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따먹는 재미로 보낸 한 여름.

날씨 서늘해 지고 꽃대가 이렇게 올라 왔습니다.

이 깻잎 때문에

고기 덜 먹어 보겠다고 끊었던 삼겹살을 반 년 만에 먹었다죠.

이쁜아짐이 제일로 좋아하는 고기, 삼,겹,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 삼,겹,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냉동실에 몇 팩씩 쟁여 두고 매일 아침으로 먹던 삼,겹,살.

올 여름에 반년 만에 다시 먹은 삼겹살 한 입에

이쁜아짐 눈가에는 눈물까지 핑 돌고...

여름 내내 한 다섯 팩 쯤이나 사다 먹었어요.

다 찌그러진 양푼 들고 나가 한 끼 먹을 만큼 갯수세서 따가지고

고기 한 점, 마늘에 쌈장 찍어 넣고

한 입 싸주면 남편이 납싹납싹 잘 받아 먹었어요.

다 큰 사람을 뭘 쌈 까지 싸서 멕이냐, 하시면 딱히 할 말은 없는데

남편은 먹는 속도가 느리고

저는 무진장 빨라서

하나 싸서 내 입에 넣고 먹는 동안

남편 것 하나 싸서 넣어 주고

그 다음 내 꺼 또 싸서 입에 넣고

이래야 둘이 비슷하게 먹어요.

안 그러면 제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먹어 치우니깐 헤헤.

아따~~

요것이 오늘의 하일라이트 입니다.

화분이 옥상에서 쫒겨나 지상으로 내려 온 이후

고추가 자라다 마는 것 같아 상심이 컸더랬는데

일 하는 곳 사장님께서, 고추는 10월 말 까지도 따 먹을 수 있다고

몇 개라도 열릴 수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 하셨는데

옴마나, 정말 그렇네요.

9월 말 쯤 부터 마구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눈물이 날 만큼 기뻤습니다.

씨 봉투에 써진 이 고추의 정체성은 '국선 풋고추'라고 하는 것이고

제법 매워요.

겉의 식감은 많이 단단한 편이고요.

처음에 땄을 때는

내가 조바심을 내서 너무 이르게 땄나? 싶어서

나중엔 더 클 때까지 기다렸다 따 봤는데

덜 컸을 때가 식감이 더 좋더군요.

고추잎이 엄청 무성했어요. 지금 이렇게 휑한 것은

지난 주에 대대적으로 이파리를 따서

데쳐서 된장에 무쳐서

입덧하는 친구한테 반찬 만들어 줬어요.

고춧잎 무친 것을 굉장히 좋아 한다고 하여 해주긴 했는데

임신하면 원래 좋아하던 것은 또 먹기 싫다고들 그러잖아요?

입에 맞으려나...맞았으면 좋겠다...하면서 해줬더니 잘 먹었다고 그러네요. 안심.

(하기사 맛 없었어도 해 준 사람한테 맛 없어서 못 먹었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진짜로 믿기도 조금 그렇긴 한데...

그냥 믿으려고요. 빈말 안하는 친구니까ㅎㅎㅎ)

벌써 10월 말. 아효 진짜 시간은 빨리도 가네..

고추 익어가는 보는 재미로, 따 먹는 재미로

이 가을을 보내고 있는 이쁜아짐입니다.

도시락 반찬으로 풋고추에 쌈장 찍어 드셔 보신 적 있으세요?

이번에 처음 해 봤는데

음...행복 하더군요.

이 정도면 조금이긴 해도 나눠 먹을 정도는 되겠다 싶어서

지난 주에 오랜 만에 동갑나기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 들고 나가려고

지퍼 백에 열 개씩 담아 놨다가

까먹고 나갔지요.

하나 기억하고 하나는 까먹고.

