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st Book of the Grail

(Or, A Visitor's Guide to Barchester Cathedral)

By

Charlie Lovett

높은 제단 너머 바체스터 (Barchester) 성당 동쪽 끝에 있는 레이디 채플 (Lady Chapel)은 그 성당이 세워진 자리인, 이전의 색슨 (Saxon) 수도원을 세운 에월다 성인 (St. Ewolda)의 성전이 있었던 곳이었다. 그 성전은 종교개혁 때 허물어졌고, 500년 이상 바닥에 있던 단순한 검은 돌십자가만이 그곳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비드 (Bede) 부주교의 '10월 12일은 순교자 에월다 성인의 기념일이다. 그녀는 바시트 (Barsyt) 왕국을 개조하여 그곳에 수도원을 세운 분이었다.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그녀는 그리스도의 빛을 그곳에 타오르게 하였다' 라는 짧은 설명 외에 에월다 성인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1941년, 2월 7일, 바체스터. 바체스터는 공습 사이렌을 갖추지 못했다. 그곳은 독일 폭격대의 범위 너머에 있었고 전략적으로 별 가치가 없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 비교적 공격에 대해 민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영국 남부를 덮는 예기치 못한 짙은 안개로 인해 폭격함대가 밤에 길을 잃었던 것이었는지 너무 멀리까지 온 독일 함대는 '타겟이 없는 것보다는 아무런 타겟이라도 있는 게 낫다'는 것이 작전인양 예정에 없던 바체스터를 공격했다.

당시 9살이었던 에드워드 (Edward)는 공습 사이렌 소리가 아닌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와 여기 저기에서의 차 경적 소리에 의해, 그리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비행기의 굉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부모가 바체스터는 공습에서 안전하다고 말했는데, 그들이 틀린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현관으로 달려가 힘껏 문을 열었다. 건너편 그리샴스 (Greshams) 가족의 집은 무너져 내려 돌더미가 되었다. 사방에서 비명과 외침 소리가 들려 오는 와중에 누군가가 다가와 에드워드의 팔을 잡았다. 그는 성가대 단장이며 이웃인 그랜틀리 (Grantly) 씨였다. 그는 에드워드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그의 부모가 자신에게 그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랜틀리 씨는 에드워드에게 자신을 따라 오라고 말했다. 에드워드가 어디로 가는지 묻자 그는 성당 도서관으로 간다고 했다.

그들이 성당 근처에 다다랐을 때, 네명의 다른 성가대원들이 합류했다. 폭격으로 인해 성당 동쪽 끝에서 불이 났고, 불길 중심에 그들이 성가 연습을 하곤 했던 레이디 채플이 있는 것 같았다. 빨리 움직이라는 그랜틀리 씨의 재촉에 성가대원들은 재빨리 회당을 지나 구불거리는 계단을 올라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창문밖의 화염에 의해 훤했다. 그랜틀리 씨는 불길이 곧 그곳에 이를 것이라며, 그 안의 책들을 가능한한 많이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필사본들 먼저 옮기자고 했다.

에드워드는 성당 도서관에 한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불빛 속에 반짝이는 고전들이 쌓여 있는 거대한 책장을 보면서 감탄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눈앞 선반에 있는 우피지 정장본 필사본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쇠사슬에 묶여 선반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주 잠깐의 힐끔거림이긴 했지만 그의 앞에 보였던 단어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중세 라틴어라고 생각했지만,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글자들의 조합은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각 단어는 길이가 같았다. 그 앞에 놓여 있는 케이스 안의 각각의 필사본은 모두 그렇게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다른 성가 대원이 숙소에 열쇠를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 사서가 어머니를 방문하러 웰스 (Wells)에 가고 없다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윗쪽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유리가 도서관 안쪽 테이블로 쏟아져 내렸다. 그랜틀리 씨가 시간이 없다며 표지들을 찢어버리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옆에 있던 사람이 한손으로 달랑거리는 필사본의 쇠사슬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책을 잡았다. 그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심호흡을 하더니 그것들을 분리했다. 필사본의 표지는 그대로 쇠사슬에 달려 있고, 책만 분리가 되었다. 그는 책을 에드워드에게 떠맡기듯 주었고, 그는 그것을 가슴에 안았다. 그 성가 대원이 선반에서 다른 필사본을 꺼내자 에드워드는 출입구로 달려 구불거리는 계단을 내려가 회당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앞서 계단을 내려온 그랜틀리 씨가 회당 저편에 있는 주목나무 근처에 책을 쌓아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책은 그 더미에 쌓아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회랑의 가장 어두운 구석까지 기어가서 돌벽 틈새에 그것을 두었다. 그는 몇초간 숨을 들이쉬다가 다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제 줄이 선반이 있는 곳에서부터 계단 아래 그리고 회당으로까지 이어졌다. 에드워드는 팔이 아팠지만 처음엔 표지가 찢겨진 필사본을 그 다음으로는 여러 사이즈의 가죽 양장본 책과 편지와 종이 상자, 그리고 몇가지는 커다란 왁스로 봉해진 서류철 등 그의 쪽으로 오는 모든 것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손에 전달하였다. 몇분 간격으로 불의 열기로 인해 다른 창문이 부셔졌다. 방안의 공기가 점점 뜨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그랜틀리 씨가 빨리 나가라고, 불이 여기까지 왔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떠밀리듯 대열을 따라 회당을 가로질러 성당 가까이까지 갔다.

