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By

Jonathan Franzen

어느 날, 『뉴욕 타임즈』에 미네소타의 세인트 폴 (St. Paul)에 살았던 월터 베르글룬트 (Walter Berglund)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물론 세인트 폴에서는 2년전 아내 패티 (Patty)와 함께 워싱턴 (Washington)으로 이사간 그의 소식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들이 살았던 램지 힐 (Ramsey Hill) 거리 이웃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타임즈에 실린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긴 기사에 따르면, 월터는 워싱턴에서 프로페셔널한 그의 삶을 그다지 잘 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 기사를 읽은 그의 옛 이웃들은 그에 관해 서술한 '거만하다'든지, '고압적'이라든지 하는 단어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억하기로 그 단어들은 2월 추운 겨울에도 자전거로 통근을 하던 3M의 변호사였던 예전의 월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린피스 보다 더 친환경적이었고 자신도 시골출신인 그가 탄광 사업을 묵인하고 시골 사람들을 홀대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베르굴룬트 가족에 대한 안좋은 얘기 또한 실려 있었다.

월터와 패티는 젊은 나이에 램지 힐에 정착했다. 그들은 세인트 폴의 구 시가지가 30년 전의 경제악화로 무너진 이래 배리어 가 (Barrier St.)에 집을 산 첫번째 대학 졸업자들이었다. 그들은 빅토리아풍의 그 집을 거의 헐값에 사서 고치느라 청춘을 바쳤다. 초창기, 어떤 아주 완고한 사람이 그들의 차고에 불을 질렀고 그것을 다시 고치기 전 두번씩이나 그들의 차를 털었다. 그외에도 이런저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처음 그들이 그곳에 정착했을 무렵, 즉 아무 생각없이 볼보 240을 몰고 다닐 수 있었을 때, 램지 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활 기술들을 다시 배우고 습득해야 하는 것이 과제였다. 물론 시간이 흘러 현시대에도 많은 질문들이 더 생겼다. 천 기저귀를 써야 하는지? 부터 시작해서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아직 배달받을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 보이스카우트가 정치적으로 옳은 것인가? 가난한 흑인이 당신이 그녀의 동네를 망치고 있다고 비난할 때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세인트 폴이 생긴 이래 지붕을 고치는 사람들과 긍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가? 볼보를 잘 고치는 정비공이 있는가? 당신의 볼보 240도 파킹 유압 벨브가 끈적거리는 문제를 갖고 있는가? 등등 습드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패티 베리글룬트는 이 모든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자양분을 전달하는 상냥한 꿀벌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램지 힐에서 몇 안 되는 전업주부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자기 자랑을 극히 싫어했고 다른 사람을 나쁘게 얘기하는 것 역시 싫어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생일뿐만 아니라 부모의 생일까지 기억하여 쿠키를 한접시 구워서 백야드로 들고 온다든지, 카드나 혹은 작은 중고 할인 상점에서 산 꽃병에다 백합을 꽂아 갖고와 꽃병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곤 했다.

소문에 의하면, 패티는 뉴욕의 교외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미네소타 대학에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전액장학금을 받고 농구선수로 입학했으며, 2학년 때 전미 2군 대표선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의 강한 가족 지향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족과의 왕래가 전혀 없었다. 말하자면, 일년 내내 세인트 폴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고 동부로부터 그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그녀의 부모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그녀의 부모에 대해서 물으면, 그녀는 부모님 두분 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화이트 플레인즈 (White Plains)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그녀의 엄마는 뉴욕 주 의원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마치 그 주제가 신물난다는듯 그들은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패티는 사람들이 보통 '나쁘다'라고 말하는 일을 '의아하다'고 표현했다. 가령 같은 동네 사람인 세스와 메리 폴슨 (Seth and Merrie Paulsen) 부부가 그들의 쌍둥이들을 위해 그 블럭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해 그들의 집에서 할로윈 파티를 열면서 이웃인 캐롤 (Carol)의 딸 코니 모나한 (Connie Monaghan)만을 제외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녀는 의아하다고 표현했다. 며칠 후 폴슨 가족이 패티에게 그 이유를 말했는데, 그들이 캐롤에게 제발 침실 창문 밖 쌍둥이 아이들의 작은 어린이 풀장으로 담배꽁초 좀 버리지 말아달라고 했는데도 그녀는 여름내내 그짓을 계속했다고, 그래서 코니를 초대하지 않았다고 설명을 했을 때에도 패티는 정말 의아한 일이라고 댓구하면서,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코니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캐롤 모나한은 패티가 그곳에서 지낸 기간 만큼 비슷하게 그곳에서 살고 있던 유일한 싱글맘이었다. 그녀는 헤네핀 카운티의 고위직에 있던 어떤 사람의 비서였는데, 그는 그녀를 임신시켜놓고 그의 디스트릭트에서 내쫓았다고 했다. 계속 그 자신의 사무실의 급여담당자 명단에 자신의 사생아를 낳은 여자의 이름을 올려놓은채.

