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gersmith

By

Sarah Waters

사람들이 수 (Sue)라고 부르는 수잔 트린더 (Susan Trinder)는 자신이 태어난 해는 기억하지만 날짜는 알지 못해 크리스마스를 자신의 생일로 생각하며 자란 고아이다. 그녀를 낳아준 엄마는 죽었으며, 그녀는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석스비 부인 (Mrs. Sucksby)과, 같은 건물에서 자물쇠 가게를 하고 있는 입스 씨 (Mr. Ibbs)의 손에서 자랐다. 그들은 탬즈 강 근처의 자치구 (Borough) 내 랜트 (Lant) 거리에 살고 있었다. 석스비 부인은 위탁아들을 맡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소매치기나 구걸을 하게 하였다. 그녀는 수년 전 자신의 아이를 낳았지만, 사산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선원이었는데, 바다에서 죽었다. 입스 씨는 도둑들이 갖고 온 장물을 싸게 사서 그것을 가공해 되팔았다.

수의 방 윗층에는 소년과 소녀들이 가끔 와서 머무는 방이 두 개 있었고, 벽 너머에는 입스씨의 누이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공포에 눌려 깨어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집 안에는 온통 석스비 부인이 맡아 기르는 갓난 아기들이 누워 있는 침대가 놓여져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소금에 절여진 청어들 같았다. 그들은 밤에 아무 때나 칭얼거리거나 울었다. 그러면 석스비 부인은 작은 은수저로 술을 우는 아이들에게 먹였다. 그럴 때면 은수저가 유리병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랜트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모두 도둑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뿐, 직접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둑질을 용이하게 해주는 그런 종류의 도둑이었다. 도둑들은 훔친 물건들을 들고 입스 씨의 가게로 왔다. 그들은 올 때마다 아주 인기있고 대단한 물건이 있다고 말했고, 입스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을 잠궜다. 그는 아주 조심스러운 사람이어서 절대로 창문가에서 그들이 가져온 물건을 살펴보지 않았다. 그의 카운터 뒤에는 녹색 모직 천 커튼이 있었고, 그 뒤로 부엌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 만약 도둑이 그가 아는 사람이면 그를 식탁 테이블로 데리고 갔다. 그러면 그 도둑은 자신이 훔쳐온 물건들을 꺼내놓는다. 석스비 부인과 수 역시 그곳에 참석할 때도 있었다.

수는 그들이 마술사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외투와 소매에서 나온 것들은 지갑, 실크 손수건 그리고 시계, 혹은 보석, 은접시, 동촛대, 페티코트, 심지어 가끔은 정장 한벌이 통채로 나올 때도 있었다. 입스씨는 그것들을 살펴보다가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별 필요없는 물건이라든지, 자신에게 이미 촛대가 많이 있어서 쓸 데가 없다든지 하면서 가격을 확 깎아 겨우 몇 실링을 도둑의 손에 쥐어주었다. 수는 입스씨가 건네준 손수건에 이름을 새기는 것이 아닌, 거기에 새겨진 이름을 뜯어내는 작업을 하며 겨우 알파벳을 배웠다. 거기에 새겨진 수잔이라는 이름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배웠다.

또한 수는 동전들을 다루면서 해독하는 법을 배웠다. 물론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질 좋은 동전들을 통해서 말이다. 질이 나쁜 동전들은 너무 색깔이 밝아서 넘기기 전 이광칠을 해서 검게 만들고 기름칠을 해야했다. 실크와 린넨은 새것처럼 보이기 위한 세탁과 다림질 방법이 있었다. 보석들은 보통의 식초로 광을 냈다. 문장과 인박이 찍혀있는 은접시는 저녁 식사 때 한번 사용하고, 식사가 끝나면 입스씨가 컵과 그릇들을 가져가 녹여 바 (bar)로 만들었다. 금과 백랍 역시 그렇게 했다. 그는 일을 되는대로 하는 법이 없었다. 일단 그들의 부엌으로 온 물건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 되어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것들은 들어올 때에는 랜트 거리의 방식으로 들어왔지만, 떠날 때는 다른 방식으로 떠났다. 뒷문으로 말이다. 그것들은 강 가에 배를 대고 있는 입스 씨의 조카들을 통해 런던 시 전체로 보내졌다. 놀랍게도 빠른, 8월에 얼음 조각의 1/4이 녹아 물이 되기 전의 속도로. 

그들의 집에 들어온 것들 중에 재빨리 다시 나갈 수 없는 것이 없었다. 오직 하나, 그 집으로 들어와 나가지 않고 있는 것, 거대한 양의 장물의 거래의 무게를 이겨내고 있는 것, 입스씨와 석스비 부인이 절대로 값을 매기려고 생각치 않는 것, 그것은 바로 수, 그녀였다.