그랜틀리 씨가 회당에 쌓아두기 시작한 책들은 성당의 귀중품들을 구하기 위해 도시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훨씬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그랜틀리 씨와 여러명의 다른 사람들이 회당에서 마지막 책을 불이 없는 먼 곳으로 옮기자, 에드워드는 갑자기 그 필사본이 생각났다. 그는 그것을 감춰놓은 회당의 구석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회색 성직자 옷을 입은 한 남자가 그가 숨겨놓은 곳에서 그것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 사람을 도서관에서 봤는데, 그는 작은 가구들을 옮기는 걸 돕고 있었다. 그 남자는 주위를 살펴 보더니 에드워드를 못봤는지 코너로 사라져 버렸다. 에드워드는 회당 밖으로 그 사람을 쫓아 나갔다. 밖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도서관을 비우기 위해 도움을 주러 왔던 몇몇 사람들은 이제 강에서 퍼온 물이든 버킷을 화재 현장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귀중품들과 함께 책과 필사본을 다양한 운송수단에 싣고 있었다. 책이 가득찬 우마차와 수레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에드워드는 회색 옷을 입은 그 남자가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가 저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막 그를 따라가 왜 그 필사본을 가져 가느냐고 물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랜틀리 씨였다. 그는 에드워드에게 오늘 밤 잘했다고 말하며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고 말했다. 에드워드가 책을 내리는데 도움이 필요치 않느냐고 묻자 그랜틀리 씨는 웃으며 오늘 너는 충분히 했다고, 불이 꺼지면 아침에 우마차에서 책을 내릴 것이며 모든 책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은 에드워드의 집쪽으로 향했다. 사람들과 멀어지며 걷다가 에드워드는 그 낯선 사람이 걸어간 쪽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에드워드는 가족들이 모두 불이 난 성당을 돕고 있었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연기에 의한 손상을 제외하고는 성당의 주 건물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레이디 채플은 완전히 손실되었고, 도서관을 포함한 회당의 동쪽에 있던 건물들은 눈에 띄게 손상을 입었다. 에드워드는 신문에서 80개 이상의 중세 필사본과 거의 3000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는 걸 읽었다. 그곳에서 그가 했던 건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을지라도 남은 생애 동안 그는 그날 밤 자신이 했던 행동을 자랑스러워 했다.

