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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의 작은 서재

When We Were Young And Brave by Hazel Gaynor (2020) Margaret Kim (margaret7630) 2021-1-5  16:36:56

When We Were Young & Brave


By


Hazel Gaynor






1941년 겨울,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낸시 플러머(Nancy Plummer)는 그곳에서 5천 마일 떨어진 중국 내륙 산둥 주 (Shandung Province)의 즈푸 (Chefoo)에 있는 미션 스쿨인 즈푸 스쿨 (Chefoo School)을 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선교사였고, 당시 낸시는 10살이었으며, 진주만 침공이 있던 날은 크리스마스가 되기 2주 전이었다. 학교 기숙사에 있던 낸시와 100명이 넘는 소녀, 소년들은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리고 갈등의 파문이 태평양을 넘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걸 모른 채 침대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당시, 교사인 미스 켄트 (Miss Kent)가 낸시에게 크리스마스를 부모님과 함께 보낼 수 없게 됐다고 말하며 엄마가 쓴 편지를 건네 주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중국과 일본 군대가 여전히 싸우고 있고, 최근에 있었던 산사태로 길이 엉망이라 여행을 하는 건 위험하다고 하니 학교에 그냥 남아 있으라고 썼다. 2년 전 낸시가 입학했을 무렵, 샹하이 (Shanghai) 국제 결제 은행의 중국 내륙 미션 주둔지에 있던 그녀의 부모는 낸시와 오빠인 에드워드 (Edward)를 즈푸에 남겨두고 정 반대편인 칭하이 (Ch'ing-hai) 주로 파견되었다.


낸시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면서 미스 켄트는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미리 조심하는 게 더 낫다고 하면서 너희 부모님의 선교 사업으로 혜택을 받을 중국의 고아들과 난민들을 생각하자고 말했다. 낸시는 엄마가 좋아하는 라벤더 향이 나는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엄마가 정말 보고 싶다고, 정말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스 켄트는 낸시를 창가로 오라고 부르더니 밖을 내다 보라고 했다. 낸시가 발뒤꿈치를 들고 밖을 내다 보며 세탁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매고 가는 하인 슈란 (Shu Lan)과 나뭇잎을 갈쿠리로 긁으며 청소를 하고 있는 정원사 웨이 환 (Wei Huan)이 보인다고 하자, 미스 켄트는 슈란에게는 우리들의 더러운 침대 시트가 가득 담긴 무거운 바구니를 옮겨야 하는 것이, 혹은 웨이 환에게는 우리가 밟고 다니며 재미로 공중에 차 올리는 나뭇잎을 쓸어야 하는 것이 불공평한 것일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는 그들을 학교 하인들로 보지만 그것은 그들의 직업일 뿐이며, 그들도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라고, 그들도 분명 때때로 실망스런 소식을 받을 것이고, 그들의 엄마를 좀 더 자주 보고 싶어 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삶은 그들에게도 역시 항상 공평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낸시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스 켄트는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하면서 모든 걸 고려해 볼 때,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느냐고 말했다. 낸시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낸시는 엄마의 편지를 침대 밑에 있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물건들이 들어 있는 차통에 넣었다. 그것은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동안에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보물들로 꽉 찼다. 편지와 엄마 코트에서 떨어진 단추, 영국의 집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 등등.


그녀의 엄마가 오지 못 한다는 소식에 같은 브라우니단 (Brownies) 친구 스프라웃 (Sprout)이 낸시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본명이 도로시 힌쇼 (Dorothy Hinshaw)인 스프라웃은 대나무처럼 말라 붙여진 별명으로, 그들 중 가장 키가 컸다. 그녀는 미국의 코네티컷 (Connecticut)에서 왔다.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200명 가량의 아이들은 거의 영국 국적 아이들이었고, 걔 중 12명 정도의 미국인, 그리고 몇명의 캐나다, 호주, 그리고 네덜란드 아이들이 있었다.


낸시에게 이번만은 브라우니단 분위기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브라우니단 활동 중 여섯 개의 뱃지를 얻은 단원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되는 위치에 있었다. 그날 브라우니의 활동은 종이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인 슈란은 매 해 봄이 되면 복잡하게 얽힌 꽃을 만들어 기숙사 창문에 매달아 놓았고, 그꽃은 행운과 행복의 상징이라고 했다. 언젠가 스프라웃의 언니인 코니 (Connie)가 슈란과 다른 하인들이 난징 (Nanking)에서 온 난민들이라고 말해 주었다. 몇 년 전 그곳에서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졌었다고 하면서. 그녀는 그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 말하지 않았고, 다만 제국주의 일본 군대와 관련있는 일이라고, 많은 중국인들이 아주 참혹하게 죽었다고 했다.


그날 밤, 낸시는 비행기가 다가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그녀는 침대에서 나와 뒷꿈치를 들고 창가로 가 셔터를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일본군 비행기 한 대가 학교 예배당 위로 낮게 날다가 만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멀리서 일열의 군인들이 트럭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낸시가 오기 1년 전에 일본군이 즈푸 시를 점령하고 있었고, 그래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들은 영국이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비행기가 학교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난다는 게 평소와 달랐지만, 낸시는 거기에 별 관심을 두진 않았다. 대신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고 있는 눈을 보며 내년 봄엔 정말로 엄마를 볼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한편, 엘스페스 (Elspeth: Elizabeth의 별칭) 켄트는 그날 아침에 있을 어려운 대화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트럭을 타고 오밤중까지 떠들썩하게 교문을 통과하는 일본군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들이 서양 미션 스쿨까지 위협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밤중에 깨어나게 만드는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이의 제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다가 그녀는 영국에서의 그녀가 그리웠다. 해리 에반스 (Harry Evans)가 춤을 추자고 신청했을 때 일주일 동안 웃었던 발랄하고 젊은 엘스페스 켄트가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영국에서의 그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랬다. 함께 꿰매서 수선할 수 있는 조각들이. 수선해서 오래 지탱할 수 있도록.


