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Day

By

Kazuo Ishiguro

스티븐스 (Stevens)가 평생을 일했던 달링턴 홀 (Darlington Hall)을 닷새나 엿새 이상 비우고 영국의 멋진 시골길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는 여행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새 주인인 미스터 파라데이 (Mr. Farraday)의 제안 때문이었다. 어느 날, 스티븐스가 사다리 위에서 웨더비 (Wetherby) 자작의 초상화 위의 먼지를 털고 있는데 미스터 파라데이가 서재로 들어왔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선반에 다시 꽂기 위해 온 것 같았다. 그는 스티븐스를 보더니 8월에서 9월 사이 5주 정도 미국엘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티븐스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그도 며칠 동안 어디든지 바람을 쐬고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안에 스티븐스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 지 몰랐다. 생각해 보니, 당시 그는 그의 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삿말은 했지만 분명하게 그러겠다고 대답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주인은 계속해서 자신은 진지하다며, 그가 휴가를 갖기를 정말로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은 자신이 부담하겠다며, 내내 이 큰 집에 갇혀서 이것저것 돕느라 세월을 다 보내면 언제 여기저기 이 아름다운 당신의 나라를 돌아보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주인의 이런 권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럴 때 스티븐스는 주인에게 할 최상의 답변을 알고 있었다. 그와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교외로 나가 그림같은 경치를 보는 여행이라는 그런 의미에서의 이 나라를 볼 수는 없지만, 이 땅에 사는 최고의 신사 숙녀들이 모이는 그런 집에 배치된 그들은 실제로 어느 누구보다 더 영국이라는 나라를 잘 '보고' 있다고. 물론 그는 이 얘기를 직접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대신 그의 주인에게 이 집에서 수년 동안 영국의 가장 좋은 곳을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렸노라고 대답했다.

미스터 파라데이는 그의 대답에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은 진심이라고, 사람이 자신의 나라를 둘러보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며칠 동안 집밖으로 나가보라고 말했다.

물론, 스티븐스는 그날 오후 미스터 파라데이의 권유를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을 그저 영국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한 미국인 신사의 또 다른 예라고 여기고 말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날이 감에 따라 이 권유에 대한 그의 생각이 점차 변해 갔다는 데 있었다. 남서부 지방으로의 여행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것은 거의 7년만에 처음으로 온 미스 켄튼 (Miss Kenton)의 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편지는 이곳 달링턴 홀에서의 '전문적인' 문제들과 함께 실행되어야 할 어떤 일련의 일들을 다시 시작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지난 몇달 동안 스티븐스는 그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 실수들은 그 자체로는 모두 사소한 것들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은 다소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으므로 그는 실수의 원인에 필요이상의 논리를 대입시키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매우 자주 일어남에도 그는 분명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스 켄튼의 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본 후에야 비로서 그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챘다. 최근 몇달 동안의 그러한 작은 실수들은 잘못된 스태프 플랜 (staff plan)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집사는 당연히 스태프 플랜을 짜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다. 스태프 플랜을 짜는 단계에서 집사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다툼, 잘못된 혐의, 불필요한 해고들이 생기게 되는지, 또한 얼마나 많이 전도 유망한 젊은이들의 경력을 단절시키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는 좋은 스태프 플랜을 짜는 능력은 능력있는 집사의 초석이 된다는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는 지난 몇년 동안 많은 스태프 플랜을 만들었고, 그것들은 그다지 많은 개정이 필요치 않았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운영되고 있는 플랜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느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비난을 받아야 마땅했다. 동시에, 이번의 경우, 그의 임무는 평소와 다른 힘든 명령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그 집에 대한 2세기 동안의 달링턴 가족의 소유가 끝나고 주인이 바뀌는 절차가 끝나자, 미스터 파라데이는 자신이 즉시 그 집에 들어와서 살지는 않을 것이며 미국에서의 일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넉달을 더 머물거라고 알려왔다. 그러면서 그 이전의 주인이 데리고 있던 스태프들을 달링턴 홀에 그대로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이 '스태프'는 물론 달링턴 경의 친족들이 이 집을 유지하기 위해 데리고 있었고 주인이 바뀌는 과정 중에도 남아 있던 가장 기본적인 6명의 스태프를 의미했다. 미스터 파라데이는 그 스태프들에 대한 칭송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스티븐스는 집 매매가 끝나자 다른 곳으로 떠나려던 미세스 클레멘스 (Mrs Clemens)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붙잡지 못했다. 그가 이 사실을 미국에 있는 새 주인에게 말하자, 그는 편지로 '웅장하고 오래된 그 영국 집에 어울릴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스태프를 찾으라'는 지시를 보내왔다. 물론 요즘 시절에 만족할 만한 기준에 맞는 새 직원을 뽑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스티븐스는 미세스 클레멘스의 추천으로 로즈메리 (Rosemary)와 아네스 (Agnes)를 뽑았고, 지난 해 봄 미스터 파라데이가 잠깐 그곳에 예비적으로 방문한 동안 그를 사업상 처음으로 만났을 때까지 더 이상의 인원 채용은 없었다.