한편, 2016년 4월 4일, 부활절이 지난 후 두번째 월요일, 아서 프리스콧 (Arthur Prescott)은 자신이 이 세대에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최소한 아침에 집사가 그에게 코트를 입혀주는 1920년대나, 1등석 객차에서 영국의 정치가였던 글래드스턴 (William Gladstone)과 디즈레일리 (Benjamin Disraeli)의 상대적인 장점들을 논의했던 1880년대에 태어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몽상은 대개 공중 위생과 페니실린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금방 없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잘못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면 최소한 잘못된 기관에서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사방이 막힌 지금의 현대식 바체스터 대학이 아닌 옥스포드의 고대 돌건물에서 가르쳐야 했을 것을 말이다. 그는 삐그덕거리는 계단을 올라가 라자러스 (Lazarus) 대학의 거대한 사각형 안뜰에 있는 꼭대기층의 방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최근에 영국의 탑 50위에 랭크된 신설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아서는 바체스터 대학에 기쁜 마음으로 왔다. 매일 그를 옥죄는 콘크리트 블락 벽을 싫어하는 만큼 그는 바체스터 그 자체를 좋아했다. 바체스터에는 좁은 길과 구불구불한 강, 그리고 작은 도심에 고대 성당이 높게 솟아 있었다. 아서는 그 대학에서 가르치기로 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 어린시절 행복을 알게 해준 그 도시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서의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는 이일 저일을 하셨고, 그의 부모는 싸워서 헤어졌다가 다시 합쳤다가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 와중에 매해 여름, 아서는 바체스터의 외할아버지 집에서 가장 빛나는 2주를 보낼 수 있었다. 아서의 외할아버지는 은퇴한 성직자였으며, 수마일 이내의 모든 교인, 즉 바체스터의 주교부터 성당의 모든 비밀스런 부분의 열쇠를 갖고 있는 관리인에 이르기까지 다 아는 것 같았다. 아서의 외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바체스터의 사랑으로 확대되었다.

그가 처음 바체스터를 방문한 것은 여덟살 때였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는 바체스터에서 살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맹세한 것은 십대 때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매일 아침 위생적이기도 동시에 비위생적이게도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체스터 대학의 인문관의 3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다.

잠시 후 문이 홱 열리더니 아서가 속해 있는 인문학부의 학과장인 프레데릭 슬롭스 (Frederick Slopes)의 우거지상이 나타났다. 아서가 아침 인사를 했지만 학과장은 인사는 커녕 아서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 아서가 그날 아침에 있었던 교과 과정 확장 회의에 참석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그 대학에서 교과 과정 확장이라고 이름 붙여 호그와트의 '아나그노리시스' (anagnorisis)는 가르치면서도 셰익스피어 (Shakespeare)를 비롯 다른 중요 작가들에 대해서는 개별로 가르치지 않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것을 항의했다. 그는 그 역시 해리 포터 책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대학의 커리큘럼에 들어가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았다.

하지만 학과장은 아서가 말하는 그 작가들은 모두 핵심 교과 과정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들이라며 이 대학은 시대에 맞춰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아서에게 그 역시 그래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만 뒤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서가 대학들이 문화를 따라가기 보다는 그것을 이끌었던 시대가 있었다고 말하자 학과장은 우리는 지금 교육 과정 확장의 시대에 있다고 소리치면서 만약 아서가 한번만 더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를 교수 징계 위원회에 회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서는 다시 자신은 다른 세대에 태어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희망없이 시작된 그날은 두개의 강의와 한개의 개별 그룹 지도를 하면서 계속 그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개별 그룹 지도에는 두명의 남학생과 한명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학생들의 이름 앞에 '미스터'나 '미스'를 붙여 불렀다. 반대로 학생들은 그를 그냥 '아서'라고 불렀다. 개별 그룹 지도는 그 끔찍한 핵심 교과 과정의 일환이었다. 아서는 그 시간에 제인 오스틴에 관한 토론을 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 수업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했다. 여학생이 오스틴이 충분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둥 하는 성 (gender) 문제로 수업을 끌고 가더니 아서가 좌절스러워 하며 남성 위주의 분야에서 활약했던 제인 오스틴에 대해 열변을 토하자, 그녀는 과장되게 한숨을 쉬며 그도 어쩔 수 없는 한명의 '남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자주 산책을 함께하는 기네스 보웬 (Gwyneth Bowen)과 그 얘기를 나누었다. 기네스는 바체스터 성당 (성공회)의 주임사제를 맡고 있는 동료로, 그녀와 아서는 일주일에 두번씩 강가 목초지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녀는 그 학생의 비난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서는 그렇긴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경멸스런 어조로 말했다고 불평했다.

아서와 기네스는 그녀가 부임한 직후 저녁예배가 끝나고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었다. 그런데 몇주 후 어느 안개낀 아침, 따로 성당 근처 강가 목초지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후 함께 걷는 사이가 되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두번, 방학 때는 좀 더 자주, 아침 7시 아침 기도 이후에는 즉시 강가 목초지의 넓은 확장로를 가로질러 한시간 동안 걷기를 했다. 그들은 어떤 때는 첫날 만났을 때 했던 신앙의 본질에 대한 토론을 계속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었다. 어떤 것은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했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열띤 논쟁을 하기도 했다.

