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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의 작은 서재

Olive Kitteridge by Elizabeth Strout (2008) Margaret Kim (margaret7630) 2020-2-4  12:11:14

Olive Kitteridge


By


Elizabeth Strout






은퇴한 교사인 올리브 키터리지 (Olive Kitteridge)는 메인 (Maine) 주의 작은 도시인 크로스비 (Crosby)에서 남편 헨리 (Henry)와 아들 크리스토퍼 (Christopher)와 함께 살았는데, 크리스토퍼는 결혼 후 갑자기 캘리포니아 (California)로 떠났다. 올리브의 주변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문제들을 껴안고 투쟁하고 있었고, 올리브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먼저, 그녀의 남편 헨리는 오랫동안 옆 도시에서 약사로 일했다. 그가 일했던 약국은 다른 건물과 붙어 있는 작은 2층짜리 건물이었다. 선반에 치약과 비타민 등 별의별 것이 다 진열되어 있는 오래된 그 약국은 전혀 변화가 없이 확고부동하게 짜여진 한 인간 같은 곳이었지만, 그는 매일 출근해 히터를 켜는 것으로 시작하는 매일의 의식이 즐거웠다. 집에서 있었던 즐겁지 못한 일도 약국을 걸어다니다 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점점 희미해졌다.


그는 고객을 대할 때 항상 명랑했다. 하지만, 속내로는, 어린시절 엄마의 두 번의 신경 발작의 목격과 그렇지 않을 때엔 몹시 엄격했던 엄마를 가진 소리없는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만약 고객이 약값 때문에 괴로워한다든지, 혹은 반창고나 아이스 팩으로 인해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상황을 재빨리 수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모든 이를 만족스럽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관심은 약국의 곳곳에 뻗쳐 있었다.


그에게는 수년 동안 함께 한 미세스 그랜저 (Mrs. Granger)라는 어시스턴트가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로, 의심이 많은 고객의 기분을 풀어 주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외에 그녀는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해냈다. 그는 그녀가 수다스럽지 않은 것과 물품 목록을 완벽하게 정리해 놓은 것, 그리고 거의 병가를 내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밤 자다가 죽었다. 몹시 놀란 그는 수년 동안 함께 일을 했건만 그녀의 상태를 지나쳤다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다. 그녀의 증상이 무엇이었든 간에 약을 다루는 그가 고쳐주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면서.


얼마 후, 헨리는 데니스 씨보도 (Denise Thibodeau)라는 이제 갓 버몬트 (Vermont) 대학을 졸업한 22살의 젊은 여성을 새 어시스턴트로 고용했다. 그녀를 본 올리브는 '쥐새끼' 같다고 말했다. 재미있게도, 결혼한지 1년된 그녀의 남편 이름도 헨리였다. 활기찬 젊은 헨리는 배관공이었고 그의 친척이 소유한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헨리가 이 두 젊은이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자고 했을 때 올리브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헨리는 바로 포기했다. 이때가 사춘기의 신체적 사인이 아직 보이지 않은 크리스토퍼가 갑자기 그리고 맹렬히 뚱해진 시기였다. 그의 기분은 공중에 쏘아진 독극물 같았다. 그런데, 올리브 역시 크리스토퍼 처럼 변할 수 있어 보였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싸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친밀감의 장막을 쳤다. 그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얼빠진 헨리는 외톨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늦여름 날, 퇴근 무렵, 헨리는 뒷쪽 주차장에서 데니스와 헨리 씨보도와 얘기를 하고 있다가 오래 전 그의 대학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이 젋은 사람들을 갈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 올리브와 자신이 곧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할 거라고 말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정원에 있는 올리브에게 인사를 하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어두운 올리브를 보고서는 포기하고 씨보도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러 올 거라고 말했다. 올리브는 그녀의 윗 입술에 맺혀 있던 땀을 닦으며 양파 잎을 갈기갈기 찢었다.


금요일 저녁, 씨보도 부부는 그를 따라 집으로 왔다. 헨리 씨보도는 올리브와 악수를 하며 집이 멋있다고 했다. 크리스토퍼는 식탁으로 와 비스듬하게 앉았다. 사춘기의 꼴사나움을 온몸에 장착한 채 푹 고꾸라지듯이 말이다. 크리스토퍼는 헨리 씨보도가 학교에서 하는 스포츠가 있는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헨리 키터리지는 속에서 예견치 못한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그는 아들에게 그의 엉망인 식사 예절은 키터리지 집안의 발각되기 원치 않는 불쾌한 뭔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올리브는 데니스에게 약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동네 사람들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고 말하면서 절대로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헨리 키터리지가 데니스도 알고 있다고 말하자 데니스의 남편도 물론이라고, 데니스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긴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자리에서 점점 더 쭈그러졌다. 잠시 후, 올리브가 케첩을 데니스의 남편에게 건네주려는데 헨리가 그것을 넘어 뜨려 케첩이 진한 핏물처럼 식탁에 요동쳤다. 그러자 올리브가 맙소사, 라고 말했다. 헨리가 케첩병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케첩병을 비척비척 굴러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케첩이 그의 손가락에 그 다음에는 그의 흰 셔츠에 묻어버렸다. 올리브가 일어서며 명령조로 헨리! 하고 부르며 그냥 그대로 두라고 말하자 헨리 씨보도는 그의 이름이 날카롭게 불려지는 것처럼 들려 얻어맞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약국에서, 데니스는 천성적으로 조용한 아이인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말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녀가 얘기를 하는 동안 헨리는 그녀의 트레일러를 상상했다. 다 자란 강아지 같은 두 사람이 함께 뒹구는 모습을. 그는 그것이 왜 그에게 어떤 특별한 행복감을 주는지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데니스는 미세스 그랜저만큼은 유능하진 않았지만 좀 더 느긋했다. 그녀는 또한 아주 깔끔했고, 전화를 받을 때에도 친절하고 어른스럽게 받았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포틀랜드 (Portland)로부터 약을 배달하는 제리 맥카시 (Jerry McCarthy)에게도 호의적이었다.


