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순식간이더군요.

 

본인이 자기 입으로 거짓부렁을 하는 건 제일 빠른 방법이겠고

내가 아닌 남이 나를 포장하는 과정 역시 길게도 아니고 한 다리만 건너면 뚝딱.

 

 

남편의 밴드 생활은

여름 내내 활기에 넘쳤습니다.

주로 업스테잇 뉴욕의 시골 동네들 야외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부지런히 주말마다 발품 파는 공연을 다녔고

작은 성과로 스튜디오에서

밴드 레퍼토리 중에서 프로듀서가 선호했던 노래 네 곡을 녹음을 마치고 데모 테잎도 조만간 나올 예정이예요.

 

 

이제는 야외 페스티벌 시즌이 끝나서

실내 공연 중심으로 또 간간이 다니고 있습니다.

 

 

드러머 씨께서 공연 섭외 및 스튜디오 섭외 이런 대외 활동을 도맡고 있고

(이 사람이 아니면 공연 자체를 다닐 일이 안 생기고)

베이스 기타 씨는 연습장 제공 및 공연 때 트럭으로 모든 장비를 운반

(이 사람이 아니면 뭉쳐서 연습도 못하고 장비도 못 가지고 다니고)

남편은 리드 기타이자 보컬이자 작곡자.

(이 아저씨가 아니면 남의 노래들만 연주해야 하니 밴드의 정체성이 없고)

 

 

 

베이스 기타 씨와 남편은

생업에도 종사 해야 하니 음악 활동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밴드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드러머 씨는 부인이 생활비를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어서

이 음악 활동이 전업이고 아주 엄청나게 적극적이예요.

 

 

세 사람이 이 조직 안에서 각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드러머 씨의 의욕과 적극성이 넘치다 보니

나머지 두 사람이 자꾸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이스 기타 씨가 스케줄 상 일을 꼭 해야만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공연 약속을 잡는다거나

밴드 이름을 이미지 화 하는 디자인을 베이스 기타 씨가 컴퓨터 작업으로 공을 들여

여러 개를 만들어서 보여 줬더니

이렇게 아마추어 식으로 하지 말고 돈 주고 디자이너를 쓰자, 는 의견을 내서

마음 상하게 한다거나,

 

 

이번엔 남편한테 단단히 불쾌한 일이 벌어 졌는데,

 

 

지난 주말에 했던 공연을 앞두고 그 동네 지역 신문사에

밴드 소개하는 보도 자료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연예인 마냥 거창하게 들리지만

말 그대로 신문사에 우리는 이러 이러한 밴드고 이번 주말 언제 어디서 공연합니다.

기사로 써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하는 그런 글)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라는게 이런 건지...

밴드 이름과 우리는 이러 이러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도면 충분할 것을

그 내용에 밴드 리더인 남편의 실명 포함, 사적인 인생사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 갔고

과장도 있고,

총체적으로 남편에게는 너무나 불쾌한.

 

 

 

드러머 씨께서 남편의 인생을 아주 드라마 틱하게 각색을 한 거예요.

남들이 읽었을 때 오오 그래?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이 사람이 이런 이런 일을 하던 사람으로

지금은 음악을 위하여 본업을 접고 어쩌고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다 몇 살에 기타로 극적으로 전향.

어쩌고 저쩌고.

 

 

 

우와...저는

유명 연예인들만 이런 각색을 거치는 줄 알았습니다.

요즘 잘 들리는 말로 소속사가 언플을 하고 어쩌고 하는 것,

정말 별 것도 아닌 시골 동네로 도는 무명 밴드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이 드러머 씨는 이 밴드 생활에 야심이 있는 걸까.

 

 

남편이 고민스럽다면서 저한테 어찌 했으면 좋겠냐고 의논을 해 오길래

제가 바로 이 메일 쓰라고 했어요.

당신과 관계된 얘기에서 당신이 원하지 않는 부분,

명확하게 설명하는 이 메일 보내라고.

(제 성질로는 바로 전화해서 왕짜증이라고 다다다다 한 바탕 해대라고 하겠지만

남편이 그럴 위인도 못되고

이런 일은 당장 성질 부리는 것 보다 문서화가 더 중요하다 생각이 되어서..

나중에 이 말이 당사자인 남편한테 나온 것이 아니라 임의로 제 3자가 한 말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당신들이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고

저게 시골 동네 지역 신문이라고 아무 것도 아닌게 아니고

원칙은 원칙인데

저 말이 드러머 씨한테서 나온 말인 것은 듣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아.

허세 쟁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면 그 비난은 당신 거지 드러머 씨가 곤란 받을 일은 없거든?

어여 초장에 그 양반 입단속 하시고 사태 수습 하시오.

 

 

 

남편이 이 메일을 보내고 나서는 마음이 한결 편해 졌는지

농담을 하더라고요.

이 자식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다고.

 

 

제가 물어 봤어요.

첼로 할 때 레슨 받았었냐고.

그랬더니 받았대요.

저희 시댁은 그렇게 없는 집에서 애들 네 명을 죄다 어렸을 때 악기 하나씩 가르쳤더라고요.

