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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의 작은 서재

Mexican Gothic by Silvia Moreno-Garcia (Gothic Horror, 2020) Margaret Kim (margaret7630) 2021-2-17  14:58:25

Mexican Gothic


By


Silvia Moreno-Garcia



22살 노에미 타보아다 (Noemi Taboada)는 멕시코 시티 (Mexico City)에 살고 있으며 사교계에 데뷔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녀는 멕시코 여대를 다니고 있는데,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가 지금은 인류학에 더 매력을 느껴 그쪽으로 더 공부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레오카디오 (Leocadio) 타보아다는 작은 화학 염색제 사업으로 시작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재벌이다.


다른 사교계 여자들처럼 노에미 역시 여가를 즐기고 남편감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내도록 교육받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노에미가 내노라하는 집 자식과 결혼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녀의 모든 활동은 배우자 찾기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고 모든 사교 활동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그런 곳에서 결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이유였다. 그저 배우자를 얻기 위한 방편이라니.


요즘 그녀는 아버지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은 경력 짧은 건축가인 휴고 두알테 (Hugo Duarte)라는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건 그때그때 가졌는데, 요즘은 그것이 휴고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휴고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그녀가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를 원했다. 그녀는 그와 결혼까진 생각치 않는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노에미는 휴고와 함께 튜농 (Tuñón)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보통 튜농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들은 항상 예외 없이 새벽 1시가 되기 전까진 아무도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밤 10시쯤에 노에미가 춤을 추고 있던 중 갑자기 저택의 하인이 와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잠시 후, 노에미와 휴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와 잠시 자리를 비운 휴고의 운전기사를 찾을 수 없어 택시를 타고 노에미의 집으로 갔다. 도착하자 마자 노에미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뒤도 안 돌아보고 집안으로 들어가 안뜰을 지나 곧바로 그녀의 아버지 서재로 갔고, 그것을 보던 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노에미는 노크 없이 열려 있는 아버지의 서재로 바로 들어가 한숨을 크게 쉬며 아버지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불려 온 것이 싫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이 휴고와 그곳에 간 걸 알아버려 전화를 한 것이라 짐작해 화가 나 있었다. 파티에 가는 걸 허락을 받았지만 휴고와 함께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투덜거리는 노에미의 말을 자르며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만약 그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이 모든 야단법석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그녀가 어조를 낮춰 나쁜 일은 아니죠? 라고 묻자 아버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자신이 말하는 걸 엄마나 다른 가족, 친구 등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몇 주 전 노에미의 사촌인 카탈리나 (Catalina)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그녀의 남편에 대해 안 좋은 얘기들이 적혀 있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자신이 그녀의 남편인 버질 (Virgil Doyle)에게 편지를 썼고, 그가 답장하기를 카탈리나가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두 사람은 몇 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고, 자신이 만약 카탈리나가 정말로 괴로워하면 그녀를 멕시코 시티로 데려와 전문가를 보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썼는데 버질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 그리고 그는 버질이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아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오늘 밤 전보를 받았다며 직접 읽어 보라며 그것을 노에미에게 주었다. 전보는 노에미에게 카탈리나를 방문해 달라는 초대장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노에미가 그 초대에 응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버질이 말하길 카탈리나가 노에미를 원하고 있다고 하고, 게다가 자신이 보기에는 이 문제는 여자가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별 걸 아닌 걸 과장한 것일 수도, 부부 문제인 것일 수도 있고, 카탈리나가 멜로드라틱한 경향이 있으며, 관심을 받으려는 술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에미는 그렇다면 카탈리나의 부부 문제나 그녀의 멜로드라마를 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카탈리나를 멜로드라마틱하다고 한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카탈리나는 어렸을 적에 부모를 다 잃었다. 먼저 아버지가 죽고 엄마는 재혼을 했다. 새아버지 때문에 카탈리나는 자주 울었다. 2년 후 그녀의 엄마가 죽었고 그녀는 노에미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즈음 카탈리나의 새아버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노에미의 가족이 따뜻하게 품어 주었지만 부모의 죽음은 카탈리나에게 깊이 영향을 미쳤다.


좀 더 큰 후, 카탈리나는 파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많은 갈등을 낳았다. 당시, 카탈리나는 몇 달 동안 만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를 많이 좋아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노에미의 아버지가 그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고, 결국 둘을 갈라놓았다. 이후 카탈리나는 교훈을 얻은 모양으로, 버질 도일과의 관계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아니면 버질이 아무도 그들의 결혼을 방해하지 못할 때까지 비밀로 하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에미의 아버지는 카탈리나의 편지가 아주 기이했다고,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독살하고 있으며, 환영을 보고 있다고 썼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의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편지 내용을 보고 이곳 주변의 실력있는 정신과의사를 찾아보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카탈리나의 편지를 갖고 있느냐고 묻자 그가 그것을 노에미에게 주었다.


카탈리나의 편지는 읽기가 어려웠다. 필체는 고르지 못했고 조잡했다. 거기에는 아버지 말대로 남편이 자신을 독살하고 있다는 것,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부식됐고, 부패 냄새가 지독하며, 모든 악과 잔인한 정서로 가득찼으며, 자신은 지혜롭게 이 불결한 것을 멀리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 수 없고, 점점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겠으며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그들은 잔인하고 불친절하며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문에 빗장을 걸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와 밤마다 속삭인다고, 자신은 이 쉼 없는 죽은 자들, 이 유령들이, 육체가 없는 것들이 두렵다고 하면서, 노에미가 보고 싶다고, 다시 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쓰여 있었다. 카탈리나는 노에미에게 그곳으로 와 자신을 구해 달라고 했다. 혼자 힘으로는 힘들다며. 그리고 편지의 가장자리에는 좀 더 많은 단어와 숫자가 쓰여 있었고, 그것은 굉장히 혼잡스러웠다.


