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She Knew
By
Gilly Macmillan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오후, 전직 간호사였으며 지금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남편의 외도로 싱글맘이 된 레이첼 (Rachel)은 아들 벤 (베네딕트 핀치, Benedict Finch)과 집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늦은 가을 날씨가 환상적으로 좋았고, 남편이 떠난지 10개월 정도 지나 겉으로는 어느 정도 진정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날, 그녀의 목숨과도 같은 아들 벤이 숲에서 실종된다.
그리고 2013년, 11월, 사건 일년 후, 그녀는 그 일을 돌이켜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으며,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기를 쓰고 가장 좋은 점만을 말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 역시 대단히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인생의 함정이라고.
이는 벤의 실종 후 레이첼이 가장 많이 생각했던 문제이고, 생각할 때마다 한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이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그럼 우리는 누구인가? 타인이 우리를 잘못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은데도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 밑에 깔려 있는 실재 인물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평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단지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혹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신뢰하거나 의지해야 하는가? 우리의 우정이나 인간관계는 진정 확실한 기초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그녀는 이런 생각에 잠기게 되면, 만약 자신이 벤이 실종되기 전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달랐을까 생각하곤 한다. 기분이 엉망일 때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면서 다시 또 지난 생각을 반복하고 또 하면서 아무 것도 못하게 된 상태로 며칠 동안 자신을 들볶으며 스스로에게 벌을 내렸다.
일년 전, 벤의 실종 바로 직후, 그녀는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방송이 되었다. 그녀의 역할은 벤을 찾는 데 도움을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경찰이 읽으라며 원고를 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말하자면 그녀는 아이가 실종된 한 엄마이고, 그를 되찾는 일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다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 특히 그들 중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말로 그녀를 비난했다. 그녀는 기자회견 장면을 보기 전까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난 후 즉시 그들의 반응에 대해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피해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매력적인 피해자, 겁에 질린 큰 눈을 가진 영양, 막대기 같은 다리로 휘청거리는 그런 피해자가 아닌, 많이 쫒겨 녹초가 된, 그래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그런 피해자 말이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심하게 상처를 입고 부상으로 피를 흘리는, 슬픔으로 온 몸을 떨면서 말라버린 입에서 긁어 모은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전에 그녀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녀가 감정적으로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를 정직하게 보여주면, 그녀를 동정하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벤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틀렸다. 그들은 기괴한 쇼를 보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당사자였는데, 그들은 마치 개들 무리처럼 그녀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녀는 몇차례 더 TV에 나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일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거절했다. 인터뷰 동안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 놀랍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물었던 질문은 바로 “벤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하기 전, 그에게 나쁜 일이 있을 거라는 어떤 직감 같은 게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기에는 자신이 했어야 할 어떤 의무 같은 게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 질문이 싫었다. 그것은 만약 그녀가 좀 더 본능적인 엄마, 좀 더 나은 엄마였다면 그녀의 아이가 위험에 처한 것을 직감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니 직감했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 질문에 그녀는 그저 아니, 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이, 이마를 찡그리며 '정말이에요? 확실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라는 의문이 내포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벌어진 일로 인해 타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대답을 최소한으로 했다. 이제 그녀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였고, 그들은 그녀가 살아있을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다 알고 있다.
한 부분의 그녀는 타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꺼이 얘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직 그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고, 그녀를 판단하지도 않으면서 그녀로 하여금 이야기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녀가 했던 모든 것, 벤을 위해 했던 모든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 그녀가 취한 몇몇 행동들은 경솔했고, 몇몇은 위험스럽기도 했지만, 그것들 모두 그녀가 아들을 위해 취한 행동이었고,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그를 위한 그녀의 감정이 그녀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Schadenfreude'(남의 불행에 대해 갖는 쾌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녀는 우리가 왜 이 단어를 없는 것인양 하는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마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기 때문일 것 같았다. 내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더 나으니까 말이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그녀의 얘기에 분명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맘 먹었을 때, 그녀가 가장 싫어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벤이 실종됐을 때 그녀는 어떠한 직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어떤 식으로든. 그렇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전 남편의 새 아내에 대한 집착이었다.
