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rl on the Train

By

Paula Hawkins

30대인 레이첼 왓슨 (Rachel Watson)은 이혼녀이며 알콜중독이다. 전 남편 탐 (Tom)과는 결혼 초기 행복했지만, 이유없이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시험관까지 시도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때부터 마시는 술의 양이 점점 늘어났고, 그녀는 알콜중독이 되었다. 이후 모임에 가면 술에 취해 다른 사람들과 문제를 만들고 본인은 기억 못하는 패턴이 계속되어 탐이 당시의 그녀의 행동을 비난하며 말해주는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고, 탐은 창피하다며 더 이상 그녀와 함께 그런 곳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다. 네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탐이 다른 여자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발견했고, 결국 둘은 이혼했다.

하지만 레이첼은 탐을 잊지 못해 지금도 술이 취하면 한밤중에도 그에게 전화를 해대고 때론 찾아 갔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탐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레이첼과 살았던 그 집에서 새 부인인 애나 (Anna)와 함께 살고 있는 탐은 레이첼 때문에 애나가 몹시 힘들어 한다며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치곤 했다.

레이첼은 지금 애쉬베리 (Ashbury)에서 대학 친구인 캐시 (Cathy)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알콜 때문에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 되었는데도 캐시에게는 말하지 않고 계속 매일 통근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왔다갔다 했다.

그녀는 기차를 타고 오고 가는 시간이 좋았다. 그저 낡은 벨루어 좌석에 기대어 앉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온기를 느끼고, 기찻길 위의 바퀴의 리듬에 맞춰 객차가 앞뒤로 흔들리며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주말을 지내고 다시 월요일 아침 기차를 타면 안심이 될 정도였다. 가끔 기찻길 옆에 평소와 다른 물건들이 놓여있곤 하는데, 그럴 때면 레이첼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그녀가 탄 8시 4분 애쉬베리(Ashbury)발 유스튼 (Euston) 행 완행 열차는 가장 오래된 통근자들의 인내심까지 시험하듯 느렸다. 원래 55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제시간에 도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이 구간은 아주 오래되서 낡았고, 신호체계 문제도 있어서 보수 공사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열차는 느리게 창고, 급수탑, 다리와 헛간, 그리고 그다지 대단하지 않는 빅토리아 풍의 집들의 뒤쪽을 기다시피 지나갔다.

그녀는 객차의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스쳐 지나가는 집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어느 곳에 있는 곳보다 기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기찻길 옆 집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마치 영화의 이동촬영 장면을 찍는듯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심지어 그 집의 주인들도 볼 수 없는 각도에서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루에 두번,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그녀의 관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낯선 이들이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걸 보면 안심되는 그런 점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반쯤 가다보면 거의 매일 신호 결함이 있었다. 대부분 그 지점에서 기차가 멈췄는데, 때론 몇초간이었다가 때론 몇분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거의 항상 객차 D 호에 앉는데, 대부분 이 신호에서 기차가 멈추면, 그녀의 시야에 완벽하게 들어오는 기찻길 옆 집이 있었다. 그것은 15호 집이었다.

그 집은 기찻길 옆 다른 집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집에 관해 아주 잘 알았다. 왜냐하면 매일 아침 기차가 잠시 멈추는 곳에서 항상 보이는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 관해서는 벽돌 하나, 윗층 침실의 커튼 색깔, 그리고 욕실 창문틀에 페인트가 벗겨진 것, 오른쪽 지붕에 타일이 네개 떨어진 것까지 다 알고 있었다.

