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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의 작은 서재

Hamnet by Maggie O`Farrell Margaret Kim (margaret7630) 2021-3-30  15:16:16

Hamnet


By


Maggie O'Farrell




1580년경, 영국 스트랫퍼드 (Stratford)의 헨리 스트릿 (Henley St.)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맏딸 수산나 (Susanna), 그 아래로 이란성 쌍동이인 햄넷 (Hamnet)과 주디스 (Judith), 이렇게 세 아이들이 있었는데, 아들 햄넷은 1596, 11살 때 세상을 떠났다. 4년 후, 소년의 아버지는 『햄릿』(Hamlet)이라는 연극을 썼다.

셰익스피어 연구가이며 역사학자인 스티븐 그린블랏 (Steven Greenblatt)New York Review of Books에 발표한 「헴넷의 죽음과 햄릿의 탄생」이라는 글에서 스트렛퍼드 기록을 보면 16세기와 17세기 초 HamnetHamlet은 같은 이름으로 번갈아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 (20041021).


어느 늦여름 날, 햄넷은 윗층에서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항상 그랬듯 마지막 세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 내려오다가 착지하는 순간 넘어져 판석에 무릎을 찧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그날 햇빛은 불길처럼 더웠고 아래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친 무릎에 욱씬거리는 통증을 느끼며 밖으로 나와 거리로 나섰다. 행상 수레, , 가판대, 그리고 서로를 부르는 사람들의 소음, 윗쪽 창문에서 자루를 던진 사람, 이 모든 것들이 지금 그의 관심밖이었다. 그는 조금 걸어 옆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 집에서는 항상 똑같은 냄새가 났다. 나무 연기, 광택제, 가죽, 양털 등이 뒤섞인 냄새였다. 그것은 좀 더 큰 집과의 좁은 틈 사이에 할아버지가 세운 방 두 개짜리 아파트인 자신의 집에서 나는 것과 비슷했지만 뭐라 말할 수 없게 좀 달랐다. 그곳엔 그가 엄마와 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때때로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 집은 욋가지로 엮은 벽으로 분리되어 있을 뿐인데 각각의 공기가 다른 종류, 다른 향, 다른 온도를 갖고 있었다. 또한, 할아버지 집은 항상 공기 중에 들려오는 잡동사니, 작업장에서 들려오는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와 망치질 소리로, 뿐만 아니라 창문에서 꽝광치며 손님을 부르는 소리, 뒷마당에서 들려오는 소음, 그의 삼촌들이 왔다갔다 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햄넷은 통로에 서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작업장엔 아무도 없었고, 작업대에 있는 의자는 비어있었으며, 도구들은 카운터에 그대로 놓여져 있었고, 버려진 장갑을 모아둔 통이 지문처럼 남겨져 있었다. 판매대 창 역시 굳게 닫혀져 잠겨 있었다. 취사장에도 아무도 없었다. 냅킨 더미가 긴 탁자 위에 쌓여져 있었고, 불꺼진 초와 깃털 더미가 있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한편으론 인사이고 한편으론 질문같은 소리로 크게 외친 다음 고개를 기울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무도 없는 집의 뭐라 말할 수 없는 소음뿐이었다. 소년은 다시 그집에 사는 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할머니, 가정부, 삼촌들, 숙모, 도제, 할아버지. 그들 이름을 모두 불렀다. 한 순간 아버지 이름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그는 아버지를 큰 소리로 불렀지만, 그의 아버지는 수 마일, 수십 시간, 몇 날 며칠 떨어진 런던에 있었고, 소년은 그곳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다른 가족들 모두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평상시 낮엔 집을 떠나지 않고, 작업실에서 제자들을 괴롭히거나 원장에 자신이 번 것을 기입하느라 작업실에 있는 할아버지도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작업실 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지 휙 어깨 너머로 한 번 더 확인을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장갑 제조 작업실은 그가 잘 들어가지 못했던 곳이었다. 통로에 멈춰 서 있는 것도 안 됐다. 거기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할아버지는 빈둥거리며 거기 서있지 말라고 고함을 쳤을 것이다.


햄넷은 산만했다. 수업을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가 들은 것에 대한 논리와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고, 선뜻 암기했다. 동사와 문법 그리고 시제와 미사여구, 숫자와 계산 등을 쉽게 해내어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쉽게 산만해졌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거리에서 마차가 지나가면 저 마차는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싣고 가는지, 그의 삼촌이 누이들과 함께 짚마차를 태워줬을 때 얼마나 신났었는지 등등 생각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다. 최근 일주일에 두어 번 이상 집중하지 않는다고 선생님께 매를 맞기도 했다. 할머니는 만약 한 번만이라도 더 그런 일이 생기면 그의 아버지한테 이르겠다고 했다.


교사들은 햄넷이 빨리 배우고, 암송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공부에 전념하지 못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하늘을 나는 새소리는 그로 하여금 말을 하다가 멈추게 했고, 방에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그가 뭘하고 있었던 간에 하던 것들을 멈추고 마치 그 사람이 자신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러 온 것처럼 그들을 응시했다.


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실제적이고 감지할 수 있는 세상의 한계를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육체적으로 한 공간에 있지만 그의 정신 속에서 그는 그만이 아는 어딘가 다른 곳에, 누군가 딴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를 향해 손가락으로 딱소리를 내며 정신차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누이인 수산나는 귀를 찰싹 때리며 돌아오라고 야유했으며, 선생님은 주의하라고 소리쳤다. 그가 마침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면 주디스는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 그가 주위를 돌아보며 자신이 집으로, 그의 책상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 엄마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마치 그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반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확히 그와 같은 경우로, 지금, 햄넷은 장갑 공장의 금지된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무얼 하려고 했었는지 잊어버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가 들어선 장소에서, 주디스가 몸이 좋지 않으니 그녀를 돌봐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 그의 엄마나 할머니 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누군가를 찾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작업장에는 가죽들이 레일에 걸려있었다. 그는 그것들이 각각 무슨 가죽인지 식별할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작업장을 둘러 보다가 실과 단추들이 들어 있는 서랍을 열려고 하자 끽끽 소리가 났고, 그는 깜짝 놀라 즉시 밖으로 나와 통로를 지나 마당으로 갔다. 그제서야 자신이 뭘하고 있었는지 생각났다. 작업장을 돌아보려고 한 게 아니라 주디스가 아프니 그녀를 보살필 누군가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 말이다.