그녀는 예배당으로 가 제단에서 기도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신도석에 앉아 무참히 떼어내 버려진 결혼식과 그녀가 떠났던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집에서 6000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가 결혼했어야 한 남자, 그리고 거의 그의 자리를 대신할 뻔했던 남자. 이젠 그들은 둘 다 유령들이었다.


기억들을 떨쳐내며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사직서를 꺼냈다.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써야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녀는 샹하이에서 오는 다음 정기선을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을 그날 아침 여학교의 교장에게 말하려고 했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선교사들과 외교관 자녀들이 다니는 즈푸 스쿨은 서양의 감각들이 밑에 깔려 있어서 그녀는 종종 자신이 중국에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절의 종소리와 자두 나무와 은행 나무 가지 위에 수북히 내려 앉은 눈이 그곳의 시간을, 계절이 그리고 그녀 역시도 바뀌었다는 걸 되새겨 주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바퀴에 시동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가오는 전투기의 묵직한 낮은 윙윙 소리가 섬세한 고요를 방해했고 그녀의 얼굴에서 재빨리 미소가 사라졌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예배당 문 안으로 뒷걸음질 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전투기는 그녀의 바로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녀는 전투기 날개에 그려져 있는 선명한 빨강 동그라미와, 그것의 꽁무니에서 쏟아져 나와 휘날리고 있는 흰색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엘스페스는 전투기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 그녀 쪽으로 날라오는 종이를 잡았다. 그것은 일본 신문을 영어로 옮긴 것으로, ' 우리는 미국과 대영제국에 전쟁을 선포한다, 우리의 육군과 해군 병사들과 장교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히로히토'의 서명과 선명한 일본 제국을 상징하는 국화를 보면서 절망감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갑자기 세상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여겨져 그녀는 예배당 벽에 몸을 기댔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영국의 일본과의 전쟁.


그녀는 즉시 학교 건물로 돌아갔다. 아침 회합 시간에 조금 늦은 그녀를 보며 동료인 미니 (Minnie: Miss Butterworth)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너답지 않다고 말했다. 미니는 즈푸 학교에서 거의 7년을 있었다. 처음에, 두 사람은 정반대의 성격 때문에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그들처럼 미혼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는 소리없는 수치심, 다시 말하면 그들을 잉여 여성, 사회의 문제아들이라고 인식하는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북쪽 지방의 감성으로 인한 친근한 뭔가로 인해 서로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미니가 그녀에게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어 하는데, BBC라디오에서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왔다. 라디오에서는 일본이 오늘 밤 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해군 기지를 공격했다는 것이었고, 속보가 매 분마다 들어오고 있다고 하면서, 가장 최근 상황은 도쿄에서 나온 메시지로 일본이 미국과 영국에게 전쟁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강당 여기저기서 헉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니가 엘스페스의 손을 잡으며 일본과의 전쟁이 정말로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모든 게 소름끼치도록 사실로 다가 왔다. 계속해서 라디오에서는 루즈벨트 (Roosbelt)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일본의 공격을 발표했다고 보도하면서 공격을 받은 곳은 하와이의 진주만이라고 했다.


엘스페스는 강당 안을 둘러 보았다. 그해 겨울엔 크리스마스 휴일 동안 평소 때완 다르게 더 많은 아이들, 124명의 아이들이 남아 있었다. 12명이 넘는 직원들과 소수의 선교사들 또한 선택에 의해 머물러 있었는데, 중일 전쟁으로 전국적으로 긴 여행은 위험했다. 엘스페스는 본능적으로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모두 비슷했지만, 그녀는 세 명의 아이들, 즉 마우스 (Mouse)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부끄러움을 많이 타 소심했지만 최근에 자신감을 많이 회복한 조운 너틀 (Joan Nuttall), 스프라웃이라는 별명을 가진 교실에서 가장 웃기며 하고자 할 때에만 잠재력을 폭발하는 도로시 힌쇼, 그리고 아이들이 플럼 (Plum)이라고 부르는 성품이 좋고 언제나 듬직한 낸시 플러머를 특히 좋아했다. 여러 교사들에게 특정한 아이들을 좋아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그녀는 점점 이 세 아이들이 좋아졌다. 엘스페스는 이 아이들 각각에게서 작지만 자기 자신의 일부를 보았다. 그것이 물론 그녀의 과거의 한 부분이었지만 그들은 또한 현재의, 그리고 가능성이 충만한 미래의 감질나는 감성 역시 갖고 있었다.


미니가 일본 군인들이 학교를 점령하진 않겠지? 라고 속삭이며 난징 학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엘스페스도 마찬가지였다. 난징에서 일본 군대가 저지른 잔혹 행위는 엘스페스가 중국에 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수천 명에 이르는 중국 민간인을 살해한 그 일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깊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겼다. 즈푸 스쿨에서 일하는 여러 학교 하인들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걸 지켜보았고, 슈란을 포함한 많은 여자들이 일본 군인들의 손에 가장 최악의 치욕을 겪었다. 강간이란 단어는 큰 소리로 말하기에는 추한 단어이지만, 교문 너머에 있는 군인들을 볼 때마다 그것이 그녀의 머리속을 꽉 채웠고, 지금 그녀를 굉장히 괴롭혔다.


그들 중 어누 누구도 난징에서의 공포스러운 일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싶어하진 않았지만, 그들 모두의 궁금증은 군인들이 학교에 도착할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올 것인가였다. 엘스페스는 미니가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랬다.