그 집에는 한 커플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 커플을 제이슨 (Jason)과 제시 (Jesse)라고 불렀다. 그들은 완벽하고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제이슨은 검은 머리에 체격이 좋았고, 강하고 보호적이며 친절해 보였다. 또한 그는 멋지게 웃었다. 제시는 작은 새 같은 여자였으며, 창백한 피부와 짧은 금발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것들을 상쇄할 정도의 뼈대를 갖고 있었는데, 주근깨가 있는 날카로운 광대뼈와 멋진 턱을 갖고 있었다. 제시는 종종 아침 무렵에, 특히 여름에 그곳에 나와 있었는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때때로, 그녀가 제시를 보고 있을 때, 제시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손을 흔들고 싶기도 했다. 제이슨은 자주 볼 수가 없었는데, 일을 하느라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안보이더라도 레이첼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을 지나면서 다른 집들, 특히 제시의 집에서 네번째 정도 아래에 있는 집은 보고싶지 않았다. 그 집은 바로 탐과 살았던 그녀의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윗트니 (Whitney)시 블렌하임 (Blenheim) 가 23번지.

당시 그녀는 더 없이 행복했고, 완벽하게 비참했었다. 그곳은 그녀의 첫번째 집이었다. 부모님 집도 아니었고, 다른 학생들과의 공유 아파트도 아닌, 그녀만의 첫번째 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매일 스스로에게 보지 말라고 말했고, 매일 그녀는 그것을 바라 보았다. 그곳에 보고싶은 게 아무 것도 없었고, 그녀가 본 뭔가가 그녀를 맘 상하게 할 게 뻔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여러 것들이 바뀌고, 애나가 부른 배를 하고 담벼락 근처의 장미에 물을 주는 것을 보고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깨물었고, 그 고통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탐과 애나는 그녀가 부동산 에이전트 일을 하는 동안 만났다.

레이첼은 눈을 꽉 감고 스물을 세었다. 이제 모두 지나갔고, 아무 것도 볼 게 없을 것이다. 기차가 유스튼에 다가가면 갈수록 그녀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압박감이 더해졌다. 오늘은 어떻게 지나가려는지.

저녁 때 집에 돌아올 때 탄 기차는 평소보다 더 느렸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돌아갈 자신의 집이 없기 때문이었다. 캐시의 집에 얹혀 사는 것이 두어달, 길어야 6개월을 넘기지 않을 거라 확신했고, 당시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혼자 살아본 적도 없었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룸메이트와, 그리고 탐과 함께 살았다. 캐시가 남은 방이 있다고 했을 때 그녀는 격한 감정에 휩싸여 그러겠다고 했고,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레이첼이 대면한 새로운 상황에서 그녀를 괴롭히는 건 자신이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캐시의 아파트에서 레이첼은 항상 캐시가 환영하는 범주의 가장 바깥에 있는 손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엌에서 함께 저녁을 준비할 때, 소파에서 그녀 옆에 앉아 있는데 리모콘이 케시의 손아귀에 있을 때, 그녀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오로지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느껴지는 곳은 그녀의 작은 침실뿐이었다. 더블 베드와 책상 하나가 들어차 있는, 그 둘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도 없는 곳. 그곳은 충분히 편안했지만, 머물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실이나 부엌 식탁에 머물렀다. 불편하고 힘없이. 그녀는 모든 것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공간 조차도.

2013년 7월 10일, 수요일 아침엔 제이슨과 제시를 보지 못했다. 그들의 집을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 커튼이 열려져 있었지만 프렌치 도어는 닫혀 있었고, 내리닫이 창문 역시 닫혀 있었다. 제이슨은 일하러 멀리 나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제이슨이 의사이고, 해외 기구 중의 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주 그가 가방을 챙겨 급히 히드로 공항으로 달려가는 걸 상상했다. 제시는 그녀의 옷차림이나 외모, 태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패션 산업 쪽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음악쪽 사업이나 광고계, 즉 스타일리스트나 사진작가일 수도, 화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건 그저 그녀의 상상이었다. 거리상 제시가 그림을 그리는 걸 볼 수도 없었으며, 제이슨이 멋진 웃음소리를 갖고 있는지도, 또한 제시가 아름다운 광대뼈를 갖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뼈대나 제이슨의 목소리 역시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을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었고, 레이첼이 그 거리에 살고 있었을 때 그들은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2년전 그곳을 떠난 후에 이사온 사람들로, 정확히 언제부터 그곳에 살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그들을 보기 시작한 것은 1년전쯤으로, 시간이 감에 따라 그들은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이름 역시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제이슨과 제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제이슨'은 그가 영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멋있는 배우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제시'는 그냥 제이슨과 어울릴듯해서 붙였는데, 그녀와 잘 어울렸다. 그들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고, 한 셋트였다. 또한 행복해보였다. 그들은 5년전의 탐과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었고, 그들은 그녀가 되기를 바라던 바로 그 모든 것이었다.