80년대 당시, 캐롤은 그 블럭에 사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중산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녀는 싸구려 담배를 피우고, 머리는 블리치를 했다. 손톱엔 요란한 색깔의 갈고리 모양의 손톱을 붙였으며, 딸에겐 아주 싸구려 가공식품을 주었다. 그녀는 목요일 밤마다 아주 늦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날은 엄마들의 밤외출의 날이라고 마치 모든 엄마들이 그런다는듯 변명을 했다. 그리고는 베르글룬트 가족이 그녀에게 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의 딸 코니를 데리고 갔다. 패티는 캐롤이 쇼핑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혹은 목요일 밤 행사를 즐길 때 코니를 봐주는 걸 별로 개의치 않아했고, 그래서 캐롤은 아주 많이 패티에게 의존했다.

하지만 캐롤은 패티의 관대함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갚았다. 그녀는 패티의 딸 제시카 (Jessica)를 무시했고, 그녀의 아들 조이 (Joey)에게는 적절하지 못하게 맹목적인 애정을 표현했으며, 동네 이웃의 모임에서는 얇은 블라우스 차림으로 월터에게 너무나 가까이 바짝 붙어서서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큰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패티는 싱글맘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며 만약 캐롤이 가끔 그녀에게 의아하게 구는 것은 분명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것일 거라고 말했다.

세스 폴슨에게 그런 베르굴룬트 가족의 모습은 마치 모든 이를 용서해야 하는 대단한 가책을 가진, 그래서 그들 자신이 가진 넉넉한 재산도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특혜를 누릴만한 용기가 없는 사람들. 하지만 세스의 생각처럼 베르굴룬트 가족이 그렇게 특혜를 받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자산이라고는 그저 그들의 집, 그들의 손으로 직접 재건축한 그 집뿐이었다. 또한 메리 폴슨의 생각과는 달리 패티는 대단히 진보적이거나 페미니스트가 아니었고, 정치에 대해서 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다. 그녀에게 있어서의 유일한 관심은 아이들과 집뿐인 것 같았다. 그녀의 이웃도, 가난한 이들도, 나라도, 부모님도, 심지어 그녀의 남편도 아닌.

그리고 패티는 아들에게 과도한 애정을 보였다. 제시카는 책을 좋아했고 야생동물들을 보살폈으며 플룻을 잘했고 축구장에서는 믿음직한 선수였다. 또한 베이비시터로서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할 정도로 부모에게는 신뢰를 주는 딸이었음에도, 패티는 오로지 조이에게만 관심이 있는듯 그에 대한 얘기만 했다.

캐롤의 딸 코니는 오후에는 의례껏 패티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조이가 11살 그리고 코니가 12살 때 둘은 성관계를 갖는 사이가 되었고 그것은 모든 사람을 언짢게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둘의 관계는 조이의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먼저 알려지게 되었는데 물론 패티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 월터의 엄마가 직장에서 넘어져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월터와 패티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조이와 코니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제시카에게 들켰고,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패티는 예전의 패티가 아니었다. 그녀는 빈정대는 어투로 말을 했고, 엉망인 창백한 얼굴과 잠 못자고 못 먹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이웃들은 코니가 그녀의 보물을 훔쳤다는 것을 패티가 드디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패티는 여름내내 월터의 엄마가 유산으로 남겨준 이름없는 호숫가의 작은 집을 손본다며 조이를 데리고 그곳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 캐롤은 렌트로 살고 있던 집이 싸게 나오자 그집을 샀다. 그리고 새 남자친구인 블레이크 (Blake)를 시켜 패티의 집과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집주위에 심어져 있던 나무를 모두 잘라버렸다.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패티는 나무들이 모두 잘린 광경을 보고 매우 놀랐다. 메리가 그집을 캐롤이 싼값에 샀다고 말해주자 패티는 너무나 어이없어 하며 자신은 그곳에 사는 걸 아주 좋아했는데, 이젠 모든 것이 아주 지저분하고 추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후 패티는 모든 이웃이 피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블레이크와도 공사 소음 때문에 다퉈 경찰이 몇차례 다녀가기도 하였다. 그러다 누군가가 블레이크의 트럭 바퀴를 펑크냈는데 사람들은 모두 패티를 범인으로 생각했다. 이웃들은 그녀가 전업으로 집에 있다보니 너무 시간이 많아 이것저것 쓸 데 없는 간섭을 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패티가 이 모든 과정을 겪는 동안 사람들은 과연 월터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월터는 항상 이웃들에게 친절했다. 3M의 변호사였지만 그일에 크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그는 모든 이의 말에 귀기울여 주었고 자주 이웃들에게 무료 공연 티켓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그는 놀랍게도 3M의 변호사 일을 그만둬 버리고 '자연관리단' (the Nature Conservancy)의 개발담당관이 되었다. 월터는 문화보다는 자연에 더 열중했으며 주말에 자주 집을 비웠다. 그럼으로써 그는 패티와 캐롤의 잦은 다툼에도 그저 방관자의 역할을 했고, 그의 부재는 조이가 2학년이 된 봄과 여름 내내 그리고 제시카가 동부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가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조이는 케롤과 블레이크 그리고 코니와 함께 살겠다고 집을 나가버렸다.