어느 날 아침, 헨리에게 그날은 약국의 공기가 아주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막 가게를 열려고 하면서 데니스에게 주말을 어떻게 보냈느냐고 물었다. 전날, 올리브는 교회 가는 걸 거부했고, 헨리는 뜻밖의 일이라 평소보다 더 날카롭게 남편이 아내에게 함께 교회에 가자고 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냐고 물었다.


올리브는 방문을 확 열더니 그렇다고, 그것은 빌어먹게 큰 요구라고 거의 침을 뱉듯이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지 못한다면서, 하루종일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장이 바보 천치인 곳의 바보같은 미팅에 참석해야 하며, 쇼핑, 요리, 다림질, 빨래, 크리스토퍼의 숙제도 함께 해야 하고, 그리고 당신! 이라고 말하며 식탁 의자를 잡았다. 어수선했던 지난 밤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은 채 빗질하지 않은 그녀의 검은 머리가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일요일을 포기하고 오만하고 건방진 사람들 틈에 앉아 있기를 기대하는 쓸 데 없이 나이스한 인간이라고 퍼부었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의자에 앉더니 자신은 너무나 지치고 피곤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차분히 덧붙였다.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어둠이 우르릉거리며 그를 지나갔다. 그의 영혼은 콜타르 속에서 질식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올리브는 별일 없었다는 듯 평범하게 지난 주 짐의 자동차에서 토한 것 같은 냄새가 났다며 그가 청소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짐 오케이시 (Jim OCasey)는 올리브와 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수년 동안 크리스토퍼와 그녀를 학교까지 태워주었다. 헨리는 그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그들의 싸움이 끝난 모양이었다.


데니스는 헨리의 질문에 주말을 잘 보냈다고 대답했다. 안경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진지한 그녀의 작은 눈은 아이같았다. 그것은 그의 심장을 두 개로 쪼개 놓았다. 데니스는 남편 헨리와 그의 가족들을 방문해 밤에 감자를 캤다고 말했다. 헨리가 차의 전조등을 켜놓았고 자신들은 감자를 캤다고. 차가운 땅에서 감자를 찾는 건 부활절 달걀을 찾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조금 어두운 얼굴로 너무 추워서 차에 앉아 헨리가 감자 캐는 걸 지켜보았다고 말하며 정말 너무 좋아서 믿기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헨리는 젊은 데니스가 무엇 때문에 행복을 믿지 못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아마 그녀 엄마의 병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데니스에게 즐기라고, 행복한 날들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펼쳐질 거라고 말했다. 그는 아까 열다가 둔 상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며 문득 그것이 가톨릭 신앙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것에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다음 해, 그는 종종 그때가 그의 일생 중에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해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의 기억 속에 그 특별한 해는 시작에 대한 생각도 끝에 대한 생각도 없는 달콤한 시기였다. 그의 앞에 펼쳐진 겨울철 이른 아침의 어둠을 뚫고, 날이 새기 시작하는 봄에, 그리고 완연한 여름에도 차를 몰고 약국으로 갔을 때, 그를 꼭대기까지 충만하게 만든 건 그의 일의 단순함이 주는 작은 기쁨이었다. 주차장에서 데니스를 출근시켜 주는 헨리 씨보도와 데니스를 만나 인사를 나누며 시작하는 그 일상의 단순함 말이다.


헨리는 데니스의 성실함을 사랑했다. 그녀의 남편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게 유일한 꿈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타고난 과묵함은 그로 하여금 아주 막강하게 올리브를 갈망하도록 만들었다. 올리브의 날카로운 의견, 그녀의 풍만한 가슴, 그녀의 변덕스러운 기분 그리고 갑작스럽고 깊은 울림이 있는 웃음소리는 그의 안에 있는 쩌릿한 성욕을 새로운 수준으로 펼치게 만들었다. 때때로 그가 한밤중에 들석거릴 때, 그의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은 데니스가 아니라 묘하게 그녀의 강하고 젊은 남편이었다. 그는 사정을 할 때 그 젊은이처럼 포효했다. 헨리 키터리지에게는 아내와의 사랑 행위를 할 때, 세상의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모든 남자들에게 빙의되어 믿기 힘든 광란의 섬광 같은 게 있었다.