그날 저녁, 돌아오는 기차에서 앞에 앉은 남자가 술에 취한 그녀를 보더니 역겹다는듯 눈길을 돌려 버렸다. 사실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호감을 주지도 못했고, 어떤 식으로든 정이 안가는 타입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단지 그녀가 살이 찌거나 술과 부족한 잠 때문에 얼굴이 부어있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치 사람들은 그녀의 온 몸에 쓰여 있는 상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가만히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방식에서 그것을 보는듯 했다.

지난 주 어느 날 밤, 물을 한잔 가지러 방을 나서다가 캐시가 거실에서 남자친구인 데미안 (Demian)에게 얘기하는 걸 엿듣게 되었다. 캐시는 레이첼이 외로워 한다며 정말 걱정된다고 말했다. 내내 혼자 있는 게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직장이나 럭비 클럽에 괜찮은 사람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데미안은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레이첼 같이 재미없는 여자를 만날 만큼 절박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레이첼은 지난 밤 캐시가 잠깐 나간 사이 요리를 하다가 손을 깊게 베었다. 어질러진 부엌을 치울 여력도 없이 그녀는 그대로 올라가 누워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10시경 깼을 때 캐시와 데미안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는 어떻게 부엌을 그 지경을 만들어놓을 수 있는지 불평했다. 잠시 후 캐시가 윗층으로 올라와 레이첼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부엌을 좀 치워 달라고 말했다. 레이첼은 자신이 뭘 사과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사과를 했다.

둘 다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레이첼은 아직 마시지 않았던 두번째 와인 병을 따서 들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간밤에 자신이 한 행동들이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네번에 걸쳐 그에게 전화를 했고, 두개의 메시지를 남겼다. 그가 전화를 받았을 수도 있지만 그와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첫번째 메시지를 남긴 건 기억이 났다. 그저 자신에게 전화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받아들여야 했다. 종일 기분이 몹시 꿀꿀한 하루가 될 것이었다. 그 기억은 때론 더 강해졌다가 그런 다음 좀 더 약해졌다가 다시 강해지는 식으로 파도처럼 그녀에게 몰려들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명치를 강타하여 부끄러움으로 괴로워 신음하면서 얼굴은 열기로 가득차 눈을 질끈 감아버릴 것이다. 눈이 없어져 버리게. 그리곤 하루종일 스스로에게 말하겠지.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일 중 최고로 나쁜 건 아니지 않아? 라고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넘어지기를 했어,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기를 했어? 그것은 그녀의 남편이 바베큐하다가 그의 친구들 앞에서 아내에게 소리치며 모욕한 것 같이 치욕스러운 것도 아니었고, 어느 날 밤 집에서 싸우다가 그녀가 골프 클럽을 들고 그를 쫓아가 휘두르는 바람에 침실 밖 복도의 벽이 한움큼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일도 아니었으며, 세 시간 동안의 점심 식사 후 비틀거리며 사무실을 걸어가는데, 동료들이 모두 쳐다 보는 가운데 마틴 마일즈 (Martin Miles)가 그녀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 같은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처음 본 낯선 남자 둘에게 오랄 섹스를 해준 어떤 알콜중독자에 대해 읽으면서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위안을 했다.