한편, 짐 클레모 경위(DI Jim:James Clemo)는 일과 인간 관계, 가족 모두 자신이 컨트롤했었다. 그런데 요즘 그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것들은 시시때때로 그에게 상실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에 상관없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행동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주중 내내 그는 그 생각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일에 파묻혀 살았다. 주말이 힘들었지만, 그는 그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운동도 하고, 가끔 일도 했지만 역시나 그 생각들은 계속 떠올랐다. 밤에는 더욱 그를 고문했다.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 그를 잠 못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불면증에 대한 지식을 조금 알게 되었지만, 그가 겪고 있는 불면증은 그런 것들과는 달랐다. 그의 불면증은 그를 절망적이고,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참신한 생각 따윈 못하게 만들었으며, 오로지 절망과 좌절밖엔 없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면 거리로 뛰쳐 나가기도 해보았으나 그 역시 그의 정신을 완전히 말끔하게 해주진 못했다. 모든 것은 오직 한 가지로 되돌아왔다. 베네딕트 핀치 (Benedict Finch)라는 이름에게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이런 상태를 말할 수도 없었다. 불면증으로 인한 극심한 피로는 커피에서 쇠맛을 느끼게 만들었고, 음식에 대해 생각만해도 견딜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한 아침에 일어날 때 미치도록 담배를 찾게 만들었다.
이른 아침 미팅 때 그의 부서의 디렉터 코린 프레이저 (Corinne Fraser) 경감 (DCI: Detective Chief Inspector)이 괜찮냐고 물었다. 그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머리 가르마를 타고 땀이 솟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십분 동안 계속 앉아 있었지만 누군가 그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에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질문은 그가 진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질문이었고, 그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1년전이었다면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그는 볼펜 끝 플라스틱이 조금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 있었다. 피로의 장막에 덮힌 채 그는 억지로 고개를 들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세 사람의 얼굴을 마주 대해야 했다. 오로지 그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불면증이 그의 정신을 얼마나 흐리게 만드는가였다. 그것은 그의 온몸을 타고 흘러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약물 같았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피가 흐를 때까지 주먹으로 벽을 쳤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정신과 의사인 닥터 프란체스카 마넬리 (Francesca Manelli)를 만나보라고 처음으로 협박한 날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가 모든 상담 시간에 완벽하게 참석치 않고, 닥터 마넬리와의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치 않는다면 그를 범죄 수사과 (CID: Criminal Investigation Department)에서 내쫓을 거라고 했다.
닥터 마넬리와 클레모 경위는 예비 미팅을 가졌다. 그녀는 베네딕트 핀치에 대한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보고서가 기밀로 남아 있을 거라는 걸 보장한다는 가정하에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썼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프란체스카는 그에게 공황장애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의 감정을 물었고, 짐은 왜 모두가 누군가의 감정에 대해서 알고싶어 하느냐며, 자신은 그런 문제로 그곳에 오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더 그가 쓴 글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으므로 아무도 읽어볼 수가 없다고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그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앞으로의 과정을 통해 결정할 것이며, 그가 그녀에게 마음을 연다면 훨씬 더 쉽게 더 빨리 그가 하고자 하는 일로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레이첼의 전 남편이며 벤의 친아버지의 이름은 존 (John)이며, 그의 새 와이프는 카트리나(Katrina)이다. 그녀는 모든 남자들이 갈구하는 눈으로 한번씩 쳐다볼 만한 그런 여자였다. 그녀의 짙은 갈색 머리는 잡지에 나오는 그것처럼 항상 반짝거리고 이제 막 염색한 것 같은 그런 단발머리였다. 레이첼이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존이 그녀와 벤을 버리고 떠나기 몇달 전 그가 주최한 병원 행사에서였다. 존은 소아외과 최고전문의였고, 그녀는 이제 막 졸업한 영양사였다. 당시 레이첼은 카트리나의 눈을 보고 감탄했었다. 그것은 생기 넘치고 반짝빤짝 빛났다. 하지만 존이 떠난 후 그녀에게 카트리나의 눈은 까치의 눈으로 남았다. 자신의 둥지를 채우려고 다른 사람들의 보물을 낚아채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엉큼한 눈.