일년 전, 기네스의 남편이 죽었을 때, 그들의 산책은 좀 더 침울한 맥락으로 계속되었지만 화요일과 목요일의 산책을 거른 적은 없었다. 아서가 휴지기를 제안했을 때 기네스는 자신에게는 그 산책이 꼭 필요하다며, 그 한 시간이 하루중 그녀가 가장 제정신으로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오늘, 둘이 만났을 때 기네스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아서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기네스는 그날 아침 안좋은 소식이 있었다면서, 그녀의 성당에서 지원한 헤리티지 로터리 펀드 (Heritage Lottery Fund)에서 자금 지원을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주임 사제로서 하나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서는 그녀는 매일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위로했다.

그날 오후, 아서는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운좋은 기회를 맞게 되었다. 두시에 있기로 했던 한 회의가 사정으로 취소가 된 것이었다. 그는 가뿐한 마음으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만의 작은 집, 곧 바체스터 성당 도서관으로 갔다. 그는 대학시절엔 옥스포드 대학 도서관에서, 또 어떤 해엔 영국 국립 도서관의 독서실에서 부활절 휴일 동안 내내 책을 읽으면서 보내기도 했지만, 그 어떤 곳도 바체스터 성당 도서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런던에서 바체스터를 방문하기 위해 온 몇 안되는 여행객들은 사제단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좀 더 큰 입구를 막 지난 곳에 좁은 나무문이 있다는 것과 그 문 뒤에 얼마나 대단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아서는 열쇠로 그곳의 문을 열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맨 위에 있는 길고 천장이 높은 방으로 들어갔다. 바체스터 성당의 도서관은 오스카 딤스데일 (Oscar Dimsdale)이라는 봉사자가 돌보고 있었는데, 아서는 12살 되던 해 여름에 오스카를 처음 만났으며 그후 친한 친구가 되었다. 오스카는 정해진 시간이 아닌, 그의 시간이 날 때 아무 때나 와서 일했다. 그는 도서관 사서로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책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유지하고 또 책을 보고자 하는 공동체 회원들이 그것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해두었다. 몇년 전, 아서가 처음 바체스터 성당의 가이드 일을 시작했을 때, 오스카는 주임 사제의 허락을 받아 아서에게 그 자신의 성당 열쇠를 건네 주었다. 그래서 아서는 언제든지 가장 좋아하는 그 방에 들어올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곳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서는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을 갖게 된 것이 기뻤다.

아서의 왼쪽 편 벽에는 오크로 만든 책장이 즐비하게 서 있었는데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그것들 대부분은 맨위에 아직 원래의 장식이 그대로 있었지만, 방의 맨끝에 있는 것들은 전쟁통에 있었던 화재로 인해 심하게 그을렸다. 오른쪽 벽에는 여러개의 좁은 창문을 통해 회당을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며, 창문틀에는 오래전의 독자들의 이니셜이 씌여 있었다. 이 벽의 중앙에는 성당이 보유한 80권 정도의 중세 필사본 소장품이 있었는데, 1941년에 발생했던 사건으로 인해 그것들 모두 표지가 없었다.

그는 도서관에 들어서자 잠시 눈을 감고 그곳의 옛날 공기를 들이 마셨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맨끝에 있는 상자로 가 발끝으로 서서 평범하고 땅딸막해 보이는 책을 한권 꺼냈다. 그것의 가죽 표지는 연결부분과 코너가 심히 훼손되어 있었고, 책등은 아래쪽 2인치 정도가 손실되고 없었다. 그것은 일반인들에게 주는 아무런 표시도,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것은 아서가 이 도서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그것은 말로리 (Mrlory's)의 『아서의 죽음』(Morte d'Arthur)에 대한 1634년 윌리엄 스탠스비 (William Stansby) 에디션이었다. 아서는 아홉살 때 그 책을 처음 접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성당 도서관에 데리고 간 때였다. 당시 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을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장소라는 걸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서 느꼈던 그 어지럼증이 정신적 경험인 것 같았다. 그는 그곳에서 신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에게 도서관의 그 장엄함을 보여주려고 그를 데리고 간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할아버지는 그에게 어떤 특정한 책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스탠스비의 『아서의 죽음』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책 때문에 손자의 이름을 '아서'로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었고, 아서의 부모가 동의했다고 했다. 아서가 그 책의 주인공이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모험이라고 말했다. 아서가 그것을 밖으로 갖고 가 함께 읽을 수 있느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안된다고, 집에 다른 에디션이 있으니 그것을 보자고 하면서 그 책을 아서에게서 가져갔다.