그는 취사장, 양조장, 세탁장 등등 하나씩 하나씩 문을 두드렸다. 그곳들 모두 비어 있었다. 그는 다시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혼자라는 게 너무 어리둥절했다. 그는 마당에 서서 좌우 사방을 다시 살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두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햄넷은 문을 통해 뒤로 돌아가 통로를 따라 본가로 갔다. 그가 막 거리로 나서려고 할 때 소음이 들렸다. 그것은 찰깍 하는 소리이거나 잽싸게 움직이는 소리로, 아주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분명 그건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햄넷은 '누구 있어요?' 하고 소리치며 기다렸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누구세요?' 하고 다시 소리쳤다.


잠시, 아주 잠시, 그는 그 사람이 아버지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거웠다.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 런던에서 돌아온.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문 뒤에 있을 수도 있었다. 숨바꼭질 게임처럼. 햄넷이 방으로 들어가면 아버지가 펄쩍 나올 것이다. 그는 가방에, 지갑에 선물들을 담아 올 것이고, , , 그리고 오랫동안 길에 있었던 사람의 냄새를 풍길 것이며, 햄넷을 꺼끌꺼끌한 조끼에 밀착되게 꼭 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닐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라면 여러 번 부르는 소리에 답변을 했을 것이고, 텅 빈 집에 숨어있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햄넷은 거실로 나가 존 (John) 할아버지가 높이가 낮은 테이블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웅크린 자세로 뭔가를 만지작거리며 쇳소리가 나는 숨을 쉬며.


햄넷이 조용히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내자 할아버지가 휙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사납고 화난 표정이었다. 그는 공중에서 팔을 휘두르며 거기 누구냐고 소리쳤다. 햄넷이 저에요,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다시 누구라고? 하고 말했다. 햄넷이 저에요, 라고 하면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좁은 빛줄기로 나가 햄넷이에요,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자신을 놀래켰다고 하면서 슬그머니 들어와 뭐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햄넷이 죄송하다며 여러 차례 사람들을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주디스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데 할아버지가 그의 말을 자르며 모두 나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뭐하러 여자들을 찾느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주전자를 들고 술을 따르다 얼마는 컵에 얼마는 테이블 위의 종이에 쏟고 욕을 내뱉었다. 햄넷은 할아버지가 술에 취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햄넷이 그들이 어디 갔는지 아느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여전히 종이를 닦으며 뭐라고? 하고 말했다. 종이를 망친 것에 대한 그의 분노가 그에게서 뻗어나오는 것 같았다. 양날 칼처럼. 햄넷은 그것의 끝이 적을 찾으며 방안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그가 뭘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화난 소리로 거기 얼빠진 채 서 있지 말고 자신을 도우라고 말했다. 햄넷은 서둘러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 순간, 그의 아버지의 말이 머리 속에서 빙빙 돌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블랙 유머를 할 때면 그에게서 멀어지라고 하면서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뚝 떨어져 있으라고 강조했었다.


지난 번 아버지가 방문했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던 당시, 그들은 무두질 공장에서 온 것들을 마차에서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할아버지가 가죽 더미를 진흙 바닥에 떨어뜨렸고, 순간 버럭 화를 내면서 과도를 마당 벽을 향해 던졌다. 아버지는 즉시 햄넷을 끌어당겨 거칠게 자신의 등뒤로 숨겼다. 하지만 존 할아버지는 그들을 밀치고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햄넷의 아버지는 양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잡고 가만히 살피며 할아버지는 너의 누이들은 손대지 않겠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너, 라고 말했다. 햄넷은 아버지가 자신의 머리를 그렇게 잡고 있는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싶었다. 그 순간은 그에게 밝음과 안전을, 그리고 자신이 온전히 인식되고 보물처럼 여겨졌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동시에 그의 안에 있던 억누른 듯한 불안감이 씻겨졌다. 아버지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 자신이 여기 없을 때 네가 안전한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햄넷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 할아버지는 뚝 떨어져 있고, 벽난로 반대쪽에 있었다. 헤치려 한다고 해도 햄넷이 있는 곳까진 닿지 못할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한쪽 손엔 컵을 들고 마시면서 다른 쪽 손으로는 종이를 들고 흔들며 물방울을 털었다. 그러더니 이거 받아, 라고 하면서 종이를 그에게 내밀었다. 햄넷은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발은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잡았다. 할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또 다른 종이를 내밀며 받으라고 했다. 햄넷은 같은 방식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가 얼마나 그를 자랑스러워 할 것인지, 그가 얼마나 기뻐할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할아버지는 여우처럼 재빠르게 햄넷을 향해 돌진했다. 모든 게 너무나 빨리 벌어진 일이라 햄넷은 나중에 생각해 봐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종이가 둘 사이에서 나부꼈고 할아버지의 손이 햄넷의 손목을 나꿔챈 다음 팔꿈치를 잡고 끌어당겼다. 컵을 들고 있던 할아버지의 다른 손이 빠르게 다가왔다. 햄넷은 눈가에서 붉고 오렌지 빛 불빛이 반짝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아픔이 느껴졌다. 그것은 날카롭고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은 아픔이었다. 컵의 가장자리가 햄넷의 눈썹 바로 아래를 강타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몰래 다가간 댓가라고 말했다.