지난 번 헨리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난 후, 데니스는 올리브에게 감사 노트를 써 주었다. 올리브는 그것을 슬쩍 보더니 헨리에게 넘겨 주면서 필체가 그녀만큼 조심스럽다고 말하며 데니스가 자신이 본 사람중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리브는 데니스가 숙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데니스는 숙맥이 아니었다. 그녀는 숫자에 밝았고, 그가 판 약품들에 관해 헨리에게서 들었던 모든 걸 기억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했고, 때때로 휴식 시간엔 뒷쪽 방 상자 위에 앉아 머크 메뉴얼 (Merck Manual: 머크 사에서 편찬한 진료 메뉴얼-마가렛 주)을 읽었다. 지나가면서 어깨를 앞으로 숙이고 페이지에 열중하고 있는 안경쓴 그녀의 아이같은 얼굴을 보면서 그는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약병들을 진열하고 레벨을 붙이는 동안 그의 얼굴엔 미소가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을 것이었다. 데니스의 천성이 그에게 쉽게 따라붙었다. 헨리는 그의 하루를 아무 어려움 없이 보냈다. 당시, 때때로 그는 약국이 운용가능하고 조용한 상태의 건강한 자율신경계의 신경 조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엔 아드레날린이 그에게 쏟아졌다. 올리브는 그의 앞에 비프 스튜가 담긴 볼을 탁 소리나게 놓으며 자신이 하는 거라곤 요리하고 청소하고 사람들 따라다니며 치우는 것밖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서브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팔이 움찔거렸다. 그는 크리스토퍼에게 집안 일을 좀 더 도우라고 말했다. 그러자 올리브는 감히 어떻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크리스토퍼가 사회 시간에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소리쳤다. 크리스토퍼는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한 채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올리브는 짐 오케이시가 헨리보다 더 아이에게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헨리는 짐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당신과 크리스를 매일 보는 사람이지 않느냐며, 사회 시간에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올리브는 그 빌어먹을 사회 선생은 멍청이이고, 짐은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헨리에게 당신도 크리스토퍼를 매일 보지만, 아무 것도 모른다고, 왜냐하면 당신은 그 평범한 여자와 아주 작은 세상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침이면 올리브의 어두운 면이 종종 사라졌고, 헨리는 지난 밤이 덧없게 느껴지기를 희망하면서 새로운 기분으로 출근했다. 약국에는 남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데니스가 있었다. 그녀는 제리 맥카시에게 대학에 갈 계획이냐고 물었다. 제리는 얼굴이 빨개지며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과학 코스에 등록했고 이번 봄에 A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데니스는 옆 가게로 가 작은 케익을 하나 사와 축하 파티를 하자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11월의 어느 늦가을 일요일 아침, 헨리는 머리를 빗다가 빗에 걸려 있는 흰 머리카락을 뽑아내고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교회 가기 전 올리브를 위해 스토브에 불을 피웠다.


요즘엔 교회갈 때 아무도 더 이상 그처럼 자켓과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아니, 이젠 몇몇 신자들만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갔다. 헨리는 그것이 슬프고 걱정스러웠다.


지난 5년 동안 그들은 두 신부를 거쳤는데 둘 다 신자들에게 영감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신자수가 부족하다는 건 바로 이 주일 모임이 위안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 그들이 머리를 숙이거나 성가를 부를 때 신이 함께 해 그들을 축복해 주고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헨리도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 올리브는 당당하게 무신론자가 되었다. 헨리는 그녀가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 결혼했을 땐 아니었다. 그들은 대학 시절 생물학 시간에 동물 해부를 하면서 호흡 체계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며 찬란한 힘에 의한 창조임을 얘기하곤 했었다.


헨리는 가는 길에 예전 약국이 있었던 곳을 지나갔다. 그곳엔 이제 커다란 약국 체인점이 들어서 있었다. 그들은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거리 양 옆에 줄지어 서있던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그는 이런 변화에 적응해지지 않고 그저 익숙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데니스가 차에 타기 전 겨울 추위에 떨고 서 있었던 게 아주 오래된 것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얼마나 젊었던가! 이제, 아주 먼, 너무 멀어서 다른 나라 같은 텍사스에 살고 있는 그녀는 예전 그의 나이가 되었다.


흰색 교회 건물은 잎을 다 떨군 단풍나무 곁에 있었다. 그는 이 날파람에 왜 데니스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항상 제 시간에 그에게 배달됐던 그녀의 생일 카드가 지난 주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카드에다 한두 줄 인삿말을 적었다. 그녀는 카드에 결코 'love'라는 사인을 하지 않았고 그저 작고 간결한 필체로 데니스, 라고 썼다.


교회 옆 자갈밭에 주차를 하는데 항상 그를 보면 반가워하는 데이지 포스터 (Daisy Foster)가 차에서 내리며 놀람과 기쁨이 담긴 표정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은퇴한 경찰관이었고 그녀보다 25살 연상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2년 전에 죽었다. 헨리는 올리브가 죽고 혼자 남을 것을 생각해 보니 그것은 공포였다. 그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그의 생각은 이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약국으로 향했다.


데니스가 헨리에게 남편이 어렸을 적 친구와 사냥을 가기로 했다고 했고, 제리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올리브가 전화를 받으러 갔는데 크리스토퍼와 그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올리브의 음성이 평소의 그녀다운 우렁찬 소리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헨리는 일어서서 옆방으로 갔다. 다른 건 그렇게 많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시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던 데니스의 아주 작은 목소리 외에.