노에미가 카탈리나와 마지막으로 얘기를 나눈 것은 거의 일 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카탈리나는 신혼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낸 것 외엔 별 연락이 없었고, 간간히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축하 카드를 보냈다. 사람들은 모두 카탈리나가 신혼을 즐기고 있어서 편지를 자주 쓸 생각이 없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또한 특별한 건 그녀의 새 집엔 전화가 없었다. 그것 역시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노에미는 사교 생활과 학교 때문에 바빠 카탈리나 부부가 곧 멕시코 시티를 방문하지 않을까 생각만하고 있었다.


그 편지는 노에미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것과도 맞지 않았다. 카탈리나는 타자기를 선호했는데 그것은 손으로 쓴 거였고, 카탈리나는 간결하게 글을 쓰는데 그것은 횡설수설했다. 노에미는 그것이 굉장히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 편지를 봤으니 자신이 왜 버질에게 다시 편지를 써서 직접 상황 설명을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왜 자신이 버질이 즉각 성가시게 군다고 비난했을 때 깜짝 놀랐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에미는 혹시 아버지가 무례하진 않았는지 걱정되어 정확히 뭐라고 버질에게 썼느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진중함과 의도치 않는 무뚝뚝함이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릴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조카를 정신병원에 넣는 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했고, 노에미가 버질에게 그렇게 말했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그는 정신병원은 장소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잘 안다고 말했다. 카탈리나는 시골에서는 받을 수 없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노에미가 아버지는 버질을 믿지 않는군요, 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너의 사촌은 너무 급하게 결혼을 했다고, 다시 말하면 철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 말이 맞았다. 카탈리나의 약혼은 어이없을 정도로 짧았고, 그들은 신랑과 거의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노에미는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고 몇 주 후 카탈리나가 청첩장을 보내올 때까지 노에미는 카탈리나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만약 그녀가 증인으로 참석해 달라고 초대받지 않았다면 노에미는 카탈리나가 결혼을 했는지 조차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들의 그런 비밀유지와 조급함이 노에미의 아버지에겐 달갑지 않았다. 결혼 피로연을 열어 주었지만 노에미는 아버지가 카탈리나의 행동을 불쾌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카탈리나가 가족들에게 별로 연락이 없는 것을 노에미가 걱정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였다.


노에미가 카탈리나가 편지에 버질이 그녀를 독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령들이 벽을 통해 들락거린다고 했는데, 믿을 만한 얘기 같으냐고 묻자 아버지는 책상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가 잠시 밖을 내다보며 가만히 서 있다가 카탈리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고, 그리고 카탈리나와 버질이 이혼한다면 그는 빈털털이가 될 거라는 것과, 결혼 무렵 그의 가족은 돈이 말랐었다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한 그는 그녀의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있으니 카탈리나를 집에 두는 게 그에게는 더 이득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버질이 아내의 안녕 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을 더 우선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우리 모두 버질을 잘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버질은 낯선 사람이라고, 그가 카탈리나는 보살핌을 잘 받고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 침대에 묶여 죽이나 받아 먹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며 노에미에게 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 필요하면 카탈리나를 멕시코 시티로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그는 며칠 생각해 보겠다고 주저하는 노에미에게 당장 월요일 아침 첫 기차를 타고 가라고 그것이 파티 중간에 그녀를 불러낸 이유라고 말했다. 그래도 노에미가 주저하자 아버지는 그녀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해 인류학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부모, 특히 그녀의 엄마는 좋은 조건의 신랑감을 만나 결혼해서 사는 것이 여자에게는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대학원 진학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결국 노에미가 가겠다고 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먼저 버질에게 그녀가 간다고 알리는 전보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는 신중하고 현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며, 버질이 카탈리나의 남편이므로 그녀를 대신에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신중하지 못하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월요일 아침, 노에미는 엘 트리운포 (El Triunfo)로 향했다. 가는 도중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피어있고 소나무와 오동나무가 짙게 드리워진 가파른 산길 옆에 걸쳐 있었다. 양들이 배회하고 염소들은 뾰족한 바위들 위에 서 있었다. 그곳은 지금은 폐쇄되었지만 예로부터 은이 많이 나는 곳이었고, 동물들에게서 나오는 기름은 광산을 밝히는 데 사용되었다. 그 광경들이 예뻤다.


하지만 기차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움직여 엘 트리운포로 다가갈수록 전원의 광경은 점점 변했다. 깊은 협곡이 길을 갈랐고 기복이 심한 산등성이들이 창문 밖으로 갑자기 들이닥쳤다. 매력적인 개울이 강하고 콸콸 쏟아지는 강으로 변했다. 산 밑 쪽에서는 농부들이 알파파 농장을 하고 있었지만 윗 쪽은 그런 농작물이 없었고 그저 염소들만이 바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기차가 산 위로 허덕거리며 올라가자 대기의 밀도가 얕아졌고 잠시 후 기차가 멈췄다.


노에미는 짐을 최대한 줄였지만 여전히 크고 무거운 여행 가방 두 개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 기차역은 붐비지 않았고 거의 역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외떨어진 사각 빌딩에 반쯤 졸린 여자가 티켓 판매대에 앉아 있었다. 세 명의 어린 남자아이들이 서로 쫓으며 놀고 있었고, 그녀가 여행 가방을 밖으로 옮겨 주면 지불하겠다고 하자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광산이 폐쇄됐고 염소만이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어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노에미는 밖으로 나와 숲속 오후의 차가운 안개를 맞으며 자신을 마중나온 차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역 앞에 유일하게 서 있는 차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2, 30년 전의 무성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터무니없이 크고, 낡고, 지저분한 차였다. 그녀는 그 차에 맞는 노인이 기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 나이 또래의 골덴 자켓을 입은 젊은 청년이 내렸다.


그는 금발이었고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그렇게 창백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한 번이라도 햇빛에 나가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백했다. 또한 그의 눈은 전혀 생기가 없었다. 노에미는 여행 가방을 옮겨준 아이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하고 미스터 도일이 보낸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그녀의 손을 살짝 흔들며 그렇다고, 하워드 삼촌 (Uncle Howard)이 당신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말하며 자신은 프랜시스 (Francis)라고 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유리창을 통해 본 엘 트리운포는 시들어가고 있는 퀴퀴한 냄새로 뒤덮힌 곳이었다. 집들은 다채로웠지만 대부분의 담벼락은 색이 바랬고, 몇몇 대문들은 외관이 훼손되어 있었으며, 화분의 꽃들은 반쯤 시들었고, 무엇 보다 도시가 움직이고 있다는 표시가 별로 없었다.