처음 스티븐스가 새 주인 미스터 파라데이를 만나 악수를 나누었을 때, 두 사람은 낯설지가 않았다. 스태프 문제들 외에도 여러 경우에 있어서 미스터 파라데이는 스티븐스가 갖고 있는 좋은 점들을 찾아 바라봐주는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었다. 스티븐스는 그가 즉시 자신에게 효율적이고 신뢰한다는 태도로 얘기를 한다고 느꼈다. 미팅이 끝나갈 무렵, 미스터 파라데이는 앞으로 그가 와서 머물 것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데 필요한 적지 않은 액수의 비용을 내놓았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스티븐스가 적절한 스태프를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했을 때, 미스터 파라데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에게 최선을 다해 이 집을 현재의 네명의 스태프들이 꾸려나갈 수 있는 스태프 플랜, 말하자면 고용인들의 계획표 같은 것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그 네명은 미세스 클레멘스, 어린 처자들 두명, 그리고 스티븐스 자신을 의미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집의 일부를 손대지 않고 놔두자는 걸 의미했다.

당시 스티븐스는 그의 휘하에 17명의 스태프들이 있었던 때와 얼마 전에는 28명의 스태프들을 고용했었음을 상기하면서, 같은 집을 4명의 스태프를 데리고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나 벅찬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미스터 페러데이는 만약 인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되면 사람을 더 고용하겠지만 먼저 4명을 데리고 한번 해보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옛 방식을 바꾸는 일에 주춤했다. 하지만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전통에 매달리는 것은 전혀 미덕이 되지 못했다. 전기와 현대적 히팅 시스템을 갖춘 이 시대에, 한 세기 전에나 필요했던 인원수를 모두 고용할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생각에도 단순히 전통을 위해 불필요한 인원을 보유하는 것은, 그래서 그들에게 빈둥거릴 시간을 준다는 것은 전문적인 기준에서 볼 때 급격히 잘라내야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미스터 파라데이는 과거에는 달링턴 홀에서 자주 열었던 큰 사교 행사를 거의 열지 않겠다는 계획을 분명히 밝혔다.