데니스의 남편 헨리 씨보도의 장례식은 그의 고향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성당에서 치뤄졌다. 그녀는 2주 동안 시댁 식구들과 지낸 후 다시 일하러 나왔다. 그녀는 그들과 더 오래는 함께 지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친절했지만 시어머니가 밤새 내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이 오싹했다고, 그녀는 혼자 울고 싶었다고 말했다. 헨리가 물론 그럴 수 있다고 하자 데니스는 하지만 그들이 살던 트레일러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날 밤, 그는 침대에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올리브에게 데니스가 도움을 전혀 받을 데가 없다고, 운전도 못하고 개인 체크도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올리브는 버몬트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운전을 못하냐고 말했다. 헨리는 잘 모르겠다고, 그녀가 운전을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헨리가 우선 데니스가 운전을 배우게 해야 하고, 살 곳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올리브는 운전학교에 등록하라고 말했다.


대신, 헨리는 자신의 차로 데니스에게 운전을 가르쳤다. 몇 주 후, 그녀는 시험에 합격했고, 차를 샀다. 그녀의 남편은 좋은 생명보험을 갖고 있었다. 그는 보험이며 매달 내는 자동차 할부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고 은행에 가 새 어카운트를 열게 도와 주었다. 그것이 그녀가 태어나 처음 갖는 체킹 어카운트였다.


어느 날, 헨리는 데니스가 남편의 장례식이 열렸던 성당에 매주 그를 위한 촛불을 밝히고, 한달에 한번씩 그를 위한 미사를 위해 써 달라고 보냈다는 돈의 액수를 듣고 간담이 서늘했다. 하지만 그는 잘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살이 많이 빠졌다. 헨리는 일을 끝내고 어두워진 주차창에 서 있다가 건물 옆 불빛에 비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운전대 너머로 그녀의 불안해 보이는 머리의 이미지가 그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것은 밤새 내내 떨쳐지지가 않았다. 올리브가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괴롭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데니스라며, 그녀는 무력하다고 말했다. 올리브는 사람들은 당신이 무력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렇게 무력하진 않다고 말했다.


데니스는 시내 외곽에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 데니스의 시아버지와 헨리가 이사를 도왔다. 그녀는 조용히 한번도 혼자 살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약국에서 그는 데니스가 비현실적인 상태에서 걸어다니는 걸로 보였고, 그 자신의 인생이 전혀 예기치 못하게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이 물리력은 말이 안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실수가 생겨난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 고객에게 포타슘 섭취를 위해 바나나를 먹으라는 얘기를 한다는 걸 잊어버렸다거나, 항생제를 먹은 여자 손님에게는 음식과 같이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빠트렸는지 밤에 잠을 못잤다고 했다.


그는 약을 병에 넣기 전 자신이 입력한 처방전을 세밀히 살피며 천천히 두세 번 확인했다. 집에서는 올리브가 얘기할 때 눈을 똑바로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관심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낯선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은 자주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엔 부엌 싱크대 밑에 있는 컵보드를 열었다가 쓰레기가 가득 담긴 쓰레기통을 보고 그것을 왜 빨리 비우지 않느냐며 올리브와 큰소리로 싸우기도 했다. 올리브는 그에게 한심하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봄이 왔다. 낮이 길어졌고, 남아 있던 눈이 녹아 길이 젖어 있었다. 그는 모든 걸 데니스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웃의 농장을 지나가다가 그는 손글씨로 쓰인 '새끼 고양이 공짜' 라는 푯말을 보았다. 다음 날 그는 고양이 리터 박스, 먹이, 그리고 검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약국에 도착해 데니스의 품에 안겨 주었다. 데니스는 고양이 이름을 슬리퍼스 (Slippers)라고 지었다. 그는 낮에는 약국에서 지냈다. 제리 맥카시도 고양이를 안으며 진짜 귀엽다고 말했다. 데니스가 고양이를 안고 얼굴을 파묻자 제리는 입을 약간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리는 대학에서 두 과목을 더 들었고, 다시 두 과목 모두 A를 받았다.


데니스는 말을 많이 했다가 다음 며칠 동안은 또 말없이 있었다. 때로 그녀는 약국 뒷문으로 나갔다가 눈이 퉁퉁 부은채 들어왔다. 그가 필요하면 일찍 들어가라고 하자 그녀는 아니라고, 이곳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해엔 여름이 더웠다. 그는 창가 근처에 있는 선풍기 옆에 서있던 데니스가 기억났다. 그녀는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번에 몇 분씩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남자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다녀왔고, 부모님을 뵈러 다시 또 일주일을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 왔을 때 그녀는 이곳이 자신이 있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다.


올리브는 데니스가 이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새 남편을 만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사람들은 외인부대에 가기도 하는데 그녀는 그런 타입이 아니라고 했다. 헨리 역시 그녀는 그런 타입은 아니라고 말했다.


가을이 되었고, 그는 가을이 두려웠다. 헨리 씨보도의 기일이 되자, 데니스는 시댁 사람들과 함께 미사에 참석하러 갔다. 그는 그날이 끝나서, 일주일이 지나서, 그리고 또 다른 일주일이 지나서 안심했다. 그즈음 비록 휴일이 다가왔지만 그는 내려 놓을 수 없는 뭔가를 지고 있는 것처럼 두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그것을 받았다. 그는 데니스가 작게 소리지르는 걸 들었다. 슬리퍼스가 그녀가 안 본 사이에 집을 나갔고, 마켓에 나가려다가 그를 못본 채 차로 치었다고 말했다.