그건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이전에 식민지 시대 동안 은과 금을 활기차게 채취했던 광산 도시들이 독립 전쟁이 발발하자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고, 후에 포르피리아토 (Porfiriato) 정부 동안 영국과 프랑스인들이 많이 들어와 주머니를 불렸다. 하지만 혁명으로 이 두 번째 전성기가 끝났다. 그래서 한때는 엘 트리운포처럼 돈과 사람이 많은 곳에 세워졌던 좋은 성당을 볼 수 있는, 하지만 땅이 다시는 부를 내주지 않은 작은 마을들이 많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많이 떠났다.


그러나 도일가는 이 땅에 머물렀다. 노에미는 아마도 그들이 이곳을 무척 좋아하게 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다지 그 도시가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곳은 어렸을 적에 읽었던 동화책 속의 숲과 전혀 달랐고, 카탈리나가 살게 됐다며 찬양했던 곳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노에미를 데리러 온 오래된 차처럼 그 도시는 화려함의 찌꺼기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프랜시스는 산속으로 더 깊게 올라가는 좁은 도로를 운전해서 갔고, 공기는 점점 더 추워졌으며,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다. 노에미가 손을 함께 문지르며 아직 멀었냐고 묻자 그는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도로가 나쁘다고, 그렇지 않으면 좀 더 빨리 운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근처 도로는 오래 전 광산이 폐쇄되기 전엔 괜찮았다고, '하이 플레이스' (High Place) 근처도 좋았었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하이 플레이스' 가 어디냐고 묻자 그는 자신의 집을 모두 그렇게 부른다고 말하며 그곳엔 모든 게 영국식이고, 뒷쪽엔 영국식 공동묘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이 영국식인 것은 하워드 삼촌이 원했던 것으로 그곳은 작은 영국이라고 말했다. 그의 삼촌은 유럽 흙까지 이곳에 가져왔다고 했다. 또한 '하이 플레이스' 에서는 스페인어를 쓰지 않는다고 하며서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는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고 버질도 잘하지 못하며, 자신의 엄마는 한 문장을 제대로 할 시도 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다. 노에미는 6살 때부터 매일 영어를 배웠다며 문제 없을 거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프랜시스에게 당신의 이름 말고 더 자세히 버질의 사촌 동생이냐고, 혹시 자신이 알아야 하는 숨겨진 아들같은 뭐 그런 거냐고 묻자 그는 살짝 웃으며 버질의 종형제라며 오촌이라고 했고, 버질이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다고 했다.


그후로도 끝이 있을까 하는 도로를 계속 달렸고, 범퍼인지 바위인지 모를 것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빈터가 나왔고, 그들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집은 그들을 반기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안개 속에서 벌쩍 뛰어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기묘했다. 완전히 빅토리아 시대 건물이었고, 부서진 지붕널들, 정교한 장식, 그리고 지저분한 돌출창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집은 거대하고 조용한 괴물처럼 그들에게 다가왔다.


프랜시스가 열쇠를 꺼내 묵직한 문을 열었다. 현관 로비로 들어가니 거대한 나무 계단과 두 번째 층계참의 둥근 스테인드글래스 유리창이 즉각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후 한 여자가 왼손을 난간 위에서 미끄러져 내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흰 머리가 많았지만 노인은 아니었고, 시니어라고 하기에는 몸이 너무 꼿꼿하고 날렵했다. 하지만 그녀의 엄숙한 회색 옷차림과 단단한 눈빛이 그녀의 육체에 각인되어 있지 않은 세월을 더했다.


프랜시스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며 노에미를 소개하고 그녀의 여행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노에미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 가면서 그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여자는 그것을 마치 일주일 지난 생선 보듯 바라보았다. 노에미의 손을 잡고 흔드는 대신 그 여자는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그녀는 등을 돌린 채 노에미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하면서 자신은 플로렌스 (Florence)이고 미스터 도일의 조카라고 말했다. 노에미는 조롱당한 것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참기로 하고 그냥 그녀 옆으로 가 보조를 맞췄다. 그녀는 자신이 '하이 플레이스' 를 관리하고 있다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자신에게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지켜야 할 방식이 있고 노에미도 그 규칙을 잘 따라 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그 규칙들이 무언지 묻자 플로렌스는 가장 중요한 규칙은 자신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사생활을 중요시 여긴다고 말했다. 자신의 삼촌인 미스터 하워드 도일은 나이가 아주 많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의 방에서 보낸다고, 그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카탈리나를 돌봐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면서 그녀가 많이 쉬어야 하므로 역시 불필요하게 그녀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혼자 집을 나서서 돌아다녀서도 안 된다고, 쉽게 길을 잃을 수도 있으며 이 지역은 여기저기 협곡이 많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그외 다른 것은 없느냐고 묻자 플로렌스는 자신들은 시내에 자주 가지 않는다고, 만약 볼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고 그러면 자신이 찰스 (Charles)에게 데려다 주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찰스는 스텝 중의 한 사람이며, 이 집에는 3명의 스텝이 있는데 그들은 수 년 동안 자신의 가족을 위해 봉사해 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따라 걸었다. 벽에는 타원형과 직사각형의 액자에 도일가 사람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그들은 도일가의 심볼이라고 할 수 있는 외모, 즉 프랜시스와 그의 엄마처럼 창백했고, 금발이었다. 그들은 너무 닮아 가까이서 보더라도 구별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잠시 후 장식용 손잡이가 달린 문에 이르자 프랜시스가 그곳이 노에미가 묵을 방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집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말하며 그녀의 핸드백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 안에 있는 담배를 투시할 수 있다는 듯이.