조이의 이사는 패티에게는 엄청난 선동 행위였고 그녀의 심장에 칼을 겨누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램지 힐에서의 그녀의 삶을 끝내는 계기가 되었다. 조이는 7,8월을 몬타나 (Montana)에서 보냈는데, 그곳은 월터의 '자연관리단' 주요 기부자중의 한명의 랜치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넓고 남자다운 어깨와 2인치 정도 더 자란 모습으로 돌아왔다. 8월, 동네 이웃과의 피크닉에서 월터는 그 랜치의 주인이 조이의 대담무쌍함과 지치지 않는 열정에 감탄했다고 말했다고 의기양양하게 자랑했지만, 패티는 당시 고통으로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날 둘 사이를 지켜본 이웃에 의하면 둘은 서로를 짓찢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결과 조이는 엄마를 '멍청이'라고 불렀고 패티는 사람들 앞에서 아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것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캐롤은 그날 일을 다른 이웃들에게 얘기하면서 패티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대신, 조이는 모든 것을 자신과 상의하는 너무나 스윗한 아이이고, 월터는 아주 사려깊은 사람이라며 그는 조이가 캐롤의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해 식료품 비용을 걱정하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캐롤에 따르면, 패티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항상 자신을 아래로 놓고 보았었다고 했다. 또한 캐롤은 패티가 코니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거만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마치 조이같은 아이가 코니같은 아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말했다고 했다. 캐롤은 자신이 집도 없고 뉴욕 출신도 아니며 40시간씩 일하는 사람이기에 패티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캐롤은 월터에 대해서는 달랐다. 그녀는 그가 몹시 사려깊은 사람이며, 그날도 월터는 패티와 조이가 일으킨 소동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었다고 말했다. 그는 캐롤에게 코니를 데리고 집으로 가라고, 자신이 조이와 할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조이가 거부했다. 조이가 할말이 없다고 하자 월터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캐롤은 그것이 월터가 몹시 기분이 안좋았기 때문이며 자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조이는 월터의 막내아들이고, 패티가 비이성적이고 코니에게 무례하게 굴었기 때문에 조이가 그들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그가 그렇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분이 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월터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조이에게 16살밖엔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마치기 전까진 아무 데도 못간다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이는 그저 웃더라고 했다. 조이는 자신이 집을 떠나는 건 법을 어긴 것이 아니며 또한 그저 옆집으로 가는 것이라고 하자 월터는 다시 대학 등록금을 내주지 않을 것이며, 다음 해 여름에는 몬타나에 데려가지 않을 것이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일원으로 저녁을 함께 먹고 그의 침대에서 자라고 소리쳤다고 했다. 그러자 조이는 자신이 옆집에 산다고 해서 가족의 일원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으며, 캐롤은 자신도 16살 때 조이 만큼 냉철하고 현명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고 말했다. 잠시 후 월터는 부엌에서 꿍꽝거리며 다 나가라고, 진절머리 난다고 말했다고 했다.