올리브가 화를 내며 가라고, 가서 당신의 여자친구를 위로해 주라고 말했다. 헨리는 그만하라고, 불필요한 말이라고, 그녀는 자신의 고양이를 친 어린 미망인이라고 말했다. 그가 도대체 당신의 동정심은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올리브는 이 상황은 당신이 고양이를 그녀에게 갖다 주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밤, 그는 데니스의 소파에 앉아서 그녀가 우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손을 두르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지만, 손을 무릎에 놓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그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눈콧물을 닦으며 내내 머리 속으로 당신과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가 건네준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데니스를 두고 천천히 운전해 집으로 가는 도중 헨리는 멀리 북쪽으로 가 작은 집에서 데니스와 함께 사는 상상을 했다.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를 좋아하는 작은 딸을, 그들의 아버지를 좋아하는 딸들을 말이다.


올리브가 캄캄한 침대에서 아, 미망인 위로자시어, 그녀는 어때요? 하고 물었다. 그가 투쟁중이라고 하자 올리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그와 데니스는 익숙한 침묵 속에서 일했다. 만약 그녀가 계산대에 있으면 그는 자신의 카운터 뒤에 있었다. 아직도 그에게 기댄 그녀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끼며. 마치 그녀가 슬리퍼스가 된 것처럼, 혹은 마치 그들의 내적 자아들이 서로에게 스친 것처럼 말이다. 그날 오후, 그는 자신이 그녀를 돌보아 주겠다고 말했고, 데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까지 그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데니스의 죽은 남편의 친구이며 사냥을 데리고 갔던 토니 (Tony)가 데니스를 방문 했던 것, 그녀가 헨리에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라고, 만약 이혼하면 다시는 성당에서 결혼 못한다고 말했던 것 등등. 그는 토니가 자신을 용서하라고 빌며 밤늦게까지 데니스의 작은 아파트에서 머무른 것에 대해 질투심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것은 끈적거리는 거미줄이 자신을 칭칭 감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그는 데니스가 그를 계속 사랑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녀는 그랬다. 그는 그녀가 머릿속에서 항상 그에게 얘기를 한다고 한 말을 생각했다. 고통은 날카롭고 격렬했고 참을 수 없었다.


어느 저녁, 약국문을 닫으면서 헨리는 데니스에게 친구들을 사귀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아주 붉어졌다. 그녀는 거칠게 코트를 걸치더니 자신에게도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헨리는 물론 그렇지만 여기 이 도시에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데니스가 지갑을 들고 나올 때까지 문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랜지 홀에서 열리는 스퀘어 댄싱에 참여하라고 말했다. 자신과 올리브는 가끔 가곤 한다며. 그곳에 가면 괜찮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얼굴이 젖은채 그를 지나쳤다.


그는 집으로 오면서 데니스를 데리고 그랜지 홀로 가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를 생각하며 생겨난 갑작스런 분노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안을 수도, 이마에 키스를 할 수도, 슬리퍼스가 죽었을 때 입었던 어린아이 같은 잠옷을 입고 누운 그녀 곁에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올리브를 떠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다리를 잘라내는 것 같은 일이었다.


데니스와는 날이 갈수록 점점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서 비난하는 것같은 가차없는 차가움을 느꼈다. 그녀가 토니가 왔었다고 얘기할 때, 혹은 포틀랜드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고 얘기할 때, 그도 차갑게 맞대응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분명 제리 매카시에게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헨리는 그녀의 제스처를 보고 그에게 얘기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가 병이 들기 전 크리스마스 때 쿠키를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안경 뒤의 눈도 반짝거렸다. 그때 헨리는 데니스가 남편의 죽음은 곧 그녀의 어린시절의 죽음인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여태까지 자신만이 알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잃게 된 것을 슬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이클이 계속 됐다. 헨리는 약사로서의 그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수면제를 복용했고, 날마다 한 알씩 호주머니에 넣어 갔다.


한편, 성가를 부르고 있던 데이지 포스터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고 성가집을 열었다. 가사와 몇 안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그에게 희망적이면서도 굉장히 슬프게 들렸다. 그 봄날, 그는 데니스에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제, 그는 성가집을 그 앞에 있는 홀더에 넣고 다시 작은 신자석에 앉아 그녀를 마지막으로 봤던 때를 생각했다.


그들은 제리의 부모님을 방문하러 가는 길에 갓난아이와 함께 그의 집에 들렀었다. 헨리가 기억하는 건 이런 것들이었다. 제리가 매일 밤 소파에서 잠이 드는, 때론 밤새 내내 거기에서 자는 데니스에 대해 빈정대는 투로 뭔가를 얘기했던 것, 데니스는 고개를 돌리고 창문 너머 베이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육아에 지친 엄마라는 것, 그녀의 둥근 얼굴은 배가 확장되어 갈수록 점점 더 홀쪽해졌다는 것, 축 처진 어깨는 벌써 삶의 중압감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등등이었다. 그때 제리가 데니스에게 똑바로 앉으라고, 어깨 좀 펴라고 말했다. 그는 헨리를 바라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헨리가 올리브가 지난 밤에 만든 스프를 좀 먹으라고 하자 그들은 가야한다고 했다. 그들이 떠나고, 그는 그들의 방문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올리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헨리는 뚱뚱했던 제리가 덩치가 크고 잘 생겨지고, 돈을 잘 버는, 아내에게 올리브가 헨리에게 말하는 투로 말하는 지금의 그런 남자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간 후, 그는 데니스가 그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녀는 생일 카드에다 엄마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몇 년 후 아버지도 죽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교회 밖에 있는 주차장에서 데이지 포스터는 올리브는 어떠냐고 물었다. 헨리는 올리브는 괜찮다고, 집안 살림을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헨리는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데이지의 말에 잘됐다고, 함께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는 헨리가 그의 인생에 대해서 물었을 때 화를 내며 왜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느냐고 말했다. 헨리는 사람들을 그냥 홀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집에 오자, 올리브가 데니스로부터 온 카드가 놓여 있는 탁자를 보며 어제 왔는데 잊어 버렸다고 말했다. 헨리는 묵직하게 앉으며 봉투를 열고 안경을 찾아 쓰고 그것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노트는 다른 때보다 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love'라는 사인이 씌여있었다.