햄넷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할아버지는 그런 햄넷을 보고 찌질하게 애처럼 우느냐고 했다. 할아버지는 햄넷을 놔주며 그의 아버지처럼 못됐다고 하면서 항상 울고 짜증내고 불평한다고 말했다. 햄넷은 뒤로 도망치다 거실 침대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었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근성도 없고, 감각도 없다고, 그것이 항상 그의 문제라고, 어떤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밖으로 도망친 햄넷은 거리를 달리며 눈물을 닦고, 소매로 피를 닦았다. 그는 집으로 가 계단을 올라 윗층 방으로 갔다. 부모님 침대 옆 돗자리에 주디스가 누워 있었다. 그가 손을 잡고 이름을 부르며 괜찮냐고 묻자 주디스가 눈을 떠 잠깐 그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으며 졸린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어떻냐고, 좀 나았느냐고 묻자 주디스가 조금 움직였다.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손가락에 감았다. 그리고 잠시 뺨을 들었다가 내렸다. 햄넷은 그녀의 목 아래에 가래톳이 있는 걸 보았는데, 어깨와 목이 만나는 곳에 하나가 더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움직이며 뭐라고 말했다. 햄넷이 몸을 그녀 가까이 굽히며 뭐라고? 라고 하자 그녀가 얼굴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가 눈썹에 손을 대자 부어오른 게 느껴졌고, 새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는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급히 의사를 찾아봐야 겠다고 하면서, 금방 오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엄마를 묻는지 햄넷은 엄마가 오고 있다고, 멀리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의 엄마 아녜스 (Agnes) 1마일 넘은 곳에 있었다.


그녀는 휴랜즈 (Hewlands) 농장에 있는 동생에게 빌린 조그마한 땅에서 꿀벌을 키우고 있었다. 그날은 동생이 불러서 왔다. 그가 보낸 양치기 심부름꾼 소년에 의하면 꿀벌에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벌집을 떠나 나무에 모여 있다고 했다.


아녜스는 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려고 벌집을 돌아보았다. 벌떼는 난에 모여 있었는데, 뭔가가 그들을 기분 나쁘게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바구니에서 벌집을 꺼내 살펴보았다. 거기에도 심장 모양의 노랑색 줄무늬로 장식된 갈색 날개를 가진 수백 마리의 벌이 함께 붙어 있었다. 그녀는 연기를 내고 있는 로즈마리 꾸러미를 들고 벌집 위로 가만히 흔들었다. 벌들이 일제히 떨어져 그녀의 머리 위에서 떼를 지었다. 그녀는 꿀을 긁어낸 연한 밀랍을 아주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넣었다. 꿀은 아주 천천히 떨어져 그녀가 내민 단지 안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새가 조용히 지나간 것처럼 공기가 바뀌었다. 아녜스는 아직 쪼그리고 앉은 채로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고, 그 바람에 꿀이 그녀의 손목으로 떨어져 손가락 위로 흘렀다가 단지의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쌀을 찌푸리며 벌집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빨며 일어섰다. 저 멀리 그녀의 둘째 남동생이 말이 다니는 길을 따라 양을 몰고 있는 게 보였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리고 일생 동안 내내, 그녀는 만약 그때 그곳을 떠났었더라면, 만약 그녀가 즉시 집으로 갔더라면, 만약 그녀가 갑작스럽고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편함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다음에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있었을텐데, 라고 후회할 것이다. 만약 그녀가 무리지어 있는 벌들을 그들의 벌집에 돌아가도록 애쓰는 대신, 그들만의 장치에 맡겨 스스로 마무리짓도록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썹 위와 목에 맺혀 있던 땀방울을 찍어내며 바보처럼 굴지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편, 햄넷은 거리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에게 의사의 집이 어딘지 물어 그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에게 문을 열어준 여자가 의사는 환자를 보러 다른 곳엘 가서 없다고 하며 문을 닫아 버리려고 했다. 햄넷이 자신의 누이가 몸이 좋지 않다고 하자 문을 단단히 붙들고 있던 여자가 그를 가만히 쳐다보며 어느 정도 아프냐고 물었다. 햄넷이 담요 위에 누워 있던 창백한 주디스를 떠올리며 모르겠다고 하면서 열이 있고, 침대에 누워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며 열이 있다고? 하면서 혹시 그녀의 목과 겨드랑이 같은 곳 피부 밑에 가래톳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차가운 공포가 즉시 햄넷의 심장을 감싸며 가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햄넷을 보며 그 여자의 찌푸림이 깊어졌다. 그녀는 햄넷을 밀어내며 지금 당장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문을 닫으면서 아주 좁은 틈으로 그가 누구 손자인지 안다고, 의사에게 돌아오는 길에 너의 집에 들르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뒤돌아 보지도 말고 곧장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는 달렸다. 그는 그녀가 말했던 그 '가래톳' 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했다. 그는 그 단어를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그것을 말하기도 싫었고 머리 속에 조차도 그 단어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햄넷은 대문 앞에 도착해 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으며 누군가를 부르며 아무나 집에 왔을 거라고, 그리고 자신의 부름에 답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있을 거라고.


그런데, 잠시 전, 그가 모르는 사이, 햄넷은 의사를 찾으러 가면서 하녀와 조부모, 그리고 수산나를 지나쳤다. 메리 (Mary) 할머니는 강 근처 아래로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배달을 다녀 오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그녀의 뒤를 수산나가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존 할아버지는 남자들과 함께 조합 회의실 밖에 있었는데, 만약 햄넷이 의사의 집에 가면서 고개를 돌렸더라면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붙잡고 술집으로 가자고 하는 걸 볼 수 있었을 것이었다.