그래서 스티븐스는 미스터 파라데이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를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우선 그는 스태프 플랜을 짜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심지어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것에 관한 것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여러 관점에서 조사해 보고 모든 관점에서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비록 미스터 파라데이가 요구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최선이라고 생각된, 지금의 인력으로 가능한 계획서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나쁜 플랜은 아니었다. 그것은 네명의 스테프가 예기치 못한 양의 작업을 처리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한 직원이 아프거나 또는 무슨 이유로든 하는 일이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대신 메꿀 수 있는 잉여 인원이 있는 것이 가장 좋은 플랜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번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있어서 약간의 일상적이지 않은 임무를 할당하긴 했지만, 그는 가능할 때마다 무형의 '여백'을 등한시 하지 않았다. 특히 미세스 클레멘스나 두 처자들에게 그들의 평소 범위를 넘어선 업무를 맡긴 것에 대해 불평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이 좀 더 '절충적인' 업무에 대한 반발감을 이겨내고 각각의 업무를 활발하게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행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꼭 미세스 클레멘스나 두 어린 처자들의 협력을 얻고 싶어서 그 자신의 한계를 그다지 절박하게 평가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그런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오랫동안의 경험과 관례적인 주의가 자신이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을 방지하기는 했다고 해도, 그 자신을 잉여 인원으로 허락하는 문제에는 신중하지 못했다. 이 실수가 여러 달에 걸쳐 작지만 눈에 띄게 노출되었다는 것이 놀랄일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결국 그는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스테프 플랜에 대한 그런 분명한 결점을 그가 계속해서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누군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어느 시기 이상 고수해온 방식이 있다면 그 일이 과히 뜻밖의 일로 표면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말하자면, 달링톤 홀에 대한 길고, 분명히 표현하고 있진 않지만 분명한 향수를 담고 있는 미스 켄튼의 편지를 받고, 그는 그녀가 그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의 스태프 플랜을 새롭게 다시 살펴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서 정말로 그곳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스태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최근에 그가 한 모든 실수의 요점은 바로 스태프의 부족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곳에 애정을 갖고 있는, 그리고 요즘 시대에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직업정신이 투철한 미스 켄튼이 바로 달링턴 홀에 대한 그의 스태프 플랜을 완성시켜 줄 수 있는 결정적 요소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상황을 그렇게 분석하고 나니 며칠 전 미스터 파라데이의 제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가 제안한 자동차 여행을 직업적인 용도로 이용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로 웨스트 컨츄리 West Country)로 가서 지나는 길에 미스 켄튼에게 연락해 왜 그녀가 달링턴 홀로 돌아오고 싶어하는지 먼저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미스 켄튼의 편지를 여러 차례 다시 읽어 보았지만, 분명 그녀의 입장에 대해 그저 자신이 상상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며칠 후 그는 미스터 파라데이에게 그 얘기를 다시 꺼내고 싶었다. 그는 일을 진행하기 전 그 사안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논의하면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예를 들면, 비용 문제 같은 거 말이다. 그의 주인이 친절하게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말했지만, 거기에는 숙소라든지, 식사비, 그리고 가는 도중 먹을 수 있는 간식비 등을 합치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비용이 포함될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그런 여행에는 어떤 복장이 어울릴까도 고민이었고, 이번 여행을 위해 옷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것도 고민이었다. 여러 해 동안 달링턴 경과 그곳에 머물렀던 여러 손님들이 그의 서비스에 만족해서 선물한 멋있는 양복들이 여러 벌 있긴 했다. 이 양복들은 이번 여행에 입기에는 너무 정장스타일이거나 요즘에 입기에는 너무 구식일 수도 있었다. 그중에는 에드워드 블레어 (Edward Blair) 경이 1931년인가 32년에 준 양복으로 그에게 과히 잘 어울리는 양복처럼 저녁 행사에 입기에는 어울릴만한 것도 있었지만 운전을 하면서 입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그는 작을 게 분명하지만, 전쟁 중에 차머스 경 (Lord Chalmers)이 준 옷을 운전하면서 입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의 통장 잔고가 이번 일에 소요되는 경비를 모두 층당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새 옷을 사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한 그는 많은 시간 지도도 살펴 보았다. 특히 미세스 재인 사이먼스 (Mrs Jane Symons)의 책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것은 7권으로 된 시리즈로 각 권은 각각 영국의 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었다. 미세스 재인 사이먼스는 전쟁 전 그 집을 자주 방문한 손님들 중의 하나였으며, 스태프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는 그녀가 쓴 <데본 (Devon)과 콘월> 부분을 다시 읽으며 그렇게 멋진 지역을 여행하게 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그런데 그의 주인에게 2주일 전에 했던 제안에 대해 다시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었고, 그가 더 이상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겪어본 미스터 파라데이는 많은 주인들이 갖고 있는 나쁜 기질, 즉 일관성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긴 해도 그가 비용을 전부 부담하겠다고 했던 말도 번복할 수도 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그는 주인에게 여행에 관한 얘기를 다시 꺼내기가 힘들었고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어느 날 오후 3시경, 거실로 차를 내가는 시간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시점은 미스터 파라데이가 시내를 짧게 산책했다가 돌아오는 시간으로, 대부분 저녁 시간에 하는 독서나 글쓰기에 몰두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이 미스터 파라데이가 그저 간단한 농담이나 재미있는 화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때라는 것을 간과했다. 그는 미스터 파라데이와 자동차 여행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왜 웨스트 컨츄리 지역으로 가려고 하는지, 즉 그곳에 이전의 달링턴 홀 스태프였던 미스 켄튼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자신도 모르게 발설했다. 말하자면 미세스 재인 사이먼스의 그 지역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얘기하는 대신 미스 켄튼의 얘기를 한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말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그 얘기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스 켄튼이 그곳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년 전 첫 예비 만남 이후 미스터 파라데이와 스태프를 늘리는 것에 대해 한번도 토론을 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미스터 파라데이는 그의 말을 듣고 '그 나이에 여자친구라니' 하면서 그를 놀렸다.