미니는 희망을 갖자고 하면서, 그들은 서양 선교 학교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고, 아이들은 사람들에게서 연민을 일으키는 놀라운 역량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영국 해군이 제일 탑일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함선을 보내 자신들을 대피시켜 본국으로 송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항상 밝은 측면을 보는 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처음은 아니지만, 엘스페스는 그런 미니의 낙관론이 다소 천진난만하고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마음 속에 자리잡은 무시무시한 두려움으로 뭔가 나쁜 소리가 나오려는 걸 막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그것은 그녀의 결혼식날 아침 그녀를 깨웠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결국, 결혼식을 취소한 것이 그녀가 했던 결정 중에 가장 쉬운 거였다. 해가 뜨자 그녀는 레지 (Reggie Smith)의 엄마에게 가 침착하게 그와 결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일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남자, 해리 에반스 (Harry Evans)가 레지 자신이 일생 동안 열심히 팠던 갱 아래 파묻혀 버렸던 것이었다. 그 남자와 결혼을 했어야 했고 둘 사이의 아이들과 함께 조용한 삶을 살아야 했던 젊은 아가씨는 그 갱 아래 그와 함께 묻혀 버렸다.


회합 후 즉시 교사들은 교무실에서 긴급 회의를 한다고 소환되었다. 교장은 선교 본부와 지역 그리고 국제적인 상황에 대해 논의할 것이고 앞으로의 지시를 기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의 보호 하에 있는 아이들의 신앙과 안전, 그리고 교육은 원조가 도착할 때까지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며, 그사이 모든 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모든 건,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그녀의 계획을 포함해,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엘스페스는 걱정스런 표정을 숨기고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교실로 가 아이들에게 손을 잡고 기도를 하자고 한 뒤, 아무도 눈을 살짝 뜨는 아이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 히로히토의 선언문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표 봉투도 서랍에 들어 있는 성경책 사이에 넣고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청했다.


한편, 교실에서 주기도문을 드리고 있던 아이들은 트럭의 우르렁 소리, 시끄러운 사람 목소리, 그리고 문을 꽝 닫는 소리 등으로 중간에 멈춰야 했다. 낸시는 미스 켄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하얗게 변하는 걸 보았다. 잠깐 세상이 멈춘 것 같았고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미스 켄트가 손뼉을 치며 목청을 가다듬고 아이들에게 앞을 보라고 말했다. 그녀는 새 통치자가 도착한 모양이라며 그것이 기도를 그만두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고소음이 모두의 시선을 창가로 쏠리게 만들었다. 낮은 겨울 햇살에 강철 헬멧과 벨트에 매달린 단도가 반짝거렸다. 무릎까지 오는 부츠 위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카키색 승마 바지같은 걸 입은 군인들이 아무도 밟지 않은 눈내린 운동장을 뚜벅뚜벅 걸어와 웨이 환의 사랑스런 화단 위를 짓밟고 뭉개버렸다.


아이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미스 켄트는 계속 기도를 하자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기도를 마친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다리며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복도에서 다시 꽝소리가 났다. 이번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곧 그들이 불쑥 들어 올 것 같았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 정상적인 목소리를 찾은 미스 켄트가 아이들에게 앉으라고 하면서 두려워할 거 없다고 말하며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교실 문이 벌컥 열리며 뒤에 있던 책꽂이를 쳤다. 그러자 책꽂이가 굉장히 큰 소리를 내며 앞으로 쓰러졌고 꽂혀 있던 책들이 여기 저기 나뒹굴었다. 뒤이어 두 명의 군인이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와 미스 켄트의 책상 양 옆에 섰다. 잠시 후, 그들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세 번째 사람이 와 뻣뻣하게 출입문에 서서 학교는 이제 히로히토 천황의 자산이라고 외쳤다. 그는 자신을 하야시 (Hayashi) 사령관이라고 소개하며 모두 자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겁게 보이는 대나무 봉을 복도 쪽으로 휘두르며 아이들에게 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미스 켄트를 쳐다 보았다. 그녀는 침착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벽 옆에 한 줄로 정렬하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들은 대로 했다.


군인 한 사람이 아이들의 앞에, 다른 한 사람이 뒤에 서서 열을 지어 교실을 나섰다. 하야시 사령관이 그들을 강당으로 데려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다른 아이들도 그곳에 모여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 보며 에드워드를 찾았고, 그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


하야시 사령관이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그는 대나무 봉을 들고 아이들을 가리킨 다음 문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스 켄트는 아이들이 군인들을 흉내내며 웃자 아이들을 꾸짖고, 낸시 주도로 게임을 하라고 하면서 금방 돌아오겠다며 다른 교사들과 얘기를 하러 갔다가 이내 돌아 왔다.


아침 내내, 그들은 추운 강당에서 몇 시간을 보냈지만 여전히 교장 선생님이 와 모든 게 착오라고, 이제 다시 교실로 돌아가 평소 하던 대로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급히 화장실을 가야 했고, 미스 켄트는 도저히 더 참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따라 오라고 했다. 미스 켄트가 경비 두 명 중 키가 더 군인에게 가 허락을 맡았다.


그런데, 여자 화장실에 들어서자 모든 것에 일본어로 쓰인 통지가 붙어 있었다. 세면대, 거울, , 심지어는 비누에도. 아이들은 볼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교실문과 복도에 놓여져 있는 캐비넷 안의 트로피에다가도 통지를 붙이고 있는 군인을 보았다. 낸시가 그가 뭘 하고 있는냐고 묻자 미스 켄트는 저들이 자기네 것도 아닌 것들을 약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물건일 뿐이고, 우리들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고, 우리들에게 통지를 붙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하고 말했다.


