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질문부터,

 

둘째 시누의 딸래미,

아이 입장에서 봤을 때 저는

엄마의 오빠의 부인, 인데, 그럼 그 아이가 저를 부르는 호칭이 '외숙모'가 맞나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한국말에서는 인칭 대명사가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에 가족 관계가 명확하게 나타난다고

제가 그간 설명을 해왔던 지라,

둘째 시누가 물어 보더라고요.

한국식으로 나를 부르면 자기 애가 어떻게 불러야 하냐고.

저는 친척 어른이라고는 이모만 알고 자라서 갑자기 이런 경우는 뭐지? 하고 생각 했다가

'큰 엄마'라고 잘못 대답했어요.

 

큰 엄마는, 아빠의 형의 부인이 큰 엄마인 거죠?

 

 

그래서 며칠 후에 큰엄마는 아니고 외숙모가 맞는 것 같다고 정정을 하긴 했는데

이것도 맞는게 맞기는 맞나요?

(아...지금 쓰면서도 무척 헥갈리네...ㅋㅋㅋ)

 

 

어쨌든,

시부모님한테는 자식 넷 중에 둘째 시누만 유일하게 손주를 안겨준 자식이고,

앞으로도 둘째 시누가 둘째를 낳으면 시부모님들은 손주가 둘이 되실 거고

아니면 하나로 끝날 확률이 농후합니다.

 

 

첫째는 이쁜아짐의 남편되는 사람이고,

둘째인 큰 시누는 남편과 쌍둥이로써 올해 마흔 됬고, 역시 2세 계획 없습니다.

셋째인 저의 둘째 시누가 공주님 한 명 있고

넷째인 저의 막내 시누, 싱글, 2세 얘기는 꺼내지도 말랍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자기가 성모 마리아냐고. 섹스없이 애를 가지게.

 

 

시댁 갈 때 마다 할 수만 있으면 저는 둘째 언니네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둘째 시누가 그걸 참 좋아해요.

같이 어울릴 커즌이라도 있다고.

 

 

저 집 딸래미가 한 달 전 쯤 세 돌 생일을 맞았는데

저는 못가고 남편만 갔어요.

갈 때 까지 저는 지켜만 봤습니다.

자기 조카라고 하나 있는데, 생일 선물을 어디 사가려나 어쩌려나.

자기 식구들 챙기는데 여지껏 쇼핑은 제가 다 담당해 왔어요.

저는 쇼핑을 좋아하고 남편은 싫어하고, 별로 문제될 건 없었습니다.

이번에 아이 생일 잔치는, 저도 직장 문제로 머리도 아프고 경황도 없고

일부러 시간내서 아이 생일 선물을 쇼핑할 여력이 없었어요.

 

 

어찌하나 두고 봤더니,

결국 빈 손으로 가더이다...

애가 자기 세 살 생일에 누가 선물 가져 오고 누가 빈 손으로 왔는지

그걸 어떻게 기억 하냐고,

며칠 늦어도 나중에 천천히 해줘도 된다나.

 

 

그렇게 아이 세 살 생일은 지나갔고,

저는 그저께 'The Last Lecture' 라는 책을 읽다가 (저자는 Randy Pausch)

갑자기 뜬금없이

정말 아웃 오브 노 웨어, 그림책 아이디어가 머리속엘 떠오르대요.

책 내용과도 상관없고, 아무 짝에도 연관성이 없는데

그냥 저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어요.

 

 

어린 시절의 꿈, 어쩌고 하는데

저자는 암으로 남은 생이 몇 개월 안되는 시점에서

(예, 지난 번 읽은 책에서 피해간 내용을 이번에 잡은 책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맞닥 뜨렸네요)

컴퓨터 공학 박사이자 교수가

아직 어린 자식들한테 차차 해주고 싶은 말을 남은 시간이 없어서 한 권 책에 정리한 말들.

 

 

읽다가...

 

난 대체 어렸을 때 꿈이 뭐였나?

 

기억 안 납니다.