그녀는 그날 하루 종일 제시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다른 날과 다르게 몸에 활기가 없었다. 그것 때문인지 다른 건 아무 것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무엇일까? 거리상 제시의 표정을 볼 수도 없었지만, 혼자 있는 그녀를 볼 때, 그녀가 혼자라는 것 그 이상의 무엇, 바로 그녀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한편, 일년 전,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아침, 갤러리 매니저로 일하다가 그것이 문을 닫는 바람에 집에 있게 된 메건 힙웰 (Megan Hipwell)은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눈두덩이에 쏟아지는 햇빛을 쬐고 있으면 어디든 있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스페인 남부에 있는 해변가나, 이탈리아의 친퀘테레 (Cinque Terre) 같은 곳에. 혹은 국립 보유지인 홀컴 (Holkham)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홀컴은 그녀가 십대 때 옛날 남자친구인 맥 (Mac)과 함께 살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 못한 그녀만의 비밀을 간직한 곳이기도 했다.

그날 아침엔 기차가 멈추지 않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천천히 굴러갔다. 그리고 별일없이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되었고, 그녀는 테라스에서 스캇 (Scott)의 귀가를 기다리면서 아래층 부엌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싹할 정도의 소리여서, 그녀는 누군가가 살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급히 밖으로 뛰쳐 나가 보았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끔찍했고, 그녀를 관통했다. 그 여자의 목소리는 정말 날카롭고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윗층으로 달려가 테라스로 나갔다. 그랬더니 나무 사이로 두 여자가 몇몇 집 정원 너머의 담벼락에 서 있었다. 둘중 한명이 울고 있었고 (아마 둘 다 울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아이 하나도 역시 큰소리로 울고 있었다. 경찰을 부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진정된 것처럼 보였다. 소리를 지르던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다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집을 향해 뛰어 갔는데, 가다가 넘어지더니 다시 일어나 정원을 빙빙 돌아 다녔다. 정말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하지만 그것은 지난 몇주 동안 그녀가 본 것 중 가장 흥미로운 광경임에 틀림없었다.

갤러리 일이 없어진 후 메건은 공허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정말 그리웠다. 작가들과의 대화도 그리웠고, 심지어 한손에 스타벅스 커피잔을 들고 와 그림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애기엄마들을 상대했던 것 조차도 그리웠다. 때로 그녀는 옛날에 알았던 사람들을 찾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들에게 현재의 상태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교외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메건이라는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었다. 어떤 경우든, 그녀는 뒤를 돌아보는 위험스런 일은 할 수 없었고, 그것은 언제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여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긴 여름날을 그냥 무의미하게 흘려 보낸다는 것이 헛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그곳이나 아님 다른 어떤 곳에서나 뭔가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메건은 얼마 전 고함을 질렀던 길 아래의 그 집 아이를 돌보아 주는 보모의 일을 하기로 맘먹었다. 꼭 아이를 봐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녀는 당시의 상황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다. 물론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그 말을 했을 때 스캇은 매우 행복해하며 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는 그녀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 자신들의 아이를 몹시 갖고 싶어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그 집을 벗어나면 그녀는 집으로 달려와 재빨리 옷을 벗고 아이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샤워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메건은 애나의 아이 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사실 그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그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왔다. 상황은 이랬다. 그들은 식탁 주위에 앉아 있었는데, 애니는 아기를 안고 있었고, 탐도 커피를 마시며 그곳에 있었다. 우습게도 그녀가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녀는 그 상황이 너무 불편했는데, 자신이 마치 훼방꾼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고 말해버렸다. 애나가 아쉽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녀는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탐 역시 당신이 그리울 거라고 말했지만, 그것 역시 거짓말이 틀림없었다. 만약 스캇이 왜 그만뒀느냐고 물으면 탐이 그녀에게 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틀림없이 모든 상황은 종료될 것이다.