석스비 부인의 말에 따르면, 수의 생모가 1844년 랜트 거리로 왔을 때, 수를 임신 중이었다. 그녀는 도둑이었다. 석스비 부인은 그녀가 아주 대담하고 멋있었다고 말했다. 입스씨와 석스비 부인은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위층에 있도록 했다. 수의 엄마는 자신이 그저 좀도둑질로 경찰에게 수배를 받고 있다고 했지만, 석스비 부인은 분명 좀 더 나쁜 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아주 단단했다. 수를 낳을 때도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 않았고, 그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수를 낳고서도 그저 아이를 바라보더니 작은 머리에 입을 맞췄다. 그러다가 그녀는 석스비 부인에게 6파운드를 주면서 수를 맡아달라고 했다. 그것은 모두 1파운드짜리 금화였으며, 상태가 좋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은 그녀에게 한 재산 갖게 해 줄 거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정리가 되면 다시 수를 데릴러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고, 대신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수의 엄마에게 한 재산 가져다 줄 그 일이 잘못된 것이었다. 한 남자가 자신의 물건을 지키려다가 칼에 찔려 죽었는데, 그를 죽인 칼이 수의 엄마의 것이었다. 그것을 그녀의 친구가 밀고했고, 경찰은 마침내 그녀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한달 동안 감옥에 있다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시 여자 살인범들을 감옥 지붕 위에서 그렇게 처형했는데, 석스비 부인은 수가 태어난 방의 창문을 통해 그녀가 지붕에서 떨어진 것을 보았다.

그렇게 수는 석스비 부인 집에서 이날까지 살게 된 것이다. 수는 석스비 부인이 수를 맡은 한달치 값밖에는 받지 못했지만 그녀를 17년이나 키워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빈민원에 데려다 줄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수를 그녀의 침대에서 함께 재웠다. 그녀는 보석을 다루듯 수의 머리를 식초로 감겨 빛이 나게 했다. 수는 석스비 부인이 자신을 몹시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믿었다.

그곳에 머무르는 다른 아이들은 그들을 찾으러온 엄마를 따라 가거나, 새로운 엄마를 찾아 떠나거나, 혹은 죽거나 해서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수를 찾으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이제 술병과 은수저를 들고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먹일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랜트 거리의 사람들은 수의 행동이 느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는 느렸지만, 영리했다. 그런 집에서 자라면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무엇인지, 무엇이 뭐가 되는지 알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의 17번째 생일인 크리스마스가 지난 몇주 후 어느 겨울 밤, 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일이 생긴다. 그날은 굉장히 어두웠고, 안개가 잔뜩 기었다가 비가 되고, 그 비는 눈이 되었다. 밤이 어두울 수록 도둑과 장물아비들에게는 더 좋았다. 겨울의 어두운 밤은 가장 최적이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집에서 지냈고, 명사들은 시골로 떠나 런던의 저택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가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그런 날 밤에는 많은 물건들을 취득할 수 있어서 입스 씨는 최고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추위가 도둑들로 하여금 물건들을 재빨리 싼값에 팔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랜트 거리에 있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화들을 손질하거나 녹이기 위해 입스씨는 항상 석탄 밑에 불을 살려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역시 수와 다른 아이들 서너명, 그리고 입스씨와 석스비 부인 이렇게 입스씨의 활활 타오르는 난로가에 앉아 있었고, 소년들은 땀을 흘리며 입스씨의 주화들에서 금을 추출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갓난 아기들 중에 한명이 칭얼거리다가 울기 시작하더니 난로가에 있던 개가 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스런 돌풍이 불어 불꽃이 굴뚝 위쪽으로 솟아 오르고, 비가 석탄 위로 더 세게 내리쳐 쉭쉭 소리가 났다. 의자에 앉아 졸고있던 석스비 부인도 놀라며 눈을 떴다.

그때 그들 집 뒷쪽에 나있는 통로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곧이어 발자국 소리가 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부엌 문에서 뚝 멈췄고,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다가, 느리고 무겁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그것은 빠르고 가벼운 도둑들의 노크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어떤 비지니스인지 알게 되는데, 이번 건은 달랐다. 이번 건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석스비 부인은 침대로 가 울고 있는 아이를 가슴에 안아 울음을 멈추게 했다. 소년들 중 존 (John)이라는 아이가 개의 턱을 잡고 조용히 시켰고, 다른 소년들도 입을 다물고 쥐들처럼 가만히 있었다. 입스씨가 조용히 누가 올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며, 소년들에게 손이 다치더라도 동전들을 빨리 치우라고, 만약 경찰이라면 끝장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주화들과 그것들에서 녹인 금 등을 꺼내 손수건으로 싼 다음 자신들의 모자 아래나 바지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들 중 입스씨의 조카인 필 (Phil)이 재빨리 문쪽으로 가서 그 곁에 섰다. 그는 등을 벽에 기댄 채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그는 두 번이나 감옥에 갔었고, 항상 세 번은 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렸다. 입스씨가 아이들에게 침착하라고 말하며 수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수가 문고리를 열자 부엌으로 밀려온 바람으로 인해 촛불이 반 이상 꺼졌고, 난로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수가 갖고 놀던 카드가 여기저기 날렸다.