먼저 부엌을 나간 월터는 바로 윗층 조이의 방으로 올라가 벽장과 서럽장을 열었다. 곧 이어 패티가 올라가 두 사람은 큰소리로 싸움을 시작했고, 그 순간 캐롤과 코니는 조이를 감싸안고 그가 자신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이 너무나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잠시 후 월터가 다시 내려와 조이에게 네가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느냐고 소리치자 캐롤은 역시 모든 게 패티를 위한 것이라며 패티는 항상 희생자 역할을 한다고 비아냥댔다.

캐롤의 이 모든 설명에 몇몇 이웃은 의심없이 그녀의 말을 받아 들였지만, 여전히 캐롤은 배리어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블레이크는 여러 면에서 개탄을 금할 수 없는 사람이고, 코니는 괴기스러운 아이로 여겨진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조이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대로였다. 그가 그렇게 흥분했다는 말이 퍼졌지만, 램지 힐 사람들은 월터를 안됐다고 생각했으며 패티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을, 그리고 자신들의 아이들이 얼마나 정상인가를 깨닫게 된 것에 대해서 안심하고 고마워하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월터에 따르면, 패티는 호숫가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조이는 여전히 코니의 집에서 지냈는데, 패티는 그것을 몹시 속상해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조이는 대학에서 방학을 맞아 온 제시카를 위해 일주일 동안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지냈다. 패티의 차가 진입로에 세워져 있을 때 가끔 그녀의 운동팀 동료였던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다녀가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물론 그 사람들이 그녀의 친구들일 거라는 것도 추측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램지 힐에서 한번도 가까운 친구를 사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해가 되자 조이는 다시 캐롤과 블레이크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지내는 가장 큰 매력은 코니와 침대를 같이 쓴다는 것이었고, 좀 더 통찰력있는 폴슨 같은 이웃들은 조이가 그 집에서 자신이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그가 캐롤을 대하는 건 그저 희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블레이크에게는 그가 즐기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고 함으로써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특히 조이는 블레이크의 연장과 트럭을 좋아했고, 그 트럭으로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알 고어 (Al Gore)나 웰스톤 상원의원 (Senator Wellstone)을 찬성하는 급우들을 이상한 표정으로 비웃었다. 마치 진보주의가 자기 학대와 동등한 약점이라도 되는듯이 말이다. 그것은 블레이크의 정치 성향이기도 했다. 조이는 다음 해 여름 몬타나로 가는 대신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월터의 친절함을 탓했다. 조이를 강제로라도 끌고 집으로 데리고 와 처신을 똑바로 하라고 가르치는 대신, 또한 어떻게든 패티가 이웃들에게 똑바로 처신하게 만드는 대신, 그는 모든 것을 외면하고 자신의 일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곳에서 그는 빠른 속도로 책임자로 승진했다. 따라서 밤마다 집은 텅빈 채로, 정원은 메말라 가도록, 울타리 식물은 깎지 않고 내버려둔 채로 그리고 창문은 닦지 않은 채로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폴슨네 사람들도 베르굴룬트네 사람들에게 흥미를 잃어 갔다. 패티는 다음 해 여름에도 내내 이름없는 호숫가 집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바로 직후, 조이가 어떻게 받은 것인지 램지 힐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재정 지원을 받고 버지니아 대학으로 떠난 직후, 9/11이라는 국가적 비극이 발생한 2주 후, 월터와 패티가 그들의 생의 절반을 쏟아 부은 빅토리아 풍의 그 집 앞에 'for sale' 사인이 내걸렸다. 월터는 이미 워싱턴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을 판 얼마 후, 2월, 패티와 월터는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스가 저 두 사람이 아직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하자 메리는 고개를 흔들며 아직 그들이 사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한편, 패티는 어린시절부터 다른 아이들 보다 훨씬 키가 컸다. 그리고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처음엔 소프트 볼을 했지만, 농구가 더 적성에 잘 맞았고, 실력도 월등했다. 그녀의 부모는 외모에서부터 그들을 닮지 않은 그녀에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녀의 두 여동생들에게만 신경을 썼다. 그들은 항상 바쁘다며 패티의 중요한 시합에도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패티가 17살이었을 때, 친구의 초대로 파티에 갔다가 피나 콜라다를 마시고 취한 날 밤, 에단 포스트 (Ethan Post)라는 남자아이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녀는 처음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을 못하다가 다음 날 아침 멍든 팔을 보며 샤워실에서 울었다. 그 시간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아픈 시간이었고, 훗날에도 뭔가 부당한 일을 보면 그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일을 그냥 묻어두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부모와 에단의 부모는 정치적으로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심장전문의 아버지와 부자집 출신인 에단의 엄마는 패티의 엄마 조이스 (Joyce)의 강력한 자금줄이었다. 패티의 부모는 그들의 '뒷뜰'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고, 그것은 센트럴 파크만큼 넓지만 훨씬 더 깨끗한 에단의 '뒷뜰'에서 개최되는 모금 행사를 의미했다.