9월로 접어 들면서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메건은 불면증으로 여러 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녀는 예전에 오빠 벤 (Ben)과 했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그리웠다. 그의 계획대로 그 여행을 계속했더라면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벤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벤의 장례식 직후 메건은 가출했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았다. 16살때부터 맥과 동거를 했고, 그와 사는 동안 마약에 취해 살았다. 그와 헤어진 후 이런 저런 일을 거쳐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스캇을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매일 벤은 그리워 했다. 벤을 생각나게 하는 집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인생에, 그녀의 영혼 중앙에 생긴 커다란 구멍이었다. 아니 그는 단지 시작인 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벤의 죽음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엔 괜찮았고, 삶도 달콤했으며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다가, 다음 순간에 탈출하고 싶어서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기로 했다.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그녀는 가톨릭 신자가 되어 고해 성사를 하고 그녀가 갖고 있는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용서한다고, 그녀가 지은 죄를 사하여 준다고, 깨끗하게 지워준다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스캇에게 그녀가 알고 있는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어렵다고 하자 그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무슨 얘기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무 거나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일을, 그 엄청난 일을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불쌍한 스캇은 그 일에 대해 반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 생각을 하면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 메건은 자신이 계획했던 사진 과정 등록이나 요리 수업과 같은 것 말고 정말로 괜찮은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아내로서만 살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문자 그대로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었다.

그날 오후, 그녀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만난 의사는 기다리다 지친 그녀의 마음을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바꿔버릴 정도로 멋있었다. 그와 1,2 분 정도밖에 같이 있진 않았지만, 그녀는 벌써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카말 아브디치 (Kamal Abdic)였고, 목소리가 부드럽고 낮았다. 그는 몹시 짙은 갈색의 피부를 가진 아주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분명 삼십대 중반쯤은 되었을 것이다. 그는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는 벌써 그녀의 피부 위를 더듬는 그의 손가락의 감촉이 느껴지는듯 했다.

얼마 후, 그녀는 아침 일찍 잠에서 깼지만, 간밤엔 몇시간 정도 잘 수 있었고, 지난 주부터 약간씩 좋아지고 있었다. 침대를 벗어나자 거의 상쾌함까지 느껴져서 테라스로 나가지 않고 산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이 자기 자신을 외부와 차단하고 살고 있었다. 요즘 그녀가 가는 장소는 그저 가게나 필라테스 클래스, 정신과 의사가 전부였다. 어쩌다 타라의 집에 가는 거 외에는 거의 혼자 집에 있었다.

그날 저녁, 스캇은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고 했고, 별로 듣고 싶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신경이 날카로왔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집으로 와 진정시켜 주었으면 했는데, 그는 몇시간 후에 올 것이고, 그녀의 뇌는 계속 바쁘게 뛰어 다닐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잠못드는 밤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저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며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올 때까지 몇시간이고 그녀의 머리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쉴 새 없이 돌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밖으로 나가 역쪽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잠시 23호 앞에 멈춰서 초인종을 누를까 생각했다. 하지만 왜 왔느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블라인드가 반쯤 열어졌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그녀는 계속 코너쪽으로 가다가 아무 생각 없이 지하도 아래로 걸었다.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고무밴드를 발견하고 그것을 줍는 순간 소름이 끼쳐 얼른 다시 해가 비치는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고 있는 그때 '그'가 차를 타고 그녀 곁을 지나갔다. 둘이 눈이 마주쳤고, '그'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해가 바뀌어 2013년이 되었고, 카말과의 상담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2월 8일, 금요일 아침, 스캇이 어제 출장을 가서 오늘 밤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스캇에게는 카말과의 상담 후 타라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갈 것이고, 그래서 전화를 꺼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라에게도 스캇이 전화해서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지 모른다고 얘기를 했다. 이번에는 타라가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지만, 메건은 그저 윙크를 하며 웃어 넘겼다.

카말과 상담 중 그녀는 스캇에겐 말하지 않았던 맥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고, 그동안 한번도 찾지 않았던 그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그녀는 브라우저 히스토리를 지워야 한다는 걸 깜빡 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항상 살펴보던 스캇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다음 날 둘은 크게 싸웠다는 얘기를 했다.

