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친정은

어디 단체 할인 해주는 의사 선생님 계시면 평생 계약이라도 맺고 싶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집단으로

뚝 뚝 떨어져서 아주 가끔씩만 보고 살면 딱 좋은 그런 불행한 집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제가 요즘 전부 다 '따'를 시키고 있었어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제가 '왕따'가 될 것 같아서

제가 선수쳐서 적극적으로 전부 다 '따'를 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야 내 속이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랬더니만,

속이 조금 편하기는 한데

조카들을 못 보니 그건 조금 심심도 하고.

애들 엄마들이 치사하게 애들을 무기로 저랑 협상을 벌이려고도 하고. 흥!

 

 

가만 생각해 보니,

지난 번 수퍼 볼 파티의 생뚱맞은 게스트들도

실은 남편이 저 좋으라고 생각해 낸 같기도 하고요.

애들 오면 자기는 경기를 당연히 제대로 못 볼 것을 알면서도

좋은 구실이라고 생각한 듯.

 

 

 

모야,  밥은 내가 하는데

당신 거기에 묻어서 먹고 싶은 것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애들 밥 한 번 해 먹이고 나면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밥 준비 한다고 장을 이틀에 걸쳐 보고

남편은 청소 한다고 바쁘고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라고는 식구들 밖에는 없는데

그 중에서도 아이들은 '귀한' 손님들 이어서

V.I.P 접대 한다고 양초까지 사다가 화장실에 켜 놓고

 

 

 

아이들 오기 전 날은

대충 하루 전에 해 놓아도 될 것들 해 놓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피곤하다고 불평을 했더니,

 

 

에이~~~ 당신 애들 보고 싶잖아요.

애들 온다고 이렇게 신이 났으면서~~

 

 

아이들 맞을 준비로 부산스러운 제 모습이

'생기'가 있고 '행복'해 보인다고

당신 이런 모습 보는게 자기가 너무 좋다고.

 

 

제가 따를 시키던 둘째 언니가

자기가 먼저 화해 신청을 해 오길,

아주 간단한 이 메일.

 

 

'나 누구랑 누구 엄마다.

새 해니까 만두랑 녹두 빈대떡 해 먹지 않을래?'

 

 

 

그래서 제가 답하기를

 

 

 

'싫어'

 

 

 

바로 고 다음에 제가 둘째 언니 아들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내일 이모집에서 수퍼볼 파티 하는데 올래?

하고서는,

고렇게 애들만 빼 돌렸죠.

 

 

 

1월 1일 찍고 나니까,

새해라고 인터넷에 웬 만두 사진들이 그렇게 올라 오는지..

 

 

한국에 살 때는

새 해면 꼭 해먹는 음식이 저 '김치 만두'였고

외할머니, 이모, 노여사 이 세 양반이

만두속을 만들면서 어찌나 의견이 분분하고 쉬지도 않고 서로의 의견에

다 만들고 나서도

두부가 적게 들어 갔네, 숙주가 너무 물렀네, 간이 하나도 안됬네.

 

 

매 년, 매 해,

새 해를 만두로 시작하고 먹을 때 마다 다 맛있구만

저 의견 다툼과 분석과 후기는

항상 세 분이 너무도 진지하게 빠짐없이.

 

 

집 집 마다 있는 손 맛이 있어서

우리 집 것이 제일 맛있어! 하는 음식 중에

저는 '김밥'하고 '만두'예요.

별로 크게 맛있는 거 많이 못 먹고 컸지만

저거 두 개는 노여사가 꽤 맛있게 잘 하셨다는.

 

 

미국 오고 나서,

우리들도 다 크고,

노여사도 우리랑 함께 뉴욕에 계시지 않았을 때

둘째 언니가 큰 사명감으로 만두를 해 먹자고 했을 때

그 당시 그게 저희한테는 꽤나 큰 프로젝트 였거든요.

과연 우리가 엄마 없이 만두를 해 먹을 수 있을까.