통로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온통 다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발치에 가죽 가방 하나를 갖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에 그의 창백한 뺨과 구렛나루가 보였지만, 모자에 가려진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는 수를 보더니 아는 척을 하며 그녀를 보기 위해 40마일을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춥다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때 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를 못본지 일년이 넘었지만, 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이름은 리차드 리버스 (Richard Rivers), 혹은 딕 리버스 (Dick Rivers), 혹은 종종 리차드 웰스 (Richard Wells)로도 불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다른 이름, 즉 젠틀먼 (Gentleman)이라고 불렀다. 수가 사람들에게 그가 젠틀먼이라고 소개하자 필은 들고 있던 칼을 다시 접어 넣었고, 석스비 부인은 데인티 (Dainty)라는 여자 아이에게 난로 위에 빨리 물을 끓일 주전자를 올려 놓으라고 말했다.

그를 젠틀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정말 신사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진짜 신사 학교에 다녔으며, 상류층인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누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때 돈이 많았지만 도박으로 모두 잃었고, 이에 화가 난 그의 아버지는 가족 재산에서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부득이 옛날 방식, 즉 도둑질과 술수로 돈을 벌어야했다. 하지만 그는 그 생활을 너무나 훌륭히 잘 해내어 사람들은 모두 그 가족에게 나쁜 피가 흐르고 있는 게 틀림없으며, 그것이 모두 그에게서 발휘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일년에 한번씩 입스 씨에게 장물들을 가져왔고, 질 나쁜 동전들을 골라내며 주의할 점이나 팁 같은 걸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는 입스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수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 그녀를 위한 특별한 제안이 하나 있다고. 그는 석스비 부인에게 존과 데인티 외에 다른 아이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내라고 말했다. 존과 데인티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나가자 입스 씨가 문을 잠궜다. 잠시 모두 조용했다. 젠틀먼은 계속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입스씨가 제일 못마땅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젠틀먼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라며 카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것은 다이아몬드 킹 (King of Diamonds)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이아몬드 킹이라고 칭한 노인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했다. 그 노인은 런던에서 몇 마일 떨어진 마을의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데, 아주 많은 책과 그림들을 갖고 있고, 자신의 책 모두를 이용해 사전을 엮고 있었다. 그는 그림 역시 그렇게 엮어서 보기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걸 다루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신문에 스마트한 젊은이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으며, 숙식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면서 젠틀먼은 스페이드 잭 (Jack of Spades)를 제시했다. 당시 런던의 도박장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한 젊은이가 광고를 보고 찾아가 그곳에서 그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젊은이가 바로 젠틀먼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젠틀먼은 다시 하트 퀸 (Queen of Hearts)를 내놓았다. 노인은 조카와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수의 나이 정도 되었고, 상속녀였다. 재산은 상당했는데, 그녀의 삼촌은 그 재산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상속에는 기묘한 조건이 붙어 있었는데, 결혼하기 전에는 한 푼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독신으로 죽으면, 그 재산은 사촌에게 가게 되며, 만약 결혼을 하면, 그녀는 부유한 여왕이 된다고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있던 입스 씨가 얼마나 부자인 거냐고 묻자, 젠틀먼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현금으로 만, 펀드에 오천, 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그녀를 자신의 비서로 고용해서 몇시간씩 그에게 책을 읽어주게 했다.

그런데, 젠틀먼이 그림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녀가 그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물론 거짓으로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는 그가 가르쳐 주는 것을 다 받아들였다. 첫 일주일 동안 그녀에게 선과 그림자들을 가르쳤다. 두 번째 주에는 디자인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셋째, 넷째 주마다 각각 다른 것들을 가르쳤는데, 다섯 번째 주 약속이 취소되었다. 그녀에게는 그녀를 보호하는 아이리쉬 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곁에 붙어서 그가 혹시 아가씨에게 손이라도 가까이 대려하거나 뜨거운 숨을 쉬거나 할 때마다 기침을 하고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하녀는 성홍열로 죽어가고 있었다. 하녀가 함께 미술 공부에 참관할 수 없어서 수업은 당연히 취소되었고, 그는 저녁 식사 때나 삼촌 곁에 있는 그녀를 보는 것이 다라고 했다.