존은 초대받지 못했지만 조합 모임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고,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그들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왔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다시 회복되는 것, 그가 한때 가졌던 그 지위를 다시 획득하는 것, 그것만을 원했다. 그는 할 수 있었고,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건 오랫동안 알아왔고 그가 누구인지 아는, 그의 사업과 이 도시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아는 그 사람들의 귀였다. 아니, 최소한 조합과 시 당국자로부터의 사면이나 모르쇠였다. 그는 한때 집달관이었고, 그 다음엔 고위 시의원으로 일했다. 그는 교회의 앞좌석에 앉았고 주홍색 옷을 입었다.


이 사람들은 그것을 잊었단 말인가? 어떻게 이 모임에 자신을 초대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들을 호령했었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큰 아들이 런던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존의 사업은 아직 어느 정도는 괜찮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상 장갑이 필요했으므로. 만약 이 사람들이 그가 양모를 거래했던 비밀과 교회에 가지 않는 것에 대한 소환장, 쓰레기를 거리에 버린 것에 대한 벌금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해도 괜찮았다. 다시 말해서 존은 그들의 반감, 그들의 벌금과 요구, 그의 가족의 파괴에 대한 비방, 조합 모임에서의 배제 그런 것들은 단번에 받아 들일 수 있었다.


존이 참을 수 없는 건 그들 중 아무도 그와 함께 한잔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그의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의 난로 근처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합 회의실 밖에서 사람들은 그의 눈을 피하며 자기들끼리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멀리서 고개를 까닥하고 멀어졌다. 그래서 그는 혼자 술집에 갔고, 아주 잠깐 동안만 그곳에 있다가 돌아와 반은 빛이 들어 오고 반은 어두운 거실에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자신의 집 윗층 방에서 주디스는 몹시 앓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들끓는 열에 헛것을 보기도 했고, 비몽사몽 중에 아버지를 만나 그의 왼쪽 귀에 걸려 있는 귀고리를 갖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 순간, 이틀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런던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는 비숍게이트 (Bishopgate)를 따라 강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는 그곳의 노점에서 파는 케잌 하나를 사려고 했다. 그날 그는 아침에 몹시 배가 고파 잠에서 깼다. 아침에 죽을 먹었고 점심에 파이 한 조각을 먹었지만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는 돈을 쓰는 데 매우 신중했다. 꼭 써야할 곳에만 썼다.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걸로 그를 놀렸다. 사람들은 그가 침대 밑 자루에 금을 숨기고 있다고 했고, 그 말은 들은 그는 웃었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버는 건 모두 스트렛포드로 보냈고, 그가 갖고 있는 건 여행을 해야 할 경우 잘 싸서 안장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꼭 필요한 곳 아니면 은화 한 닢도 낭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그 케잌은 너무나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수산나와 메리 할머니는 집으로 오는 도중 같은 교회 신자인 한 여자를 만나 얘기하는 중이었다. 할머니와 그 여자는 서로 팔을 다독거리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수산나는 그 여자가 할머니를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 그 여자는 계속 이쪽 저쪽을 돌아보며 혹시 자신이 메리와 대화를 나누는 걸 누군가 보지 않나 살폈다. 수산나는 시내에 한때 그들의 친구였지만 지금은 그들을 피해 거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수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녀의 할아버지가 교회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벌금을 받은 이후로, 많은 동네 사람들이 아예 그들을 모른 척하며 지나갔다. 수산나는 할머니가 어떻게 위치를 잡고 그 여자가 그들을 피해갈 수 없이 얘기를 하게 만드는지 보았다. 그녀는 그것을 내내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는 불이 났고, 검은 화상 자국을 남겼다.


한편, 15년전, 한 라틴어 교사가 휴랜즈 농장의 한 건물 창가에 서서 나무들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의 뒤로 남자 아이들이 앉아서 라틴어 동사 활용법을 합창하고 있었다. 교사는 그들의 합창 소리에 귀기울이는 대신 아주 파란 봄 하늘과 숲의 나무의 새롭게 난 초록색 이파리들의 놀라운 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그를 스쳐 지나갔고,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 교사는 어떤 식으로 농장 주인에게 빚을 진 장갑 장수인 그의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일주일에 두 번 그곳에서 그집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 소작농과의 좋지 않은 합의 혹은 거래를 한 후부터였다. 그러다 그 농부가 작년에 미망인과 일고여덟 명의 아이들을 남겨 두고 갑자기 죽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라틴어 교사는 밤 늦은 시간에 어쩌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는 얘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소작농의 미망인은 아무 것도 모를 거라고, 만약 안다고 해도 감히 자신에게 와서 약속을 이행하라고 하지 못할 거라고 하면서 제멋대로 자란 그집 바보같은 큰아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소작농이 한 합의는 아버지가 그 농부의 양가죽의 위탁 판매를 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소작농에게 가죽은 멍에를 만들기 위해 보내질 것이라고 말했고 그 농부는 그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양모는 남겨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농부의 의심을 샀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를 일으킨 바로 그 원인이 되었다.


그의 장갑 장수 아버지는 새롭고 약간은 불법적인 모험을 했다. 그들 중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그들 부모는 사람들이 물어보면 양가죽은 장갑용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와 동생들은 그 가죽들은 장갑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원한 게 무엇이었을까?


예전, 어느 겨울날, 마당에서 장갑을 포장하고 있다가 그가 아버지에게 왜 다락방에 양모 더미가 쌓여 있으며, 그것들의 용도가 무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마차 너머로 몸을 숙여 아들의 조끼를 움켜잡고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그를 흔들며 이집에는 양모 더미는 없어, 알겠어? 라고 말했다. 라틴어 교사는 눈도 깜박하지 않고 아버지의 눈을 보며 천천히 뒤로 물렀다. 그리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움켜 쥐고 있던 아들의 조끼를 놓으며 너와 상관 없는 것에 대해선 말하지 말라고 말하고 다시 포장하는 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참았던 숨을 쉬었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그가 지불할 수 없는 빚 혹은 벌금이 있었고, 그 농부의 미망인 혹은 아들은 그것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래서 라틴어 교사 그 자신이 바로 지불금이 된 것이었다. 그의 시간, 그의 라틴어 문법, 그리고 그의 뇌가 말이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고 그의 아버지가 말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개울을 따라 양떼들로 둘러 싸여 있는 이곳까지 오랜 시간 걸어 와야 했다.