메건의 얘기를 듣고 있던 카말은 많은 여자들이 남편을 두려워 한다며 그녀에게도 스캇이 두렵냐고 물었고,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카말은 스캇이 그녀의 이메일을 읽고, 그녀의 인터넷 브라우저 히스토리를 체크하는 것 등, 그 모든 것들을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며, 누군가의 사생활을 그렇게 침해하는 것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그것은 감정적 학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메건은 웃으며 그렇지 않다며, 스캇은 그저 질투심 많고, 소유욕이 강한 남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세션이 끝나고 카말에게 한잔 하자고 말했지만, 카말은 그럴 수 없다고, 적절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래서 메간은 카말의 뒤를 밟아 그의 아파트로 찾아가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러지 말라고,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메건은 머리 속의 많은 생각들 때문에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 만약 자신이 찾고자 하는 걸 영영 찾지 못하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했다.

그날 오후, 메건은 낮잠을 자다가 몹시 흥분되고 전전긍긍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죄의식 때문이었다. 그녀는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죄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다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밤중에 떠난 '그'를 생각했다. '그'는 다시 한번 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며, 다시는 그렇게 만나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번에도, 지지난번에도, 그리고 또 지지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다. '그'가 그의 말에 웃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것은 분노의 눈빛도, 비난의 눈빛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고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불안했다. 집 주변을 걸었는데, 안정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잠든 사이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 것도 흐트러진 것은 없었지만, 집이 다르게 느껴졌고, 물건들을 누군가 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보면서 그녀는 항상 자신의 시야가 미치지 않은 바로 그곳에 누군가가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마당으로 나가는 프렌치 도어를 세번이나 체크 했지만 그것은 잠겨 있었다.

얼마 후, 메건은 카말이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데 분노를 느끼고 그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둘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관계를 끊는 건 그녀여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병원으로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하지만 나중에 그녀의 행동을 후회하고, 사과하러 밤늦게 그에게 찾아가 아무에게도 말 못했던 그녀의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데...

한편,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아침, 레이첼은 지난 밤 술을 마시고 잠을 자지 못한 관계로 머리 속이 지끈거렸다. 그날은 그녀가 탄 기차 칸에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가까이서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옛 생각에 잠겨 탐과 같이 보냈던 시간들을 생각하다가 기차가 브레이크 밟는 소리를 내며 신호에 멈추자 제시의 집을 바라보았다. 제시는 정원에 나와 있었는데, 그녀 뒤로 누군가 손에 커피 같은 것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그 사람의 허리를 감싸더니 길고 진한 키스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남자는 제이슨이 아니었다. 그것을 본 레이첼은 마치 자신이 속은 것 같은 기분으로, 탐이 애나와 바람을 핀 걸 처음 알게 된 상황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너무 화가 났고, 마치 자신이 제이슨이 된 것처럼, 자신이 속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전에 자신이 느꼈던 너무나 큰 가슴의 통증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통증을 느꼈다.

탐이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았을 그때 당시에 자신의 감정이 어땠었는지 묘사할 수 없지만, 지금 기차에 앉아 있는 그녀는 몹시 분노가 치밀었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파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아주 강한 분노가 섬광처럼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녀는 마치 뭔가를 빼앗긴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냔 말이다. 증오가 그녀를 덮쳤다. 만약 지금 제시를 본다면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을 것 같았고, 눈이 튀어 나오도록 얼굴을 긁어버릴 것 같았다.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제시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전 직장에 다닐 때 자주 갔던 커피숍에 들어 갔다가 이전 직장의 동료들을 마주쳤고, 그들의 얼굴에 드러났던 표정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작별 인사할 때의 마틴의 표정을.

