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지난 씨앗 두 봉지를 세일 가격에 사와서는 심고

진작에 싹에 올라온 로메인에 흥분 흥분,

로메인 이후로도 근 일주일이나 아무 조짐이 없던 베이즐도

드디어 3일 전에 싹이 흙을 뚫고 올라 오기 시작했어요.

 

 

그리하야,

이 달 1일 부터 3일 사이에 제가 심었던 모든 화분의 씨앗들이

오늘 지금 이 순간 다 싹이 올라 와 있음을 보고 드립니다.

정말 신기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화분을 내내 죽이기만 하던 사람이 해 낸 일이라

감동 그 이상의 어떤 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핫핫핫!

 

 

새싹 재배기 성공에 힘입어

우우팩으로 실험 한 아마씨도 아주 잘 자랐고요,

한 통은 오늘 점심으로 이미 먹었어요.

 

 

무순과 브로컬리로 처녀 재배를 마친 재배기에는

겨자씨와 아루굴라씨가 그저께 부터 자리를 잡고 있고요,

 

 

지금 10센치 미터 정도 되는 앙징맞은 크기의 화분 세 개에는

유효 기간 안 지난 ㅎㅎㅎ 허브 3종 씨앗을 심었었어요.

차이브, 베이즐, 파슬리.

요 것들도 하루 이틀 차이로 경쟁하듯이 새싹이 올라 오기 시작하고

오늘까지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지가 고민이예요.

몇 개를 뽑아주고 몇 개만 남겨 둬야 하는지 어째야 하는지..

씨앗까지는 잘 틔웠는데

여기서 또 잘 못해서 금새 자라다 말고 죽이면 어떡하나,

요즘 그 걱정이 태산입니다.

 

 

 

오늘은

세금 보고의 마지막 날.

네 오늘 세금 보고 했습니다.

미리 미리까지는 아니어도 중요한 일을 이렇게 마감 일 턱에 바치게 하며 사는 스타일은 또 아니었는데

올해는 그렇게 됬네요.

 

 

 

이유는 왜 일까요.

 

 

1. 더 게을러 터져져서?

 

2. 환급받을 돈이 없어서?

 

3. 외려 더 내야되서? 그것도 목돈으로?

 

 

 

정답은 저 보기 셋 중에 있지만

꼭 발표는 안해도 되는 거죠? 안하고 넘어 갈께요.

 

 

그래도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시나리오로 반전이 있었어서

한 가슴 쓸어 내렸고요.

지금까지

세금 보고는 제 관할 업무 였었는데

올해는 남편이 처음으로 적극 참여를 해서

저는 맞게 했나 틀렸나 검토만 했는데

제대로 잘 했더군요.

(또 모르죠. 우리 두 사람 생각엔 맞는거 같은데

'엉클 샘'씨가 보기엔 아니라고 돈 더 내라고 나중에 편지 올지도)

 

 

 

아무튼 오늘 현재,

2011년 4월 18일,

우리 두 사람 가슴을 짓누르던 세금 보고도 무사히 마쳤고

이쁜아짐 봄맞이 하는 설레는 마음을 무한히도 즐겁게 해 준 새싹들도

다들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오매 불망하는

안정적 정규직은 아직 자랑하고 떠벌릴 소식은 없지만,

제 인생도 참 희한한게

하다 말다 한 직장에서 가끔씩 급할 때 저를 찾아 주고요,

지난 번 도우미 일 갔던 시어머니 친구 분도

잊어 버릴 새가 없이 전화를 주셔서 저 직장 어떻게 됬냐고 항상 물어 주시고

그러다 보니 이 분하고 또 며칠 일을 이번 주에 하게 됬어요.

그래서 내일 가기로 했고요.

 

 

 

걷기 운동을 요즘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운동화 밑창이 구멍이 나 가지고..

운동화가 딱 한 켤레는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운동으로써의 걷기를 하다 보니

허리가 덜 아픈 운동화는 한 켤레더라고요.

2005년 도에 열심히 회사 출퇴근 할 때 신었던 나이키.

그 몇 년 묶은 운동화를 요즘 시간 있을 때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자하고

매일 신고 아침, 저녁으로

많이 걸을 때는 2시간도 넘게, 어떨 땐 거진 3시간도 걷고 했더니

이게 구멍이 났네요.

 

 

얼마 전,

의사 선생님으로 부터 혈압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을 받고

제가 제 마음대로 약 먹는 것은 일단 보류하고

제 자신한테 6개월 시간을 더 주기로 했거든요.

운동 더 열심히 하고,

식습관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그러면서 혈압 모니터 하고 그래도 안되면 그 때 가서 약을 먹더라도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최선을 다 해 보자고.

그래서 요즘 아침엔 혼자

저녁엔 남편하고 이렇게 매일 열심히 열심히 걷기 운동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허리 안 아프면서 오래 걸을 수 있는 새 운동화를 찾던 중에

며칠 전에 마샬가서 30불 짜리 한 켤레 사 왔어요.

 

 

저기서 끝냈으면

참으로 건전하고 장한 쇼핑이었을텐데...

사고 안치고 살면 또 이 이쁜아짐이 아니죠.

운동화 섹션으로 가는 길 까지

웬 이쁜 구두며 샌들이며 플립플랍이며는 그리 많답니까.

