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잔~~~~~~~

 

 

하고 칼럼에 자랑하려고 찍어 둔 사진이예요.

토마토 모종 2불 짜리 사서 화분 두 개로 시작한 옥상 텃밭이 이렇게 절찬리에 확대 운영 중이라고.

 

 

10불 짜리 의자까지 사다 놓고

해질녘에 저기 올라가 저 의자 앉아서

화분들 쳐다 보는게 5월 부터 시작된 제 떼라피 세션.

 

 

일 하러 나가는 날은 아침엔 15분여 정도,

전략적으로 움직이느라 찬찬히 살펴 볼 시간은 없고요,

화분마다 손가락 꾹꾹 찔러서 물 상태 확인하고 물주고

화분 상태 따라 조금 그늘진 곳으로 옮겨 놓기도 하고.

저녁엔 씻고 쓰러져 자기 바쁘니까 못 올라가고.

 

 

집에 있는 날은  

아침, 저녁으로 올라 가서

토마토 곁잎 따주기, 고춧잎에 붙은 진딧물 쓸어내기,

그러다 뒤로 보이는 기찻길로 암츄렉 지나가면 벌떡 일어나서 손 흔들어 주기,

순식간에 기차가 지나가면

바로 도로 쭈구리고 앉아 하던 일 계속하기,

 

 

 

상추는 왜 쭉쭉 안 자랄까?

부추는 왜 이리 가늘까? 마켓에서 파는 부추랑은 전혀 차원이 다른걸? 뭐지 이 부실함은???

민트는 이렇게 잘 자라는데 대체 요리에 써먹기는 너무 많고

결국 럼 사다 모히또나 한 양동이 만들어 마셔야 쓰겠군.

몇 년이나 묵은 씨앗이었는데 이렇게 싹이 트고 이만큼이나 자라다니 정말로 기특한 고추로구나.

 

 

어느 날 아침엔,

커피도 한 잔 들고 올라 가서 마시고 오기도 하고

어느 날 저녁엔,

맥주 한 캔 들고 올라 가서 마시고 오기도 하고

남편이 집 오래 비웠던 어느 날 오후엔 김밥 말아서 올라가 혼자 먹고 오기도 하고.

역시 야외에서 먹으니 김밥이 참으로 잘 들어가는구나...네 줄 담았는데 다 없어지다니...

 

 

 

고추랑 베이즐은 내가 씨뿌려서 처음부터 키운 거고,

토마토, 부추, 파슬리, 스피어민트는 모종 사다 키우는 거고

상추는 다른 집에서 키우던 것 더 못 키우겠다 해서 떠맡은 거고,

깻잎은 다른 집 텃밭에서 자라 나온 것 선물 받은 거고

화분으로 쓰는 두부통들 협찬 받고

(이것만도 큰 돈 절약, 저 만한 크기의 플라스틱 화분 다 돈으로 샀으면 개당 3불씩은 줘야 하는데)

시댁에서 파온 페퍼민트와 레몬밤, 딜.

 

 

 

출신도 제 각각인 푸성귀들을 저렇게 늘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 볼 때 마다

참으로 신기한 이 기분.

작년까지 모든 식물을 죽여 내보내기 바쁘던 사람이

새싹 키워 먹기를 시작으로

올 해는 이런 대반전이 있다니...

 

 

흙 값은 많이 들었어요.

8qt짜리 한 봉지 한 봉지 사다 나르며 일 계속 벌려 가지고

도합 얼마나 되려나...대충 40불 정도 든 것 같아요.

화분 두 개,

토마토 지렛대 등등

총 비용은 50-60불 정도?

 

 

 

돈 값, 이미 충분히 했다고 봐요.

답답한 마음에 어디 가서 사주 팔자를 한 번 볼래도 100불은 들테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 한 번 세션만 해도 100불이 넘을거 같은데

아침 저녁으로 저 화분들 쳐다 보면서

차분해 지는 마음.

