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기타 메고 길 나선게 6월 25일이니까

오늘로 떨어져 지낸지 열흘 째.

내일은 저도 짐 챙겨서 혼자 시외버스 타고 시골 갑니다.

제가 희망했던 대로 일 하는 곳에서 일주일 휴가 내는 게 무난히 성사가 되어

닷새간 시댁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바로 신혼일 때 부터

친구들하고 롱 아일랜드 바닷가 3박 4일 놀러가고,

방학이면 조카들 데리고 차 타고 심지어 비행기도 타고 친구 집 놀러 가고

한국도 다녀 오고

언니들이랑 여행도 다녀 오고

또 가족들이랑 놀러 가고

 

 

남편은 집을 지키고 제가 여기 저기 싸돌아 다니기는 많이 해 봤는데

남편이 집을 떠나고 제가 집에 남기는

이렇게 오래 동안은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계획을 짜면서

남편도 걱정, 저도 걱정

둘 다 걱정은 많았었는데

해 보니까 별 거 아니구만요.

 

 

실은, 친한 친구들 한테도 말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오로지 전 세계 60억 인구 중에 셋째 성만 알고 있는

저의 찌질한 비밀이 하나 있었는데,

 

 

대단한 건 아니지만 좀 창피한 거.

혼자 잠을 못 자요.

ㅍㅎㅎㅎㅎㅎㅎ

 

 

제가 잠자리가 예민해서 집 떠나면 어딜 가도 잠을 설치는 편이라

호텔이건 남의 집이건 언니들 집이건

내 집 내 침대 내 베개 내 이불 그리고 옆에 내 아저씨,

이 조건이 충족이 안되면

어딜 가도 잠을 못 자요.

(그나마 시댁에선 좀 잡니다)

 

 

내 집에서는 저 아저씨가 이틀이고 사흘이고 연주하러 간다고 집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 지느냐,

방에 불 훤히 켜 놓고

텔레비젼 밤새 틀어 놓고

그러고 자요.

 

 

그럼 저게 잠이 제대로 자는 건가요, 두 시간 마다 깹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또 그 다음 날 인간 기능을 못하는게 저이기 때문에

남편 집에 없다, 하면 저는 제 컨디션은 엉망 진창.

 

 

 

보다 못한 셋째 성이

한 번은 다음 날 자기 출근하는데 저희 집에 와서 자고 갔어요.

우리 집에 오라고 해 봐야 어차피 넌 잠을 못 잘 테니까

차라리 내가 너네 집에 가겠다, 해서.

저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

 

 

넌 천상 혼자서는 못 살겠구나.

 

 

제가 생각해도 이 나이에 남편 집에 며칠 없다고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는게 창피스러워서

지금 껏 그 누구한테도 말을 안하고 살았더랬어요.

이건 좀 너무 한심 하잖아요.

 

 

집이나 커?

몇 천 스퀘어 피트되는 대 저택이라 집이 휑해서 무서운 것도 아니고

방이 두 개도 세 개도 아니고

고작 원베트 아파트 이 집에서 뭐가 무섭다는 건지.

나이나 적어?

이제는 중년인 주제에.

성격이나 연약 해?

세상 무서운 게 없다고 맨날 성질은 독단내고 사는 주제에.

 

 

 

이유가 뭘까.

 

 

아가씨일 적에는

잘은 아니더래도 이렇게까지 못 자진 않았었는데...

(가위 잘 눌리고 무서운 꿈 자주 꾸고 그런 편)

서방끼고 사는 게 너무 익숙해 져서 그래서 그런가?

 

 

나 나쁜 꿈 꾸면 꼭 깨워줘야 해~

약속해 줘. 꼭이야.

당신만 믿고 난 잔다...음냐 음냐...

 

 

 

이 말이 매일 밤 잠 들기 전에 제가 맨 마지막으로 남편한테 하는 말이거든요.

어느 때는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남편이 흔들어 깨울때도 있고

(제가 막 괴로워 하는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면서)

어느 때는 기분 나쁜 꿈의 한 중간에서 깨울 때도 있고

어느 때는 꿈 꾸면서 엉엉 울다가 깰 때도 있고.

 

 

일어 나고 보면 다 개꿈인 것 같은데

한참 저렇게 기분 나쁜 꿈 꾸고 그럴 때가 있었어요.