아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표지화였다. 그것은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서왕과 그의 기사들을 그린 그림이었다. 아서왕은 테이블의 중앙에 있는 둥근 구멍에서 솟아 나온 것처럼 보였는데 긴 창과 검을 들고 있었다. 그는 좀 더 자코비언 시대에 가까운 갑옷을 입고 있었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는 의자에는 13명의 아서의 기사들이 앉아 있었는데,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이미지 밑에는 30명의 기사들의 이름이 나무판에 새겨져 있었는데, 그들 중 누가 그 이미지에 나와 있는지는 설명이 없었다.

오늘 그가 하려고 맘먹은 일은 그 책에서 '갈라하드 경과 그의 동료들이 어떻게 성배 (Sancgreall)를 갖게 되었으며, 우리의 신은 그들에게 어떻게, 그리고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라는 장을 다시 읽는 것이었다. 성배라. 아서는 눈을 감고 성배에 대해 묘사되어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말로리는 자세히 묘사해놓은 사람은 아니었고, 또 성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록해 놓지 않았다. 아서에게 그것은 성배가 그 무엇이든 그가 원하는 것으로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오늘 그것은 단단한 닻으로, 아서에게 현재를 사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는 과거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 그해 여름, 아서는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도서관으로 갔다. 그리고 그에 관해 도서관에 유일하게 있던 1911년에 출판된 청소년용『아서왕의 기사들』(King Arthur's Knights)을 빌려왔다. 표지에는 월터 크래인 (Walter Crane)의 16개의 삽화가 포함되어져 있다고 씌여 있었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그것들 모두 제거되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서가 늦은 밤까지 횃불로 불을 밝히며 읽은 책이 바로 그 『아서왕의 기사들』이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잊고 빠져들게 한 책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독서라는 것이 어떤 건지를 알게 해준 책이었다. 그는 그 안의 모든 이야기들이 좋았지만 특히 성배에 관한 것이 가장 매혹적이었다. 말로리의 책에서 성배 이야기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고, 그는 성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서왕과 그의 기사들은 왜 그것을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그 성배를 갖고 있는지, 그들은 왜 그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무엇을 했는지, 심지어는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상상인지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아서는 자라면서 성배의 신비한 성격을 좋아했지만, 어린시절에는 그것은 매혹적이었다가 동시에 좌절스럽기도 한 부분이기도 했었다.

처음 할아버지와 성당 도서관을 방문했던 날, 아서가 할아버지에게 성배가 무엇이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말로리의 요약된 버전을 그에게 읽어주었다. 할아버지가 그에게 해준 성배에 관한 민간설화는 단순했다. 아서는 성배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처럼 그저 내려오는 신비한 전설인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처음으로 읽어주던 할아버지는 책을 옆으로 놓더니 아서의 눈을 바라보며 아서왕이나 다른 기사들의 이야기는 그저 만들어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성배는 진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되는 비밀 하나를 그에게 말해 주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아서가 그러겠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성배는 바로 이곳, 바체스터에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은 이미 늙어서 모험을 할 수가 없으니 아서에게 생을 바쳐서 그것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비밀로 하라고 했다. 아서가 왜 비밀로 해야 하느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자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아서가 그런다고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그렇다면 믿어야 한다고, 언젠가는 성배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왜 그것을 계속 비밀로 해야 하는지 알게 되겠지만, 지금 그가 해야할 일은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서에게 물었다. “성배를 믿느냐”고. 아서의 대답은 정말로 본능적인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깊고 푸른 눈을 바라보며 아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바체스터에 성배가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은 텍스트 블럭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바로 이 문구 때문이었다: “이 책이 있을 가장 적절한 곳은 바체스터이다.”할아버지는 이 수수께께같은 구문을 그들이 성당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보여주었다. 아서는 그곳에 새겨진 그 글자들을 손으로 만져 볼 때마다 누가 그것을 거기에 새겼는지,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것을 새겼는지 궁금했다. 어떤 수사나 신부 혹은 학자가 바체스터를 아서왕에 대한 책을 보관하는 가장 적절한 장소로 생각했고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성배에 관한 페이지를 택했다. 아서는 정말로 과거로 돌아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잠시 후, 아서는 아무도 그 책이 선반에서 내려졌다는 걸 모르게 하기 위해 그것을 제자리에 잘 놓아두고 옆에 있는 책을 조심스럽게 배열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항상 일하는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 위에는 1941년 사건 때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유일한 책인 바체스터 조석기도서 (Barchester Breviary)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도서관 입구 근처에 있던 독서대에 놓여 있어서 폭탄 공격이 있었을 당시 가장 먼저 구조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시편들, 성가들, 기도문들이 들어 있었는데, 특히 아서에게 관심을 끈 것은 바체스터 성당이 된 수도원을 지은 성 에월다 축일을 위한 의식이었다. 그는 그녀의 생에 관해 찾아보고자 라틴어로 쓰인 네 페이지를 보고 또 봤지만 그녀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에 대해 주임 사제인 기네스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그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7세기 성인에게 관심이 없으며 그저 신도석이 언제 만들어 졌으며 스테인드글라스를 누가 디자인 했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그의 말을 일축해 버렸다.