명상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머리 복잡하고 마음 어지러울 때

옥상에 올라가서 저러고 있으면

진정이 되더라고요.

 

 

 

이 화분들이 아니었으면

저는 올 봄과 올 여름,

사는게 훨씬 더 힘들었을 거예요.

 

 

 

이 상태로 햇빛 듬뿍 받으면서 쭉쭉 컸으면 내가 지금쯤 고추를 따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인생엔 항상 예상치 못한 불운이 올 때가 있잖아요?

이 사진 찍은 바로 다음 날,

저 화분들 다 옥상에서 쫒겨났어요.

 

 

 

긴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빌딩 주인이 못된 세입자 하나한테 걸려 버려 가지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인데

그 여파로 제 화분들도 옥상에서 쫒겨 났어요.

법대로 하자면 아파트 빌딩 옥상에 저렇게 화분 늘어 놓는 것, 안된다고 합니다.

 

 

1-2주면 될 거 같다고 그 동안만 밑에 내려 놓아 달라는 연락을 받은 날이

이쁜아짐은 간만에 뉴져지까지 주 경계선 넘어 가서 친구 집에서 놀고 있었고

남편이 집에 있던 오후.

남편이 4층 위 옥상에서 땅으로 화분 하나씩 나르느라고 열댓번 정도를 오르락 내리락.

저녁에 제가 집에 가거든 같이 하자고 전화 통화 끝냈는데

집에 왔더니 자기가 혼자 다 해 놨더군요.

쫒겨 내려 온 화분들 막상 보자니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속이 상해서 그 날 저녁 남편하고 싸웠어요.

상황에 속이 상한 건데 잘못된 방식으로 화풀이를 했어요.

같이 나르면 부인님 힘 드실까봐 자기가 다 알아서 해 놨다고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제 칭찬을 기다리는 남편한테

화분만 혼자 나르면 장땡이냐

다른 걸 좀 잘 해 봐라. 하고 소리 질렀어요.

(한 번이야 해 줬죠.

그래도 내 기분도 좀 봐가면서 행동을 해야지,

계속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오르락 내리락 했는지 신이 나서 끝도 없이 떠들어 대는 통에...

계속 장단 맞춰서 칭찬만 해줄 수가 없더군요)

어쨌든 화의 화살을 비겁하게 만만한 채널로 돌리는 찌질한 짓 했어요.

 

 

 

 

인생은,

계획대로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그게 어긋날 때가 또 있잖아요?

1-2주면 될 것 같다고 한게 지금 거진 한 달이 되어가요.

인스펙션 통과를 못 했대요.

다시 한 번 와야 한대요.

빌딩 주인은 저한테 철썩같이 약속했어요.

인스펙션 통과되면 바로 화분들 다시 올려 놓아도 좋다고.

 

 

 

건물 뒷 편으로 옮겨 놓은 화분들,

제가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들락거리며 체크한 결과

직사 광선, 하루 세 시간 정도 받더군요. (12시부터 3시까지)

다른 화분들은 그냥 저냥 잘 살고 있어요.

토마토랑 고추가 햇볕이 부족해요.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식물은 햇볕이 부족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하게 자라게 된대요.

(토마토는 하루 7시간 이상의 직사광선이 필요하대요)

올해는 화분 하나를 키워도 제대로 한 번 성의있게 해 보자고

인터넷 돌아 다니며 공부한 결과 알아낸 사실이에요.

 

 

 

토마토는 맛보기 정도로는 열매가 계속 생겨요.

고추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이파리 따서 반찬으로 무쳐 먹는거나 해야 할 것 같아요.

 

 

 

깻잎은 제법 따 먹을 만큼 잘 자라서

지금까지 50장 정도 땄고요

(네, 제가 이거 누적 장수 세어 가면서 땄습니다.

사장님께 얘기했더니, 막 웃으세요.