엄마 없이도 맛있는 만두가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저 때는 제가 둘째 언니 조수 노릇 그 이상이 아니었고

셋째 성, 만두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셋째 성은 아주나 행복해 했고

저도 사먹는 만두 보다는 그래도 우리집 만두 맛이라 즐거웠고,

그렇게 몇 번 하다가

 

 

제가 나이 서른 앞두고도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고는

김치볶음밥 하고 라면 끓이기, 밖에 없던 사람이라

그 어느 누구도 제가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하고 살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외가에서 명절이면 만두와 함께 꼭 하던 음식, 녹두 빈대떡, 이

음력 설을 앞두고 너무나 먹고 싶어진 거예요.

제가 인터넷에서 레서피 검색이라는 것을 처음 한 음식이 저 '녹두 빈대떡'

 

 

 

퇴근 전에 저것을 검색을 하고 프린트를 해서

둘째 언니, 셋째 성한테 전화해서 내가 저걸 해 볼란다, 했을 때

둘 다 별 기대가 없었어요.

 

 

그거 하기 힘들텐데...

 

 

니가 그걸 한다고? 진짜로???

 

 

해보지 뭐 까짓거. 마켓에서 파는 건 우리가 먹던 그 맛이 아니고.

집에서 먹던 거 그게 먹고 싶다고.

 

 

이러고서는 퇴근 후에 장을 보고

주말에 날 잡고 녹두를 불려서 믹서에 갈아서 고사리를 불려서 삶아서 볶아서

돼지고기를 사다 놓고

숙주를 데쳐서 짜서 무쳐서

김치를 썰어서

 

 

그리들에 전기를 꼽아서

거실에 재료들 다 늘어 놓고

망치던 어쩌든 한 번 해 보기나 하자 하고

처음 한 개를 부쳐서 남편이랑 시식을 해 보자 하고 얼른 나가서 맥주 부터 사오라 시키고,

 

 

한 점 찢어 먹는데,

괜찮더군요.

그래서 나머지 반죽은

맥주를 마셔 가면서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젓가락으로 그리들 두드리면서 부르다 한 곡 끝나면 뒤집고.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이렇게 다른 노래 하나 끝내면 팬에서 겉어서 접시에 놓고.

 

 

저것이 꽤 시간도 걸리더군요.

다 하고 났더니 허리 무진장 아프고

삭신이 쑤시긴 하지만.

할 만 했어요. 아주 맛 있었어요.

 

 

 

별 기대도 않았던 녹두 빈대떡의 대성공을 계기로

(이 시점에서 인터넷에 레서피 올려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요리와는 거리가 먼 친정 가풍에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기대주'로 급 부상을 했고

만두 만들기의 프로젝트에서 더 이상 '조수' 역할이 아닌 총주방장으로

주도권이 저한테로 넘어 왔고요,

저 이후로,

저는 이제 친정 언니들이 식당엘 가야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을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는 신세계를 보여주는

요리의 '그 분'같은 존재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저희 집에서는 이게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일이었어요.

'탕수육'을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리하야,,,

외가의 전통인 김치만두의 뉴욕 지부 계승자가 된 이쁜아짐은

설마다 열심히 만두를 만들었더랬는데

올 해는 다 따를 시켜 버리고 나니

나 혼자 해서 나 혼자 먹으면 되네?

 

 

 

이 대저택의 넓고 광활한 부엌에서 조수가 있으면 외려 걸리적 거리기만 하니

이 공간에서 음식해 온 버릇이 익숙한 저 혼자 하는게 더 능률적이어서

그냥 혼자 다 해 버려요.

그래서 역시나 이 넓고 광활한 원 베드 아파트에 식구들 불러서

제일 큰 들통에 하나 가득 만두를 끓여서는 다닥다닥 붙어서 정신없이 먹고

언니들 갈 때

남은 만두속 머리 수 대로 갈라서 통에 담아서

한 통씩 보내고 나 한 통 남겨 두고.