올리브가 데니스는 어떠냐고 물었다. 창문 너머 베이를 바라보다가 그는 잘 지낸다고 말했다. 그 순간은 아니었지만, 곧 헨리는 올리브에게로 가 그녀의 손을 잡을 것이다. 올리브는 그녀 자신의 슬픔을 견디고 있었다. 오래 전, 짐 오케이시가 도로를 벗어난 사고를 당해 죽었을 때, 올리브는 몇 주 동안 저녁 식사후 바로 침대로 가 시간을 보냈다. 헨리는 그때 올리브가 짐 오케이시를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짐 오케이시 역시 그녀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헨리는 그녀에게 한번도 묻지 않았고, 그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데니스에게 느꼈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역겨운 필요성에 대해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것 같이 말이다. 당시 데니스가 제리의 청혼에 대해 얘기하러 왔을 때 그는 가버리라고 말했다.


헨리는 데니스의 카드를 창틀에 놓고 올리브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걸 확인했다. 그는 올리브에게 그동안 내내 데니스에 대한 죄책감이 삶의 알갱이로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데이지가 남자 친구가 생겼고 저녁 초대를 했다고 말했다.


한편, 13살 때 엄마의 자살로 아버지와 형과 함께 크로스비를 떠났다가 방문한 케빈 (Kevin)은 마리나에서 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어린시절의 경험 때문에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지금 차에 앉아 있는 그를 관심있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마리나에서 카페를 하고 있던 페티 호 (Patty Howe)는 처음엔 차 안에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바다를 보러 온 사람들이 종종 그렇게 차안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낯설지 않다는 걸 느꼈고 잠시 후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그녀는 다시는 창밖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어린시절 자신이 살던 집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온 케빈은 마리나로 오는 길에 옛 집으로 갔다. 도로는 여전히 지저분했지만 몇몇 새 집들이 숲 속 뒷쪽에 들어서 있었다. 붉은색 창고가 그가 살았던 집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 집에는 다행히 아이들이 있다는 흔적은 없었다. 그의 갈비뼈 아래에서 안도감이 솟아 올랐다. 썰물 때 볼 수 있는 물가의 부드러운 찰랑거림 같은, 위안을 주는 정온이었다. 차 뒷좌석에 담요가 있었고, 그걸 사용할 것이었다. 지금 그 담요는 총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가 돌아올 때엔 그는 솔잎 위에 누워서 그 담요를 덮을 것이었다.


케빈은 그 집 부부가 그를 발견한 것은 상관없으나 만약 아이들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발견했던 것을 다른 아이가 발견하게 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숨을 집어 삼키고자 했던 그의 엄마의 욕구는 너무 크고 긴급했던 모양이었다. 그녀 육체의 자투리들을 부엌 캐비넷에 여기저기 뿌려 놓았던 걸 보면 말이다.


그의 마음이 신경쓰지마, 라고 조용히 말했다. 신경쓰지마. 그가 원하는 건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왔던 숲과, 엄마가 보여준 꽃들을 보며 잠드는 것이었다.


요트의 철커덕하는 소음이 들리자 그는 현실로 돌아와 바람이 강해졌다는 걸 알았다. 그는 주중에 그곳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할 거라곤 생각치 않았다. 하지만 7월이 거의 다 되었고, 사람들은 요트를 갖고 있었다. 잠시 후 식당의 유리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세기에서 온 사람 같았다. 손에는 철통을 들고 있었는데, 그는 그녀가 선창쪽으로 가자 그녀의 어깨와 긴 허리, 마른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안에서 갈망이 꿈들거렸다. 그것은 성적인 것이 아닌 단순한 그녀의 모습을 향해 닿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조수석 창문 너머에서 그를 똑바로 들여다 보고 있는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여자는 미세스 키터리지였다. 맙소사. 그녀는 7학년 때 교실에서 보았던 모습과 정확히 똑같았다. 단도직입적이고, 고품격의 표정. 그녀의 머리는 여전히 검은색이었다. 케빈은 그녀를 좋아했지만 모두 그렇진 않았다. 그녀가 창을 두드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몸을 앞으로 숙여 창문을 내렸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타도 되냐고 물었고, 그가 안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차에 탔다. 그리고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바다쪽을 바라보았다. 좀 전의 그 젊은 여자는 선창에서 다시 돌아와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더니 스크린 도어를 조심히 닫았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그녀가 패티 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를 기억하느냐고, 원래 이름은 패티 크레인 (Crane)이고, 호의 큰아들하고 결혼했었다고, 계속 유산을 해 많이 슬퍼한다고 말했다.