그들이 서둘러 볼 일을 마치고 미스 버터워스 (Butterworth)의 교실을 지나가는데 미스 켄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문이 부셔져 있었고, 안에서 명령을 외치는 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스 버터워스가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로 그에게 원하는 만큼 소리를 질러도 되지만 통지를 그녀의 책상에 붙이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낸시는 못 본 척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실 안을 엿보고 싶은 욕망이 너무 컸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그 군인이 팔을 들어 미스 버터워스의 뺨을 치는 것을. 미스 버터워스는 비틀거리다 쓰러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미스 켄트가 앞으로 달려가며 멈춰! 멈추라고! 그녀를 내버려둬, 이 나쁜 놈아! 하고 소리쳤다.


그날 아침 있었던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지만, 낸시는 그 몇 분간의 무시무시한 장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걸 완벽하게 알게 되었다. 그들이 기독교 선교 학교에 있든, 그들의 아버지가 존경받는 사람이고 엄마가 멋쟁이든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것을. 결국, 그들 아버지의 직업과 그들의 멋진 집과 옷,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피부색 등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중국인이든 영국인이든 네덜란드인이든 모두 똑같이 일본군에게는 적일 뿐이라는 것을.


한편, 그 군인은 바닥에 시체처럼 움직임 없이 웅크리고 있는 미니를 쳐다보았다. 그는 웃으며 앞에 있는 책을 발로 차 멀리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녀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엘스페스 쪽으로 몸을 숙이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그가 가까이 오자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그는 일부러 천천히 책상에 통지를 붙이고, 이제 이 책상은 일본 천황에게 귀속되었다고 속삭였다. 그의 입이 그녀의 귀에 아주 가깝게 있어서 그녀는 그의 역겨운 숨결이 피부에 닿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학교는 이제 일본 천황의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 속에 담겨져 있는 차가운 협박에 그녀의 위가 뒤틀렸다.


그가 엘스페스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미니가 신음하며 앉으려고 애를 썼다. 엘스페스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자 그가 이름! 하고 소리쳤다. 그의 질문은 이제 명령이었다. 엘스페스는 애써 떨리는 걸 감추며 엘스페스 켄트라고 대답하며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인상적이라는 건지 아니면 비웃는 건지 모르게 히죽 웃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골칫덩이' 라고 부르라면서 그녀를 엘리자베스, 라고 불렀다. 엘스페스가 다시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엘스페스라고 정정해 주자 그는 조롱하는 웃음을 터트리며 일어서더니 책 한 권을 또 발로 차 멀리 보냈다. 그는 그녀의 영국식 엑센트를 훙내내며 이름을 읖조리며 교실을 나갔다. 그의 모습은 마치 사냥감을 죽이고 만족하는 사자같았다.


엘스페스는 미니를 앉게 도와주며 그가 갔다고 말했다. 미니의 입술은 피투성이였고 퉁퉁 부어 있었다. 미니는 아이들이 보지 않게 하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눈에는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모욕이 혼재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부셔진 문 주위에 모여 있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너무 놀라 눈길을 돌렸다. 엘스페스는 자신이 얼마나 두려운지 혹은 속상한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엘스페스가 미니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낸시에게 가서 다른 누군가를 데리고 오라고 하겠다고 하자 미니는 아니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애원했다.


엘스페스는 주저되었지만 미니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엘스페스는 아이들이 조용히 해 준 것이 고마웠다. 그녀는 그들의 마음 속에서 불가피하게 휘몰아치고 있는 어려운 질문을 공유했고 그녀가 거기에 대한 타당한 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차라리 안도감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고 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잠시 후, 엘스페스는 얼음을 가지고 미니에게로 갔다. 미니는 자신이 그에게 대든 건 바보같은 행동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요구한 건 오늘은 책상 하나였지만, 무엇을, 혹은 누구를 더 요구할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엘스페스가 그렇게까진 생각하진 말자고 말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그날 따라 여자 아이들이 유난히 어려보였고 몹시 연약해 보였다.


그날, 중국을 떠나려는 그녀의 계획은 학교가 일본 제국의 해군에 의해 통제된다는 교문 앞에 붙여진 위협 통지서와 함께 끝나버렸다. 아침에 왔던 비행기는 오후 내내 학교 위를 간헐적으로 날았고, 항구 위를 날다가 시내를 가로질러 다시 되돌아 왔다. 비행기의 배부분에서 여전히 토해 내고 있는 종이들은 내리는 눈과 함께 공중에서 팔랑거렸다.


엘스페스는 학교 담장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학교 무선은 군인들에 의해 압수되어 강당에서 제거되어 버렸다. 그들과 학교 담장 너머의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이 이제 적의 손아귀에 놓여 있게 된 것이었다.


그날 오후, 어스름해질 무렵, 교사들 사이에 놀라운 소식이 돌았다. 교장인 미스터 콜린스 (Mr. Collins)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상 교무 회의와 BBC 방송을 들은 이후부터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엘스페스가 교실로 돌아가는 계단에서 만난 슈란이 교내에 있는 교장의 집에서 그가 잡혀가는 걸 보았다고 말했다. 슈란은 그들이 그를 하야시 사령관의 오토바이에 태워 데려갔다고, 자신들이 숨어 있던 세탁실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심하게 떨었다. 그리고 두렵다며 난징이 생각난다고 조용히 말했다. 엘스페스가 그들이 당신을 헤쳤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물론 그들이 여자들에게 했던 짓이 그저 '헤쳤다' 고 말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슈란은 깊게 심호흡을 하더니 그들이 처음엔 도시를 그 다음엔 농장을 점령했고, 그녀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을 죽였다고 했다. 그녀는 주저하며 그들이 여자들은 살려두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눈엔 고통이 어른거렸고, 엘스페스에게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엘스페스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녀를 안심시키며 당분간 그들의 숙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다른 하인들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 두 사람 다 만약 군인들이 그들의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변하는지 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골칫덩이' 라고 부르는 군인에게 관심을 끌게 행동한 것을 벌써 후회하고 있었다.


