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초대하는 수퍼 볼 파티는 다 거절하고

(원래 연애할 때 부터 요 날은 저랑 둘이만 보내는게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친구들은 여전히 매년 초대를 하고.

남편은 매년 거절을 하고)

 

 

올해도 그냥 둘이 조용히 지나 가겠거니 했는데

뜬금없이, 우리도 수퍼 볼 파티라는 걸 주최해 보자는 거예요.

 

 

남편이 제시한 게스트 명단,

 

 

조카 1 (큰언니 딸 대학교 3학년)

조카 2 (큰언니 아들 대학교 1학년)

조카 3 (둘째 언니 딸 8학년)

조카 4 (둘째 언니 아들 5학년)

 

 

아메리칸 풋볼에 전혀 관심도 없는 생뚱 그 자체인 게스트들.

저 게스트들 하루 전에 연락 했더니

다들 왔습니다.

 

 

저 아이들이 풋볼 보려고 온 게 아니라는 걸

남편도 잘 알긴 했어도

그래도 전혀 그 누구도 관심도 갖지 않는 상황에서

애들 넷이 모여 난리굿을 치느라 자기 자신도 제대로 경기를 못 보고

그래도 뭐가 좋은지 내내 허허허 허허허.

 

 

조카 3과 4가 자기들 교회 스케쥴 소화하고 다섯 시 쯤 와서

남편과 함께 셋이 나쵸를 만들었고

주말이면 알바를 뛰는 큰 애들.

조카 2은 7시 조금 넘어 왔고

마지막 조카 1은 9시가 다 되서.

 

 

 

아이들 용으로 스프라잇 큰 거 한 병 사다 놨는데

큰 애들은 대학생이라고 맥주 마시겠다 하고

모든 면에서 저를 많이 닮은 둘째 언니 딸은 탄산 음료 원래 입도 안 대고

둘째 언니 아들내미,

저 녀석이 음료수 엄청 좋아 하거든요.

 

 

5시에 둘째 언니네 애들이 먼저 왔을 때

남편은 호스트 노릇 한다고

원하는 음료수 말하라고 한 다음에

현경양은 물 주고

저 녀석은 얼음에 스프라잇 줬어요.

 

 

홀짝 홀짝 빨리도 마셔 대길래 (큰 글래스 였는데)

다 마셔갈 때 쯤 제가 그랬어요.

일단 고거 한 잔 마시고

형아랑 누나 와서 다같이 저녁 먹을 때 한 잔 더 주겠다고요.

(이것만도 제가 큰 인심 쓴 겁니다)

 

 

큰 언니 아들이 7시 조금 넘어 일 마치고 오더니

자기는 스프라잇 말고 맥주나 한 캔 따겠다고 하는데.

옴마 맥주가 없네?

그래서 제가, 일단 나쵸 먹고 있으라고.

이모가 금방 맥주 사 오겠다고.

(이미 경기는 시작 했으므로 남편더러는 경기 계속 보고 있으라고,

내가 후딱 댕겨오마 이러고)

 

 

그랬더니 큰 언니 아들이 따라 나서는 거예요.

맥주사러 이모 혼자 보낼 수 없다고.

그런 무거운 건 남자인 자기가 들고 와야 한다고.

(얘가 또 어렸을 때 부터 저를 엄청 따라 가지고,

딴에는 저랑 자기랑 단 둘이 맥주 사러 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듯도 하고요.

암튼 저한테 엄청 자상하게 잘 해요.

이모 무거운 거 들면 안 된다고.)

 

 

야야, 느네 이모부도 이모 무거운 거 못 들게 해서

이모 하프 갤런짜리 우유도 못 사오게 한다.

이모 무거운 거 맨날 들고 다니는 거 아니니까

가끔 맥주 한 팩씩은 사갖고 와도 돼.

일하고 와서 배 고플텐데 나쵸 먹고 있어.

이모 5분이면 돼.

 

 

했는데도 죽어도 자기가 같이 가서 들고 와야 한다고.

 

 

그래서 둘이 수퍼 마켓 갔다 왔어요.