그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했다.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이 거미줄에 대해서 말이다. 어느 날 저녁, 식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 무렵, 아버지가 그를 작업실로 불러 휴랜즈로 가 그곳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라고 말했다. 그는 문지방에 서서 아버지를 쏘아보았다. 그가 이 일은 언제 계획된 거냐고 묻자, 엄마와 함께 다음 날 작업을 위해 도구들을 준비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신경쓰지 말라며, 그저 네가 가야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가 만약 자신이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그의 말을 못들은 척 긴 칼을 칼집에 넣었다. 그의 엄마는 흘낏 남편을 봤다가 아들을 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의 아버지가 다시 천조각을 내려 놓으며 넌 갈 거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그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맘에 그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와 거리로 달려 나갔다. 그의 아버지를 치고 싶은, 그의 신체에 어떤 식으로든 해를 가하고 싶은 욕망이 걷잡을 수 없었다. 그들 여섯 자식들은 아버지의 성미 때문에 때때로 매를 맞았다. 하지만 특히 큰아들인 그에게 만큼은 그것이 지속적이었고 심했다. 그는 왜 아버지가 항상 그에게 화가 나 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항상 느닷없이 손으로, 회초리로 그를 때렸다. 매를 맞고 있는 동안엔 무력한 굴욕을 느끼며 분노의 감정이 온몸을 흠뻑 적셨다.


그의 아버지의 분노는 느닷없었고 즉시 주먹이 나왔다. 패턴도 없었고, 경고도 없었으며, 이유도 없었다. 그를 공격하는 데에는 두 번 같은 경우가 없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런 돌발 사태와 그의 아버지의 주먹을 피하기 위한 일련의 속임수와 술수를 배웠다. 말하자면 그는 아버지의 기분과 표현을 읽는 전문가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밖에서 들어올 때의 문소리, 판석을 밟는 발자국 리듬 등을, 혹은 그가 때릴 것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해 무렵부터 그는 아버지보다 키가 더 컸다. 그는 더 강했고 더 젊었으며 더 빨랐다. 시장을 다니고, 가죽이나 완성된 장갑들을 나르느라 몸도 근육질이 되었다. 최근 그의 아버지의 매질이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몇 달 전, 아버지가 저녁 늦게 작업실에서 나오다가 아들이 통로에 서 있는 걸 발견하고 그를 제압하더니 들고 있던 포도주담는 가죽 부대로 아들의 얼굴을 때렸다. 그 아픔은 따끔하다든지, 아프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날카롭고 채찍질 수준의 살이 찢어지는 아픔이었다.


그는 얼굴에 붉은, 찢어진 자국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더니 다시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그때 그가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밀었고, 놀랍게도 상황이 반대로 되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의 괴물이었던 아버지를 쉽게 벽으로 밀었다. 그가 아버지의 팔을 흔들자 포도주 가죽 부대가 그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아버지를 내려다 보며 이번이 자신을 때린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는 휴랜즈의 창가에 서서 떠나는 것, 복수하는 것, 도망쳐야 한다는 필요성을 아주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농부의 미망인이 그를 위해 가져다 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떠나야 한다고,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가능하면 그곳으로부터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교실에는 아이들의 라틴어 동사 활용법 합창이 계속 되고 있었다. 그가 막 뒤를 돌아 아이들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데 나무 뒤에서 어떤 사람이 튀어 나왔다. 잠시 그는 그 사람이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자를 쓰고 가죽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긴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는 부츠를 신고 남성미를 내뿜으며 나무 뒤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앞으로 뻗은 그의 손에는 새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라틴어 교사는 매 사냥을 하는 이 청년이 농장의 잡역부 같은 사람일 거라고 상상했다. 혹은 그 가족의 친척으로 방문하러 온 사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그는 어깨 너머로 늘여뜨려진 땋은 머리가 허리까지 닿고, 조끼는 배 중간 부분 쏙 들어간 곳 주위가 타이트하게 묶여 있고, 한데 모아 묶은 치마가 스타킹 주변까지 내려온 것을, 그리고 모자 아래에 있는 창백하고 둥그런 얼굴을 보았는데, 아치 모양의 눈썹과 두툼한 붉은 입술이 보였다. 그는 창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창틀에 기대어 그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걸 보았다. 그녀의 주먹 위엔 새가 여전히 앉아 있었고, 잠시 후 그녀는 농장 안마당으로 사라졌다.