존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 집을 떠났다. 크리스마스 날, 그는 그녀에게는 아이패드를, 벤에게는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했는데, 그녀는 그의 선물들이 사려깊고 아주 후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그녀는 집 앞 진입로에서 차 트렁크에 정갈하게 일렬로 실려 있는 짐과 함께 그들이 함께 살던 집을 떠나는 그의 차를 바라봐야 했다. 식탁 위에 놓여져 있던 햄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벤은 울었다. 정신을 차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싱글맘으로서 자신의 새 인생을 살아가려는 찰나, 그녀는 그의 선물이 그가 그들의 삶에 남기게 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죄책감의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존이 떠난 다음 날, 벤은 아이패드를 고마워했으며, 그녀는 강아지 오줌을 누이기 위해 정원으로 나가 우산을 쓰고 동생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준 슬리퍼가 흠뻑 젖도록 서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 떨면서.
카트리나는 벤이 사라지기 딱 10개월 전 존을 그들에게서 뺏어갔다. 레이첼은 그녀가 행한 메스터 플랜이 유혹해서 자신의 남편을 뺏는 것,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형편없는 의학 드라마의 플롯 같이 느껴졌다. 아마 두 사람은 어떤 환자의 침대맡에서 마주친 게 아닐까 추측되었다. 당시 존은 자신의 일에 엄청 몰두하고 있었고, 그녀가 그의 모든 자질구레한 것들을 처리해주는 역할이었을 것이다.
레이첼은 존과 자신의 사이가 아주 탄탄하고 신중하게 출발한 관계였고,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끝이 아닌, 다른 식의 끝,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지독히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녀가 깨닫지 못한 것은 존은 그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문제들을 그저 평범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들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일들이 표면 아래서 들끓고 있었고, 그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가 택한 방법은 그저 일어나 집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가 떠난 직후 언니 니키 (Nicky)에게 전화하자 그녀는 왜 그렇게 됐는지 정말 몰랐느냐고 불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충분한 관심을 보였느냐고 덧붙였다. 그것은 마치 모든 잘못이 레이첼 그녀에게 있다는 듯한 투였고, 예상된 것이었다. 레이첼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녀의 친구 로라 (Laura)는 근래 들어 그가 다소 거리를 두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두 사람이 잘 극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로라는 간호대학 때부터 레이첼의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레이첼과는 달리 중간에 그만두고 기자가 되었다. 그녀의 '거리를 두는 것 같다'는 말이 걸렸다. 왜냐하면 정직하게 말하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이 그렇듯 때론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혼은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사실, 벤이 실종됐을 때에도 겉으로는 잘 극복해 나가는 걸로 보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남편 때문에 슬픔에 젖어 있었다. 10개월 동안 기계적으로 홀로 지낸다는 것에는 익숙해졌지만, 그녀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존이 카트리나와 합친 후 레이첼은 그녀의 아파트로 한번 찾아갔었다. 문앞에서 그녀와 언성을 높이고 있는데, 안에 있던 카트리나의 친구들이 나왔다. 존은 집에 없었다. 그들 손에는 백포도주가 담긴 와인잔이 들려 있었고,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는 그녀를 쳐다 보았다. 물론, 벤이 실종된 후 오로지 카트리나만을 생각한 건 아니었고, 혹시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벤의 실종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그날, 벤과 레이첼은 숲에서 개와 함께 걷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브리스톨 (Bristol)을 벗어나 클리프턴 서스펜션 브리지 (Clifton Suspension Bridge)를 건너 외곽에 있는 레이 우즈 (Leigh Woods)로 나왔다. 그날은 멋진 늦가을 오후였고, 그녀는 숲속에서 들리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경치들을 맘껏 들이마셨다.