그런데 패티의 소프트 볼 팀코치가 그녀의 팔에 멍이 든 것을 발견했고, 그녀는 패티에게 당장 병원과 경찰에게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일을 그냥 그대로 두면 에단은 그녀의 팀원 중 누구에게라도 다시 그짓을 되풀이 할 수 있다고 강력히 설득했다. 결국 코치는 조이스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조이스는 몇년만에 처음으로 패티를 데릴러 체육관으로 왔다. 그곳을 나와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조이스는 왜 아침에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패티가 코치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자 조이스는 그것은 코치의 입장이고 패티 본인의 생각이 어떤 거냐고 물었다. 패티는 잘 모르겠다며 일단 아버지의 사무실로 가자고 말했다.

가는 도중, 엄마는 에단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패티가 에단이 거칠게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말하자 엄마는 그랬으면 된 거 아니냐고 말했다. 패티는 그건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패티는 엄마를 떠보기 위해 그가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엄마의 얼굴을 살피자 엄마는 그럼 그렇지 하는 안심하는 표정을 숨기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인 것 같다고, 하지만 그것이 너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할 경우에,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패티는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고 대답했다. 패티는 울면서 그가 그녀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면서 강간을 했다고, 자신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아버지의 사무실에 거의 다 왔다고, 그녀가 많이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주저하자 패티는 아버지가 뭐라고 얘기할지 알 것 같고, 자신이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을 모두 들은 아버지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으로 에단을 욕했고, 아는 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패티는 그 의사에게 가 진찰을 받고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는 패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커다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패티에게 에단이 자신의 모든 행위를 부정했고, 조금 거칠긴 했지만 그것은 상호 합의 하에 이루어진 행위였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한 그 자리에 있던 에단의 친구들이 그녀가 거부하는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고.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이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고. 이제 모든 걸 잊고 넘어 가라고. 그리고 얼마 후, 에단의 '뒷뜰'에서 패티의 엄마를 위한 모금 행사가 열렸다.

패티가 다른 많은 대학의 스카웃 제의를 물리치고 미네소타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대학들 중 그곳이 뉴욕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화가 나 굉장히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냈다. 그래서 자신의 그런 것을 철저히 숨길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진짜 자신과 반대인 좀 더 밝고 친절한 모습을 보였고 모든 것을 농구에 쏟아 부었다.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선수들하고만 어울렸고, 기숙사도 선수용 기숙사, 캠프도 선수용 캠프만 참석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지구 과학 강의실에서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면서 강한 관심을 보이는 일반인 친구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 (Eliza)였고 사실 그녀는 패티의 스토커였다. 엘리자는 운동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거의 마약과 담배에 찌들어 사는 것 같았다. 엘리자는 패티를 곁에 잡아 놓기 위해 별짓을 다했는데, 나중엔 패티가 그녀를 떠나면 자살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패티는 당시 자신이 전혀 다른 두 세계, 즉 자신의 머리를 비워야 하는 농구라는 세계와 그럴 필요가 없는 엘리자의 세계, 이 두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엘리자의 세계에서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월터를 만나게 된다. 월터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부모를 도와 허드렛 일을 하며 법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엘리자가 잠시 사귀었던 리차드라는 인디 밴드 리더의 룸메이트였다. 월터는 처음부터 엘리자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했고,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엘리자가 패티를 리차드의 공연에 데리고 간 날, 엘리자는 대기실로 가 마약을 하고, 그것도 모른 채 엘리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패티에게 월터가 다가왔다. 이후 월터는 패티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패티가 부상을 당해서 목발을 짚고 병원을 드나들 때에도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런데, 사실, 패티가 마음에 둔 사람은 월터가 아니라 리차드 (Richard)였다. 그는 모든 여자는 골치덩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그래서 엘리자와의 관계도 오래 가지 못했다. 리차드는 월터가 패티에게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월터가 패티에게 리차드가 뉴욕으로 이사가니까 그의 방으로 이사를 들어오라고, 말하자면 같은 집에서 살자고 한 날, 패티는 리차드에게 품었던 마음을 정리하려고 방을 보러 가자며 월터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남아 있던 리차드를 보면서 다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으며, 그가 뉴욕으로 갈 때 함께 로드 트립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뉴욕에 다녀와야 한다고.