집 나서자 마자

제 팔짱을 꼭 끼더니

이모 여기 물 있어 조심해,

이모 이 쪽으로 와. 저 쪽에서 차가 오잖아.

이렇게 둘이만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

이럴 때면 꼬박 지 이모를 엄청나게 공주 대접 해줘요.

 

 

맥주 사 갖고 금새 왔더니

둘째 언니 아들이, 어느새 두 번째 잔 스프라잇을 마시고 있더군요.

전 대충 상황이 파악이 됬지만 암 말 안 했습니다.

 

 

아그덜 볶아치고 다 가고 난 다음에 다시 단 둘이 남게 됬을 때

술 좀 오른 남편이 저한테 말하기를,

 

 

저 맥주 사러 나가자 마자 저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스프라잇을 가져다 스스로 자기 잔에 리필을 했다고.

지 누나나 남편이나 그냥 보고만 있었다고

(분명 이모가 기다렸다가 모두가 모였을 때 한 잔 더 주겠다고 했는데 지 맘대로 잔을 채우니)

 

 

 

제가 그 병 집어다 잔 채우기 전에

당신한테 물어라도 봤냐고 했더니

남편이 아니라고 하네요.

 

 

그게...저 상황에 지 이모부 등에 업고

한 잔 얼렁뚱땅 더 마실 심산이었으면 물어라도 봤어야 하는 거였는데

실은 남편도 그게 마음 상한 거죠.

 

 

 

아니 그럼 그 상황에 한 마디라도 하지,

어른이 되가지고 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애들 다 가고 나서

저한테 일러 바치기는 또 왜 일러 바칩니까.

 

 

재작년에 아주 잠깐,

둘째 언니 딸래미, 현경양을 남편이 토요일 마다 공부 봐 준 적이 있었어요.

이렇게 된 사연 역시 길어서

일단 오늘은 이 사연은 생략하고,

공부 시작하는 것 보고

저는 집을 비워 준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랬더니,

이 맹랑한 조카양께서 저 나가는 문소리 들리자 마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책상에서 발딱 일어 나서는

방으로 들어 가더니 텔레비젼 앞에 앉더랍니다.

 

 

남편은 이 일로 정말 충격 받았었어요.

남편한테는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이

마치 이제는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저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뜨고 방으로 들어 갔다는 데에서.

 

 

저 상황에 남편이 했다는 말은,

 

 

저기 현경아...

이모가 지금은 집에 없지만

언제 들어올 지 모르는데...

이모가 집에 들어와서 너 이러고 있는거 보면 화내지 않을까?

 

 

 

그랬더니 아이가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다시 거실로 나와 책상 앞에 앉았다는 군요.

 

 

 

어쨌든 저 날 저 아이는 저한테 혼 났어요.

제가 저 얘기는 저 날 몰랐지만,

그 전 주에 공부 마치고 약속 하기를

다음 주에 볼 때는 뭐 뭐 뭐 해 오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걸 하나도~~  안 해 왔더군요.

 

 

남편이 공부 봐 주는 거 시작하기 전에

둘째 언니랑 현경 양과 제가 약속한게 있거든요.

공부는 남편 담당

훈육은 제 담당.

 

 

공부는 남편이 봐 주지만

숙제 검사는 제가 하기로.

 

 

 

저 날,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로 한 것 아무 것도 안하고 빈 손으로 털레 털레.

그래서 제 딴엔

얘하고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까

머리 속 정리 하려고 자리 비워 준거거든요.

 

 

 

저 없는 동안

저런 맹랑한 짓 했다는 거 모르는 채로

한 시간 밖에서 채우고 집에 들어 와서

공부 끝난 아이 앉히고

아이 데리러 온 아이 엄마도 앉히고,

 

 

현경이 어머님도 여기 좀 앉으세요.

학생이랑 할 말이 좀 있습니다.

 

 

 

했더니

둘 다 단박에 쫄아 가지곤...

 

 

 

제가 아이한테 한 말은,

하기로 한 것 하지 않을 거면 이제 여기로 공부하러 오지 않아도 좋다고 했어요.