불이 꺼지고 아이들이 무사히 각자의 기숙사로 간 뒤 여섯 명의 교사, 즉 엘스페스를 비롯해 엘리노어 야우드 (Eleanor Yarwood), 아멜리라 프리스콧 (Amelia Prescott), 엘라 레드몬드 (Ella Redmond), 찰리 해리스 (Charlie Harris), 그리고 탐 마틴 (Tom Martin) 등이 교무실에 모였다. 엘스페스는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 이해시키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려고 모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찰리가 손으로 만든 라디오를 갖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매우 볼품없는 장비같은 그것을 보여주며 군인들이 방을 수색할 때 잘 숨겨 놓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면도날, 안전핀, 그리고 몇 개의 와이어를 가진 나무 조각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아직 작동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보자고 말했다. 엘스페스는 군인들 중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맞이하게 될 결과가 두려워 그에게 그것을 갖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는 것이 더 안전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찰리는 와이어를 손보며 자신이 체육 교사가 되기 전 전기 기술자였고 정비공이었다고 했다. 헤드폰을 귀에 가까이 대는 찰리를 바라보며 엘스페스가 작동하느냐고 묻자 그는 신호를 잡으려고 애를 쓰더니 한참 후 '됐다!' 고 속삭였다. 지지거리는 소리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라졌다 했다.


그들은 방송을 주의깊게 듣고 있는 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고통스러운 조각 조각의 소식들을 통해 그들은 일본군이 진주만만을 목표로 한 게 아니라 샹하이에 있는 영국과 미 해군 함정을 공격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있는 국제 결제 은행을 장악했다는 것, 또한 영국령 홍콩을 공격했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폭탄을 투하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것, 이 세 나라는 이제 일본의 지배 하에 놓여지게 되었고, 그곳에 부임해 있던 모든 서양인들을 구속하고 가택 연금을 시켰다는 것 등등을 알게 되었다. 상황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빴다. 전쟁은 재빨리 그리고 위험천만하게 확대되었다.


찰리는 임시변통의 라디오를 속을 파낸 크리켓 룰 책 속에 넣으며 첩보 영화에서 얻은 아이디어 라고 말했다. 탐이 잘 숨겼는지 확인하라고 하면서 정보는 이제 그들의 가장 좋은 협력자라고, 지식이 곧 힘이라며 저 작은 라디오가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합 후, 잠자리에 들기 전 엘스페스는 미니를 살펴보았다. 미니는 복도에서 끽끽 소리가 날 때마다 놀란 고양이처럼 튀어 오른다고 말했다. 잠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와 사람들이 영국 해군 함선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올 거라고 말한다고 하자 미니는 지친듯이 미소를 지으며 이 상황을 벗어나 자신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니는 아래에서 군화 소리가 들리자 다시 몸을 움찔했다. 엘스페스는 벽장에서 하키 스틱을 꺼내 미니에게 주며 호신용으로 그것을 이불 아래 넣고 있으라고 말했다. 사실 미니는 1924년 카운티 대회 하키 챔피언이었다.


미니의 방에서 나와 항상 하던 대로 엘스페스는 아이들 방으로 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엘스페스가 아닌 미스 켄트로서 지금 즈푸의 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으로부터 여자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확실치 않고, 그들을 보호해 줄 부모들도 없이,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일이 교사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사실, 중국으로 오긴 전 그녀는 선교사와 외교관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이 어떤 건지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직장을 얻은 것, 그리고 숨막히게 옥죄는 집을 떠난다는 것이 기뻤다. 두 번째 학기가 끝날 무렵에서야 그녀는 아이들이 부모와 몇 달 간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은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금 몇몇 아이들은 부모와 2년 이상 떨어져 지내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어느 누구도 언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너무나 예의가 발라 사람들 앞에서 불평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교사들은 악몽을 꾸고난 후 흐느끼는 아이들을 달랠 때면 그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발버둥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만나러 온 부모들은 그저 교양있고, 품행이 좋은 아이들만 볼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가 즈푸를 거의 떠나려 했던 것, 사직서를 내려는 걸 망설였던 것이 얼마나 운명적인 것인지 생각했다. 고향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건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텅 빈 침대와 후회였을 것이다. 그리고 해리 다니엘 에반스라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 그들은 아주 잘 맞았다. 어떤 것도 해리처럼 잘 맞는 건 없었다. 어떤 것도.


잠시 후, 그녀는 신발을 벗으며 화병 옆에 봉투가 하나 놓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아침의 혼란 속에서도 우체부가 학교에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즉시 엄마의 필체를 알아보았다. 엄마는 자주 편지를 보내진 않았고,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알피가 실종됐고, 마지막으로 본 게 북 아프리카였다고 쓰여 있었다. 그녀의 동생 이등병 알프레드 켄트가 말이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편지를 다시 읽었다. 알피가 실종됐다니.


그녀가 중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반대했지만 알피만이 그녀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는 왜 안 돼냐고, 잃을 게 뭐 있느냐고 말했다. 결국 많은 걸 잃게 되었지만. 전쟁은 그녀에게 떠나야 할 곳을 찾아 주었고, 다시 되돌아 가야 할 곳 역시 알려주었다. 그녀는 목놓아 울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다.