요즘은 많이 좋아 졌어요.

악몽을 꾸는 빈도수가 확 줄어듬.

 

 

이번엔 이,삼일 정도가 아니고 장기전이라,

강수에는 강수를 둔다고

제가 화끈하게 불도 끄고 텔레비젼도 끄고 맥주도 안 마시고

자력으로 잠을 자 보겠다, 작심을 하고

첫 날 해 봤더니..

 

 

 

잠 잘 오더만요.

 

 

지금 나에겐 밤잠을 설쳐댈 럭셔리가 없다,

내가 오늘 밤 자야 내일 일하러 가서 내 기능을 한다,

내 일자리 서방이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할 일 잘해야 유지되는 건데

서방 없다고 잠을 이리 못 자서야 쓰나.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아주 잘 잤어요.

이제 혼자 살아도 되겠삼. 짝짝짝~~~

 

 

 

집만 떠날 때 마다 이게 제일 걱정이었던 남편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의기 소침.

 

 

재작년 이 맘 때는 남편하고 사이가 너무 안 좋았고

내가 저 인간을 내 쫒던지

아니면 짐을 싸서 내가 도망을 가던지

양당 간에 결판을 내야지 하는 마음의 지옥에서 살았었는데..

 

 

그 위기를

이쁜아짐의 이 혼자 잠 제대로 못자는 찌질함이 계기가 되어 극복을 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 볼래도

저 남자 좋은 점은 안 보이고

한심하고 무기력하고 미래도 안 보이고

그러면서 둘이 하루 종일을 붙어 있자니

내가 못 살겠어서

정말로 정말로 저 남자가 내 인생에서 필요한 뭔가가 없을까,를 궁리 하다가

 

 

어느 날 텔레비젼에서 귀신 나오는 프로를 봤어요.

보다가 무서워서 남편 팔뚝도 잡아 당기고 소리도 지르고,

그 날 잠자리에 들었더니

이 사람에 옆에서 같이 잠자줘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여우같은 아저씨가 이걸 간파해 가지고

그 다음 날 부터 저런 프로들을 열심히 찾아내서 틀어 대는 거예요.

 

 

절정은 그 해 10월,

할로윈이 있는 달이라 여기 저기 채널에서 저런 거 많이 보여 주더라고요.

매일 봤어요.

매일 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은 이 남자가 밤에 내 옆에는 누워 있구나,

내가 덕분에 잠은 자는구나..

 

 

이렇게 그 해 10월을 기점으로 부부 위기를 넘겼습니다.

 

 

귀신 나오는 프로를 귀신같이 잘 찾아도 내내...

어찌나 잘 찾아 내는지

 

 

케이블 대학 리모콘 학과 박사 후 과정 중인 사람 같다고 했더니

 

 

불쾌해 하더군요.

불쾌할 게 뭐 있어요.

그 당시 자기가 잘 하는 게 그것 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집에 있는 시간은 텔레비젼 껌딱지인데.

자기가 직접 하는 운동은 하나도 없으면서

중계로 안 보는 스포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

 

 

나는 인생 고단한 문제가 이렇게나 많은데

저렇게 해맑은 얼굴로 저녁 내내 텔레비젼 보고 있는 당신을 쳐다 보고 있으면

나는 어떨 땐

가슴이 막 터져 버릴 것 같은데..

마누라는 지금 머리가 아파 죽겠고 삭신이 쑤셔서 죽겠고만

심슨네 가족이 그렇게나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줘?

그 집 가서 살아라 이 단순한 인간아.

텔레비젼 속으로 그냥 들어가 버려!!!!!!!

 

 

 

 

 

매일 밤, 내 옆에서 자줘서 고맙다는 달콤한 감사 인사를 받는 것이 그간 낙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혼자서도 잘 잔다고 하니

자기 역할 하나가 줄어 들었다는 위기감이 왔는지

자기가 좋아해야 하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다고 쓸쓸하게 받아 치더군요.

 

 

그래도 남편은 있어야지,

설거지도 내가 해,

청소 안되서 집은 개판이고,

매일 아침 옥상에 물 떠다 나르느라고 팔에 알통이 생겼어,

(제가 아파트 빌딩 옥상에서 토마토를 키우고 있거든요)

워러 보이도 빨리 필요하고

인간 디시워셔도 빨리 필요하고

미스터 클린도 빨리 필요하고..