잠시 후, 차가 없는 월터 대신 그녀를 자신의 차로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밖으로 나온 리차드는 월터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비난했다. 그는 월터가 처한 상황, 즉 그의 가족들이 처한 최악의 상황에서 실질적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월터의 상황을 패티에게 얘기해 주면서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충고했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월터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말라고.

집으로 돌아온 패티는 리차드가 자신의 포장하지 않은 진짜 모습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월터에 대한 죄의식과 그녀가 그와 그녀 둘 다 바라는 그런 사람이 아님에 대한 슬픔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아직 키스 조차도 시도하지 않은 월터의 느림이 얼마나 옳았는지, 그녀의 내면의 의구심을 파악한 그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그가 그녀에 대해 얼마나 현명하고 옳았는지 알게 되자, 그를 실망시켰다는 사실이 점점 더 슬프고 점점 더 죄의식이 깊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망설임의 교차로로 되돌아가게 된 것 같았다.

그로부터 거의 일주일 동안 월터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녀는 커다란 포인세티아 화분을 들고 버스를 타고 왔던 그의 모습을 생각했다. 또한 그녀의 기숙사 친구들과 있었던 지루했던 대화를 잘 견뎌냈던 월터, 가족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일을 하며 공부해야 하는 그의 사정 등이 생각났다. 며칠 후 월터로부터 연락이 와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지셨다고 말하자 패티는 그에게 리차드가 하지 말라고 했던 종류의 말, 즉 헛된 희망을 주는 말을 하고 말았다. '보고 싶었다'고. 그녀는 이어서 그의 아버지의 상태를 물었고, 리차드 차를 타고 함께 뉴욕으로 가겠지만 그가 쓰던 방을 렌트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이면서.

리차드와의 로드 트립은 출발부터 엉망이었다. 가는 도중에도 그는 패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목발을 짚은 그녀가 얼마나 느린지 불평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라거나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온갖 짐더미가 쌓인 차 안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둘이 나눈 대화가 월터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 리차드는 월터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 말을 시키자 그는 월터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었다. 물론 둘 사이에 월터의 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월터의 전여친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리차드가 패티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 뉴욕에서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이에 패티 역시 즐거운 상상을 했지만, 그들이 시카고에 도착하고서 그것이 그저 망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머물기로 한 리차드 친구의 친구의 집은 한마디로 머물만한 곳이 못되었다. 쓰러게 더미로 가득찬 방뿐만 아니라 부엌은 한번도 치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한 마디로 그곳은 정신병원 같은 냄새가 났다. 패티는 그곳의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가야 겠다고 했지만 리차드가 그곳은 목발을 짚은 그녀가 걸어다니기에 좋은 이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가 그럼 같이 나가주면 되지 않냐고 하자 그가 1시간 정도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녀는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가 그럼 혼자 가라고 하자 그녀는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온 패티는 한 멕시컨 식당에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리다가 나왔다. 사실 그녀는 리차드가 오랫동안 나와 있던 그녀를 기다리며 걱정을 많이 하고 있기를 바랬지만,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리차드는 없었다. 대신 그는 클럽에 간다며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버스 노선 등을 적은 메모를 침대 위에 올려 놓았다. 패티는 갈까말까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한참 후 리차드의 친구들의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리차드에 대해서 물었지만, 그들은 리차드가 아는 여자애들과 어디론가 갔고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의 부모님 결혼기념일 파티가 열리는 곳에 제때 도착하려면 그날 새벽 5시엔 출발했어야 했는데, 그녀 역시 오후까지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패티는 집으로 전화를 해 자신이 시카고에 있음을 알렸다. 그러자 그녀의 엄마는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오라고 말했다. 사실 그 파티는 패티의 엄마의 정치적 생명에도 매우 중요한 파티였다. 그래서 모든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함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파티였다.

하지만 엄마와 전화 통화를 끝낸 패티는 그녀의 마음이 점점 차분해지는 걸 느끼며, 좀 더 냉정한 눈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즉 그녀가 그 파티에 참석을 하지 않더라도 해가 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 후 리차드가 전화를 해 지금 간다고 하자 그녀는 이미 늦었다며 서두를 필요 없다고, 자신은 이제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짐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그레이 하운드 버스 정류장으로 가 미네아폴리스 (Minneapolis)로 가는 버스를 단 다음 월터의 아버지 진 (Gene) 베르굴룬트가 죽어가고 있는 히빙 (Hibbing)으로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