왜 운동화는 입구에서 들어가는 순서의 맨 마지막에 있답니까.

 

 

 

옷이며 가방이며 신발이며

봤을 때, 아 예쁘네, 아 괜찮네, 아 갖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물건들은

저는 어느 가게에 있는지를 떠나서

딱 5분이면 열개 쯤은 너끈히 눈에 들어와요.

그런데 사람 사는게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살 수 있나요.

 

 

어느 정도의 자제력은 제가 가지고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그런데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이

마음에 드는 물건은 많아도

보는 순간 정신 확~ 뺏겨 버리는 물건은 또 흔치 않거던요.

그런거 아시죠?

200% 내 물건이다, 하는, 이거다!!! 하는 느낌이 0.1초 만에 오는 거.

 

 

 

그런거 하나 봐 버렸네.

내가 지금 이런 거 사들일 때가 아닌데. 아 젠장.

이래서 내가 집구석에서 나오질 말아야 돼.

이런데 돌아 다녀서는 절대로 안되는 인간이 나야. 아 빌어먹을..

 

 

아...죽겠네 이거...

이럴 때 내 치수가 없으면 참 고마운 일인데...

하필 있네...

딱 한 켤레 남은 게 하필 내 치수네.

이런 불운이...

신어나 볼까...

이럴 때 보기와는 달리 신어 보니 별로면 그것 또한 참으로 다행한 일인데...

신어 보니 더 예쁘네.

이런 젠장 빌어먹을 나는 정말 운도 없지...

 

 

 

돈 내면서 신발 환불 정책이 어찌 되냐고 물으니

상자도 필요 없고 가격표만 떼지 않고 30일 내에 가져오면 된다고 하더군요.

26일 남았습니다.

 

 

 

지난 나흘 간

하루에 한 번씩 상자에서 꺼내서

거울 앞에서 신어 보고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마음 달래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다른 생각만 머리 속에 들어와요.

 

 

이게 40불 이니까

내가 조카가 넷이니까

한 명당 10불씩 걷어서

너네들 생전 해 본 적 없는 이 이모 생일 선물로 하라고 할까,

내가 매 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올 해 이 이모가 만 마흔이 되는 빅생일인데 지들이 할 수도 있지.

내가 그 동안 지들 해먹인 음식만 해도 얼만데.

 

 

 

40불 짜리 샌들 한 켤레를 놓고

애들한테 삥이나 뜯어 신을 궁리를 하자니

내가 왜 이렇게 됬나, 내가 왜 이러고 살지, 내 자신이 한심해서 남편한테 얘기하니

 

 

 

너무 너무 좋은 생각이래요.

제가 너무 너무 머리가 좋대요.

두 당 10불씩, 계산도 딱 떨어지고, 거기다 마흔 살 생일이고.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생각이라고.

 

 

 

내가...내 남편이라는 사람을 참 잘 알면서도

나는 또 왜 이러고 남편한테 이런 얘기를 했을까.

 

 

 

씨앗을 재배기에 심고

이튿 날이면 싹이 트고

일주일 정도면 새싹이 먹을 만큼 자랄 것이고,

 

 

씨앗을 화분에 심고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싹이 틀것이고,

 

 

나는 나한테 6개월의 시간을 더 주고

목하 걷기 운동과 식이요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여름이면 마흔이 될 것이고,

내 마흔 살 생일 선물로 나는 내 자신한테 건강을 생일 선물로 주고 싶고,

 

 

들어 오는 돈이 없다고 끌탕을 하면서

세금 보고는 마지막 날 까지 카운트 다운을 하다 마침내 하고,

 

 

날짜를 세며 하루 하루를 살다..

 

 

오늘 하루,

내 인생에 두 번도 없는 오늘 하루,

2011년 4월 18일,

이제는 샌들 한 켤레 환불 날짜 세 가면서 거울보고 소일하면서

한심한 가운데 그래도 웃음이 피식 피식 나면서,

 

 

안하던 배 운동까지 하기 시작하니

제법 배를 죽어도 가리는 그런 옷은 더 이상 안 입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정도 몸매면

김완선 언니 컴백 앨범에 백댄서 해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

본인은 마흔 셋에 컴백을 해도

백댄서는 파릇한 애들이 하겠지, 하고 바로 단념.

난 어차피 스므살 때도 웨이브는 안 됬으니까.

그건 내 갈 길이 아니다, 쉽게 포기가 되고.

 

 

 

내 인생에 하루 밖에 없는 오늘.

오늘을 이렇게 기념한다.

새싹은 자라고

마감일 맞춰 할 일 했고

6개월 프로젝트 계획대로 운동했고

날짜 맞춰 물건 돌려줘야 하는 것 기억하고 있고

무엇보다

오늘 하루,

 

 

난 이렇게 살았음을 기억해야지.

일년 전 나는,

일기를 써 놓지 않아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지만,

오늘의 나는 기록장에 뭐 했는지 뭐 먹었는지 동네 드럭스토어 가서 혈압도 재고 그거 다 기록도 하면서.

단언컨데

일년 전의 나 보다는 덜 우울한 오늘을 살았다고 자부.

 

 

내가 오늘을 살았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좋다.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