시댁에서 가져 온 말린 타임(thyme)을 챙겨 나가서

친구 하나는 이 서양 허브쪽에 관심이 없고 한 친구만 원했어서

전달까지는 제 쪽에서는 무사히 했는데

이번엔 친구가 가방에 넣으려는 찰나 다른 친구가 그게 뭔지 구경이나 하자고

이리 내 보라고 달래서 들여다 보는 바람에

그러다 또 바로 무슨 얘기인가들을 시작해서

이것이 친구 가방 속까지 안착을 못하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가

놓고 나왔죠 뭐.

밥 먹고 나와서 차 마시는 중간에 이 사실을 깨닫고 바로 식당으로 갔는데

없다고 하더군요.

그릇 치우는 사람이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지 싶어요.

아줌마들이  다 이렇지 뭐.

서로들 위안하면서.

대화 내용은

각 자 남편들 흉보기, 시댁 얘기, 여름 어떻게 보냈나, 직장 얘기, 등등

무궁 무진한 신변잡기 화제들 쭈욱 훓고 나서

학군이 어떻고 집 값이 어떻고 까지

이쁜아짐의 인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주제까지 접어 든 찰나

웬지 좀 심술이 나서

나도 참을만큼 참았다, 하는 심사로 소리를 꿱 질렀어요.

야, 근데 너는 왜 얘 보고만 피부 좋아졌다고 계속 그 얘기 하더니

나보고는 예뻐졌다고 안 하는거야???

아니 내가,,,,

오랜 만에 만나서 나 너무 예뻐졌다고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었는데

어쩌면 이 주제는 이렇게 비껴갈 수 있는 거죠?????

친구가 화들짝 놀라서 갑자기 의자를 뒤로 빼더니

(이거 지어낸 말 아니고 정말 저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야, 맞아..

너 예뻐졌어. 뒤로 이렇게 해서 멀리서 보니까 진짜 그래.

이 멘트도 제가 지어낸 것 아니고

제가 성질 부리니까 친구가 정말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어요.

근데, 예뻐졌으면 예뻐진거지 왜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하는건데????????

그랬더니 옆에서 친구 2,

다급한 목소리로 

아니 아니, 진짜로 아까 내가 그 말 하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못했어.

너 진짜 예뻐졌어.

쫌....

찝찝하다.

아니, 많이 찝찝하다.

내가 너무나 미의 기준 엉망진창인 남편하고만 붙어 살아서

그래, 내가 기고만장 공주병이었던 거야.

친구들 탓하지 말자.

그래도 이 나이에 서로 이름 부르면서, 야, 야, 너, 너, 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 아닌가.

스무살 때 부터

나의 모든 지저분하고 어둡고 음침한 과거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친구들이라

내가 함부로 해서는 절대 안되는 사람들 이기도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찝찝해도 내가 이번은 참는다..

아무리 내가 내 입으로

거대 싸이트에 글을 연재하는 '인기 칼럼니스트'라고

침을 튀겨 가면서 3년 넘게 주장을 해도

오늘 이 날 이 때까지

절대 한 번도 안 와 보는 이것들!!!!!!!!!

그래도 내가 참아야 하느니...

이 무심한 것들..

관심 가져 주면 성심 성의껏 대답해 주려 했다 난.

어머나 가방 예쁘네? 하면

몇 년 동안 찾아 해매던 가죽 가방을 마샬, 티제이 에서도 내 예산으로는 벅차서 못사고 있다

결국 가죽의 탈을 쓴 비니루 가방 스트릿 페어 때  25불 주고 샀다고,

정말 괜찮지 않냐고 살포시 웃어주며 말하려 했다.

어머나? 블라우스 예쁘네? 하면

으응....그 때 성님들하고 '파뤼~~~'갔었을 때 사온 거,

그 동네 싸구리 가게서  10유로 하는 거였는데

이게 그렇게 효자네.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

거만을 떨고도 싶었다.

부츠 예쁘다고 하면

가장 최근에 연결된 후원자 자랑을 하려고 했다.

워낙에 여기저기서 협찬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산 옷도 많지만 얻어 입는 옷도 상당수인데

신발 협찬은 이번이 처음.