 

당연하지. 꿈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던 그 날 까지, 머리 속에는 그냥 돈 좀 벌고 살아야 겠다,

빨리 어른이 되야겠다,

부모 잘못 만나 할 수 밖에 없었던 이 고생 좀 하루 빨리 청산해야 겠다,

먹고 싶은 것들 실컷 먹고 살아야 겠다,

 

 

의사?

과학자?

디자이너?

변호사?

예술가?

 

 

등등 어떤 직업을 떠올려도 내 자신과는 다 안 어울리는 것들 뿐이고,

어찌 어찌 대학은 가야 하겠고, 대학 졸업하면 직장을 잡을 터이고,

그래서 먹고 싶은 거나 사 먹으면서 그렇게 살면 되겠지 뭐.

 

 

꿈이란 구체적이어야 하고

단계별 상세한 액션 플랜이라는 것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노력을 하고 준비를 해야 뭘 이루든지 말든지 한다는 걸

대학 공부 다 하고 한참 바깥 세상을 미로나 된듯이 몇 년을 헤매고 나서야 깨닫고 보니,

어린 시절의 꿈,

꿈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득하게만 느껴지네.

 

 

세상엔

어린 아이가 꿈이 무언지 꿀 수 조차 없는 그런 환경 밖에 줄 수 없는 부모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 꿈이 없었던 건,

다 엄마 아부지 탓으로 돌려 버려야지.

내가 오로지 희망했던게 먹을거나 실컷 먹고 사는 생활,

이건 분명 나의 엄마 아부지 탓이다. 내 탓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이 흐르다, 뜬금없이 둘째 시누 딸래미의 늦은 세 돌 생일 선물로

어설플 것이 분명하나마, 그림책 같은 걸 하나 직접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겁니다.

 

 

둘째 시누와 시어머니가, 그간 은근하면서도 동시에 적극적으로

혹시나 릴리양이 저한테 한국말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표시 해 왔었거든요.

둘째 언니네 아동들처럼 한국말도 하고 영어도 하고. 그럼 너무 좋겠다고.

둘째 시누는, 닉네임처럼 부를 수 있게 예쁜 한국 이름 하나 지어 달라고 아주 정중히 부탁 했더랬는데

제가 그러마고 하고는 지금 3년째 이렇게 씹고 있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있을리 만무하고, 그저 게을러서.

 

 

 

지난 번 시댁 갔을 때는,

시어머니께서 손주의 영특함에 한껏 고무된 할머니답게

저한테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얘, 네가 현경이 현영이한테 하듯이 릴리한테 한국말로 얘기를 하면 어떻겠니?

그리고는 바로 한국말로 한 그 내용을 영어로 해주면

릴리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면서 한국말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일년에 몇 번 만나서 몇 마디 한국말을 한들, 정말로 한국말을 할 수가 있을까,

저는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이 엄마나 할머님이 너무나 꿈이 크시네..

 

 

그래도 어려운 거 아니니 하기는 했습니다.

 

 

릴리 배고파? 떡국 먹을까?

 

 

새해까지 지내고 올 계획이었어서 제가 떡국떡 한 봉지 준비해 간걸로

한국 사람들은 새해 첫 날, 첫 음식으로 먹는다는 설명과 함께 떡국을 끓이고

그릇에 담다가

어머니, 릴리 건 어떻게 할까요? 따로 담을까요? 여쭤 봤더니

어머님이,

 

 

우선은 내 그릇에 있는거 먹여 보고, 얘가 먹으면 그 때 따로 담아 주자.

 

 

집에서는 이유식 끝내고 엄마 아빠 먹는 걸로 똑같이 먹은지 꽤 됬다고 했지만

매일 먹던 것과는 틀린 한국 음식은 처음이라 저나 시어머니가 아이가 먹을지 확신이 없어서 저렇게 했는데

조 애기가,

두 번 집어 먹더니

자기랑 같이 먹던 할머니한테 그럽디다.

 

 

할머니는 할머니 꺼 따로 드시라고.

why don't you get your own?

 

 

그래서 시어머니 따로 제가 덜어 드렸는데, 요것이 자기 것 다 먹더니

이번엔 자기가 시어머니 그릇을 은근 슬쩍 자기 앞으로.