저녁 마다 물도 내 손으로 떠다 마시려니까 너무 힘들고..

아주 혼자 사니까 내 인생이 엉망이네.

 

 

 

저 말 해줬더니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조금만 더 고생 하시라고

휴가 마치고 집에 돌아 오면

다시 남편 역할 풀가동 하겠다고, 걱정 마시라고

발랄 발랄 신이 나서 대답을 하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말 혼자 살 수 있다.

위에 말한 것들이야 다 머슴 역할이니까

아쉬우면 나는 머슴을 하나 두면 그만이다.

돈도 벌겠다, 밤에 혼자 잠도 잘 자겠다, 혼자 왜 못 살아, 살아도 아주 잘 살 수 있지.

이 말은 언젠가

남편이 또 내 속을 뒤집으면

그 때 터트리리라.

 

 

어차피 당신이 하는 거

다른 남자들도 다 할 수 있는 거야,

꼭 당신일 필요 없어.

 

 

 

이러면...무지하게 상처를 받겠지?

이런 말 안 나오도록 앞으로 남편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더욱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봄.

 

 

 

둘이 만나 홀로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거라고 하길래...

홀로서는게 뭘까 고민을 하다가

내가 혼자 산다고 가정을 했을 때 내가 혼자사는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라는 개념으로

요즘 일을 하고 있거든요.

몸 많이 힘 들어요.

몸 많이 힘든 일이라고 정신적 스트레스 없는 일은 없지요.

 

 

스트레스는 무슨 일을 하던 밥벌이를 하자면 없을 수 없는 일이지만

무슨 뽀대나는 커리어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몸은 몸대로 힘들고 정신은 정신대로 힘이 듭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잔소리 듣고 왕따되고 뭐 이런 것들, 한 예죠)

 

 

그래도

계산기 두들겨서 나는 어쨌거나

내 혼자 생활비는 벌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그 만큼 일하고 있어요.

계산해 보니까 렌트비 내고 전화비 내고 전기세 내고 장 봐다 밥 해 먹을 만큼 지금 벌고 있어요.

옷 사입을 돈,

사람들 만나서 밥 사 먹을 돈,

이런 것 까지는 안 나옵니다.

 

 

 

남편이 벌어와야 할 돈,

쿠오타 올려 버렸어요.

음악 하라고 밀어 줬더니

그것도 비용만 들고 수입은 없죠.

수입 없는 것 까지는 다 좋아요. 몰랐던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하는 거니까 그럼 하고 싶은 거라도 열심히 하라고 밀어 준 거고.

그렇게 장거리만 뛰지 말고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라면 시내에서 같이 활동할 사람들 적극적으로 모집해서

시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 모아서 밴드 하나 더 만들고

평소에도 해 보라고 했더니

(작년부터 이쁜아짐이 꾸준히 제안한 것임)

게을러서 그것도 안 하고.

 

 

그럼 이건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거 아니고 당신이 안 하는 거니까

그 시간에 일해서 돈 더 벌어 오라고 했어요.

 

 

친구들한테 얼마나 자기 부인이 쿨한 여자인지 떠들고 다니는 것도 봐 줄 만큼 봐 줬고

(그래도 부끄러운 건 알아 가지고 자기 식구들한테는 저런 짓 못해요.

말해 봐야 자기 아버지한테 꾸중이나 들을테니)

하고 싶다는 거 하라고

놔둘 만큼 놔 뒀어요.

제가 보기엔 그것마저 충분히 열심히 안 하니까

그럼 됐어요.

저도 이젠 할 말 있거든요.

 

 

그 남는 시간 다 쓰랬더니

남는 시간은 케이블 대학 리모콘 학과 평생 연구직 하는데 다 쓸 태세라

한 번 조여줄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지금 가져 오는 돈에서

자기가 마시는 맥주 값(한 달로 치면 이 돈 무시 못 함), 케이블 값, 더하기

장거리 연주 여행 떠나는 비용, 산정해서

더 해 줬어요.

생각으로 하는 노력과 마음이 이렇다는 말 대신

행동으로 하는 노력 더하기 결과를 보여 달라고

이번에 남편 집 떠나기 전에 얘기를 했거든요.

 

 

쿨한 와이프도

먹고 살아야 하거든.

카드 빚도 갚아야 하고.