그는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의 이마에 잡혔던 주름이 사라졌고, 듬성듬성난 수염 아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뒤로 교실이 조용했다. 그는 수업, 소년들, 동사 활용을 상기했다. 그는 뒤로 돌아 아이들에게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아이들에게 한 문장을 제시하며 그것을 라틴어로 바꾸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다시 애를 쓰기 시작했다. 힘들어 하는 애들을 보며, 그는 도대체 라틴어를 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아버지와 형처럼 농부가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라틴어가 그 자신에게는 유용했는가? 수년 동안 문법 학교를 다녔지만 지금 그는 어떤가?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 양치기의 아들들에게 동사 활용법과 단어의 순서나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는 아이들이 과제를 반쯤 끝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슬쩍 새를 데리고 다니는 저 하녀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들 중 좀 더 어린 아이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9살로 형보다 더 똑똑했다. 형이 새라고요? 그녀는 새를 갖고 있지 않아요, 그렇지? 라고 말하면서 동생을 바라보았다. 선생은 그래? 라고 대답하고서도 순간 매의 얼룩덜룩한 황갈색의 깃털이 보였다. 그리고 아마 내가 잘못 보았나 보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이 화급히 돼지와 닭들을 돌보는 헤티 (Hettie)가 있다고 말하며 닭도 새가 아니냐고 말했다.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모든 게 전과 같았다. 바람, 나무, 잎파리 등등.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저분한 암양들, 숲 가장자리에 연결된 잘 정리된 땅. 그 처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뻗은 팔 위에 있었던 게 닭이었을까? 그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늦게, 강의가 끝난 후, 그는 그집 뒷쪽으로 갔다. 그는 집까지 가는 긴 도보 여행을 시작해야 했지만 그 처자를 한 번 더 보고 싶었고, 그녀와 얘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또 그 새를 가까이서 살펴보고,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그는 벽쪽으로 가면서 그집 창문을 올려다 보았다. 물론 그가 농장 안마당으로 들어갈 명분은 없었다. 소년들의 엄마가 그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아차린다면 그를 쫓아 낼 수도 있었다. 이곳에서의 그의 일자리도 잃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그의 아버지가 농부의 미망인과 맺었던 협상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그를 멈추게 하진 못했다. 그는 그 젊은 처자와 땋은 머리, 그리고 그녀의 매를 생각했다. 이 음울하고 끔찍한 곳에서 아이들에게 라틴어 가르치는 일이 어쩌면 견딜 수 있게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의 수업이 끝난 후의 몰래 연애를 상상했다. 그는 한 순간도 그녀가 그 집의 맏딸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불시에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어깨 너머로 그 집의 창문을 보았고, 마굿간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왼쪽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문이 열렸고 바로 그 새를 데리고 있던 처자가 나왔다. 바로 그녀가 지금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그가 인사를 하자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등뒤로 문을 닫으며 휴랜즈에 무슨 볼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청명했고, 억양이 있었으며, 또렷했다. 그것은 즉시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맥박과 심장이 빨라진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라틴어를 가리치고 있다고 말하며 그것이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길 바랬다. 배운 남자라는, 말하자면 문자, 교육을 받은 남자라는 것이.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아, 그 라틴어 교사로군요, 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평범한 대답에 당황했다. 그녀는 전체가 혼란스러운 사람이었다. 나이를 추측하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그보다 약간 더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그녀는 하인처럼 거칠고 더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교양있는 여자처럼 말했다. 꼿꼿한 자세를 가졌고, 키는 그와 비슷했으며 머리도 그의 머리색만큼 까맸다. 그녀는 남자처럼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았지만, 자세는 얼마간 여성스러웠다.


그는 대담함이 지금 가장 좋은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당신의 새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인상을 쓰며 제 새라구요? 라고 말했다. 그가 아까 당신이 숲에서 나오는 걸 보았는데 팔에 새를 데리고 있었다고, 그 새는 매였다고 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이라고 말하자 그녀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걱정스럽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말라고, 오늘 새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는 게 금지됐었는데, 매가 너무 가만히 못있고, 너무 배고파 해서 오후 내내 가만 둘 수가 없었다고, 자신을 보았다는 것을 말하지 말 것을 거듭 확인했다.


그는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호기있게, 위로조로 말했다. 그녀가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의 팔에 손을 올리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그녀가 낯선 행동을 했다. 그녀의 손을 그의 손 위에 놓더니 엄지와 검지 사이의 피부와 근육을 잡고 눌렀다. 그것은 단단했고, 고집스러웠으며, 아프기도 하면서 이상하게 친밀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의 숨을 돌리게 했고, 그의 머리를 팽돌게 만들었다. 그는 이전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자신을 만진 적이 없었다. 그녀는 놀랍게 강했고 그 행동은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더듬거리는데 그녀가 즉시 그의 팔을 떨어뜨렸다. 그녀가 잡았던 그의 손은 뜨겁고 아주 벌거벗은 것 같았다. 그녀가 새를 보여주겠다며 치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도 당황해하며 따라 들어갔다.


안은 작고 어두침침한 좁은 방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곳에는 사과가 엄청 쌓여 있었다. 그가 막 그녀를 잡고 그에게로 끌어 당겨 어깨와 허리를 자신에게 밀착시키려고 할 찰나, 그리고 그녀도 같은 생각이 아니면 왜 자신을 이곳에 데리고 왔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찰나, 그녀가 새가 저기 있다고 말했다.


당황한 그에게서 벗어난 그녀가 앞으로 걸어가며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별채의 저쪽 끝의 키 큰 나무 말뚝 위에 바로 그 맹금이 있었다. 또 다른 부류이며 바람 혹은 하늘, 심지어 신화에 나오는 그런 생물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정말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가 감탄사를 내뱉자 그녀가 처음으로 웃으며 그것이 황조롱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 친구인 신부님이 새끼였을 적에 선물로 그녀에게 주었고, 거의 매일 날라다니게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고 했다.


그녀의 시선에 대담해진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당황하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한참 실갱이를 하다가 그에게 입을 맞추며 자신의 이름은 아녜스라고 말했다.


사실, 그녀는 동네에서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이 좀 이상하며, 특이한, 말하자면 미쳤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뒷길과 숲속을 마음대로 혼자 돌아다니며 식물들을 모아 수상쩍은 약을 만들어 돌리는데, 그녀가 그것을 쳐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죽일 수 있는 노파에게 배웠고, 그 노파가 사실은 그녀의 죽은 엄마이며 그녀는 죽은 숲속 마녀의 딸이라는 것, 그래서 그녀와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녜스의 엄마는 세 번째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죽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고 얼마 후, 동네 사람들의 소개로 조운 (Joan)이라는 여자와 재혼을 했고, 아녜스는 새엄마의 손에 자라며 구박을 많이 받았다. 새엄마는 좋은 건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만 주었고, 아녜스가 농장을 벗어나 숲으로 가는 걸 금지했으며, 만약 허락 없이 혼자 숲으로 간 걸 알게 되면 신발로 그녀의 종아리를 때렸다. 그리고 새엄마는 아녜스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면 그녀의 신발을 숨겨 버렸다. 그래서 아녜스는 민첩함을 배웠고, 눈에 띄지 않게 방을 통과하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이 다른 엄마는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모든 걸 기억했다.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왜 떠났는지를 제외하곤.