하지만 아서는 이전처럼 그 네 페이지를 보고 또 보면 뭔가 새로운 통찰력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책은 종교개혁 바로 직후에 재제본된 것이었다. 성 에월다 의식에 관한 글을 읽을 때면 아서는 답보다는 의문점이 더 생겼다. 그녀는 처녀였고 순교자였다. 두 조건 모두 초기 여성 성인을 위한 조건에 부합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희생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등등.

아서는 그 기도서를 한 차례 더 읽은 후 가만히 그것을 덮었다. 기네스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바체스터의 역사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넣어 성당의 안내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년필과 노트를 꺼내 『바체스터 성당 방문객을 위한 안내서』(A Visitor's Guide to Barchester Cathedral) 라고 적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그는 빈 페이지를 보면서 한가지만 생각했다. 그가 정말로 그 안내서를 잘 쓰고 싶다면 그가 찾아야 하는 것은 성배가 아니라 잃어버린 또 다른 보물, 즉 에월다에 관한 잃어버린 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서기 560년, 옛 바체스터 (Baronum Castrum)에 있던 성 에월다 수도원. 양치기 목동이었던 마틴 (Martin)은 그의 양가죽을 수도원에 배달해주는 심부름을 하다가 그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필경사가 된 마틴은 언어에 대한 소질과 오랫동안 양치기 경험으로 인해 양가죽을 다르는 법을 잘 알아 대표 필경사가 되어 수도원장의 쌍동이 누이였던 에월다의 이야기를 받아 적게 되었다.

한편, 2016년 4월 6일, 부활절 후 두번째 수요일, 아서는 저녁 미사를 마치고 자신을 비롯해 성당 애서가인 오스카 딤스대일과 데이빗 데닝 (David Denning)과의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의 이름은 BBs (Barchester Bibliophiles)로, 대상은 모든 미혼남이었다. 회원인 오스카는 동네 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일했고, 옥스포드 졸업생인 데이빗은 서점을 운영했다. 그들은 모이면 자신들이 읽었던 여러 책과 작가들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10시를 알리는 성당 종소리가 들리면 모임을 끝냈다. 모임의 주관은 돌아 가면서 했는데, 오스카가 주관할 때에는 성당에서, 데이빗은 그의 서점에서 했다. 집을 공개한 사람은 아서뿐이었지만, 그는 비밀스러운 책을 모아둔 이층은 그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아서의 집에서 모임이 있던 그날, 성당 종소리와 함께 모임이 끝나고 그룹 멤버들이 돌아가고 난 후 아서는 모임때 마신 샴페인의 영향인지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그는 아서왕과 그의 기사들, 그리고 성배에 관한 책들을 모아 놓은 윗층으로 갔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풀고 싶었던 미스테리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자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성배 찾기를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 그것을 비밀로 해야 하는 이유 역시 아직 찾지 못했다. 물론 그는 자신이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그와 할아버지를 연결시켜 준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비록 그가 조용히 살고 있고, 일하는 학교에서도 고생을 하고, 바체스터를 떠난 적이 한번도 없으며, 또한 비록 말을 타고 사막을 횡단하거나 비행기나 다른 수단을 이용해 모험을 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 해도, 아서는 자신을 '성배를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와의 대화 이래 그는 성배를 믿게 되었다. 그는 그것에 대한 믿음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와 동시에 신에 대한 믿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는 성배는 진짜이고, 그것은 발견될 것이며, 그의 할아버지와 아서 자신이 몇년에 걸쳐서 발견했던 증거들 덕분에 그것이 바체스터나 근처에 있다는 것을 믿었다. 물론 그것이 발견된다고 해도 그가 어떤 명성이나 부를 얻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비밀로 하기로 할아버지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것에 관한 학자가 되려는 것일 뿐.