한국에서 전문 농사꾼 출신이시고 지금도 텃밭 농사하시는 분이라

제가 화분으로 이런거 키우는 거 아이가 소꿉장난 하는 거 보듯이 재밌어 하세요)

 

 

 

장수 세서 따먹지 말고 실컷 먹어 보라고

당신 텃밭에서 딴 깻잎 한 봉다리 가져다 주셔서

깻잎을 내가 키워도

얻어 먹은 깻잎이 훨씬 더 많네요.

 

 

 

이제나 저제나

화분들 다시 옥상으로 올려 놓을 수 있는 날 기다리느라 8월이 가네요.

마음 좋은 빌딩 주인 덕에

원래는 할 수 없는 옥상에 화분 올려 놓기 해 놓고

역시 나는 수단이 좋아,

남 구워 삶기 잘하는 것도 큰 재주야, 암만~

하면서 즐거워 하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바뀐 상황에 슬퍼 하면서

한 달이 갔어요.

 

 

 

아무리 빌딩 주인이 저한테 지금까지는 철썩같이 약속을 해도

화분들이 옥상에 다시 못 올라가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예요.

다시는 못 올 즐거움이라면

지난 두어 달 간 누렸던 즐거움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해야지...아 슬퍼..

 

 

 

내가 직접 키운 고추 못 먹는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니고.

담벼락 아래라도 이렇게 계속 밖에서 키울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잖아.

 

 

 

옛날 생각만 하면서 실의에만 빠져 있으면 안돼지.

빨리 현실을 받아 들이고 지금 이 상황에 적응 해야지.

지금 상황에서의 최선을 모색해야지.

거울보고 자글자글한 목주름 쳐다 보면서 슬퍼해 봐야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차피 젊었을 때도 정면은 좀 곤란한 상태였으니

아직은 봐줄만한 뒷태에 승부걸면 몇 년은 더 혼자 이쁜척 할 수 있다.

 

 

 

 

 

텃밭 하시는 분들이 상추는 지금이 끝물이라고 하더라고요.

남들은 잘 키워 먹고 끝물이라고 하는 마당에

저 여태 몇 달을 화분에서 키운거 딱 한 번 따 먹었어요.

전문가 진단은 모종 자체가 부실한 거였다, 였는데

여튼 며칠 전에 아기 손바닥 만한거 열두장 딴 게

봄부터 지금까지 내내 키운 상추 수확의 전부.

 

 

오랜 만에 삼겹살 사다가 구워 먹기로 한 날 땄는데

따고 보니 너무 허무한지라…

요걸 누구 코에 부치냐고요.

머리를 좀 썼습니다.

하나 집어서 먹고 웩웩 거렸어요.

 

 

아니 무슨 상추가 이렇게 써? 어머 정말 이상하네~~~

아우 써. 왜 이렇게 써.

그래도 아까우니까 내가 억지로라도 먹어야겠네..

 

 

이랬을 때 그냥 알아서 자기는 이상하게 쓴 상추는 패쓰하고

그냥 깻잎만 먹겠다고 나왔으면

참으로 사랑받는 남편이 될 뻔 했는데,

자기도 하나 먹어 보겠다고 나오는 겁니다.

먹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자기 입에는 하나도 안 쓰다고 합니다.

 

 

당연히 안 쓰죠. 얼마나 맛있었는데..

아…작전 실패…

그래서 열 두장에서 각각 시식한 거 두 장 빼고

나머지 열장, 둘이 똑같이 다섯 장씩 먹었어요.

 

 

셋째 성이 언젠가 한 표현에 의하면,

 

 

니네 신랑은 니가 먹는거면 양잿물로 따라 마실거야 아마.

 

 

 

도대체가 몰래 먹을 수 있는게 없다 정말로.

 

 

이상 

수확은 변변치 않아도

그럭 저럭 운영되고 있는 이쁜아짐의 텃밭 소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