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되고, 연말이니 특별한 걱정거리랄게 딱히 없어도 어느 정도는 쓸쓸하고 심란하고.

그런 때가 왔군요.

 

서방님은 이 시점에 연주 거리 일을 잡아서 지난 여름 이후로 꾸준히 연주 활동 하고요. 도합 세 번^^ ㅎㅎㅎ

 

두어 주 전에는

머나먼 버팔로 인근까지 가서 "toys for tots" 라는 이벤트에 참여.

수익금으로 가난한 집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 사주는 이벤트 였는데

재미나게 잘 연주했대요.

 

신랑이 집에 없는 밤은

제가 쓸데없이 겁이 많아서 텔레비젼을 밤새도록 켜 놓는데

오랜 만에 한국 채널을 틀어 놨더니

드라마를 하길래 좀 봤는데, 재밌네요.

 

교양 목적으로 이곳 연예방에서 최고 인기라는 드라마들

누가 나오고 무슨 내용인지 이런거 관심있게는 봐도

'막장 드라마'라고 욕 하면서도 보게 된다는 그런 것에도 관심 없고

남자 주인공에게 빠져들게 된는 폐인성 드라마도 챙겨볼 부지런함이 없어서 

요즘 이런 내용의 누가 나오는 이런 드라마가 인기구나, 정도만

알고 넘어가는데

 

제목도 들어 본 적도 없고

인기라고 연예방에서 회자되는 글도 본 적이 없는데

한 번 보니까 꽤 재밌는 거예요.

 

성격 급해서 버퍼링 같은거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보는 동영상이라고는 연아양 스케이트 밖에 없었는데

뒤가 궁금해서

처음으로 동영상 방 가서 그 드라마를 찾아 가지고

인내심을 발휘해서 일단 걸어 놓고

30분 쯤 있다 드라마를 보기를 지금 2주 째.

 

처음 동영상 방 링크를 따라 갔다 드라마를 보려고 기다리는데

그 싸이트는 왼쪽 하단에 접속자들이 채팅을 하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런가 보다 하고 버퍼링 기다리는데,

내용이 눈에 들어 옵디다.

 

 

만나서 얘기를 어쩌고.

 

저 쪽은, 결혼하신 분이라면서요..

 

뭐 이런 대답.

 

결혼한 사람은 친구도 만들면 안되나요.

 

이런 댓구.

 

 

아...제대로 찌질이가 허접한 작업을 하나보다.

아니 또 저런 말을 받아 주고 있는 처자는 얼마나 심심한 처자길래,

저걸 말 대답을 해주고 있나.

 

 

이러면서 저는 버퍼링을 계속 기다라고. 옆에 채팅창은 계속 시야에 들어오고.

 

 

이 결혼한 아자씨가 하는 말,

 

 

마누라한테도 못하는 얘기가 있잖아요.

그런 얘기를 친구처럼 할 수도 있지 않나요.

결혼한 남자도 친구를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속으로 풉! 웃으면서, 아 이건 너무 삼류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어떤 제 삼자가 혜성같이 등장,

 

 

"마누라한테도 못할 얘기는 그냥 입을 꿰매 버리삼"

 

 

저거 보고 드라마 보기 전부터 얼마나 깔깔깔 웃었던지.

부인한테 못하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성 친구를 갈망하던 아저씨는 그 뒤로 사라지고

저는 드라마 잘 보고 나왔어요.

 

 

제가 아가씨 신분일 적에 일하던 회사에서

어떤 일이나, 고객 상대하는 일은, 소위 블랙 리스트라는게 있잖아요.

담당자가 돌다 돌다 저한테 왔을 때

제가 들은 언질이 '이 사람 좀 조심해야 돼. 저질이야'

 

전화 통화 할 때 마다 반말하는 것, 기분은 나쁘지만 그렇다 치고 넘어가고

사람 무시하는 것, 그것 역시 재수는 없지만 그렇다 치고 넘어가고

몇 번 전화 통화 끝에

자기 일로 수고가 많으니 저녁 대접을 하고 싶다고.

두 세번 거절하다 너무 지겹고 속이 미식거려서

 

 

 보스한테 가서

저녁 먹자고 치근 대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보고 했더니만,

보스가 저더러 옆에 앉으라 하더니 전화 돌리더군요.

 

 

담당자가 일 잘해서 고마움 표시하고 싶으면

점심으로 먹게 음식 회사로 보내라고.

퇴근 후의 시간은 나는 직원하고 고객하고 만나는 것 허락하지 않는다고.

앞으로

내 밑에서 일하는 사람, 일과 관계없는 내용으로 전화해서 시간 뺏는거 용납 못하니까

계속 이럴거면 다른 사람 찾아서 일 맡기라고,

당신 일 안 한다고.

 

 

그 때 속으로,

그랬어요.

그 돈과 시간으로 집에나 일찍 들어가던가

마누라 외식이나 시켜주지.

어데 엄한데서 저녁 먹자고 느끼한 지랄은..

이런 거 남편이라고 보고 애 키우고 살림하고 저 집 마누라가 불쌍하다.

 

 

 

보스한테 일러 바칠 때

거절을 하는데도 맨날 전화해서 저녁 먹자고 하니

어떤 말로 확실이 못을 박아야 하는지 도움이 필요해서 달려 갔더니

보스는 저 옆에 앉혀 놓고 직접 전화해서, 너 자꾸 이러면 우리 니 일 안 해준다,

니 같은 고객 우리는 필요 없다,

내 직원이 싫다는데 너랑 저녁 먹어줄 필요 없다,

이렇게 망신을 주니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12년 전 그 때 그 보스가 지금 내 나이의 여자 였는데.

그 때 그 여자 한 사람 어깨 아래 많은 사람들이 월급 받아 생활하고.

제가 그 때,

아...나도 저렇게 똑똑하고 능력있고 돈도 잘 버는 저런 보스가 되고 싶다...

그런 꿈을 키웠었는데...

 

 

드라마 보러 들어 갔다가

허접하게 작업거는 유부남에

자기도 심심해서 그랬겠지만 그 말을 받아 주던 할 일 없던 상대 여자.

남의 일이라고 혀 차고 잠깐 보다가

혜성같이 등장해서 그 주댕이 그냥 꼬매버리라고 말 해 주던 제 삼자의 시원함에

옛날 보스도 생각나고.

 

 

제가 즐겁게 열심히 일하는 곳도 불경기에 연말이라 그런지 싱숭생숭한 분위기라

나도 새해엔 다른 살 길을 찾아야 하나 이런 생각으로 또 머리도 복잡하고.

 

 

그런데 제가 저 드라마 보고 웃어요. 요즘.

 

 

이어폰 꽂고 하하하 깔깔깔 웃었더니

그런 제 모습이 신기한 남편이 제 얼굴을 한참 들여다 보고 가고.

셋째 성한테, 욕 하면서 봐야 하는 막장 드라마 아니고

보고 있으면 현실을 잊고 시간 죽일 수 있는, 드라마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드라마라고,

유쾌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시간 나시면 한 번 성님도 보시라고 추천도 때렸네요.

 

 

너...이제부터 울어야 겠다...

 

 

아아악~~~~~ 쓰러졌음. 아주 잠깐.

너무 귀여웠음.

 

 

그래도 아줌마된 지금 이 입장에선,

밥 한 번 더 떠 먹으러 가는 김 비서도 못지 않게 귀여움.

 

 

머리 복잡하신 분들, 한 번 보세요.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