이모부한테 공부 배우기로 한 것은 네 결정이었고

그것을 위해

이모부는 한 시간을 너를 위해 투자하고

이모는 너 공부하기 좋으라고 오기 전에 청소하고 너 배 고플까봐 간식 만들어 놓고

너네 엄마는 너 여기 롸이드 해 주고.

 

 

너가 원한 한 시간을 위해

다른 세 사람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데

너는 너가 하기로 한 것을 안 해 오고

이모가 왜 안 했냐고 물어 봤더니,

바빴다는 말 한 마디였다...

 

 

 

그랬더니,

정말 제가 보기엔

아이들 훈육에 도움 안되는 저희 둘째 언니는

제가 저 말 하자 마자 바로 끼어 들어서

 

 

근데...얘가 진짜 이번 주에 바빴어...

숙제를 엔간히 내 줘야지.

얘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이러는 거예요.

 

 

 

제가 짜증이 확 올라서 째려 보니까

언니도 곰방 입 다물고

애는 이미 고개 쳐 박고 바닥만 보고 있고.

 

 

 

제가 아이한테 말하길,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건 그만 두어도 좋다고 했어요.

네가 해야 할 부분을 안 하는 상황에서는

이걸 하는 의미가 없다고.

네가 하겠거든 하고

너무 바빠서 못 하겠다거나

하기 싫다거나

이모는 이유는 묻지 않겠으니

네가 결정해서 알려 달라고.

 

 

그 다음 토요일에

해 오기로 한 것, 싸악 해 가지고 왔더군요.

(해 오라고 한 것도 저희 부부가 애 공부 시키려고 따로 내준 숙제 아니고

요 지지배 학교에 해 갔어야 할 것들 밀린 것 메이크 업 해야 할 것

날짜 맞춰 플랜 짜준 것이었어요.

아이가 요 때 학교 공부가 따라 가기 벅찼었던 상황이었던 듯.

학기 내내 했어야 하는 저널을 통째로 안 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겨우 선생님한테 언제까지 다시 해서 내기로 허락받고

저희 집에 공부하러 오게 된 것이었는데, 이것 마저 안 한 것이었음)

 

 

 

본인은 읽을 것 다 읽고 쓸 것 다 썼는데

노트가 통채로 없어 졌다고 하고

(산전 수전 다 겪은 이 이모 눈에는

아이가 책을 읽긴 읽었으되 쓰는 건 귀찮아서 안 쓴 것 같은 심증. 그러나 물증은 없음)

 

 

그래서 제가 제시한 방법은

선생님이 며칠 더 말미를 주셨으니 하는데 까지 해 보자.

이미 읽은 책 들이니 저널만 다시 쓰면 되니까

도서관에서 책 다시 빌려서

기억 더듬어서 저널 다시 쓰라.

 

 

는 거였고요.

그 책들 저자 이름이랑 제목 써 놓고 가라 했어요.

이모도 책 빌려서 읽겠다고.

막히는 부분 도와 주겠다고.

 

 

제가 그 다음 날,

동네 도서관 가서 저 책들 싹 빌렸잖아요.

(물론 다 읽지는 않음)

 

 

저 한테 혼난 날,

제 앞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눈물을 잘 참더니

(눈을 갑자기 천장 쳐다보면서 크게 뜨는 바람에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지 엄마랑 차타고 집에 가는 길에

쟈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네요.

 

 

지네 엄마가 울지 말라고,

이모가 너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계속 달랬는데

그렇게 울더래요.

 

 

 

이모가 이제 자기 싫어할 거라고 하면서.

 

 

그 다음 주에 숙제 다 해 오고

아이 학교 공부 웬만큼 정상화로 돌려 놓고.

그런데 남편은 저 날 일을 너무 속상해 하면서...

애들이 자기는 어른으로도 안 본다고.

그런데 아는 척은 하지 말라고.

저한테 일러 바친 거 알면 자기가 아이한테 더 찌질해 보일 거라고 하면서.

 

 

 

아 그럼 일러 바치지도 말던가!!!