한편, 군인들이 교실로 쳐들어 온 일주일 후에도 교장인 미스터 콜린스는 여전히 실종중이었다. 합창 연습이 끝나고 낸시가 용기를 내서 그에 관해 묻자 미스 켄트는 교장 선생님은 관계자와 얘기중인 것이 확실하다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모든 것이 곧 평상시처럼 돌아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스 켄트는 말하면서 눈길을 피했고 낸시는 에드워드가 전에 '누군가와 얘기를 할 때 눈길을 피하는 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표시' 라고 말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토요일은 즈푸 스쿨에 다니는 형제 자매들이 만나는 날이었다. 에드워드를 만난 낸시는 산책을 하다가 한 군인 곁을 지나가면서 그들이 자신들을 쳐다보는 식이 싫다고 말했다. 에드워드는 틀림없이 그들은 전에 주근깨나 갈색 머리를 본 적이 없을 거라고, 저들이 우리에게 낯선 것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낯선 사람들이어서 일 거라고 말했다. 낸시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걸으며 전쟁에 관한 많은 얘기를 했고, 해군이 자신들을 구하러 올 거라고 말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잠시 후 되돌아가야 할 종소리가 울리자 둘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강당 안의 벤치에 앉아 있는데, 에드워드의 친구인 래리 크로프턴 (Larry Crafton)이 다가와 두 사람 사이에 앉으며 에드워드에게 해군이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 같냐고 물었다. 에드워드는 물론이라고 하면서 마치 자신이 처칠 (Churchill)의 전시 내각에 속해 있어 사실을 알고 있는 양 확신에 차 그가 잊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낸시는 에드워드의 허풍을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군인들은 이미 커다란 무선 캐비넷을 압수했고, 학교 신문을 발행하고 전달하는 것 역시 금지했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 담장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그후에도 희망적인 얘기를 했지만, 낸시를 괴롭히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그녀는 만약 자신들이 비밀스런 작전에 의해 구출되어 학교에서 벗어난다면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냐고 물었고, 아무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에드워드 조차도.


다음 날, 미스 켄트는 상황이 이렇다 해도 브라우니 모임은 평소처럼 계속해야 한다고 했고, 낸시를 비롯해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슈란이 문 앞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몹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슈란에게 스프라웃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낸시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슈란은 군인들이 하인들은 모두 떠나야 한다고 했다고,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슈란이 급히 떠나고 모두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각자의 베개에 놓인 종이 연꽃과 창문에 장식으로 걸려져 있는 종이 눈꽃을 보며 모두 헉하는 감탄 소리를 냈다.


한편, 엘스페스는 저녁 교무 회의 때 하인들은 모두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찰리 해리스는 그것이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걱정스러운 전개' 라고 말했다. 엘스페스가 그들이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된 것인지 묻자 그는 유감스럽지만 자신은 모른다고, 후자라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이제 많이 회복된 미니가 허드렛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가 끝난 후 엘스페스는 슈란을 찾아가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도울 일이 있는냐고 물었다. 슈란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젊은 여성이었다. 난징에서 있었던 일들이 분명 그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고 불신하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주저하는 것은 종종 무례하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고, 그래서 교사들이나 아이들 중에서도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엘스페스는 그녀가 갖고 있는 강인함을 보았고 존경스러웠다.


슈란의 떠난다는 말에 엘스페스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슈란이 돌아갈 직계가족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어디로 갈 거냐고 묻자, 슈란은 이윽고 그녀를 바라보며 학교에서 멀지 않은 사촌의 농장으로 간다고 하면서 사촌이 곧 아이를 낳을 거라서 자신의 도움을 기뻐할 거라고 말했다. 엘스페스가 그럼 웨이 환은? 하고 묻자 그의 이름을 들은 슈란이 수줍게 웃었다. 엘스페스는 두 사람이 봄에 결혼하기로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슈란이 그는 그의 형제에게로 가기로 했다고 하면서 봄에 둘이 함께 칭타오 (Tsintao) 근처 웨이쉔 (Weihsien)에 있는 삼촌에게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명칭이나 지명들이 엘스페스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2년이나 중국에 살았지만 즈푸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엘스페스는 아이들에게 계속 슈란의 조국과 문화에 대해 알게 할 거라고 말하자 슈란이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그녀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슈란은 엘스페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숙소로 들어가 책 한 권을 가져와 엘스페스의 손에 쥐어주며 산장 (Sanzang)이라는 불경이라고 하면서 엘스페스를 위한 페이지에 표시를 해 놓았다고 말했다.


하인들의 방출은 좀 더 걱정스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다음 날 저녁 교무 회의 때 찰리는 조금 동정심이 있는 경비병 중의 한 명이 그에게 '연합 민간인 적들' 이 돌려 보내질 거라고 했다고 말했다. 엘스페스는 자신들이 '연합 민간인 적들' 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 단어는 스파이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것들이지 자신들 같은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녀가 무슨 말이냐고, 어디로 보내진다는 거냐고 묻자 찰리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민간인 집결 센터, 말하자면 포로수용소, 라고 말했다.


엘스페스는 갑자기 숨이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유럽에 사는 유태인들이 폴란드와 독일의 나치 운영 캠프로 보내졌다는 얘기를 들었고, 아이들은 부모와, 남편은 아내와 따로 보내졌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들이 그런 비슷한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엘스페스가 그 수용소들이 어디에 있는느냐고 묻자 찰리가 샹하이, 홍콩 등을 말하면서 중국 북부에도 하나 있다고, 웨이쉔,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웬지 모르겠지만 웨이쉔이라는 지명이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고 느껴졌다. 찰리는 겁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자신들이 며칠 내에 배나 기차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스페스는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건 악몽이라고 말했다. 또한 만약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아이들의 부모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게 될 것인지 몹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미니가 조용히 우리는 영국 시민일 뿐만 아니라 선교 학교의 교사들인데, 설마 우리를 포로수용소에 넣진 않겠지? 라고 속삭이듯 말했지만, 거기에 대한 답은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엘스페스는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앉아서 엄마의 편지를 다시 읽으며 도대체 알피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그의 순찰대가 붙잡혀 포로수용소로 보내졌기를 희망했다. 시체보다는 겁에 질린 죄수가 훨씬 더 낫지 않겠는가 생각하면서. 이것이 전쟁이 그들에게 준 좁은 선택권이었다.