스티븐스에게 그것은 가장 모욕스러운 순간 중의 하나였다. 달링턴 경이었다면 자신의 스테프를 절대로 겪게 하지 않았을. 하지만 그는 절대로 그의 새 주인을 비난하는 것 같은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인은 미국 신사였고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해를 입히기 위해 한 말은 전혀 아닌 것이 분명했지만, 어찌됐든 그 상황은 스티븐스에게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미스터 파라데이는 계속 스티븐스에게 그가 그렇게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몰랐다는 둥, 젊은 생각을 유지해서 좋지만, 자신이 그의 의심스러운 밀회를 도와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둥 하면서 계속 놀렸다. 스티븐스는 그의 말에 즉각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그의 주인에게 미끼를 던져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색하게 서서 그 여행에 대한 그의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몹시 창피했지만, 미스터 파라데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미국에서는 그런 농담을 단순히 즐겼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주인과 고용인 사이의 호감을 주고 받는 그런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미스터 파라데이가 주인이 되고 난 후 처음엔 그가 자신에게 했던 농담에 많이 놀랐었다. 가령, 언젠가 그가 그곳에 오는 어떤 손님이 아내와 같이 오느냐고 묻자, 미스터 파라데이는 '스티븐스, 당신이 그녀를 우리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어요. 미스터 모건 (Mr. Morgan) 근처에 있는 마굿간으로 데려가도 좋아요. 하루종일 그녀를 재미있게 해줘요. 그녀가 당신 타입일 수도 있어요.'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주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가 농담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웃으려고 힘껏 노력했지만, 스티븐스는 당황스러웠고 얼굴엔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후로 그의 주인의 그런 농담에 놀라지 않게 되었고, 그의 농담조에 적당히 미소지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날 같은 경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진심을 다해 웃어야 할지, 농담을 주고 받아야 할지 말이다. 시대가 바뀌어 농담이 새로운 고용조건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에게 그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언젠가 한번은 아침 커피를 서브할 때 그의 주인이 '오늘 아침의 소음은 당신이 낸 게 아니죠, 스티븐스?' 하고 물었다. 그것은 지나가던 집시들이 아침마다 자신들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의례적으로 내는 소리였다. 스티븐스는 주인의 농담에 반응을 하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용기를 내어 이렇게 대답했다. '이동 면에서 볼 때 까마귀보다는 종달새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러자 그의 주인은 웃지않고 그를 바라보며 '뭐라고요?'라고 되물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재치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말이 집시들이 지나가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 당시에는 그는 그런 농담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급히 할 일이 떠올랐다며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어리벙벙해 하는 주인을 남겨 놓은 채.

그때가 바로 그에게 전혀 새로운 종류의 업무가 주어진 가장 맥빠지는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맥빠진 일이어서 그는 더 이상의 말을 덧붙이는 시도를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미스터 파라데이가 그의 다양한 농담에 대한 그의 대응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최근까지도 계속되는 미스터 파라데이의 농담은 스티븐스로 하여금 가벼운 마음으로 거기에

대응하라고 권하는 그의 주인만의 방식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시와 관련된 첫번째 농담이 있던 이래로 스티븐스는 다른 경우에도 충분히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재치를 갖게 되진 못했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요새 더 그의 뇌리에 자리잡고 있어서, 이전에 동료들과 어떤 일에 대해 토론하고 보완하고 했던 것들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업무에 대해 그런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곧 그 사람이 존중하는 어떤 동료가 그의 주인을 집까지 바래다 주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 의논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졌었다.