그녀는 벤을 가졌을 때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고 간호사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사진작가가 되었다. 사진은 기쁨이었고, 그녀의 완벽한 열정이었다. 그녀는 항상 빛을 바라보고 그것을 사진에 어떤 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래서 벤과 함께 걸었던 그 오후의 빛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녀가 머리 속에서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동안 벤과 강아지 스키틀 (Skittle)은 뽀얀 입김을 내뿜으며 밝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눈을 하고서 달리며 놀기도 하고 숨기도 하였다. 벤은 붉은 색 파카를 입고 있었는데, 레이첼은 그녀 앞의 길을 따라 그것이 반짝거리다가 나무 안팎으로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스키틀이 그의 옆에서 달리고 있었다. 벤은 나뭇가지를 나무둥치에 던지기도 하고 버섯을 살피러 낙엽이 쌓인 땅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하였다. 또 솔방울을 주어 그녀에게 보여주며 비가 올 것 같다고도 했다.
그날 오후 그녀의 아들은 몹시 아름다웠다. 그는 이제 8살이었다. 그의 모래색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뺨은 가쁜 숨과 추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사파이어 같이 맑고 밝은 푸른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그의 창백한 피부는 주근깨를 제외하고는 티 하나 없는 완벽한 피부였다. 무엇 보다도 세상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건 그의 미소였다. 그는 그녀의 키의 2/3 정도 되게 자랐는데, 가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는 걸 허락했다. 학교에서만 빼고.
그날 벤은 아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한 방식으로 그가 행복하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을 본 그녀 역시 행복했다. 존이 그들을 떠난 10개월 동안 힘들었고, 비록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존과 카트리나를 생각했지만, 그녀는 또한 벤과 그녀뿐이라는 사실이 괜찮다고 받아들여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물론 정직하게 말하면, 그런 순간은 매우 드물었지만, 그런 순간들이 있기는 했었고, 그날 오후도 그런 순간들 중의 하나였다.
4시 30분 경, 추워지기 시작해서 그녀는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벤은 가고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그네를 타고 싶다고 했고, 그녀는 그러라고 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차를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앞서 달려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종종 그 순간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했던 대답으로 판단하기 전, 그녀는 묻고 싶다. 당신의 아이에게 엄마이면서 아버지 역할을 모두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녀는 싱글맘이었고, 그녀의 모성적 본능은 분명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 그녀의 모성적 목소리는 '안돼, 넌 아직 어려. 내가 그네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줄께, 난 너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모두 다 보고싶어' 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는 경우, 그녀는 머리 속에 또 다른 목소리의 공간을 만들어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그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부성적 목소리 말이다. 그녀는 그 목소리가 벤이 독립적인 아이로 크길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가오는 위험도 무릅쓰면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 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나눈 실제 대화는 이랬다. 벤이 앞서 달려가도 되냐고 물어서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벤이 길게 늘어 빼면서 '제발, 엄마' 했고, 그녀는 길을 아느냐고 물었다. 벤이 힘차게 안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확실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벤이 항상 그래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항상 그랬었다. 그녀는 좋아, 하면서 혹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모르는 곳에 다다르면 그곳에 멈춰서서 자신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벤은 알겠다고 하면서 달려 갔고, 스키틀이 그와 함께 달렸다. 그녀가 벤을 다시 한번 더 부르며 정말 길을 아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소리쳤다. 그는 멈추지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벤을 본 마지막이었다.