그 방 안에는 고딕 이야기에서나 나옴직한 네 개의 다리가 달린 침대가 있었다. 심지어 그 주변으로는 커튼이 달려 있어서 세상과 단절할 수도 있었다. 프랜시스가 좁은 유리창 가에 노에미의 여행 가방을 놓았다. 그 창문은 아무런 색이 없었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래스 창틀은 사적인 공간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플로렌스는 옷장에 들어 있는 여분의 담요를 가리키며 산꼭대기라 춥다고 하면서 스웨터를 갖고 왔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에미는 긴 스카프를 갖고 왔다고 대답했다.


플로렌스가 침대 맡에 있는 궤에서 초 몇 개와 노에미가 지금까지 본 것중 가장 흉한 촛대 하나를 꺼냈다. 그런 다음 궤를 닫고 그것들을 그 위에 올려 놓았다. 그녀는 그곳의 전기는 혁명 바로 전인 1909년에 설치됐다고 하면서 이후 40년 동안 별로 개선이 되지 않았다고, 발전기를 갖고 있어서 냉장고나 전등불 몇 개에 필요한 전력은 충분히 보충이 되지만 집 전체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촛불과 오일 램프에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자신은 오일 램프 쓰는 법도 모르고, 캠핑 조차도 한 번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고 하자 플로랜스는 어떤 얼간이라도 기본 원리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보일러는 간혹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고, 뜨거운 물은 안 되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라는 등 할 말을 계속했다. 노에미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말할 기회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에미가 카탈리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플로렌스는 이미 나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오늘? 이라고 물었다. 노에미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카탈리나가 약먹을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고, 약을 먹으면 깨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잠깐 몇 분 동안만 보겠다고 하자 프랜시스가 엄마, 그녀가 멀리서 왔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의 참견이 그녀의 허를 찌른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치켜뜨고 아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곳은 도시와는 시간 개념이 다르다고, 만약 카탈리나를 당장 봐야겠다면 자기랑 함께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아들에게 하워드 삼촌이 오늘 밤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플로렌스는 노에미를 역시 다리 네 개가 달린 침대가 놓인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정말 영국이었다. 창 가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카탈리나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밖을 보고 있었고 그들이 들어가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에미는 병에 찌든 낯선 얼굴을 볼 거라고 자신을 무장했었는데 카탈리나는 멕시코 시티에서 살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플로렌스가 손목 시계를 보면서 5분 내에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그 시간 동안 같이 있겠다고 하자 플로렌스는 못마땅해 보였지만 자리를 피해주었다. 노에미가 다가갔지만 카탈리나는 눈길 조차 돌리지 않았았고 이상하리만치 가만히 있었다.


노에미가 카탈리나를 부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때서야 카탈리나가 노에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왔구나, 노에미, 하고 말했다. 노에미는 카탈리나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가 언니가 어떤지 살펴보라고 보냈다고 하면서 좀 어떠냐고,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카탈리나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열이 있었다고, 결핵에 걸렸는데 이제 괜찮아졌다고 했다. 노에미가 언니가 편지쓴 거 기억하느냐고, 거기에 이상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고 말하자 카탈리나는 편지에 무엇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열이 엄청 높았다고 말했다.


카탈리나는 노에미보다 5살 위였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적엔 카탈리나가 손윗 사람 역할을 했었다. 노에미는 그녀와 보냈던 활기찬 오후들이 생각났다. 이런 카탈리나를 보는 건 낯설었다. 무기력했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는 모습. 노에미는 그런 카탈리나를 보는 게 싫었다.


노에미가 아버지가 굉장히 신경쓰고 있다고 하자 카탈리나는 미안하다고, 편지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면서, 바쁠텐데 편지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써서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노에미는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며 와 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그녀가 이맘때쯤 우릴 보러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하자 카탈리나가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집에서 나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카탈리나는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었다. 촉촉했던 갈색 눈은 흐릿해졌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하지만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숨을 들이 쉬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다음 고개를 돌리고 기침을 했다. 노에미가 카탈리나의 이름을 부르는데 플로렌스가 약병과 숟가락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며 약먹을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카탈리나는 순순히 한 숟가락의 약을 받아 먹고 플로렌스에 이끌려 침대로 가 누웠다. 플로렌스는 노에미에게 나가자고, 카탈리나는 쉬어야 한다고, 내일 얘기하라고 말했다. 카탈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렌스는 노에미를 그녀의 방에 데려다 주었다. 가는 길에 부엌 등 짧게 집 안을 소개했다. 그리고 저녁 7시 식사 시간에 그녀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노에미는 가방을 열어 옷들을 옷장에 걸고 매무새를 단장하기 위해 욕실로 갔다. 욕조며 모든 것이 아주 오래 되어 보였고, 천장엔 곰팡이가 끼어 있었지만 수건만은 새 것으로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려 보았지만 전기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등을 찾았지만 전구가 달린 램프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전기 콘센트는 있는데도 말이다. 노에미는 플로렌스가 촛불과 오일 램프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녀는 지갑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몇 모금 피운 다음 플로렌스의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것을 창밖으로 던지려고 했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7시가 되자 플로렌스가 오일 램프를 들고 노에미를 데릴러 왔다. 식당에는 12명을 위한 식탁이 놓여져 있었고, 나뭇 가지 모양의 촛대가 놓여져 있었다. 노에미는 플로렌스가 앉으라고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프랜시스가 벌써 앞에 앉아 있었고, 플로렌스는 그의 옆에 앉았다. 온통 흰머리인 가정부가 스프를 가져다 주었고, 그들은 먹기 시작했다. 노에미가 다른 사람들은 같이 먹지 않느냐고 묻자 플로렌스가 카탈리나는 잠들었고, 하워드 삼촌과 사촌 버질은 아마 나중에 내려올 거라고 말했다.


스프 그릇들이 치워지거나 다른 음식이 나올 때에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에미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은식기는 모두 그들의 광산에서 나온 거냐고 묻자 프랜시스가 그렇다고 했다. 노에미가 광산을 왜 닫았느냐고 묻자 프랜시스가 파업이 있었고, 그런 다음, 하고 말하려고 하는데 플로렌스가 즉시 고개를 들고 노에미를 쳐다보며 자신들은 밥먹을 때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손님을 위해 대화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는 버질에게 기대어 있었는데, 단순히 '늙었다' 는 단어로는 그를 묘사하기 부족할 정도로 그는 고대 시대의 사람 같았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이 패어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의 머리에 붙어 있었다. 지하에 사는 생명체처럼 그 역시 매우 창백했다. 그는 얼굴의 창백함과는 대조적으로 선명한 보라와 푸른 색이 드러난 얇고 가늘고 긴 혈관을 갖고 있었다.