내가 오밤중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저녁 나절 텔레비젼이나 끼고 사는 남편 맥주 값이랑 케이블 값이나 대고 사는 건, 이건 아니잖아.

(일하는 시간은 제가 훨씬~~~~~~~ 더 많아요)

매일 발 마사지 해주는 게

이거 해 줄 테니까 나가서 돈 잘 벌어 오라는 거야 뭐야.

그것도 기분 나쁘니까 그런 거 하지 말고

나가서 돈 더 벌어 오세요.

 

 

 

일단 내일 이쁜아짐은 짐 챙겨 시댁으로 출발해서

휴가는 평화롭게 잘 보내고 올 계획이고

이 여름 지나고 가을이 오거든

본격적으로 남편 재교육 들어 갈 건데

교육 효과가 불량할 시

가차없이 맹렬한 구박에 들어갈 것임.

 

 

혼자 살 요량이 되니

같이 살 요령이 느는 것도 같고..

 

 

내가 언젠가...

출판이 안돼도 책으로 하나 분량으로는 쓸거다.

내가 어쩌다 당신을 건드려서 코가 꿰는 바람에 평생 책임을 지게  되서 이렇게 엮인 인생.

온달 장군이라도 만들어야 겠다는 갸륵한 심정으로 살아 온

평강 공주 워너비로써의 내 삶.

 

 

이번에

남편이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드디어 처음으로 제가 볼 수 있게 됐어요.

야외 페스티벌 하나

술집 하나 해서

이미 지난 주에 두 번 있었고

제가 가 있는 동안 하나가 남았는데, 그거 볼 수 있게 됐어요.

친구 아버님 구순 생신 잔치.

 

 

 

웃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올라 하네.

저 구순 생신 잔치의 주인공은 원조 미국 히피 출신이시고

무려 9남매의 자식이 있으시고

자식들이 십시일반으로 잔치 비용 모으고 할당해서

그 집 큰 마당에 하객들이 텐트치고 밤 새 술 먹고 노는 그런 생일 잔치라네요.

섭외한 친구가 출연료 지급을 제안 했는데

자기는 그 돈은 받을 수가 없고

다른 밴드 멤버들만 주라고 하고 싶다고 저한테 그래도 되겠냐고 물어 보길래

그러라고 했어요.

 

 

 

내가 아무리 돈을 좋아해도

준다는 데 아무 소리 말고 받으라고 그런 말 할 수 있나요,

초대 밴드로 불러준 것만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한테.

그 돈 받아서 내가 팔자 고칠 것도 아니고.

 

 

 

저더러 짐에 제 형광 탬버린 챙겨 오라고 했는데

저는 그건 안 가져 가려고요.

혼자 짐 끌고 가야 하는데

제 비상 식량이랑 옷가지 들고 가는 것 만도 큰 일이라

가방에 탬버린까지 낑겨 넣을 공간이 없어요.

 

 

자기가 적절한 타이밍에 당신을 무대 위로 불러서

자기가 반주를 하고 당신은 노래를 부르고

노래 부르면서 탬버린 치시라고.

 

 

제가 미쳤어요?

공짜로 탬버린 치면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그거 중독성까지 있어서 제가 함부로 안 합니다.

나랑 한 번 놀아 본 사람은

또 놀고 싶어서 병까지 날 만큼 치명적인데

그 굉장한 것을

내가 왜 공짜로 함부로 해요.

 

 

무대에 서는 건 남편의 몫이고

저는 관객만 하렵니다.

내 짐엔 식량과 옷만 넣어 가고

저는 조용히 휴식만 취하다 오렵니다.

잘난 마누라 덕에 남편만 칭찬 받는 생활 하느라 빈정 상하는 마당에

저런 것 까지 할 수는 없어요.

 

 

무대 생활까지 내 덕을 보려고?

어림 없지.

혼자 잘 서야 된다고,

그렇게 혼자 따로 따로 잘 서고

그렇게 되야 우리 둘이 같이 잘 산다고.

나는 혼자 잠도 잘 자고 일도 잘 하고 잘 살고 있다고.

 

 

처음 볼 남편의 무대는

사실 기대가 되요.

남편이 기타 칠 때,

사실 쪼끔 멋있어 보이거든요. 제 눈에만. 하하하.

 

 

잘 놀다 오겠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독립 기념일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