온 심장을 내던지고 사는 사람답게

저 장단에 놀아 나서

마파두부 해 먹었어요.

 

 

둘이 머리 맞대고 히히덕 거리면서

오랜 만에 먹으니까 정말 맛있네. 하하하 호호호 하면서.

 

 

오늘은 지난 번 담근 김치가 너무나 희한한 맛이 나는 바람에 김치만두 했어요.

 

 

친구한테 전화해서,

 

 

김치를 담가 먹은 경력이 년차는 오래되도

담글 때마다 항상 맛있게 되지는 않긴 하지만

이번 김치 맛은 정말 새로운 맛이네.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는 맛이 나왔어.

짜다 싱겁다 맛있다 맛없다 이렇게 형용사 하나로는 설명되어 지지 않는

정말 희한한 맛.

 

 

친구도 너무 궁금해 하는 거예요.

대체 무슨 맛일까, 왜 그럴까, 무엇 때문에 그럴까, 배추 탓일까?

 

 

어쨌든 결론은

저 상태로른 그냥 먹기 힘들기 때문에

플랜 B로 가야겠다, 만두 해야겠어, 그러고

 

 

아침에 일어 나서 커피 내리고

남편과 사이 좋게 한 잔씩 마시고

후다닥 나가서 숙주 나물하고 두부 사와서는

남편이 나갈 준비 하는 동안 앞치마 두르고 김치 다지기 시작.

 

 

이따가 자기 들어 오면 하시지,

자기는 나가야 하는데

숙주 나물은 누가 짤 것이며

두부는 누가 짤 것이며

김치는 누가 짤 것이며,

 

 

저는 요리를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내가 모든 과정을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한 동안 손 상태가 좋지를 않아서

지난 2년여 정도? 손 힘이 들어 가야 하는 건 남편 시켰었어요.

 

 

오이지 담가서 잘 익으면 다 썰은 다음에 남편더러 나와서 짜라고 시키고.

나물 반찬 하는 날도

남편 불러서 짜라고 시키고.

 

 

 

저렇게 했더니 나타난 결과는

남편이 굉장히 의기양양 해졌다는 거.

제가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서 뭔가를 하려는 조짐을 보이면

방에서 텔레비젼 껌딱지 하고 앉아서는 큰 소리로 외쳐요.

 

 

헤라클래스 대기 중입니다.

필요하면 부르세요!

 

 

그래서 정말로 뭔가를 시키려고 불러서

이것 좀 잘 짜보라고 시킨 다음에

남편이 그걸 짜고 있는 동안

이쁜아짐은 옆에서 박수 치면서 힘차게 구호를 외칩니다.

 

 

헐큘리스! 헐큘리스!

 

 

제가 박수 치면서 헤라클라스를 외칠 때

남편은 너무 기분이 뿌듯해서는 콧구멍이 벌렁벌렁 하면서

열과성을 다해 쥐어짜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음식을 먹을 때,

남편이 엄청 의기양양 해서는

우리는 정말로 좋은 팀이라고.

우리 팀이 하는 요리는 항상 맛있다고.

 

 

손 힘 조금 거들었다고

나머지는 다 내가 했는데,

'팀'이라는 말로

묻어 가는 작태가 전혀 얄밉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맛있게 먹는 음식에 본인이 일조했다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업그레이드 시키며 행복해 모습에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 그냥 놔 둡니다.

 

 

요즘은 손 힘도 많이 돌아 왔어요.

속으로 생각 하기에 혼자서도 만두속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건데

남편은 걱정 한 짐을 안고 집을 나섰습니다.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가면

최소 세 번 저한테 전화를 해요.

 

 

저 (일터에)도착 했어요.

다 끝났어요. 지하철 타러 가요.

지금 강 겄넜어요. 뭐 사 가지고 들어 갈 것 있나요?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전화 하고 싶을 때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만

저도 일을 할 때는 저는 처음 두 번은 금지 시키고요,

각자 알아서 일과 마치고 저녁 때 한 번만 하자고.

전화 받아서도 대충 대충 귀찮다는 생각하면서 대답 마치고 얼른 끊습니다.

 

 

좀 전에 일터로 잘 도착 했다는 전화 받았을 때

만두속 마무리 중이라고, 다 섞어서 버무리고 있다고

집에 오면 만두국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고

잘 하고 들어 오라고 격려도 하고

가는 길에 웅덩이 같은데 안 빠지고 잘 갔느냐고 물어도 주고.