다음 날 아침, 모든 하인들이 남학교 교정에 몰아 넣어졌다. 하야시 사령관과 시니어 경비 요원들이 들고 있는 대나무 봉으로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하인들을 찌르며 큰소리로 명령을 했다. 엘스페스는 미니를 때렸고 자신을 '말썽쟁이'라고 부르라던 그 군인이 항상 제일 먼저 물리적 힘을 사용한다는 걸 눈치챘다.


엘스페스는 학교 하인들이 떠나는 것이 그렇게 우울한 일일 줄 물랐다. 그들은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마주쳤던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잠시 후, 웨이 환이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앞으로 가다가 잠깐 엘스페스 옆에 멈추더니 즈푸 스쿨과 아이들이 많이 그리울 거라고 말했고, 그녀도 아이들이 당신을 많이 그리워 할 거라고 말했다. 미니가 그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는 즈푸에 있는 가족에게 갔다고 봄이 되면 웨이쉔에 있는 삼촌에게 갈 거라고 대답했다. 그에게서 그 지명을 듣는 순간 엘스페스는 톱밥을 먹은 것처럼 목이 꽉 막혔다. 찰리 해리스가 말했던 포로수용소가 있다는 바로 그곳.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웨이 환이 그녀에게 선물이 있다며 네모로 접은 작은 면조각을 그녀에게 주었다. 거기에는 9개의 해바라기 씨가 들어 있었다. 엘스페스가 고맙다고 하자 웨이 환은 중국 문화에서 9는 영원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대열로 갔다.

그때, 큰 소리로 '당신! 그가 준 게 무엇이지?' 라는 소리가 들려 엘스페스는 깜짝 놀랐다. '골칫덩이' 가 그녀를 향해 걸어 왔다. 그의 얼굴은 차가웠고 표정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를 알아보고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그는 오만과 권위의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가 '그가 당신에게 준 게 무엇이지?' 라고 다시 물었다. 그녀는 손을 뒤로 숨기며 별 거 아니라고, 씨앗 몇 개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주라고 명령했다. 그는 들고 있던 봉으로 그녀의 손을 세게 쳤다. 그녀의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는 면 조각을 펼쳐 그에게 내밀며 해바라기라고, 아편이 아니라 정원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씨앗들을 대충 휘적거렸다. 그 바람에 한 개가 땅에 떨어졌다. 엘스페스가 그것을 주으려고 몸을 수그리자 그가 먼저 군화를 신은 발로 그것을 언 땅 위에서 밟아 뭉갰다. 그리고 다 피운 담배 꽁초를 그 위에 던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씨앗이 떨어진 땅 위에다 침을 뱉음으로써 모욕 행위의 방점을 찍었다. 그는 그의 봉 끝으로 그녀의 뺨을 찌르면서 웃더니 하인들이 서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미니가 망할 놈이라고 속삭이자 엘스페스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가만히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저 씨앗이 바로 우리라고. 그는 그저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사람들인지, 말하자면 얼마나 쉽게 우리들 중 누구라도 저렇게 땅에 처박고 그의 군화로 짓밟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일 뿐이라고. 그에게 '망할 놈' 이라는 말은 너무 관대한 호칭이라고.


미니가 오늘 밤에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자 엘스페스는 그는 너의 기도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딱부러지게 말했다. 그녀는 저들 중 누구도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세상의 모든 기도가 저들을 떠나게 하진 않을 것이고, 기도가 전쟁을 끝나게 혹은 이 미친 침략을 끝나게 하진 않을 것이며, 기도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데려오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스페스는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혹은 목소리를 높일 생각은 아니었다. 특히 미니에게는. 하지만 그녀가 지난 몇 주 동안 심지어 몇 년 동안 숨겨 왔던 모든 감정이 뚫린 폐에서 공기가 쏟아져 나와 숨을 쉴 수 없게 만든 것처럼 터져 나왔다.


미니는 그녀의 폭발에 놀라 가만히 쳐다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하기 전 하인들이 교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 줄은 여자, 한 줄은 남자들이었다. 하인들이 떠나자 하늘을 물들인 장관을 이루는 겨울 하늘이 모든 것을 빨갛게 물들였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멋있게 느껴졌겠지만 그날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 일본 경비 하에서의 삶은 여전히 낯설었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음 날 어떤 걱정스런 일이 전개될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안심되는 건 군인들이 그들에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니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으로 인해 저들의 존재가 많은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건 분명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들이 평상적으로 혹은 모든 일들이 가능하면 평상시처럼 돌아가는 걸 만족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온이 더 내려가자 학교를 떠난 하인들에 대한 걱정이 높아졌다. 진주만 공격 훨씬 전, 슈란은 지역 농민들이 일제 강점 하에서 지독하게 고통받고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쌀과 밀 수확물은 그들이 평소 때 받은 값보다 터무니 없이 싼 값으로 군인들에게 빼앗겼고, 생선과 육류 또한 포기해야 했으며, 그래서 돼지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잡아 소금에 절여 그들의 집 마당 밑에 있는 지하 창고에 숨겨놓았다고 했다.