레이첼은 벤의 뒤를 따라가며 전화기에 남겨진 보이스 메일을 들었다. 그것은 니키에게서 온 것으로, 블로그에 올릴 사진에 대해서 의논하자는 메시지였다. 니키는 “케첩과 커스터드”(Ketchup and Custard)라는 유명 음식 블로그를 운영하는 성공한 블로거였고, 아이들은 딸만 네명이었다. 그들 모두 벤 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나이 차이도 별로 안나는 네명의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작은 부족을 형성해서 벤은 결코 그들에게 끼어들지를 못했다. 사실 벤은 그들을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대했는데, 그들이 그를 마치 장난감처럼 대했기 때문이었다.
레이첼은 니키에게 다시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그네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벤이 보이지 않아서 그녀는 앞서 갔나보다 생각했다. 그네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그를 보게될 것에, 혼자서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에 뿌듯해 하며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보니 벤은 없었고, 스키틀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네만이 혼자 느린 리듬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빈터를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곳으로 가 벤을 다시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공포가 업습해왔지만 스스로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그에게 조금 독립적인 시간을 주었고, 만약 자신이 과도하게 불안감을 보이며 행동한다면 그 순간을 망치고 말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벤은 분명 스키틀과 함께 나무 뒤에 숨어 있을 것이고, 그의 게임을 망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빈터는 크지 않았고, 테니스 코트의 절반 정도 되었다. 한쪽에 중간 크기의 잎파리 없는 묘목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빽빽한 숲이 빈터 대부분을 에워싸고 있어서 주변은 어두웠다. 빈터 중안에 큰 너도 밤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그네는 그 나무의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벤이 그 나무의 두꺼운 몸통 뒤에 숨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부러 모른 척 천천히 다가가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벤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하며, 벤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듣고 보기 위해 멈춰섰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벤이 엄마없이 혼자 집으로 가버렸나 보네' 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네는 이제 동작을 멈추고 축 처진 채 걸려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벤이 엄마없이 숲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나보다, 엄마 혼자 집에 가서 토스트 위에 꿀을 발라 먹고 벤이 좋아하는 TV를 봐야겠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포감이 다시 돌아왔다.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면 보통 벤이 모습을 드러내며 오랫동안 엄마를 속였다는 걸 기뻐했다. 그녀는 진정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다시 벤이 나올만한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이끼가 덮힌 나무둥치에 앉아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녀는 벤이 정말로 나오지 않고는 못베길만한 벤이 가장 좋아하는 베기 베어 (Baggy Bear)를 다른 누군가에게 주어야겠다는 얘기를 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벤이 반은 웃고 반은 짜증난듯한 얼굴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완벽한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치 숲이 숨을 멈춘듯. 그녀는 나무들 사이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 보며 곧 어둠이 내려올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벤이 그곳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벤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 나무로 달려가 두번을 빙빙 돌며 손가락으로 나무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소리쳐 벤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시 계속 벤의 이름을 부르고 대답을 듣기 위해 다시 멈추고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그때 아래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벤의 이름을 부르며 냅다 달렸다. 하지만 그것은 벤이 아니었고, 어떤 나이든 여자와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녀는 레이첼에게 개를 잃어버렸냐고 물었고, 그녀는 아니라고, 아들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벤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숲속을 뒤지는 동안 숲은 모습을 바꿨다. 이파리들이 바람 때문에 생일날 뿌리는 색종이 조각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스키틀의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또한 어디에서도 밝은 빨강색의 파카를 볼 수 없었다.