원래는 도서관에 갈 계획이었지만 그냥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탐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어서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 가게 놔두었다. 잠시 후 그것을 듣는데, 탐이 아니라 애나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녀는 도저히 들을 자신이 없어서 듣던 걸 멈춰 버리고 일어나 코너에 있는 가게로 가 술을 샀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한병을 다 마시고 두번째 병을 열었다. 그런 후 다시 애나가 남긴 메시지를 들었다. 그걸 들으면서 레이첼은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애나는 그녀에게서 모든 걸 앗아간 인간이었다. 그녀는 애나에게 탐이 그녀를 꼬시기 위해 썼던 모든 말들이 레이첼에게 먼저 했던 말들이었다는 걸 말해버리고 싶었다. 아니, 그것은 탐이 한 말이 아니라 작가인 헨리 밀러 (Henry Miller)의 것이라는 것도.

7월 13일, 토요일, 캐시는 아침 일찍부터 집 청소를 했고, 레이첼은 그녀가 나가기를 기다렸지만 캐시는 그럴 맘이 없는 것 같았다. 저녁 때, 좁은 방에 갇혀 있는 게 너무 답답해 레이첼은 산책을 한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펍 (pub)으로 가 커다란 와인잔으로 세잔을 마시고, 위스키도 두잔을 마셨다. 그런 다음 역으로 가 진토닉 두 캔을 사서 기차를 탔다.

그녀는 제이슨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의 집으로 가 문을 두드리는 그런 방문이 아니라, 그저 기차를 타고 그의 집을 지나쳐 가는 것이었다. 할일도 없었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그를 보고 싶었다. 그들을 보고 싶었다. 별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기차가 그 집을 지나가자 그들이 테라스에 나와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사물이 두개로 겹쳐 보이고, 그들이 제이슨과 제시인지 똑똑히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유스튼으로 가지 않고 윗트니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탐이나 애나를 마주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그녀는 그곳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맞은 편에 앉은 남자가 그녀를 보며 웃었다. 그녀가 뭔가 말을 했지만 그것은 공중으로 분해되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왜 그녀가 다 벗고 마루에 누워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가 저질러놓은 소변과 구토의 흔적들을 보며 그녀는 절망했다. 다시 구토가 치밀어 올라 방으로 가서 잠시 누워 있는다는 것이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고, 다시 깨어나 전화를 충전해 음성 사서함을 들어보니 캐시가 어제 밤 남자친구 집에서 지내고 온다고 메시지를 남겼고, 두번째 탐의 목소리를 통해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몹시 분노에 차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보호하지 않겠다고, 자신들에게서 멀어지라고 말했다.

솔직히 그녀는 어제 오후 5시부터 밤 10시 15분까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탐과 애나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말인가.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소리치는 걸 듣고 잠에서 깼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온 캐시가 레이첼이 미처 치우지 못한 것들을 고스란히 다 보고 소리친 것이었다. 캐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레이첼에게 자신의 집에서 나가 달라고 말했다.

레이첼은 지난 밤 자신이 탐과 애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알고싶었다. 기억 조각들을 짜내어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다. 다툼이 있었다는 것, 아니 다툼을 목격했다는 것은 확실했다. 애나가 결부된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녀는 머리에 생긴 상처 그 다음엔 입에 생긴 상처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거의 그때의 광경을 볼 수 있었고, 오고갔던 말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찰나, 그것은 다시 사라져 버렸다. 매번 그랬다.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싶으면 그것은 그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저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월요일 아침, 아파트를 나서는데, 캐시가 주저하며 레이첼을 안았다. 레이첼은 캐시가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줄 알았는데, 대신 공식 퇴거명령 편지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떠나야 하는 날짜도 명시되어 있었다. 레이첼은 울고 싶었지만 캐시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기차를 타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누가 보든 상관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자신이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기차가 신호에 멈춰 서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는데 제이슨이 테라스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는 기찻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바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너무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가 전에도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향해 미소짓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무슨 이유인지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녀는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그녀의 제시인 메건 힙웰이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너무나 놀라서 밖으로 뛰쳐 나오다 택시에 치여 오른쪽 눈 위를 몇 바늘 꿰매야만 했다. 당시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녀는 그녀가 바로 그 제시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그녀와 너무나 똑같이 생겼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사에 나온 도시명과 거리명을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제시는 지난 토요일부터 실종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날 아침 제이슨 (스캇)을 본 것을, 그가 그녀를 향해 미소지었던 것을 떠올렸다.