(시아버님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집념이 조금 있으셨던 듯)

큰 시누 플룻,

둘째 시누 바이올린,

막내 시누 피아노,

그리고 남편은 첼로. 이렇게.

 

 

그런데 그 중에 둘째 시누가 재능이 좀 있었고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남편도 첼로를 꽤나 잘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두 아이를 레슨을 좀 무리해서 다른 두 아이보다 더 공들여 시켜준 듯 한데

결정적으로 첼로 악기 값을 감당을 못해서

어른 싸이즈로 바꿔줘야 했을 시점에 중단, 열 세살이라고 했던가...

 

 

저는 다루는 악기라고는 탬버린 밖에 없고

클래식은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자세히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 쯤 완전히 접었다고 하시면서

이 얘기 나오면 지금도 아쉬워 하세요.

그 때 악기 제대로 바꿔주고 레슨 계속 받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남편은 그 때 쯤

이웃집 잔디 깎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쿠스틱 기타를 하나 사고

오로지 사춘기 모든 인생 고민을 기타 치는 것 하나로 풀었다고 본인은 그렇게 말을 하더군요.

 

 

저런 사연이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로 각색이 된 건데

제가 '레슨 받았으면 음악 교육 받은 거 맞네. 완전 거짓말은 아니네ㅋㅋㅋ' 했더니

자기 기준엔 저런 건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고 남들한테 말해선 안되는 거라고

줄리아드 이런 전문 음악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닌데

저건 사기성이 있는 말이라고 정색을 합니다.

 

 

 

저거 말고도

남들이 들었을 때 호기심이 확 당겨질 만한

남편의 특수한 상황 두 어 가지 사실을 더

저 드러머 씨께서 당사자한테 묻지도 않고 '까발린' 거예요.

 

 

이 메일 다 쓰고는 어떤지 들어 봐 달라고 읽어 주는데,

 

 

나는 네가 밴드 활동 섭외에 열심인 것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나와 관련된 얘기는

다른 곳에 써서 보내기 전에 나한테 먼저 물어 봐 주면 참 고맙겠다.

나는 나의 개인적인 상황을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저 음악으로만 사람들한테 알려지고 싶다.

 

 

 

이렇게 간단하게 썼더라고요.

 

 

그 날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제가 남편한테 말하기를,

 

 

다음 번엔 있잖아...

제발 밤 열 두시나 새벽 한 시에 전화하는 것도 삼가해 달라고 하면 안 돼?

 

 

아, 그 문제는...

제가 밤에 전화기를 끄는 버릇을 들여야 겠어요.

그렇게 안 한 제 불찰도 있습니다.

아..진짜 이 정신 나간 놈 하나 때문에 너무나 여러 사람이 고생입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부인.

 

 

 

아니 당신들 같은 무명 밴드가 맨날 이렇게 사연이 생기는데

도대체 유명하고 성공적인 밴드들은 얼마나 멤버들끼리 속이 썪을까?

난 그게 상상이 안 간다.

 

 

 

남편이 요즘 공연을 가면 공연 전에 전화 통화하면서 제가 하는 말이 있어요.

음악만 생각 하라고.

하도 저 드러머 씨가 베이스 기타 씨 속도 뒤집고 막무가내 식으로 행동을 해서

남편이 중간에서도 스트레스 받고 이러다 길 떠나는 일이 다반사라,

 

 

원래 세상 제일 어려운 일이 인간 관계.

그건 원래 어려운 거고 답도 없는 거니까

그 문제는 잠깐 잊어 버리고

본래 목적에만 충실하라고.

음악이 좋아서 그렇게 기타 둘러 메고 먼 길 버스타고 떠나셨으니

그 좋은 음악만 생각하라고.

그럼 좋은 공연 될거야~!

 

 

 

남편이 저 '음악만 생각 하라'는 말을 참 듣기 좋아해요.

 

 

 

내가 왜 일을 하는지

왜 애시 당초 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그것에만 집중 하라고.

 

 

 

당장 사람들 호기심 끌어 당기는 그런 자극적인 소재 써 먹는 약발이

결코 본질 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거

왜곡된 진실은 아무리 보기 그럴싸해도 그건 겉 모습일 뿐이라는 거

결국은 알맹이가 승부처라는 거,

드러머 씨가 이번 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각색하고 포장하고 과대 광고해서 재미 보기 시작하면

그 끝이 어떻겠어요.

진짜로 음악이 좋아서

평생 하고 싶던 거 하고 다닌다고 이제사 신수가 훤해진 우리 집 양반 마음에

상처가 남는 그런 결말은 저는 결코 보고 싶지 않거든요.

 

 

나도 화장발과 뽕브라로 여러 남자 속이고 산 전력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 생활 다 청산하고

한 남자와의 진실한 생활, 한 인간으로 열심히 사는 생활에 정착한 바...

감히 이제는

남 한테도 그리 사는게 옳지 않겠냐...하는 바램을 가지는 입장까지 왔군요.

 

 

 

요즘 궁댕이 뽕 넣는 거들에 관심이 많아 졌더랬는데

그냥...이대로 가야 겠습니다.

보다 중요한 건 진실이라기 보다..생각보다 많이 많이 비쌌던 가격 때문에 포기한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