그녀가 파킹랏으로 갔을 때, 그곳에는 여러 가족들이 붉은 저지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가기 위해 숲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안면이 있었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벤을 아느냐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으며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벤의 가장 친한 친구인 핀 (Finn)의 아버지이며 싱글 대디인 피터 암스트롱 (Peter Armstrong)이 서 있었고, 핀이 축구 유니폼을 입고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레이첼이 상황을 얘기하자 피터는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하며 직접 신고했다. 레이첼은 그가 경찰에 신고하는 동안 떨면서 옆에 서있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믿을 수 없었지만 이제 그것은 현실이었고, 실제적으로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신고를 마친 피터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는 파킹랏에 가족들을 결집시키고 몇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로 수색대를 만들었다. 그는 5분 후에 떠나자고 말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레이첼이 떨자 피터는 그녀의 팔을 잡으며 꼭 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잠시 그렇게 서있는데 아까 숲에서 보았던 개주인 할머니가 숨을 헐떡거리며 나왔다. 그리고 레이첼의 표정을 보더니 자신은 지금쯤은 아이를 찾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색이 시작됐지만 어두워지기 시작한 숲은 마치 뚫고 들어오지 말라며 그들을 적대하는듯 했다. 누군가 한 사람이 후레쉬를 갖고 왔다. 그들은 여러 사람들이 잡다하게 모인 팀이었다. 대부분이 축구 학부모이거나 특이하게 아직 무대 의상을 입고 있는 재현배우들, 그리고 한 사람의 사이클리스트가 있었다. 그들의 초췌한 얼굴은 단지 추위가 깊어지고 있다는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벤이 그저 길을 잃은 것만이 아닌, 그가 나쁜 일을 당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길이 나있는 방향을 따라 갔다. 피터가 한 그룹을 이끌고, 다른 그룹은 레이첼이 앞장섰다. 10분이 채 지나기 전 비가 더 많이 내려 나무 가지들 사이를 뚫고 굵은 빗줄기들이 떨어졌다. 몇분 이내 그들은 완전히 젖었고 길 위에 커다란 웅덩이들이 생겼다. 그들은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며 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
20분 후 피터가 파킹랏에서 만나자고 전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뭔가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힘차게 달렸다. 그런데 그녀가 길에서 나와 파킹랏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그녀에게 플레쉬 세례가 터졌다. 그녀는 눈을 가렸다. 어떤 사람이 그 불빛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레이첼에게 자신은 네일시아 (Nailsea)경찰서 소속 여순경 사라 뱅스 (Sarah Banks)인데 그녀의 아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무슨 사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레이첼이 없다고 말하자 그녀는 전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레이첼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피터였다. 그의 팔에는 놀랍게도 벤과 함께 뛰어 갔던 스키틀이 안겨 있었고, 그가 스키틀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자 스키틀의 뒷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레이첼이 벤도 찾았느냐고 묻자, 피터는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후 소식을 들은 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얼마 후 수색을 하던 경찰이 한 연못에서 비닐에 싸인 벤의 옷과 신발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벤이 단순히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누군가 그를 납치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처음 디렉터가 그를 불러 벤의 실종사건을 맡으라고 했을 때 짐 경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그는 항상 같은 형사로 재직했던 '아버지의 아들'이었지 그의 이름 석자를 알릴 기회가 없었다. 그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맡게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사건은 전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큰 사건이었고, 이제 모두 벤이 단순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납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부어 범인을 꼭 잡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벤의 수색 도중, 가장 처음 해야할 과정은 벤과 함게 있었던 엄마, 그리고 벤의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인터뷰 룸을 마련하고 짐과 그가 추천한 엠마 장 (Emma Zhang)이 레이첼과 존을 인터뷰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갑자기 쇼크로 자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레이첼이 그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눈으로 벤을 꼭 찾아 달라고 말했다. 순간 그는 움찔했다. 그동안 많은 사건 당사자를 인터뷰했지만 그런 일은 처음이었고, 당사자들과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는다는 룰이 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레이첼은 벤에 대한 것과, 그날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억을 짜내어 짐 경위에게 말했다. 그런데 숲으로 가던 도중에 스쳐 지나갔던 한 남자에 대한 것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별 눈에 띄는 행색도 아니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손에 개 줄을 들고 있었는데, 개는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당시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그 후로 본 사람이 개 데리고 산책하다 만난 그 할머니였다.
한편, 짐 경위는 레이첼의 인터뷰에서, 벤의 실종 직후 공원 파킹랏에 모였던 사람들 중 그때까지도 공연의상을 그대로 입고 있던 재현배우들 무리가 신경이 쓰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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