 

 

 

올해는 혼자 해 가지고 혼자 먹고

만두속도 혼자 두고 두고 나 혼자 먹고

어느 날은,

아침도 만두 점심도 만두 저녁도 만두, 야식도 만두.

나 혼자 실컷 맨날 맨날 만두 먹으니 좋구나.

나눠 먹지 않고 나만 먹으니까 며칠 씩 먹어서 좋구나.

혼자 먹으니까 좋다.

전부 다 계속 따 시키고 맨날 맨날 나 혼자 만두 만들어서 나 혼자 먹어야지.

 

 

 

그랬더니만,

나는 벌써 새 해 되고 만두를 두 번이나 해 먹었고만,

새 해라고 만두나 해 먹지 않을래냐고 화해의 제스추어랍시고

뒷북을 치는 둘째 언니라니.

 

 

 

그래서 상큼하게

 

 

'싫어'

 

 

 

요렇게 답 메일을 보내고 나서.

 

 

 

3일간 악몽에 시달리다 김치 사 왔어요.

내가 모,

가족들이랑 둘러 앉아

뜨거운 만두국 정신없이 먹는 게 그리운게 아니다.

나 혼자 먹어도 맛만 있더구만.

만두 먹고 싶어도 맛있는 만두를 못 만드는 영혼이 불쌍해서,

내가 화해 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그래 만두는 한 번 먹여 주마.

 

 

 

'만두 할 거니까 목요일에 와.

믹서 고장나서 빈대떡은 못 해'

 

 

 

그랬더니 오겠다는 군요.

만두가 뭐길래 자존심도 없이.

한 번 튕기지도 않고 바로 온다고. 흥!

 

 

 

옛말에, 그런 말 있다면서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논두렁에 물 차는 소리하고

자식 목에 밥 넘어가는 소리라고.

 

 

수퍼볼 파티 때,

음식을 대단하게 한 건 아니고

꼴랑 두 가지 했어요.

남편이 아이들하고 함께 준비한 나쵸하고

제가 한 건

양념 치킨하고 탕수육.

 

 

 

버팔로 윙 하려다가 양념치킨을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튀김 요리 하는 김에

에라 모르겠다, 튀긴 것만 해 줘야지 하고

탕수육. 요렇게 딱 두 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을 찍으려고는 했는데

접시에 담아서 상에 놓자 마자

굶주린 하이에나의 눈 빛으로 젓가락 들고 대기 중이던 아이들한테

이모 사진 찍게 30초만 기다려 달라는 말 못 하겠더군요.

네 녀석이 머리 들이대고

쩝쩝쩝 쩝쩝쩝,

꿀떡 꿀떡, 꿀떡 꿀떡,

 

 

요게 자식 목에 밥 넘어 가는 소리라는 건가..?

 

 

어제부터 준비해서

오늘 아침에 만두속은 끝내 놨고요,

(이번엔 나 혼자 먹을 거 아니고 식구들 먹일 양으로 했더니

힘 들었어요. 엄청나게 많이 했음)

지금 시식해 보려고 몇 개 끓이고 있어요.

 

 

만두 먹고

공원으로 걷기 운동 나갔다 오고

조금 쉬었다가

저녁 나절 되면 본격적으로 만두 싸기 할 거고요,

 

 

다음 주 부터

생활의 변화가 생겨서 제가 좀 바빠질 거 같아요.

(돈 생기는 일이어요. 기뻐해 주세요 ㅎㅎㅎ)

바빠지기 전에

식구들한테 인심한 번 써 보자고.

 

 

둘째 언니한테,

너무나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이 (친정 식구들과)

어떨 땐

죽을 만큼 피곤하다고.

서로 좀 덜 보고 살자고.

그래야 나도 숨 쉬고 살 것 같다고.

 

 

 

이렇게 말 했었는데

 

 

그래서 한 반 년 정도 숨 쉬고 살았어요.

올 해는

저도 밖에 나가 일하고

내 상황이 더 좋아지면

친정 식구들한테도 더 좋은 동생, 딸, 이모로

더 나아진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만두로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