아녜스는 자신이 어떤 면에서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했고, 또한 어떤 사고나 불운, 예를 들면 접시를 떨어뜨린다든지, 뜨개질의 올이 풀린다든지, 빵이 부풀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들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동생 바르톨로메오 (Bartholomew)를 모든 삶의 나쁜 일로부터 방어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렇게 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일한 그녀의 핏줄이었다.


그녀는 안에 숨겨진 그녀만의 불꽃을 갖고 자랐다. 그것이 그녀를 어루만져 주었고, 그녀를 따뜻하게 해 주었으며, 그녀에게 경고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넌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꼭, 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라면서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새엄마도 그녀의 근처엔 얼씬거리지 못했다.


그런데, 아녜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한 가지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손에 매력을 느꼈는데, 항상 그것들을 잡고 자신의 손으로 느껴보곤 했다. 특히 엄지와 검지 사이의 근육을 누르면 그 사람의 능력과 한계, 그 사람의 본질에 대한 것, 말하자면 그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일고여덟 살 무렵에 이 능력을 알게 되었는데, 한 손님의 손을 그렇게 잡고 그 사람이 한 달 내에 죽게 될 거라고 말했고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그 외에도 여러 사례들이 있었다. 조운과 그녀의 아버지는 그 능력이 크리스찬의 것이 아니라고 걱정했다. 그들은 그녀에게 사람들의 손을 잡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이 기묘한 능력을 숨기라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것이 좋은 징조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뭔가 잘못됐고, 너무 어둡고, 너무 크며, 너무 제멋대로이고, 너무 독선적이며, 너무 말이 없고, 너무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또한 참을성이 없고, 짜증을 잘 내는 쓸모없는 인간이어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래서 결혼을 하려면 그런 자신을 깨부셔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와 더불어,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보여주었던, 적절하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어떤 것인지, 네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적절하게 사랑받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자랐다.


그녀는 이 생생한 기억을 다시 마주치게 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도망의 수단, 생존의 수단일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의 반대 의견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듣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이 돌에 나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빠져 나갈 수 있는 기회이자 그녀만의 방법일 것이므로.


그래서 그녀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필요가 없었다. 그 라틴어 교사의 손을 잡는 순간, 시내에 사는 어려보이는 청년에게서 전혀 기대치 않았던 뭔가가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그것. 그녀가 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을 정도로 그것은 아주 크고 아주 복잡했다. 그것은 그녀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거 이상이었다. 또한 그녀는 그를 붙잡고 있는 뭔가를 느꼈다. 그가 어딘가에 묶여 있고, 그것은 풀어져야 하거나 끊어져야 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가 이 환경에 완전히 정착하기 전에, 그가 받아들이기 전에.


하지만, 그들의 결합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밀스레 만나던 어느 날, 숲에서 데이트를 하고 나오다 둘은 아녜스의 새엄마와 마주쳤다. 그녀는 절대로, 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아직 어리다고 하면서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의 아버지의 얘기를 하면서 너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수상한 거래, 그의 수치에 대해서, 라고 말했다. 그녀는 너의 아버지가 시에, 그리고 자신의 집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 아느냐고, 넌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그들을 가르칠 거라고, 그의 빚을 다 갚을 때가 오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아녜스와 절대로 결혼할 수 없고, 아녜스는 곧 앞길이 창창하고 그녀를 부양할 수 있는 농부와 결혼 할 거라고 하면서 그녀의 아버지가 지참금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너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아녜스는 너처럼 무책임하고 직업도 없는 사내와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아녜스가 자신은 농부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소리치자 조운은 그래? 하고 비웃으며 그와 결혼하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아녜스가 그렇다고, 아주 많이 원한다고 하자 조운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라틴어 교사가 우리 둘은 이미 결혼을 약속했다고, 자신이 청혼하자 그녀가 대답했다고 우린 결혼할 거라고 하자 조운은 안 된다고, 자신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안 된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에 대한 소문을 들은 라틴어 교사의 동생 엘리자 (Eliza)가 라틴어 수업이 없던 날 그가 은신해 있던 다락방으로 찾아 왔다. 그곳에는 수많은 양모 더미가 눈에 안 띄게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무언가가 잔뜩 쓰여진 구겨진 종이가 있었는데, 문장을 쓰고 선을 그어 지우고를 반복한 종이였고, 오빠의 손가락엔 잉크가 묻어 있었다. 엘리자는 오빠가 그곳에서 비밀리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의 동생이었던 앤 (Anne)8살 때 전염병으로 죽은 뒤로 그곳엔 잘 가지 않았는데.


엘리자가 사람들이 라틴어 수업이 끝나고 그 여자와 함께 걷는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진짜냐고 물으며 아버지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그집에 빚을 지고 있으니 아버지는 그들의 이름 조차도 들먹이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을 자신은 믿지 않지만 그건 분명 문제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오빠에 대해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사람이라는 둥, 그렇게 나이도 있고 거대한 지참금을 갖고 올 수 있는 여자를 만나기에는 너무 젊다는 둥의 중상모략하는 얘기는 그에게 전하지 않았다.


엘리자는 시장에서 어떤 여자가 그가 휴랜즈의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것은 그녀의 돈을 보고 결혼해 그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소근거리는 걸 들었다. 또한 그 여자에 대해서 무시무시하고 흉폭하다는 둥,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는 둥, 뭔가를 치료할 수 있지만 또한 뭔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녀의 새엄마 얼굴에 난 종기가 그녀가 그렇게 한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새엄마가 그녀에게서 매를 빼앗자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손가락을 대기만 해도 우유가 상한다는 말까지.