너무나 상냥하게 전화를 받아 줬다지요?

 

 

남편이 언젠가 했던 말이,

자기가 밖에 나가서 '일'이라는 것을 할 때는

인간들하고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개, 돼지들'이랑 어울리는 거라고.

그런데 그런 하루가

자기가 집에 들어올 때

제가 활짝 웃으면서 뛰어나와 끌어안는 그 순간,

내가 웃는 모습을 보는 그 순간,

개 돼지들과 함께 했던 고통스러웠던 하루가 보상받는 순간이라고.

내가 이것을 위해

당신이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렇게 사는 것이 보람이 있다,

고 느낀다고.

 

 

저 말을 몇 년 전에 들었을 때도

저는 그냥 이 남자가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지

남편이

자기 성품과 성격에 어긋나는 일을 하느라

하루 하루가 정말 힘들구나, 하는 생각은 심각하게는 안 했었는데,

그 사람들도 사람인데

왜 우리 남편한테 동물로 격하를 당하나

왜 이 사람이 이렇게나 격한 표현을 쓰나..

 

 

 

 

아니요 하기는 했었는데

그래도 그거해야 돈 잘 벌어 오니까

모른 척 한 거라고 해야 맞겠네요.

 

 

 

지금은 그 일 때려치고

살살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그 때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많이 듭니다.

 

 

왜 그 때 나는 남편한테 맨날 성질만 부리고

더 지랄을 떨고

혼자 돈 번다고 유세 떨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구박하고.

 

 

앞으로 살면서 좋은 부인이 되야지. 갚아 줘야지.

이런 생각 요즘 많이 해요.

 

 

저희 사는 모양새가

아파트 렌트도 싸고

라이프 스타일 유지한다고 돈 써대는 것도 없고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수수'해요.

먹는 것 항상 잘 챙겨 먹고. 이게 저희 중점 사안.

 

 

그간 쌓인 빚이 있어서 이것에 당분간 올인해야 하는데

이 문제도

제가 경제 생활 시작하면 크게 힘들 것 없습니다.

이게 잘 안되서 지금껏 이 모양이긴 하지만.

 

 

어떻게 제대로 맛이 나왔나...테스트 할 요량으로

지금 막 만두 열 두 개 쪄서 먹고 있는데

한 달 전에 제대로 맛 나는 마켓 김치로 한 만두보다

외려 이상한 맛 나는 내 김치로 한 오늘 것이 더 맛있네요??

 

 

어떻게 된 일이지???

뭐여, 이것이 사랑의 힘인 것이여??

한 달 새 이쁜아짐 간보는 기술이 더 일치월장한 것이여?

 

 

 

일 잘 마치고 

서방님 들어 오거들랑,

수고 하셨다고 뽀뽀도 해 주고,

부인님의 수고와 정성이 담뿍 들어 간 만두국 끓여 주고

아주 기냥 오동포동 살 올려 줘야지. 

 

 

 

둘째 언니가 예전에 했던 말,

 

 

제부는 어쩌면 좋니.

이런 호랭이 마누라래도 그저 니 치마 폭 안에만 있고 싶어하는 구나.

 

 

만두국 잔뜩 멕이고 나서는

남편을 내 치마폭에 앉혀 놓고

노래 한 가락 불러 봐도 좋겠네요.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사람 사는 것,

마음 하나 놓지 않으면

이것 하나 꼬옥 잡고 있으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웃으면서 살 수 있다.

 

 

 

사랑만 하면 뭐하냐고

현실적으로 아무 해결을 안 하면서

그 입으로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내가 지금 필요한게 돈이지 당신 관심이냐고 

듣기 싫다고

다 집어 치우라고

 

 

소리 지르면서 당신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것,

그래서 내가 당신 너무 많이 울렸던 것,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아저씨.

주부 습진이 걸린 것도 모른 척하고 계속 설거지하게 놔둔 것,

아주 조금 미안합니다.

밥은 내가 더 잘 하고 설거지는 당신이 더 잘 하니 어쩔 수 없잖아요.

앞으로도 설거지는 계속 담당해 주시면

먹는 건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남편...

내 사랑을 받아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