케빈은 손마디를 빨고 싶은 욕망 때문에 호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뚜두둑 소리를 냈다. 그는 패티가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그녀를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그녀는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뉴욕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이 뉴욕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는 팔장을 끼며 교육 중이라고, 4년 전에 의대를 졸업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잘했다고 하면서 무슨 분야이냐고 물었다. 그는 먼지가 두껍게 낀 대쉬 보드를 보다가 숨을 깊이 들이 쉰 다음 신경정신과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녀가 그럴 줄 알았다는듯이 반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흘끗 보자 그녀는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베이를 바라보며 이곳이 참 멋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그녀에게서 느꼈던 신중함에 대한 보답이 들어 있었다. 그는 어부가 됐으면, 이 가운데에서 날을 보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공부했던 PET 스캔 영상들이 생각났다. 조울증을 앓는 사람의 뇌. 엄마를 생각하며 방사선 전문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때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는 미세스 키터리지에게 자신은 신경정신과 의사가 되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엄마처럼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에 갔다. 하지만 그는 신경정신과 쪽으로 이끌렸다.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충격적인 어린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는 걸 인식했지만 말이다.


잠시 후, 그와 몇 마디를 나누던 미세스 키터리지는 그의 엄마가 어쩔 수 없었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놀랐다. 손마디를 빨고 싶은 욕망은 가려움증을 참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는 손을 무릎 위에서 왔다 갔다 움직이다가 자신의 엄마는 진단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조울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이었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는 조울증은 아니었고, 우울해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아버지도 아마 요즘 같았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케빈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자신의 아들이 우울증이 있다고 말했다. 케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밑 포켓에 작은 땀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지금보니 그녀는 사실 무척 늙어 보였다. 물론 7학년 때 모든 아이들이 두려워 했던 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케빈이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묻자, 미세스 키터리지는 발 전문의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슬픔이 자신에게 묻혀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를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케빈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가 발을 움직이면서 내는 매트 위의 돌소리를 들으며 나는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다. 자신은 그의 엄마를 좋아했었다고.


케빈은 눈을 떴다. 패티 호가 식당을 나오다가 뒷걸음질치더니 앞쪽 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가슴에 조바심이 생겼다. 그는 미세스 키터리지에게 알고 있다고, 자신의 엄마도 그녀를 좋아했었다고 말했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그의 엄마가 똑똑한 여성이었다고 말했다.


케빈은 이 대화가 얼마나 지속될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 특별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의 엄마를 알고 있었으므로. 뉴욕에서는 아무도 엄마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혹시 자신의 아버지의 경우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케빈이 그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떠나주었으면 했다. 그녀가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었다.


그녀가 결혼했느냐고 물었고, 케빈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도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남편을 화나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헨리는 모든 사람이 결혼하고,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그에게 아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지만 뉴욕에서는, 이라고 말하자 케빈은 자신은 뉴욕에 살지 않는다고, 더 이상 뉴욕에 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막 뭔가를 얘기하려고 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뒷좌석을 돌아보고 그의 차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싶어 한다는 그녀의 욕망을 거의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한다면 그는 그녀에게 이제 차에서 내려달라고 말할 참이었다. 그는 곁눈질로 그녀를 보았지만, 미세스 키터리지는 계속 똑바로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패티 호가 손에 가위를 들고 있는 걸 보았다. 치마가 바람에 날려 부풀어 올랐고, 그녀는 해당화 옆에 서서 활짝 핀 것들 몇 송이를 자르고 있었다. 그는 패티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미세스 키터리지의 아버지가 어떻게 자살을 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는 패티가 꽃을 자르는 걸 끝내고 몇걸음 뒤로 물러서는 걸 보고 있었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유서는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의 엄마는 유서가 없는 것에 몹시 힘들어 했었는데, 그녀는 최소한 유서는 남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엄마는 아버지가 항상 어디를 가든 노트를 남겨 놓았을 정도로 사려깊은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부엌에 있었다고, 가엾은 양반이라고 말했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케빈은 그녀의 목소리가 맘에 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아드레날린이 그에게 쏟아지는 것처럼 느꼈다. 친숙하고, 끔찍한 강렬함, 참아내고 싶었던 불요불굴의 제도. 그는 강하게 눈을 찡그리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여자가 총을 사용하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쓰며 자신의 엄마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고 말했고, 미세스 키터리지는 그렇다고 말했다.


한편, 패티 호는 자신의 근무 시간이 끝나자 앞치마를 벗어 그것을 걸었다. 그녀는 마리나 저쪽 멀리에 피어있는 옥잠화를 보며 침대 옆에 꽂아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유산 때 그녀의 남편은 실망했다고 말했고, 두 번째엔 그저 당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거라는 걸 안다고 덧붙였다. 그것이 떠오르자 눈물이 차올랐다.


옥잠화 몇 송이를 꺾으러 가위를 들고 나갔을 때, 그녀는 미세스 키터리지가 케빈 쿨슨 (Coulson)의 차에 함께 타고 있는 걸 보았고, 그녀는 안도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말할 수 없었고, 그 생각에 안주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서둘러 꽃을 꺾은 다음 젖은 페이퍼 타올로 감싸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 집에 들러야지 생각했다. 그녀는 먼저 해당화를 꺾었고, 그 다음엔 서둘러 옥잠화가 피어 있는 곳으로 갔다.