그는 엘리자의 말이 끝나자 양모 더미에 몸을 기대었다. 분노인지 뭔지 그의 몸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뒤, 엘리자가 그녀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그녀의 오빠는 대답하기 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녀는 네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람을 그들이 아닌, 혹은 그들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엘리자가 그 여자는 비할 데 없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녀의 오빠는 정말 그렇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모든 나쁜 소문은 그녀의 새엄마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라틴어 교사와 아녜스의 사랑은 깊어 갔다. 얼마 후 임신을 하게 된 아녜스는 새엄마에 의해 쫓겨나 라틴어 교사의 집으로 갔다. 외출 후 돌아와 자신의 집에 있는 그녀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라틴어 교사는 처음엔 많이 기뻐했지만, 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는 아버지를 보고 몹시 화가 났다.


한편, 의사의 집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햄넷은 지금쯤이면 엄마가 주디스를 살펴보고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윗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엄마는 없었고 주디스는 더 창백하고 더 약해진 채 혼자 누워 있었다. 햄넷은 다리가 풀려 돗자리 옆에 풀썩 주저 앉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는 실패한 것이었다. 부모나 조부모, 혹은 다른 누군가를 불러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므로. 그는 눈을 감고 눈물을 감췄다. 그리고 무릎에 고개를 조아렸다.


30여분 후쯤, 수산나가 뒷문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의자에 던져 놓고 탁자에 무너지듯 앉았다. 그녀는 이쪽 저쪽을 둘러 보았다. 불이 꺼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엄마는 어디에 있겠다고 말한 곳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수산나는 14살이 다 되었고, 지금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짜증을 유발했다. 그녀는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창문을 열었지만 말, , 그리고 뭔가 썪는 것 같은 거리의 냄새가 들어와 창문을 꽝하고 닫았다. 그런데 잠깐 윗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누가 있나? 하고 잠시 서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어디 있을까? 틀림없이 시골길을 느릿느릿 걷고 있거나 웅덩이에 들어가 휘젓거리고 있거나 풀들을 모으거나 식물을 채취하기 위해 담장 너머를 기어 올라가면서 옷을 찢거나 신발을 더럽히고 있을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해 빵을 굽거나 스프를 젓고 있을 터인데.


그녀는 엄마의 손님들이 앉는 좋은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은 밤늦게 거의 기다시피 들어와 그곳에 앉아 자신들의 얘기를 했고, 엄마는 그들의 얘기를 신중히 들어준 후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럴 때 엄마는 시선을 위로 하고 천장을, 허공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은 촛점이 없이 반은 감긴 채였다.


항상 사람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산나와 쌍동이 그리고 엄마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하면, 그들이 시작도 전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고, 엄마는 스프 만드는 일을 하다가도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마치 수산나가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 듯이. 씻어도 씻어도 흙이 나오는 당근을 씻고 껍질을 벗기고, 수 시간 동안 더운 취사장에서 그것을 휘저어야 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되는 듯이. 때로 수산나는 엄마가 그녀나 쌍동이들의 엄마가 아닌 시내 전체, 카운티 전체의 엄마라는 생각을 했다. 이것의, 이렇게 줄지어 오는 사람들의 끝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들 가족이 그들만의 삶을 살도록 그저 내버려 둘 순 없을까?


사람들은 그녀의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수산나에게 묻곤 했다. 그녀는 왜 사람들이 자신이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보지 못하는지 짜증이 났다. 엄마의 그런 행위들이 그녀와 아무 상관없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어렸을 적엔 수산나도 잘 모른다고, 그것은 마술과 같다고,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라고 진심을 다해서 대답했었다. 하지만 요즘 그녀는 퉁명스럽게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수산나의 허리가 의자에 닿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집에 올 때면 앉아 있곤 했던 의자였다. 그는 1년에 두세 번, 어쩔 땐 5번도 와서 때론 일주일, 때론 조금 더 있다 가곤 했다. 지난 번에 왔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수산나에게 자신이 올 수 있을 때마다 온다고 했다. 다시 그가 떠나기 위해 글을 쓰던 종이를 말아 짐을 챙기면 엄마는 아버지가 떠나는 걸 보지 않으려고 집을 나가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는 그것을 읽으면서 손가락을 단어에서 단어로 옮겼고 입술은 소리를 냈다. 엄마는 조금은 읽을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글을 쓰진 못했다. 그래서 엘리자 고모가 그들을 대신해 답장을 써 주었고, 요즘엔 햄넷이 썼다. 그는 말하는 것만큼 빨리 글을 쓸 수 있었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도 읽을 수 있었으며 수열도 만들 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햄넷이 장갑 사업을 물려받을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햄넷이 머리가 좋고 학자이며 타고난 사업가라며, 그들 중 유일하게 머리가 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편지에 런던의 거리에 대한 얘기뿐만 아니라 자신이 저축한 돈에 대해서, 자신이 사고 싶은 땅, 팔려고 나온 집에 대해서, 그리고 엄마에게 그것을 위해 누굴 만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썼으며, 자신이 얼마나 가족들을 그리워 하는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키스를 보낸다고 하면서 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썼다.


한편,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아녜스는 짐을 내려놓고 취사장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메리와 수산나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쌍동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메리는 걔들은 항상 숨어 있다고 했고 수산나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녜스는 작업장엘 가보고 윗층을 향해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자신의 집으로 급히 간 아녜스는 계단참에 서 있는 그녀의 아들을 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고, 얼굴은 하얗게 질린 채 계단 난간을 꽉 붙잡고 서 있는 아들을. 그의 눈썹 위에는 아침엔 없었던 혹이 부풀어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그에게로 가 어깨를 잡고 무슨 일이냐고, 얼굴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윗층을 가리켰다. 아녜스는 한번에 두 계단을 밟으며 급히 윗층으로 올라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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