노에미는 그가 발을 끌며 느리게 천천히 걸어와 식탁에 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버질 역시 그의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았는데, 노에미 쪽 각도에서 그의 모습이 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정부는 노인에게는 음식을 가져다 주지 않고 와인 한 잔만을 갖다 주었다. 노에미가 자신을 소개하자 노인이 자신은 버질의 아버지인 하워드 도일이라고 말했다.


그 노인은 구식의 크레벳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의 목은 천더미 아래 숨겨져 있었고, 둥근 은색 핀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게 손가락에 커다란 호박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의 신체의 다른 곳은 모두 하앴지만 눈만은 푸른빛이었다. 백내장도 없었고 노안도 없었다. 그의 눈은 몹시 주름진 얼굴에서 차갑게 타오르고 있었고, 시선으로 그녀를 해부하면서 그녀에게 집중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하워드는 그녀를 살펴보고 난 후 카탈리나보다 더 검다고 말했다. 노에미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고 '?' 하고 반문했다. 그는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녀의 피부색과 머리카락 둘 다 카탈리나의 것보다 검다고, 그것들로 보아 프랑스보다는 인디언 혈통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서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메스티조 (mestizo: 스페인과 북미 인디언의 피가 섞인 라틴 아메리카인) 처럼 말이야, 라고 말했다. 노에미는 카탈리나의 엄마는 프랑스인이고, 자신의 아버지는 베라크루즈 (Veracruz), 엄마는 옥사카 (Oaxaca) 출신이라고, 우리는 엄마쪽으로 옥사카 토종이라고 하면서 당신의 요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웃었다. 이가 보이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녀는 그의 이가 누렇고 부러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버질이 가정부에게 손짓을 하자 그의 앞에 와인 한 잔이 놓여졌다. 다른 사람들은 말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하워드가 단순한 관찰이라고, 이제 답변을 바란다고 하면서 '미스터 바스콘셀로스 (Mr.Vasconcelos)가 말했듯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새 인종을 만드는 것이 멕시코인들의 의무, 아니지, 운명이라는 걸 믿느냐고 하면서 데븐포트 (Davenport)와 스테게르다 (Steggerda)를 들먹였다 (그들은 자메이카에서 실험한 결과 혼혈이 정신적으로 흑인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한 학자들이었다-마가렛 주). 노에미가 그들을 아는 척 하자 그는 아주 똑똑하다고 하면서 노에미가 인류학에 관심이 있다는 카탈리나의 말이 맞았다고 말했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외에 어떤 말도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불편해하는 걸 무시하고 우수한 타입과 열등한 타입의 혼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가족 구성원이 모두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그녀가 무엇을 내놓을지를 듣고 그녀의 말을 분석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이 계속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교 생활의 경험을 통해 거슬리는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로 허둥거리지 않고 그들의 조잡한 언급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해 그들을 더 대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의 말에 가이모 (Manuel Gamio: 멕시코 인류학자)를 언급하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워드는 그녀의 답변이 흡족한듯 보였다. 그의 얼굴에 점점 생기가 돌았다. 그는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하면서 당신을 모욕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베스콘셀로스를 들먹이며 그가 '심미적 취향' 의 미스터리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이 이 구릿빛 인종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노에미가 그 부류의 좋은 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어떤 부류를 말하는 거냐고 묻자 그는 다시 미소를 지었는데 이번엔 그의 이가 보였다. 그것들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누렇친 않았고, 오히려 도자기처럼 하얗고 온전했다. 하지만 그의 잇몸은 독으로 가득 찬 것 처럼 보랏빛이었다. 그는 노에미의 질문에 대해 '새로운 미' 라고 대답하며 미스터 바스콘셀로스는 매력이 없는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고 아름다움을 낳게 된다고 했다. 그것이 선택의 수단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그녀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혐오스러움을 삼키며 이건 굉장히 낯선 칭찬이라고 말하자 하워드는 그녀에게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볍게 건넨 칭찬이 아니라면서. 잠시 후, 그는 피곤해서 일어나야겠다고 하면서 아주 기운나게 하는 대화였다고 했다. 그가 떠나자 침묵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려 앉았고, 자세히 듣는다면 그들의 심장 박동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에미는 카탈리나가 어떻게 이런 곳을 참고 살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카탈리나는 항상 애교가 많았고, 항상 미소지으며 어린 아이들을 잘 돌봐 주었었다. 그들은 정말로 그녀를 완전한 침묵과 커튼이 드리워지고 희미한 빛만을 제공하는 촛불에 의지한 이 식탁에 앉아 있게 했을까? 저 노인은 그녀와도 아주 불쾌한 대화를 나누려고 했었을까? 카탈리나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을까?


가정부가 다가와 접시를 치웠다. 노에미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버질이 마침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질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노에미에게 거실로 가자고 했다. 그는 식탁 위에 있던 촛대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커다란 방으로 갔다. 그 방은 밝아서 그를 좀 더 잘 볼 수 있었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이루어졌던 카탈리나의 결혼식 후 일 년이 지난 지금 노에미는 그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금발이었고 그의 아버지처럼 푸른 눈에 잘 조각된 얼굴은 오만함으로 번들거렸다.