케빈은 미세스 키터리지에게 만나서 반가웠다고 말하며 이제 가라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를 마주친 것은 불운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책임질 수가 없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신의 커다란 검은 핸드백에서 휴지를 꺼내 이마를 닦았다. 그녀는 케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런 유전자가 그녀의 아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케빈은 살짝 눈을 굴렸다. 유전자에 대한 건 흥미를 잃은지 오래였다. 오히려 그것은 배신처럼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자신의 아이가 헨리쪽으로부터 몇몇 미치광이 유전자를 받지 않았다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엄마가 완전한 미친 사람이었거든, 하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말에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여자친구였던 클라라 (Clara)를 생각했다. 그녀는 1 분 전엔 사랑스럽고 부드러웠다가 다음 순간에 미친듯이 화를 냈다. 그녀는 면도칼로 자해를 했는데 그것이 케빈을 미치게 만들었다. 광기가 광기를 낳았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그것이 그녀가 항상 하는 일이었다. 사람들과 모든 것에서 떠나는 것. 강박관념을 갖고 새로운 곳으로.


케빈은 갑자기 올리브에게 그녀의 아들이 아직 진료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들이 우울증인데 아직 매일 진료를 하러 가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녀는 물론이라고 말하면서 선글래스를 벗고 꿰뚫어보듯 그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가 헨리도 잘 지내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렇다고, 이른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헨리의 상황을 잠깐 얘기하다가 미세스 키터리지는 케빈에게 그의 형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이제 피곤해졌다. 케빈은 형 소식으로는 그가 버클리 (Berkeley)에서 노숙자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 마지막 소식이었다고 말했다. 약물중독이라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케빈은 자신에게 형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다.


미세스 키터리지가 가족이 텍사스로 간 얘기를 꺼내자 그 대화를 끝내고 싶어서 케빈은 따분하다는듯 그의 아버지는 간암으로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는 재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독립한 후 아버지를 많이 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케빈은 대학과 의대를 모두 장학금을 받고 다녔고, 그의 아버지는 한번도 그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케빈에겐 모든 도시가 조짐이 좋았다. 가는 곳마다 처음엔 넌 이곳에 살 수 있어, 라고 말했다. 너는 이곳에서 쉴 수 있고, 이곳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가는 곳마다 곧, 어떤 식으로든 그가 그곳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을 일깨워 줄 뿐이었다.


시카고에서 의대 학위를 받던 날, 한 여교수가 학위식에 그가 참석하지 않으면 많이 슬플 것 같다고 말하는 바람에 케빈은 거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총장이 마지막으로 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생전에 가장 중요한 일'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케빈은 속으로 공포를 느꼈고, 그것은 점점 자라 그의 온몸으로 퍼졌다. 백발에 주교같은 가운을 걸치고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그 말을 한 그 노인네는 자신이 한 말이 케빈 안에 있는 소리없는 두려움을 얼마나 악화시켰는지 모를 것이었다. 프로이드뿐만 아니라 모든 광고판, 영화, 잡지 커버, TV 광고,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우리는 가족과 사랑의 세상에 속해 있다고, 하지만 넌 아니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최근까지 있었던 뉴욕은 가장 큰 희망을 걸었던 곳이었다. 지하철은 아주 다양한 인종과 초조한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것이 그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하철을 좋아했고, 한동안 병원에서의 활동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클라라와의 연애와 그것의 끝은 그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곳의 거리들은 이제 너무 복잡하고 성가셨다. 모든 사람이 다 성가셨고, 점점 뉴욕커가 얼마나 편협한 사람들인지, 그들은 어떻게 그걸 모르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린시절 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져 가기 시작했다. 한번도 행복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는 그 집을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불행이 기억에 남는 연애의 달콤함과 함께 그를 지배했다. 케빈에겐 몇몇 달콤하고 짧았던 연애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지겹게 오래 끈 클라라와의 그것과는 아주 달랐고, 어느 누구도 그 집을 갈망하는 그의 내재된 욕망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옛 집 주변에서 그렇게 싫어했던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며 그것이 그리웠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엄마가 보고싶었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어린시절 아버지와 숨바꼭질 했던 얘기를 했고, 케빈은 선착장에서 고기잡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파도가 거세졌다고 말하는데 케빈은 다시 한 번 더 자신이 그녀의 목소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창문을 통해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면서 그는 속으로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앞을 보고 있던 미세스 키터리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를 주시하다가 이 도대체 무슨, 하고 말하며 그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차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녀는 차 문을 그대로 열어 둔 채, 그리고 검정 가방을 풀밭에 놔두고 마리나 앞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그녀가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케빈에게 팔을 흔들며 뭐라고 소리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케빈은 차에서 내렸다가 바람이 생각보다 센 것에 놀랬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빨리 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커다란 갈매기처럼 두 팔을 흔들며. 그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파도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미세스 키터리지는 계속 손으로 가리키는 동작을 했다.


그때, 케빈은 갈라지는 물 위로 잠깐 올라온 사람의 머리를 보았다. 물개의 머리처럼 그 사람의 젖은 머리는 검었다. 잠시 후 그것은 다시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 사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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