달링턴 경이 주인이었 때, 스티븐스를 비롯한 하인들은 대기실에서 영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신사 숙녀들이 모여 밤 늦게까지 토론을 즐기며 앉아 있는 것을 보곤했다. 그 당시, 그 대기실에서는 어떤 가쉽도 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윗층에 있는 주인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이나 신문에 발표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토론했다. 물론 방방곡곡에서 온 전문가들이 모였으므로 늘 그렇듯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관해 여러 관점에서 의견을 나누었다. 때론 당연히 강하게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두달 전, 제임스 체임벌스(James Chambers) 경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스티븐스는 기뻤다. 물론 미스터 파라데이의 서클은 이전의 달링턴 경의 그것과 다르므로 그 시절의 손님이 온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는 제임스 경의 개인 집사인 미스터 그레함 (Mr Graham)이 예전과 같이 그의 주인과 함께 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그의 새 주인의 농담에 대해서 물어 볼 참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경이 오기 하루 전 날, 스티븐스는 그가 혼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제임스 경이 머무르는 동안, 그는 미스터 그레함이 이젠 더 이상 제임스 경의 개인 집사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실은 제임스 경이 이젠 상근 직원을 하나도 두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록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스티븐스는 미스터 그레함의 근황을 듣고 싶었다. 둘은 만날 기회가 있을 때면 비교적 잘 지냈던 것이다. 그는 미스터 그레함에게 그의 새주인이 농담을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시 현재의 상황으로 돌아와, 그날 오후, 미스터 파라데이가 농담을 할 때, 그는 평상시처럼 가볍게 웃으며 최소한 자신이 그의 유쾌함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미스터 파라데이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미스터 파라데이는 즉시 대답을 해주었고, 친절하게도 '비용을 모두 부담하겠다'는 말을 다시 한번 더 강조했다.

그래서 스티븐스는 더 이상 웨스트 컨츄리로의 자동차 여행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는 미스 켄튼에게 자신이 그녀가 사는 곳을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편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복장에 대해서도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었다.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발생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처리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무엇 보다도, 왜 그 여행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윽고, 그는 여행을 떠나 살리스베리 (Salisbury)에서 첫날을 맞이 하게 되었다. 그가 떠나 있는 동안 미세스 클레멘스와 두 젊은 처자들도 그 주 동안 떠나서 명실공히 달링턴 홀은 비어 있게 되었다. 그것은 이번 세기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그 생각에 집 주변을 여러번 살피고 또 살피며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지 살펴 보았다. 그래서 출발이 약간 지연되었다.

일단 마침내 출발을 하자 그의 감정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차를 타고 달린 처음 이십여분 동안, 그는 흥분되거나 어떤 기대감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 집에서 그가 해야하는 일, 즉 책임감 때문에 어딘가로 떠난다는 걸 제한해 왔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집밖으로 나온 경우가 많아 생각했던 것보다는 주변이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실은, 버크셔 (Berkshire) 경계선을 향해 가는 동안 거쳐가는 주변이 친밀한 것에 더 놀라움을 느꼈다. 하지만 조금 더 가자 이제 점점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자신이 이제 이전 구역을 벗어났다는 게 실감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딜링턴 홀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느낌이 그 자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 감정은 자신이 옳은 길로 가고 있지 않지만 전속력으로 잘못된 길을 지나 황야로 달려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것이 순간의 감정일지라도 그로 하여금 속력을 늦추게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맞는 길로 가고 있다고 토닥거렸지만 그는 잠시 차를 멈추고 다시 점검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잠시 차를 멈추고 다리를 펴기 위해 차 밖으로 나온 그는 언덕 비탈의 광경을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며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경치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