버질이 먼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정중했지만 온기는 없었다.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녀의 아버지가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레오카디오 타보아다가 보내서 온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버질은 자신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놀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노에미가 카탈리나가 결핵에 걸렸었다고 말했다고 했지만 그것이 편지의 내용을 설명해 주진 못했다고 말하자 버질이 그 편지를 보았느냐고, 정확히 내용이 무었이었느냐고 물었다. 그의 어조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지만 놀란 것 같았다. 그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버지가 충분히 그녀를 이곳으로 보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와인잔을 돌리며 카탈리나가 좋지 않았다고, 굉장히 열이 높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편지는 그녀가 한참 아팠을 때 보낸 거였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누가 그녀를 치료하느냐고 묻자 그가 뭐라고? 라고 되물었다. 노에미가 누군가 그녀를 치료했을 거 아니냐고 물으며 당신의 사촌인 플로렌스가 그녀에게 약을 주더라며 분명 의사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불쏘시개를 들고 타고 있는 장작들을 휘저으며 의사가 있다고, 그의 이름은 아서 커민스 (Arthur Cummins)이고 오랫동안 자신들의 주치의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의사는 카탈리나의 행동이 아무리 결핵에 걸렸다고 해도 이상하다고 생각치 않았느냐고 묻자 버질은 비웃듯이 웃으며 그녀에게 의학 지식이 있느냐고 물었다. 노에미가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모든 게 정상인데 자신을 이곳에 보낸 건 아니라고 말했다.


버질은 아니라고 그녀의 말을 부정하며 그녀의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를 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썼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그 말만 쓰고 또 썼다고 꾸짖듯이 말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마치 흉칙하고 공정하지 않은 사람처럼 얘기하는 것이 거슬렸다.


노에미는 의지보다 좀 더 강하게 자신이 카탈리나의 의사와 얘기하겠노라고 말했다. 그가 요구하는 거냐고 묻자 그녀는 요구가 아니라 걱정이라고 해두자고 말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이 문제는 정말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먹혔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버질은 아서가 카탈리나와 자신의 아버지를 보기 위해 매주 목요일날 방문한다고 했다. 노에미가 당신의 아버지도 아프시냐고 묻자 그는 자신의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그때까지 기다리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했고, 노에미는 빠른 시일 내에 떠날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이곳에 자신들과 함께 머무를 거냐고 물어서 노에미는 너무 오래 있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카탈리나가 자신이 필요한지 알게 될 때까지만 있을 거라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거슬리면 시내로 나가 숙소를 잡겠다고 하자 버질이 그곳은 매우 작은 도시라 호텔도, 게스트 하우스도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다른 이유로 왔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물론 노에미도 그곳에 호텔같은 게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는 했지만. 이집은 음울했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그랬다. 이런 곳에서는 어떤 여자도 병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질이 그녀에게 방은 맘에 드느냐고 물었고, 노에미는 괜찮다고,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이 좀 희귀한데, 아직 아무도 그것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자 버질이 카탈리나는 촛불이 로맨틱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노에미는 카탈리나는 그랬을 거라고 짐작이 갔다. 산꼭대기의 오래된 집, 안개와 달빛이 비추는 곳, 마치 그녀가 좋아했던 고딕 소설 속에 나오는 집 같은 이곳이 카탈리나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었다.


노에미가 와인 잔을 들고 손가락으로 옆을 만지작거리자 버질이 그녀에게 한 잔 더 따라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이미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편해져 반쯤 졸리게 만들어 괜찮다고 말하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 완고했다. 하지만 그는 한 잔 더 하라고 고집했다. 그녀는 다시 거절하며 방으로 가서 자겠다고 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동떨어져 있었지만 그녀를 아주 자세히 살펴보면서 조금 더 생기있게 변했다. 눈도 반짝거렸다. 그는 흥미있는 것을 발견한 것 같았다. 즉 그녀의 몸짓이나 쓰는 단어 등이 그를 뒤흔든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거절이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는 거절당하는 게 익숙치 않은 모양이었다. 하기는 많은 남자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부드럽고 정중하게 자신이 그녀를 방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그들은 아침식사를 침대로 가져다 주었다. 노에미는 그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식사 후, 노에미는 자신을 에워싼 우울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신중하게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하고 내려갔다.


'하이 플레이스' 는 확실히 어두침침했다. 햇빛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1층을 걸으며 문이 살짝 열린 두어 개의 방 문을 열자 그곳에는 흰색 천으로 덮힌 가구와 꽉 닫힌 휘장들, 그리고 공기중에 휘날리는 먼지뿐이었다. 여러 곳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서재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책꽂이에는 가죽 제본의 책들이 꽂혀 있었고, 여러 잡지들도 있었는데 이전 날 밤 하워드가 언급했던 유전학에 대한 것도 있었다. 먼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가장 유지가 잘 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인 것 같았다. 곰팡이가 핀 책들이 여러 권 있긴 했지만서재의 다른 쪽 끝에 있는 문은 커다란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책상 위엔 역시 유전학에 관한 연구 논문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표시가 된 부분을 읽고 난 후 책상 옆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그녀는 다음으로 플로렌스가 말했던 것을 더듬으며 부엌으로 갔다. 긴 의자에 70대로 보이는 여자와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서 버섯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도 그들은 쳐다보기만 할 뿐 아는 척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인사를 해도 그들은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여러 문 중에 하나가 열리고 어젯밤 식사 시중을 들었던 백발의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도 노에미에게 인사를 건네진 않았지만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서야 긴 의자에 앉았던 두 사람도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다시 버섯 손질로 돌아갔다. 노에미가 말을 걸려고 하자 남자가 자신들은 지금 일을 하고 있다고 그녀의 말을 잘랐다.


노에미는 하고자 했던 말을 삼키고 열린 문을 통해 부엌 밖으로 나왔다. 전날처럼 안개가 끼고 공기는 추웠다. 잠시 후 뒤에서 아침식사는 잘 했느냐고 묻는 프랜시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노에미에게 창고 등을 보여주고 이어 뒷쪽 공동묘지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면서 그녀를 데려갔다.


