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일주일 다녀 왔습니다.

 

 

지난 주말에

시부모님이 둘째 시누네서 가족 모임을 갖자고 하셔서.

 

 

둘째 시누네가

저희사는 시내와 시댁의 딱 중간 지점이라,

남편이 계획을 세우기를

시누네서 주말을 보내고

집으로 가시는 시부모님 편에 시골을 가서

바로 베이스 기타씨가 픽업을 오면

그 집으로 가서 밴드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 오겠다, 며

 

 

저더러

다닐 직장도 없어진 마당에 함께 가시자고.

백수는 누가 오라기만 하면 그냥 막 움직이나요?

직장이 없어도 나도 나름 내 인생 계획이라는게 있는데. 흥!

아무리 매여 있는 직장이 없어도 나도 상황과 조건이 맞아야 움직인다고!!!

 

 

제가 내건 조건은,

시댁에서 보낼 일정을 추가하면 생각해 보겠노라, 해가지고

남편이 자기 부모님 집에서도 하루 자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저도 생각끝에 알았다고 해서 출발.

 

 

처음 두 밤은 시누네서

그 다음 두 밤은 친구네서

나머지 두 밤은 부모님 댁에서 이렇게 보내고 왔어요.

 

 

시누네 갔더니,

지난 여름 이후로 아주 근사한 닭장이 마당 한 켠에 생겼더군요.

시누 남편이 손수 지은 거래요.

 

 

남의 집 남편 부러워 해봤자 정신 건강상 안 좋기 때문에

최대한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이쁜아짐이지만

음....부럽더군요.

 

 

주중엔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와

주말엔 쉬어야 할 시간 쪼개서 저런 멋지구리 닭장도 지어,

(꼬박 하루에 다섯 개씩 계란이 나온다고. 너무 많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받아 먹을 방법만 있다면 너무나 받아 먹고 싶은..ㅠ)

봄 시작하고 여름 내내는 텃밭 농사도 혼자 다 해,

거기다 요리도 잘 합니다.

부지런하고 싹싹하고..

 

 

 

우리 집 아저씨는...

뭐 잘 하나...

아 싹싹은 해요.

아무나 보고 인사도 잘 하고 얘기도 잘 하고

그런데 딱 거기까지군요.

싹싹만 하고 입만 살았다는.

 

 

 

이틀 밤 시누네서 보내고 시부모님 차 타고 시골로,

시댁 도착해서 30분 만에 픽업 온 남편 친구따라 바로 친구 집으로.

드럼치는 친구도 바로 도착,

세 사람이 연주 놀이 시작하고

저는 단 한 명의 관객으로 박수 치면서 구경하고.

 

 

남편 밴드 연습 구경한 것이 이번이 두 번째 였는데

첫 번째도 재밌었지만

이번엔 더 재밌었어요.

 

 

드럼씨는 아예 술을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아이스티 마시며 노는 사람이고

베이스 기타씨는 술을 마시기는 조금 마시지만 맥주는 아예 안 마시고.

맥주를 마시며 노는 남편이

저라도 같이 마셔 달라고 간절히 원하는 분위기여서

저는 절대로 마시고 싶지는 않았지만

몹쓸 현모양처 기질로 인해 맥주 같이 마셔주고.

 

 

 

맥주를 안 마시는 베이스 기타씨가 사케가 있다며 데우는데

남편은 또 사케를 안 마시고

또 몹쓸 성격 좋은 본능이 꿈틀대는 이쁜아짐이

저 베이스 기타씨랑 둘이 사케 대작을 하고.

 

 

혼자 맥주랑 사케랑 다 마셔 가면서

 

 

결론은 혼자 제일 취해 가지고

나중에는

주책 남편씨가 마구 부추기기는 했지만

(우리 부인이 싱잉 보이스가 아주 아름답다고.

ㅍ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튼 술취한 이쁜아짐이

결국 마이크 잡고

베이스 기타씨랑 둘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노래 끝나고 반응이 그닥 좋지는 않았습니다.

남편만 미친듯이 좋아하고)

 

 

그런데 엄청 재밌더군요.

탬버린도 없었구만

노래방에서 하는 거랑은 또다른 재미.

라이브로 기타랑 드럼이랑 마구 쳐주는 가운데 마이크 잡고 노래 하는게.

역시나 노는 쪽으로는 재능이 많은 이쁜아짐이라는.

 

 

 

친구집에서 뭉개고 노는 것에 재미 들린 남편이

그냥 여기서 하루 더 자고 가는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제가 단호하게

계획대로 가자고, 나는 부모님 집에 가련다, 해가지고 시댁에 가서

거기서 제 마음대로 또 하루 늘려 가지고

시댁에서 이틀 밤 자고 어제 저녁 집에 돌아 왔어요.

 

 

 

친구 집이랑 시댁이랑 20분 거리인데

거기까지 부모님 차편으로 가서

부모님 댁에서 시간을 안 보내고 친구집에서만 있다 가는게 말이 되나요.

자기야 아쉬울 게 없다 해도

저는 나름대로 도시인이 맘 먹고 한가한 스케줄 쪼개서 시골 투어 중인데

당연히 나의 팬들을 두루 만나 보고 가야죠.

 

 

 

아버님이 계속 전화로, 오늘 오후에 오니? 그래 못 온다고? 그럼 내일 오니?

이러고 전화 하시는데 말이죠.

어머님은 이러나 저러나 그러면 그러나 보다 하시는 분인데

아버님은 좀 감정 표현이 솔직하신 분이시거든요.

 

 

 

제 고집대로 시댁에 가서는

하루만 아니고 하루 더 늘려서 이틀 잘 놀고 왔어요.

아버님이 너무 좋아 하셨어요.

남편이 나중에는 이런 일정을 고집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더군요.

부모님이 너무 좋아 하셔서 자기도 좋았다고.

 

 

 

연예인이 아니면서도

재야의 인기인으로 사는 이쁜아짐은

올 해 상반기 시골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컴 백 홈 하여

'현 실 직 시' 라는 단어를 화두로 다시금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궁리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닭장도 못 짓고

부지런한 것과는 철벽을 쌓고 사는 남편이지만

당분간은

다시 참아 주기로 마음 다잡습니다.

 

 

 

이런 남편이라도

어쨌든 이 남자를 통해 연결된 사람들로 부터

내가 이렇게나 많이 환영받고 사랑받는다는

현실적으로는 아무 쓰잘데기 없는 사실에

점수를 다시 얼마라도 주어 보려 합니다.

 

 

 

마음 비우고 이렇게 살다 살다가도

정말 아무 것도 안되면

싱잉 보이스가 아름다운 이쁜아짐,

가수로 데뷔할까 봅니다.

 

 

비디오적인 부분에 현대 의학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은 그냥 모른척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