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남편은 밴드 공연하러 집을 떠나고.

 

나는 이참에 셋째 성과 놀고.

 

남편과 함께 각자 하룻밤 지낼 짐을 싸서 사이 좋게 손잡고 집을 나서서 남편은 시외 버스 터미널로 나는 성님네 집으로.

제가 어딜 움직이면 짐이 많은 사람인데

그나마 셋째 성네서 자고 올 때는 조금 가벼워요.

 

집에서 입는 여름 원피스 하나도 가져나 놨고 반바지도 하나 있고

(신체 사이즈가 달라서 성님이 입는 걸 그냥 나도 입고 그러지는 못합니다)

콘택트 렌즈 용 식염수도 있고

(떨어지면 성님이 알아서 사다 놓음)

여벌 안경도 한 벌 있고

(밤에는 렌즈 빼고 안경 껴야 하니까)

칫솔도 있고

(때 되면 성님이 세일할 때 사다 놓은 것으로 새걸로 착착 바꿔서 대령해줌)

 

 

토요일 성님네로 향할 때의 옷차림은, 청반바지에 면 블라우스를 입고 갔고

가방에는 입고 잘 잠옷하고

(잠옷도 아예 한 벌 가져다 놔야겠음)

다음 날 입을 원피스 하나 넣어 갔는데

셋째 성이 그걸 보더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더군요.

 

 

하루 자고 가기를 그 다음 날 그냥 입고 왔던 옷 입고 가면 돼지

너는 이틀도 같은 옷을 입으면 안되는 거냐고.

 

 

안될거야 없죠. 이틀도 입고 사흘도 입을 수 있죠.

허나,,,갈아 입을 옷이 있는데 왜 굳이 같은 옷을 입어야 하느냐고 제가 반문.

 

 

옷이 없으면 몰라도 옷이 있는데 왜 같은 옷을 이틀 입어? 난 싫어~

 

 

집 대청소 해 놓고 자랑하려고 셋째 성 구경 오라고 한 날,

문간의 클라짓을 짠~ 하고 보여 줬었거든요.

거기가 겨울 외투들 걸어 놓고 제 모든 가방을 바닥에 쑤셔 놓고 살던 수납 공간이었는데

제가 가방도 싹 정리를 했어요.

큰 가방 안에 중간 가방 빼꼼, 중간 가방안에 작은 가방 빼꼼, 이렇게 보이는 식으로

넣어서 한 눈에 가방들이 다 보이게 정리를 해 놓고

그거 잘 했다고 자랑 하려고 보여 줬더니만

셋째 성은 이번에 처음으로 제 가방 콜렉션을 보게 된 건데...충격 받았나 보더라고요.

지지배 소리가 나오더이다.

 

 

이 지지배!!! 이 가방 많은 것 좀 봐!!!

 

 

있잖아....가방하고 신발은...사도 사도 부족해...

물론...옷도 그렇고...

세상엔 예쁜 것들이 너무 많아...

 

 

예전엔 저더러 돈을 물쓰듯 쓴다고 제가 저렇게 물건 사대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던 셋째 성이었는데

그거 없다고 죽는 거 아니면 허튼데 돈 쓰지 말아라, 절약해서 돈 모아라,

왜 저축을 못하느냐, 물건 사는 즐거움도 있지만 내 손에 돈 모이는 즐거움에 한 번 빠져 봐라,

이렇게 입이 닳도록 잔소리 해도 제가 들은 척도 안하고 살아 온 결과물이

고스란히 우리 집 클라짓에 그득~

 

 

 

셋째 성은 여름용 하나 겨울용 하나, 이렇게 두 개 정도로 일년 내내 들고

일년에 가방 한 개씩 사요.

내가 아무리 내 가방 다 합쳐 봐야 다른 사람들이 열광하는 고가 브랜드 하나 값의 반도 안되는 거라고 해도

셋째 성 눈에는 여튼 이쁜 아짐은 사치 덩어리, 허영 덩어리.

 

 

내가 옷 구경 한다고 다니는 가게들이라야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H&M, 포에버 21, 올드 네이비, 티제이 맥스, 마샬, 베이스먼트..

그리고 세일 때 쿠폰 들고 가는 메이시스.

지만 그래도 어쨌든 20불 짜리도 다섯 개면 백 불이니..사치는 사치고 허영은 허영일 수 있겠다..

 

 

20불 짜리를 살래도 그만한 여윳돈이 있어야 사니

쇼핑을 아주 무 자르듯 딱 끊은 건 아니래도 최근 2년 여 간은

사치와 허영을 멀리한 아주 바람직한 태도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제가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고 나니 셋째 성이 외려 나서서 자꾸 절 뭘 사줘요.

워낙에도 자기 옷 하나 사 입기를 몇 번씩 고민 하다 일년에 몇 벌 안 사입는데

그럴 때 마다 둘째 언니 옷, 둘째 언니네 애들 옷까지 같이 사고,

그마나 저는 제가 알아서 옷 잘 입고 다니니까 저는 제외였는데

요즘은 제 옷 까지 사주더군요.

 

 

토요일은 저녁으로 타이 음식으로 외식하고 들어와서 잘 자고

다음 날인 일요일, 오랜 만에 쇼핑몰을 갔는데 거서 또 원피스 하나 얻어 입었어요.

진짜 괜찮다고 안 사도 된다고 저는 그랬는데...

모 지난 번에 봤을 때 예쁘다고 만지작 거리긴 했었어도....

그 때는 25불이었는데 지금은 15불로 세일하기는 해도...

그래도 난 여름 원피스가 많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모 보니깐 이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는 원피스랑 스타일이 좀 틀리긴 하지만...