 

 

 

남편이 저 일 보다 더 속상해 했던건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둘째 언니네 아이들 데리고 시댁 갔을 때,

제가 하루는 정말 너무 피곤해서 한 낮에 넉다운이 되서

이층에 저희가 머무는 방에 올라가서 잠깐 자고 오겠다고 했는데,

 

 

 

둘째 언니 아들내미가 일층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이층으로 올라 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바,

남편이 화급히 막았는데

(이모 피곤해서 자니까 깨우지 말라고)

야가 들은 척도 않고 자기는 이층 화장실 써야 한다고

다다다닥 소리 내면서 올라갔고

저는 당연히 깼고

 

 

남편은 저 일을 너무나 속상해 했고

왜 애들이 당신은 무서워 하면서

자기 말은 진지하게 듣지 않는 거냐고 괴로워 했고.

 

 

 

어제 저한테는 너무나 다정한 큰언니 아들 녀석은

이모부가 맥주 하나 더 줄까 하는데 다른 데 쳐다 보고 앉아서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제가

 

 

상우야, 이모부가 너한테 뭐라고 물어 보잖아.

 

 

했더니 그제서야

 

 

예스. 땡큐.

 

 

 

하도 어릴 때 부터 보고 연애할 때는 미국 사람이라고

제가 그냥 아이들 앞에서도 이름만 불러서 그런가, 싶어서

몇 년 전 부터는 아이들 앞에서 꼭 '엉클 폴' 이라고 하거나

한국말로 할 때는 '이모부'라고 하는데

우째 저렇게 아직도 '어른'이라는 생각들을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집안 어른이라고 저 아이들이 보는 사람 중에서는

이쁜아짐을 제일로 무서워 하는 아이들인데

왜 제 남편한테는 저럴까요?

 

 

 

아이들이 남편을 좋아하고 잘 따르기는 해요.

하지만

남편을 자기들과 동급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그저...무서운 이모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처지. 다 같은 처지.

 

 

자기를 막 대하는 여동생 1,2를

제가 결혼하고 나서 교통 정리를 해주긴 했는데

내 조카들하고도 교통 정리를 해 줘야 할 줄을 몰랐어요.

 

 

큰 언니 딸은, 제일 컸다고

게중에 이 이모의 고민을 조금은 알아 차려서

이모부한테 꼬박 '이모부' '이모부'하고

'엉클 폴' '엉클 폴' 하면서

얼마 전엔 지 엄마한테 그러기도 했대요.

 

 

이모부같은 남자 있으면 사귀어 볼 수도 있다고.

(대학 3학년인데 아직 남자 친구 사귀어 본 적이 없음)

 

 

 

한참 더 어렸을 때는

지 엄마가 저 애 한테

 

 

 

야, 결혼할 거면 너도 이모부 같은 남자랑 해라,

 

 

하긴 했었죠.

 

 

그런데 얼마 전에 지 입으로 이모부같은 남자 있으면 사귀어 보고 싶다고.

 

 

 

이모부 같은 남자가 어떤 건데?

 

 

하고 물어 보고 싶었는데, 안 물어 봤어요.

 

 

 

야야 그런 소리 하덜 말아라.

니가 세상을 아직 덜 살아 봐서 그렇지.

야, 세상에 여자 호강 시켜 주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이모가 니 이모부랑 사느라 얼마나 속이 썪는지나 아냐.

 

 

 

어쩌고 저쩌고

이모부 흠집 내는 말 시리즈로 나올까봐 겨우 참았네요.

어쨌든 궁금하니

(아이 눈에 비친 이모부의 좋은 점이)

다음 번엔 물어 봐야 겠어요.

 

 

이모부 알기를 지네 수준으로 아는 이 망할 조카 놈들,

다음 번엔 군기도 잡아야 겠어요.

맨날 사람들 겪고 나면

마누라한테 일러 바치기나 하는 남편 보기도 성가셔서리...

 

 

 

애들은 애들이고

당신은 어른인데

왜 애들한테 따끔하게 한 마디를 못 하냐고 하면

자기는

여자도 무섭고

애들도 무섭대요.

 

 

그냥 부인님이 다 처리해 달라고 하네요.

 

 

 

참으로 할 일이 많은 이 부인님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