그곳은 잡초와 키큰 풀들로 덮여 있었고, 초목이 그곳 전부를 덮어버릴 것 같았다. 비석들은 이끼로 덮혀 있었고 무덤가에는 버섯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우울한 광경이었다. 그녀는 그곳에 묻힌 각 영혼들이 불쌍했다. 물론 '하이 플레이스' 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러다가 노에미는 한 묘비를 보고 역시 다른 묘비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모든 묘비에 모두 1888년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유를 묻자 프랜시스가 근처 광산이 멕시코 독립 때까지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었다가 은이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자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워드 할아버지는 생각이 달라 현대식 영국산 기계와 많은 수의 영국 일꾼들을 데리고 와 일을 다시 시작했고, 성공했다고 했다. 하지만 광산을 다시 연 2년 후 전염병이 돌아 대부분의 영국 일꾼들이 죽었고, 그들이 모두 그곳에 묻혔다고 했다노에미가 그 후에 하워드가 다시 영국인 일꾼들을 데리고 왔느냐고 묻자 프랜시스가 아니라고, 멕시코 일꾼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묻히지 않았고, 아마도 엘 트리운포에 묻혔을 거라고 하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자신은 잘 모른다고, 하워드 할아버지가 잘 안다고 말했다.


계속 위로 올라가자 앞에 도일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대리석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노에미가 누구냐고 묻자 프랜시스가 증조 할머니인 아녜스 (Agnes)와 아주 닮았다고 하면서 전염병 발병 때 역시 죽었다고, 그곳은 도일가 사람들이 묻힌 곳이라고 말했다.


노에미는 집 전체의 침묵뿐만 아니라 그곳의 침묵 역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얘기를 들은 프랜시스가 그녀에게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노에미는 영화, 음악, 댄싱 등등 얘기를 하자 프랜시스는 카탈리나와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녀가 좀 더 검다고 말하려는 거냐고 묻자 그는 아니라고,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그녀가 매력적이라고 하면서 카탈리나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노에미는 특별한 방식으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자신의 엄마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하면서,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라고, 엄마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훨씬 덜 돋보이고 평범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프랜시스는 그게 어떤 건지 안다고 하면서 버질이 가족의 계승자이고, 도일가의 빛나는 미래라고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은 외모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다. 프랜시스는 아주 말랐고, 눈밑의 짙은 다크 서클은 그의 창백한 안색 때문에 거의 멍으로 보일 정도였다. 반면 버질은 조각같은 외모에 전체적으로 훨씬 매력적이었다. 노에미가 버질이 부럽냐고 묻자 프랜시스는 버질의 언변이나 외모 혹은 그의 위치 등이 아니라 여기저기 여행다닐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고 했다. 자신은 가장 멀리 나가 본 곳이 엘트리운포라고 하면서. 버질은 여행을 많이 하는데 오래 나가 있진 않는다고, 그저 휴식 차원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비꼬는 기운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엘 트리운포 역에 데려갔고, 거기서 그저 역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신은 기차 시간표를 흝어보려고 애를 썼었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노에미는 버질이 35, 프랜시스가 그보다 10살이 어리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모두 '하이 플레이스' 에서 홈스쿨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로 가득 찼을 '하이 플레이스' 를 상상하다가 그것이 절대 허락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질문이 있다며 왜 식사 때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냐고 묻자 프랜시스가 하워드 할아버지가 아주 늙었고, 매우 섬세하며, 소음에 몹시 민감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소리가 쉽게 전달된다고 했다. 노에미가 그의 방은 윗층에 있으니 부엌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 라고 하자 프랜시스가 소음은 전달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프랜시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에 보이는 집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쨌든 그 집은 그의 집이고 그가 규칙을 정한 거니까, 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그리고 당신은 그걸 바꾸려고 시도해 보지 않았고, 라고 말하자 그가 약간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마치 지금까지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듯이. 그는 역시 체념한 목소리로 '' 라고 대답했다.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그들을 본 플로렌스는 나쁜 짓을 한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는듯 쳐다보았다.


그날도 카탈리나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노에미가 지난 번 봤을 때처럼 여전히 멍해 있었고 그것은 그녀의 집에 걸려져 있는 그림 속의 죽은 오필리아의 그 모습 같았다. 그래도 카탈리나를 볼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앉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사람들과 상황들을 얘기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카탈리나는 노에미에게 요즘 무엇을 하는지 물었고, 인류학에 관심이 있다는 그녀에게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카탈리나에게 글을 쓰는 것같진 않고, 요즘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집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노에미가 집을 레노베이션 할 계획이냐고 하면서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짓는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좀 섬뜩하고 몹시 추운 것 같지 않느냐고 묻자 카탈리나가 축축하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지난 밤 너무 추워 얼어 죽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축축한 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하자 카탈리나가 항상 어둡고 축축하고 그래서 몹시 춥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카탈리나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멍해 있던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롭게 빛나며 노에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노에미의 손을 잡고 몸을 앞으로 수그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부탁이 있는데 절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노에미가 약속한다고 하자 시내로 나가 마르타 듀발 (Marta Duval)이라는 여자를 찾아 약을 받아 오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무슨 약이냐고 묻자 카탈리나는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중요한 건 네가 그녀에게 가 약을 받아 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제발 그러겠다고,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대답해 달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언니가 원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자 카탈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노에미의 손을 너무 꽉 잡는 바람에 손톱이 노에미의 살을 파고 들 것 같았다.


노에미가 뭐라고 얘기를 하려 하자 카탈리나가 쉬, 하면서 그들이 듣는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누가 듣는단 말이냐고 묻자 카탈리나가 천천히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오며 노에미의 귀에 대고 벽 안에 있다고 소근거렸다. 노에미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카탈리나가 벽들이 자신에게 얘기를 한다고, 그들이 비밀을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에미에게 그들의 얘기를 듣지 말라고, 손으로 귀를 막으라고 했다. 이 집엔 유령이 있으며, 진짜라고, 곧 보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다가 그녀는 불쑥 노에미의 손을 놓더니 일어나 오른손으로 커튼을 잡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에미가 막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 순간 플로렌스가 방 안으로 들어와 닥터 커민스가 왔다고 하면서 노에미에게 거실에 나가 기다리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자신도 함께 있겠다고 했지만 닥터 커민스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거실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닥터 커민스가 버질과 함께 왔다. 노에미가 카탈리나의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의문점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그는 자세한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만난지 얼마 안 되어 바쁘다고 가야한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아직 용건이 남았다고 하면서 카탈리나가 이상해졌다고 하자 의사는 카탈리나가 엄마의 죽음 후 우울증에 걸렸었고, 그것이 지금 더 나빠졌다고 했다. 노에미가 그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라고 하자 그는 어떤 일들은 나중에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결핵이 사망선고는 아니지만 격리, 신체적 증상 등이 여전히 어떤 환자들에게는 우울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노에미가 불안해 하면 카탈리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노에미가 더 얘기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버렸다.