뺨 한 쪽에는 고명으로 부셔준 김 한 조각까지 떠억 붙이고는..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닭도리탕을 했는데,

떡국이야 말간 국이니 먹었지 미국 애기가 저걸 먹겠냐, 싶었는데

둘째 시누가 그러더라고요.

먹든 안먹든 일단 줘 봐야 아니까 똑같이 줘 보자고.

 

 

밥에다 닭다리 하나 감자 하나 얹어서 줬더니,

또 이걸 다 먹네...

 

 

둘째 시누가 닭도리탕 조리법 적어 가야 겠다고.

조 애기가 워낙 먹성이 좋아서 가리는 것 없이 이쁘게 다 잘 먹기는 하는데,

그래도 아이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우리(아이 부모)가 해주는 것 보다 한국 음식을 더 잘 먹네...

 

 

남편한테 지금까지 한국 전래 동화를 몇 개 해준게 있는데

그럴 때 마다 너무 재밌다고, 그거 고대로 써 보라고 미국 애기들도 재밌어 할거라고,

그러더라고요.

 

 

벌써 다 영어로 된 거 있을 걸?

 

 

그랬는데, 벌써 영어로 누가 써 놓은 건 써 놓은 거고,

당신이 당신의 영어로 당신의 버전으로 한 번 써 보시라고.

놀부네 집에서 박 타다가 도깨비가 나오는 부분에서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너무 너무 재밌다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아니 내가 한국 전래 동화를 영어로 써서 누굴 보여 주라고..

현경이 현영이는 벌써 한국말로 읽었는데..

그랬는데...그 이후로 또 몇 년이 지나,

나도 한쪽 가족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저 쪽에서 애기가 또 한 명 나와서

그 애기한테는 외숙모가 생긴 것도 틀리고 하는 말도 틀리고 먹는 음식도 틀린데...

그럼 이걸 설명을 좀 해줄까?

 

 

그래서,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는데,

한국 전래 동화는 나중에 본인이 직접 글을 읽을 수 있을 때 번역에 들어 가기로 하고

첫 작품은,

한국을 소개하는 그림책으로 하기로 했어요.

 

 

제목 Korea

내용은, 세 살 짜리 수준에 맞게 10-20 문장.

그림은 인터넷 뒤져서 세계 지도랑 한국 풍경이랑 이런거 찾아서 낑겨서 오려 붙이기로 하고.

그래서 세 살 생일 선물로 주려고요.

 

 

생각 난 김에 바로 착수해서

10분 만에 완성.

아...책 하나 쓰기 정말 쉽네.

딱 열 여섯 문장.

내용을 대충 한국어로 옮겨 보면,

 

 

한국이 뭐죠?

한국은 외숙모의 나라예요.

미국에서는 아주 아주 아주 먼 곳.

그곳엘 가려면 굉장히 큰 바다를 건너야 하죠.

그 바다를 건너면, 자 이제 이곳이 한국이예요.

아름답죠?

이곳이 외숙모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랍니다.

중략..

릴리양의 커즌 제이크와 커즌 현경은 한국을 몇 번 가 본 적이 있죠.

언젠가 릴리양도 가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정말 신나는 일이겠네요!

 

 

저렇게 끝나는.

 

초안을 10분 만에 써서 남편 보여주니, 아주 마음에 들어 하네요.

세 단어 정도 남편의 제안을 받아 들여 고치고.

이제 인터넷에서 좋은 한국 풍경 사진들 찾아 보려고요.

 

 

다음 번 시댁 갈 때 까지만 완성하면 되니까

천천히...

항상 용두사미,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한, 순간 괴력은 엄청나나 지구력은 부족한

이 이쁜아짐인지라

결과가 어떨지는 이 시점에서 장담은 시기상조인듯 하고,

 

 

일단 요거 세 살 기념 'Korea' 해주고,

내 년 생일에는 이쁜아짐 버전 번역 첫 작업으로 '단군 신화' 해주려고요.

 

진짜 하나 어쩌나 두고 보자고요.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음 ㅋㅋ

건투를 빌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