이것이 바로 아서 프리스콧의 삶의 리듬이었다. 그 리듬은 그를 자극하는 리듬, 즉 기네스와 함께하는 산책과 데이빗과 오스카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과 같은. 그를 도전하게 하는 리듬, 즉 그를 내내 흥분시키지만 가끔 좌절하게 만드는 성당 도서관일 같은. 그에게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리듬, 즉 성배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고 또 읽는 일같은. 그리고 그를 달래주는 리듬, 즉 성당의 매일의 불변의 일정 같은. 아서는 이런 규칙적인 리듬에 의해 살고 있었다. 그는 그것들에 의지했고, 그들은 그의 삶의 불변의 진실을 보장해 주었다.

물론 그 일들은 방해물이 있을 것이었다. 성당 가이드 일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을 것이며, 그는 영원히 싱글로 남아 있을 것이고, 성배는 항상 그를 부를 것이라는 것.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꽤 행복할 것이었다. 성당의 고풍스런 리듬에 의해, 그리고 그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그 안에서 그의 삶은 그 리듬의 오직 조그마한 파문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텍스트와 책들이 있으므로. 이런 사고방식으로, 아서는 바체스터에 낯선 사람이 오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21세기의 삶에 그 자신이 끌려 들어갈 필요도 없었고, 그 무엇보다도 그는 사랑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6년, 4월 12일, 부활절 후 세번째 화요일. 그가 그녀, 베터니 데이비스 (Bethany Davis)를 처음 봤을 때, 그는 그녀가 조각상인줄 알았다. 이전에 주임 사제가 사제단 회의장에 조각상을 전시할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빛에 비친 인물은 성모 마리아는 아니었고, 그가 생각하기에 진짜 십자가를 처음 발견한 콘스탄틴 (Constantine)의 어머니인 헬렌 (Helen)이 아닌가 싶었다. 그녀는 빛을 향해 얼굴을 들고, 눈은 주교 좌석 위의 빈 돌판을 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인물이 움직였다!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몇 안되는 관광객이 아니었다. 사제단 회의장은 오로지 일요일에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녀는 주임 사제의 허락하에 그곳에 들어온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아서가 막 뒤로 돌아 도서관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그에게 '그림'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아서가 의아해 하며 무슨 그림을 말하는 거냐고 묻자, 그녀는 '글래드윈 (Gladwyn) 주교와 성배에 관한 그림'이라고 대답했다. 엑센트로 보아 그녀는 미국인인 것 같았다. 아서는 그녀와 몇마디 나누는 사이 쉼없이 얘기하는 그녀의 말을 도대체 하나도 알아 듣지 못해 그녀에게 지금 영어로 얘기하고 있는 게 맞냐고 물어 볼 정도였다.

잠시 후, 아서는 얼떨결에 그녀에게 이끌려 성당 앞 호텔 바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어떤 독지가의 후원으로 도서관의 자료들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아서는 그녀의 말에 어처구니 없어 한다. 며칠 후, 아서는 성당 도서관에 갔다가 여러 장비를 셋업하고 기다리고 있던 베터니를 만나게 되고, 베터니는 앞으로 40여일을 더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둘이 이런저런 논쟁을 하다가 베터니가 그곳에 있는 필사본이 82권이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아서는 말도 안된다며 분명 그것은 83권이라고 주장한다. 아서가 자신이 갖고 있는 바체스터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을 적어놓은 글래드윈 주교의 노트에는 그것이 분명 83권으로 나와 있다며 내일 그것을 갖고와 확인시켜 주겠다고 말하자 배터니는 지금 당장 그것을 확인하자고 했고, 결국 둘이서 그것을 세어 나간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필사본은 배터니의 주장대로 82권밖에 되지 않았다.

아서와 베터니는 나머지 책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당시 성가대원들을 추적하고, 그중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아직 살아서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를 찾아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