병원에서 의사가 그녀의 머리를 여기 저기 살펴 보다가 그날 다친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난 혹을 가리키며 그것은 어떻게 다쳤냐고 물어서 그녀는 차를 타다가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의사는 그것은 누군가가 뭔가 뾰족한 걸로 세게 때려서 난 거라고 말했지만, 레이첼은 다시 차를 타다가 생긴 거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 의사는 뭐라고 혼잣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남편의 연락처를 물었고, 레이첼은 남편과는 이혼했다고 했다. 의사가 그러면 긴급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서 그녀는 얼른 캐시의 연락처를 댔다. 얼마 후 연락은 받은 캐시가 병원으로 왔고, 레이첼에게 다시 함께 살자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레이첼은 8시 4분 기차를 탔지만 런던으로 가지 않고 윗트니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뭔가 자신의 기억력이 돌아오지 않을까, 역에 가보면 모든 게 분명해지지 않을까 희망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희망을 걸지는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탐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메건은 아직 실종 상태였다. 기사에 따르면 메건과 스캇이 토요일 저녁에 다투는 소리를 이웃이 들었다고 했고, 스캇이 그걸 인정했다고 했다. 스캇에 따르면 그는 아내가 친구인 타라와 같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메건은 타라의 집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타라가 메건을 마지막으로 본 건 금요일 오후 필라테스 클래스에서였다. 누군가 토요일 저녁 7시 15분경 기차역으로 가고 있던 메건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레이첼은 스캇을 생각했다.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남자친구나 남편이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메건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가능한 상황을 추리해보고 메건이 그 남자친구와 도망을 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차에 부딪친 곳이 아파왔다. 그녀는 토요일 저녁에 있었던 그들의 다툼을 자신이 보았는지, 상상한 건지, 아니면 꿈을 꾼 건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 윗트니로 간 레이첼은 기분이 이상했다. 어두컴컴한 터널 입구, 즉 지하도 입구를 보면서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물론 평소 때에도 빨리 걷긴 하지만 그날 아침은 달랐다. 그렇게 걷다가 어둠을 보자 그녀는 갑자기 발걸음을 뚝 멈췄다. 갑자기 그녀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자기 그녀는 몇 미터 앞에서 벽에 기대어 꼬구라져 앉아 있는, 머리를 손에 묻고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는데, 두 손과 머리는 온통 피투성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것이 실재인지 상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왜 지하도로 갔을까? 그녀가 어둡고 습하고 오줌 냄새로 찌든 그곳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뒤를 돌아 다시 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가 도서관에서 메건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텔레그라프지에 간단하게 '30대 남자가 경찰의 심문에 협조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스캇일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레이첼이 탄 기차가 애쉬베리에 막 도착할 무렵 캐시가 전화를 했다. 그런데, 자신을 걱정해서 그녀가 전화를 한 거라는 레이첼의 짐작과는 달리 캐시는 지금 경찰이 집으로 와서 레이첼과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레이첼에게 토요일 저녁에 대해서 묻고, 기억이 나지 않는 레이첼은 거짓말로 둘러댄다. 사실 경찰은 알콜중독인 그녀를 할일 없이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구경꾼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다음 날 경찰서로 찾아간 레이첼이 메건이 낯선 남자와 있는 걸 목격했다는 진술과 사진을 보고 카말을 지목한 그녀의 말에 따라 그를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조금 후 그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된 얼마 후 메건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죽기 전 그녀는 임신 상태였음이 밝혀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아이는 스캇의 아이도, 카말의 아이도 아닌,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