이번에 연결 된 독지가, 부츠 사대는게 취미이고 한 번도 안 신은 부츠들도 집에 많이 쌓여 있다고.

칫수 맞는 사람 알게 되어 자신도 참으로 기쁘다며

이제껏 기증 받은 것 만도 몇 켤레.

이 분, 기증에 삘 받아서 조만간 열심히 신발장 정리 할 거라고.

앞으로 몇 켤레나 더 받을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고 엄살을 떨려고 했다.

부럽지?

출근 길에 남편한테,

자기야 나 사흘 째 새 부츠 신고 출근하는 거다~~~

했더니

와우~ 마리 앙트와네트 같으세요.

마리 앙트와네트는.... 남의 신발 받아 신고 살지 않았거든.

하고 쏘아 부쳤다고 남편의 무식함을 꼬발르려고도 했다.

스키니 진 예쁘다고 하면

그저...3초쯤 침묵하려 했다. 겸손한 척 해보려고.

바지야 뭐...

내가 옷걸이가 좋은 거지...혼자 속으로 이렇게 뿌듯해 하려고 했다.

자랑질, 거만, 염장질, 겸손을 가장한 잘난척.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할 것은 많았는데

너희들 무관심으로 어느 하나 할 수가 없었다.

기껀 감지도 않고 나갔던 머리 모양이나 예쁘다고 하고...

스무 살

그저 잘난척하기 좋아하고 공주병으로 한 우물을 파던 나는

이십 년이 흘러

그 때 그 친구들을 만나서 나이 마흔에 여전히.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는 진정 한결같은 캐릭터 이쁜아짐.

이런 사람을 진국이라고 하는거죠?

찬 바람 불기 시작할 때 마다

또 한 번의 이 기나긴 뉴욕의 겨울을 어찌 버티나...

걱정이 한 짐인데

그 겨울 보내고 나서 올 봄에 처음 손댔던 화분 농사.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모종을 사다 심고 열매 맺는 것을 보고

키워서 따 먹고

기다려도 보고 애도 태워 보고.

키운 것들 하나 하나 따 먹으면서

남편하고 소꿉장난 하듯 그렇게 재미난

봄을 보내고 여름을 지내고, 이제는 가을도 깊어 졌습니다.

부실하다고 실망했던 부추는

추위를 겪으며 한 해를 버티면

그 다음 해 멋지게 실해진다고 하니

그 기대감이 이번 겨울을 버티는데 조그마한 힘이 될 것도 같고..

다가 올 긴 겨울을 우짜든동 또 한 번 살아내면

내년 봄에는 화분 농사를 더 실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때쯤 친구들 또 만나게 되면

진짜로 얘네들 기절초풍할 만큼 더 예뻐지고 말 테여요.

어떻게??

궁리해 봐야죠.

딸라 빚 내서

보톡스에 필러를 맞던가,

로또 맞아서 확 한 번 다 갈아 엎던가.

이도 저도 안되면 잠수 타 버리면 그만이고.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저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이쁜아짐인데

이걸 몰라 주는 세상 인심인 거죠.

한 반년 쯤 후에

다시 봄이 오면

그 때 쯤엔 세상 인심이 내 남편처럼

미의 기준이 다 엉망 진창이 되어 있으려나?  그렇진 않겠죠?

모 그렇더라도,

어쨌든 살아 봐야죠.

저는 내일도 새 부츠를 신고 출근할 예정입니다.

ENZO 짙은 밤색 스웨이드 톨 부츠입니다.

남들 말하는 고가 사치 브랜드에는 근접도 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돈 주고는 사 볼 생각 안 해 본 브랜드 입니다.

예쁩니다.

역시 모델이 좋아 그런지 신어 보니 진짜 예쁩니다.

마리 앙트와네트도 이런 건 못 신어 봤을 것이다, 한 표 걸면서

코디 궁리 중입니다.

어떤 코디가 나올지 제 자신도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미리 선언하길...

참으로 멋진 이쁜아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