엘스페스가 미니에게 그들에게 음식을 좀 보내줄 수 있을까, 상의하자 미니는 좋은 생각이지만 방법이 없다고, 저들이 한 적이 다른 적을 돕는 일을 허락할리가 없다고 말했다. 엘스페스가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담밖으로 음식 꾸러미를 보낼 방법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미니는 그건 너무나 대담하고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엘스페스도 그건 인정하지만 만약 그것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위험을 무릅쓸 만한 일인 것 같았다. 그녀는 교무 회의 때 찰리와 상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학교 생활을 평상시처럼 이끌고 가려는 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포진해 있는 군인들을 보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들은 밤에 수가 더 많아졌고 매일 학교의 다른 부분들도 장악했다. 그들은 대개 거리 유지를 했지만 낸시는 그들과 그들의 으르렁거리는 개들을 경계했다. 에드워드는 미스 버터워스를 때린 '골칫덩이' 라는 군인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표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그가 주변에 나타나면 행동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들의 신분이 적국 시민이라는 것은 하야시 사령관이 그들에게 국가 이름이 적힌, 즉 몇몇에게는 미국을 의미하는 A, 몇몇에게는 영국을 의미하는 B가 적힌 완장을 발행해 주는 것으로 인해 더 명백해졌다. 그는 그것을 항상 차고 있어야 한다고 명령했다.


한편, 엘스페스는 하인들을 위해 담장 밖으로 몰래 음식 꾸러미 보내는 것을 교무 회의에서 제안했고, 모두에게서 동의를 받았다. 그들은 그것을 '작전 F' 라고 이름붙였다. 전직 군인이었으며 남학생 학교 라틴어 교사이고 아주 조용했고 재미없는 동료인 탐 마틴 (Tom Martin)이 놀랍게도 마침 농부들 중 한 명을 섭외해 놓았다고, 크리켓 경기장 옆의 담장에서 만나 여러 소식을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틀 후, 그들은 그 계획을 마무리짓기 위해 다시 만났다. 탐은 A3 용지에 학교 건물의 자세한 플랜을 그려왔다. 그는 사람들이 위치해 있는 곳은 점선과 점 등으로 표시했다. 그는 X 표시는 만나는 장소라고 말했다.


그것은 엘스페스 자신이 처음 제안하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전이었다. 탐의 계획은 스포츠 필드 저 쪽 끝에 있는 담장 너머로 음식 꾸러미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경비대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경계였고, 고량밭으로 바로 연결되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릇들을 회수하는 걸 방어할 수 있는 많은 엄호물들이 있었다. 만약 경비병들이 그들이 중국인 친구들에게 음식을 건네준 것을 알아차리게 되어 그들에게 내릴 벌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과는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의 생각을 읽은 탐은 만약 우리가 조심한다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엘스페스가 탐에게 작전이 행동에 옮겨지고 나서 자신의 위치는 어디인지 말하지 않았다고 하자 탐은 이것은 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불 덮고 자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엘스페스는 이것이 자신의 아이디어였으므로 감시하는 일이라도 참여하고 싶다고, 두 개의 눈보다 네 개의 눈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잠이나 자고 있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거기에 대해 아무도 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자 그녀는 그일에 가담하게 되어 자정에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검은색의 옷을 입고 음악실로 모이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 미니는 엘스페스에게 그 일에 가담하려고 할줄 몰랐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엘스페스는 자신도 가담하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탐이 그의 작전에 대해 열내고 모든 걸 자신이 한 것처럼 하면서 여자들은 이불덮고 잠이나 자라고 말한 것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하늘은 용기있는 자의 편이고, 그날 밤, 행운은 우리 편이었다. 달이 짙게 낀 구름 뒤로 숨었고, 학교를 떠날 땐 완전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것을 실행에 옮길 가장 좋은 기회는 자정 바로 직후, 경비대들이 교대하고 담배 한두대 피우면서 미적거리는 때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엘스페스는 옷을 여러 겹으로 겹쳐 입으면서도 만약의 경우 도망을 쳐야 할 수도 있으니 편안할 정도로 입었다. 그녀는 기다시피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탐과 찰리는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 엘리노어 야우드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다. 엘스페스는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 가라고 재촉하면서 여기서 뭐하냐고 소근대듯 물었다. 엘리노어는 자신도 저항하기로 했고, 엘스페스 혼자 탐과 찰리와 어둠 속을 해메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좋든 싫든 그녀와 함께 가겠다고 하면서.


엘스페스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엘리노어는 맘을 정한 것 같았다. 네 사람은 사이에 음식 꾸러미를 들고 운동장 쪽으로 갔다. 거기서 찰리가 그날 일찍 숨겨 놓은 줄을 회수했다. 그는 꾸러미가 떨어지지 않도록 단계단계 간헐적인 옭매듭으로 그것을 묶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벽에 기대어 탐이 접촉한 사람이 왔다는 신호를 기다렸다. 몇 분 후, 호수의 왜가리 울음 소리가 들리자 탐이 말없이 그것이 기다리던 신호라고 표시했다.


그런데, 그들이 밧줄을 내려 꾸러미를 전달하고 줄을 다시 회수한 후 찰리가 되돌아 가자는 신호를 해 막 움직이기 시작할 때, 갑자기 사납게 개짖는 소리가 들려 그들은 땅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이어 탐조등이 그들을 지나갔지만 그들은 들키지 않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한편, 배급이 점점 줄어들고, 아이들에게 줄 음식양이 충분치 않았다. 그것은 일본군이 학교 안으로 들어 오기 전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밤, 엘스페스는 잠들지 못하고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배급량을 확인해 보기로 하고 잠옷 위에 코트를 걸치고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부엌으로 내려가자 누군가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음식을 먹고 있는 세 사람을 보았다. 그녀는 얼른 찬장 뒤에 몸을 숨기고 등을 코트로 가리며 몸을 최대한 낮췄다. 그들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옷차림으로 보아 일본군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소리쳐 쫓아 내고 싶었지만 잠옷 바람의 그녀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코트 줄을 단단히 매며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바구니 두 개에 그들의 공급을 담는 걸 보면서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매일 밤 배고픔을 참은 채 자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녀의 두려움은 분노로 변했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나려고 했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그녀는 낯익은 한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그 사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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