의사가 떠나고 노에미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곳에 함께 있던 버질의 표정은 혈관에 차가운 피가 흐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같았다. 그는 닥터 커민스는 아주 유능한 주치의라고 말했는데, 그 목소리는 그가 지구상에서 가장 훌룽한 의사든 가장 형편없는 의사든 전혀 상관없다는 투였다.


잠시 후 노에미가 카탈리나가 아프다면 멕시코 시티 인근의 요양 기관에서 적절하게 치료를 받으면 더 좋아질 거라고 말하자 버질은 자신이 아내를 보살피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노에미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 집은 너무 춥고 밖은 안개 투성이라고 행복감을 주는 광경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버질은 그것이 당신의 아버지가 준 미션이냐고, 이곳에 와 카탈리나를 뺏어 오라는 것이냐고 말했다.노에미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버질은 그렇게 들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집이 오래됐지만 예전엔 정말 반짝거리는 보석 같았다고 하면서 자신들도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고, 나이든 아버지도 적절하게 보살피고 있고, 자신의 아내에게도 그것보다 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노에미가 그렇더라도 자신은 여전히 카탈리나는 다른 문제로 전문가를 만나보기를 요구한다고 하면서 정신과 의사라든지, 라고 말하자 버질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것은 불쾌한 웃음이었다. 그는 싸울듯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도대체 이 도시 어디에서 정신과 의사를 찾을 거냐고, 시내에는 병원이 하나밖에 없으며, 정신과 의사를 데려오려면 페추카나 멕시코 시티까지 가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최소한 시내의 의사에게 이차 진료 소견을 들어볼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카탈리나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하자, 버질이 왜 자신의 아버지가 영국에서 의사를 데려온 줄 아느냐고, 이 도시는 가난하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도 천박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의사들이 모여들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에미가 하지만 자신은 계속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버질은 알았다고, 그녀가 그렇게 고집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면서 기분나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원하는 걸 대부분 당신의 방식대로 얻지 않았느냐고, 당신의 아버지도 당신이 원하는대로 해주었고, 남자들도 그렇고, 라고 말했다. 그녀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싸우고 싶지 않다며 할 수 있으면 이차 소견을 얻어 보라고 차갑게 말하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날 밤 노에미는 꿈에 벽에서 퍼져 나오는 노란 불빛과 꽃처럼 피어나는 버섯, 그리고 한 여인을 보았는데, 그녀가 막 소리를 치려고 하는 순간 보니 입이 없었고, 노에미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다음 날, 노에미는 프랜시스를 구슬려 그의 차를 빌려 시내로 나가 하나밖에 없는 병원으로 가 닥터 카마리요 (Julio Camarillo)를 만나 카탈리나의 상황을 얘기하고 진찰을 청했다. 아주 젊은 그 닥터는 엘 트리운포에서 결핵은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환자가 '하이 플레이스' 에 산다고 하자 그곳이라면 자신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두 번의 전염병이 돌았었는데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당시 하워드가 죽은 멕시코인들을 제대로 묻어주지도 않고 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엔 주치의가 따로 있으니 왕진을 갈 수 없다고 했다. 후폭풍이 두렵다며. 그는 노에미의 부탁을 몇 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노에미의 우는 연기에 그렇게 하기로 맘을 바꿨다.


잠시 후, 노에미는 그에게 마르타 듀발의 집을 물어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카탈리나 때문에 찾아 왔다는 노에미에게 '하이 플레이스' 는 저주받은 곳이라며 카탈리나가 악몽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얘길 듣고 잠을 자야한다고 충고했다고 말했다. 노에미는 자신도 지난 밤 이상한 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노에미가 왜 그곳을 저주 받은 곳이라고 하느냐고 묻자 마트라 듀발은 그녀에게 도일가의 사가 (saga)에 대해, 특히 결혼식 전날 가족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한 후 자살한 하워드의 딸 루스 (Ruth)와 협곡에서 죽은 채 발견된 프랜시스의 아버지 로버트 (Robert)에 대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노에미에게 플로렌스는 외출과 담배 문제로 꾸짖고, 하워드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노에미는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가 첫 번째 아내가 전염병으로 죽고 난 후, 그녀의 쌍동이 동생과 재혼했다는 걸 알게되고, 나중에 다시 찾아간 마르타를 통해 하워드의 딸 루스가 하워드 동생의 아들, 즉 사촌인 마이클 (Michael) 과 약혼했지만, 하워드의 은광산에서 파업을 주동하다 죽은 멕시칸 일꾼의 조카인 베니토 (Benito)와 사랑에 빠지게 됐고 그것을 하워드가 알게 된 얼마 후 베니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한편, 프랜시스와 노에미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지만, 플로렌스는 노에미에게 프랜시스에게 쓸데없이 도시 생활이며, 파티 같은 얘기를 하지 말라고, 그것들이 프랜시스에게는 고통이라고 경고한다. 자신도 한때 이곳을 떠나 남자를 만났고, 그 사람이 이곳에서부터 멀리 자신을 떠나게 해 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결국 이곳에 다시 있게 되었을 뿐이라고, 프랜시스도 그의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그런데, 처음 입이 없는 여인의 꿈을 꾼 이후 노에미 역시 계속 악몽을 꾸며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어느 날 밤엔 꿈에 기묘한 소리와 함께 죽은 루스를 보고 함께 걷다가 복도에서 버질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가 어린시절 갖고 있었던 몽유병이 다시 찾아왔다고 얘기한다. 또한 프랜시스는 노에미에게 하워드는 괴물이며, 플로렌스도 버질도 믿지 말라며 빨리 그 집에서 떠나라고 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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