이거 안 입는다고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모 근데 싸이즈가 또 하필 딱 하나가 남았냐...일단 집어 들고 마저 구경할까...

 

 

성님이 자기가 고른거 입어 보겠다고 피팅룸 간다고 입어나 보라고 해서

못 이기는 척 나도 가서 입어 봤더니만...

아...이거 또 왜 이렇게 잘 맞고 이쁜 것이야...괴롭다.

 

 

 

셋째 성은 나더러 어디 다니면서 잘난척 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 당부를 하면서

옷가게 가서 옷 입혀 놓고 저를 쳐다 보는 표정이 아주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어요.

 

 

내가 입으니까 어깨 쪽이랑 이상하던데 니가 입으니까 예쁘다?

내가 입었을 때는 사람이 구려 보이던데 니가 입으니까 환하다?

너는 참 몸에 잘 맞는 옷들이 많아서 괴롭겠구나..

그 눈이 보배로구나.. 예쁜 것도 잘 찾네..

 

 

 

이번 것도, 보니깐 자기 눈에는 그 원피스 입은 이 동생 모습이 아주 흡족한거라..

제 생일이 7월이라, 셋째 성이 보통 여름 원피스로 생일 선물이라고 사주는데

올해는 생일 선물도 두 달 전에 미리 받았거든요.

 

 

케네스 콜 트렌치 코트, 옴팡 세일하는 걸 보고 남은 물건 중에 제일 작은 치수를 샀는데

그래도 여전히 자기한테는 크고,

그렇다고 반품을 하자니 세일 폭이 커서 놓치는 기회가 너무 아깝다고.

저더러 한 번 입어 보라길래 입어 봤더니,

뭐 또 제 몸에 맞춤인듯 아주 잘 맞더군요.

그래서 그거 입으라고 하더군요. 생일 선물 미리 주는 거라고.

 

 

옷을 또 얻어 입을 명분이 하나도 없는데..

왜 자꾸 날 몰 사주는가..

이것은 자연의 법칙인가.. 소위 내리 사랑이라고 하는??

그럼 나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사는 것이 최선인 걸까?

그래...받자...군말없이...납싹.

 

 

 

토요일 밤에, 성님이 너희 요즘은 어떻게 사니...하고 이것 저것 구체적으로 물어 봐서

제가 대답을 공손하게 하면서 진땀을..

 

 

직장 구하는 일 잘 안되는 것 부터 해서

나도 사람 구실 하면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데 경제는 왜 하필 지금 이 모냥이고

요즘은 남편 구박도 자꾸 한다고 하고

(신경질에 짜증 부리는 버릇 다시 고개 쳐들고 있음)

물놀이도 못 가고, 이게 뭐야. 여름...재미없다..

 

 

 

신세 타령으로 끝냈더니, 셋째 성은 아무리 더워도 자기는 그래도 여름이 좋다네요. 추운 것 보다는.

하기는 저도 그래요.

여름이 나의 계절이고, 난 겨울은 싫고, 긴 겨울은 더 싫고.

 

 

본인 회사 하루 휴가 내고

택시 대절해서 바닷가 놀러 갔다 올까? 하더군요.

사실은 택시 값 벌써 알아 봤대요.

제가 너무 비싸다고 하니까, 다 그러려고 돈 버는 거라고.

가족이랑 즐겁게 하루 바닷가 놀다 오는데 그만한 돈 쯤이야. 이러더군요.

 

 

그냥 회사 일이나 열심히 하고 빨리 승진이나 한 번 더 하셔.

나는 알아서 친구네 가서 놀테니깐.

 

 

오늘 친구네 집에 가는데 그 집 아파트에 수영장 있거던요.

비치 타월이랑 수영복이랑 짐은 어제 미리 다 챙겨 놨고요,

낮에 그 집서 놀고 저녁 때는 함께 나와서 맨하탄에서 저녁 먹기로 했어요.

생일이라고 친구가 저녁 사준대요.

 

 

오늘은 일단 잘 놀고,

내일은 심심하면 셋째 성이 궁금해 하는 바,

이쁜아짐의 원피스 갯수를 세어 볼까 합니다.

이번 거 사주면서 묻더라고요.

 

 

야 너 솔직히, 원피스 한 백 개는 되지 않니?

 

 

아니 백 개는 아니고...오십 개는 되려나? 이참에 한 번 세어 볼까?

 

 

했거던요.

저는 인생 살이 장담하는 것 참 자제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제는 정말 옷 좀 그만 사들여야지. 결심!

내 돈이고 성님 돈이고 뭐고, 이제 그만 사들이고 있는 거 가지고 입자.

아예 옷 가게 발길을 끊어야 함.

저는 새로 산 옷만 주로 입지는 않고 옛날 옷들도 꾸준히 입어요.

10년 전에 산 것, 15년 전에 산 것, 매해 잘 입거든요.

남들이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이라는 포에버 21 티셔츠도 거진 10년 되가는거 아직도 멀쩡히 입고.

이제 고만 사들이고 있는 거 가지고 입자.

 

 

여름이 재밌어지려면 작년 여름처럼 직장을 뚝딱 잡아서

맨날 맨날 옷 갈아 입으면서 출근하면 되는데..

작년 여름의 기록.

90일 동안 매일 다른 옷 입고 출근했음.

주변인들을 모두 경악시켰음.

나중엔 친구들이며 친지들이며 전화해서 다들 그것 부터 물어봤음.

아직도 그 프로젝트 진행 중이냐고.

백 일 채우려다 노동절 기점으로 그냥 막을 내렸거든요.

 

 

 

올해도 하라면 또 할 수 있는데...

 

 

도시락 통도 빵빵허니 직장 생활할 조건은 다 갖췄는데

정작 중요한 일자리만 없네.

이것이 문제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