젠틀먼의 이야기를 듣던 입스씨는 그러니 이제 본론을 얘기하라고, 수지가 어떻게 그 일을 도울 수 있는지 얘기하라고 종용했다. 그러자 젠틀먼은 담배를 한 개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앞에 펼쳐 놓은 세 장의 카드 중 하트 퀸을 두드리며 자신이 그 소녀와 결혼하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삼촌 눈 앞에서 그녀를 훔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새 하인으로 영리하고 단단한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 그는 노인의 앨범을 바인딩하러 런던에 왔는데, 자신이 그곳으로 돌아가기 전 수를 먼저 보내서 아가씨의 하녀가 되어 자신이 구혼할 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 그는 수의 눈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다고 말했다. 일단 그녀와 결혼을 하면 그녀가 자신의 주변에 얼쩡대지 못하도록 바로 그녀를 아는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병원에 감금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그 사람이 그녀를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봐 줄 것이라며. 그는 카드를 뒤집어 엎더니 손가락을 그 위에 두고 말했다. 자신은 그저 그녀와 결혼만 하면 된다고. 돈을 위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면 된다고. 그런 다음 의심받지 않고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그것은 전혀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고. 그러면서 그는 그녀가 반쯤은 넘어 왔는데, 확실하게 하고 싶다며, 수가 그녀 곁에서 그녀를 계속 단순하게 만들고 설득해서 이 계획이 차질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주기를 원한다고 했다. 젠틀먼이 자신의 계획을 얘기하는 동안 한 마디도 없이 듣고만 있던 석스비 부인이 보상이 뭐냐고 묻자 그는 수에게 2000 파운드와 그녀가 갖고 있던 옷과 보석 등, 수가 원하는 모든 걸 주겠다고 했다.

그것이 거래였다. 모두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마침내 그가 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시간이 별로 없고, 자신은 빨리 그 일을 할 수 있는 여자 아이를 구해야 하며, 수가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녀가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하고싶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를 구해야 하니 빨리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그러자 젠틀먼이 자신이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수가 다시 만약 그녀가 자신을 하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모든 걸 생각해 놓은 것 같았다. 그는 수를 그의 옛 유모의 동생의 딸인데 도시에서 살기가 힘들어 왔다고 소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그를 위해 받아들일 거라고.

수가 만약 그녀가 그가 생각한 만큼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떡하냐고 하자 젠틀먼은 콧방귀를 뀌며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사겼던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옛날 그 여자들은 야망이 큰 아버지들이 있었고, 사방에 변호사들이 있었지만, 지금 그녀는 늙고 힘없는 삼촌밖엔 없다고 했다.

젠틀먼을 비롯해서 방안의 모두가 수에게 그녀에게 돌아올 돈이며 옷 등을 들먹이며 그 일을 하라고 재촉할 때 수는 자신의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의 엄마 얘기를 하면서 석스비 부인이 했던 말, 그녀의 행운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과 더불어 이루어질 그들의 행운 역시...라는 말을 생각했다. 그러자 마침내 그녀가 이룰 행운이 찾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수는 젠틀먼을 바라보며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000 파운드가 아닌 3000파운드를 달라고 했다. 또한 만약 그 아가씨가 자신을 하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단 시도는 했으니 수고비로 100파운드를 달라고 했다. 젠틀먼은 잠시 생각하는 척 했다. 물론 그건 쇼였다. 잠시 후 그가 웃더니 손을 내밀었고, 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 노인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릴리 (Christopher Lilly)였고, 조카의 이름은 모드 (Maud)였다. 그들은 서 런던, 말로 (Marlow) 근처 메이든헤드 길 (Maidenhead-way) 외곽으로, 브라이어 (Briar)라고 부르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젠틀먼은 수를 기차로 혼자 그곳으로 보내놓고, 자신은 노인의 책 바인딩 때문에 최소한 일주일을 더 런던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집 근처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수였지만, 젠틀먼은 수가 빨리 그곳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릴리 양이 다른 하녀를 맞아들여 자신들의 계획이 망쳐지지 않도록.

젠틀먼은 이틀 후 릴리 양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옛 유모를 방문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어렸을 적 엄마같은 사람이었으며, 죽은 동생의 딸의 운명이 어찌 될지 너무나 큰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 그녀는 어떤 숙녀의 하녀였는데, 그녀가 결혼해서 인디아로 가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 다른 여성의 하녀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계속 나쁜 쪽으로 나가게끔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 나쁜 도시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씨를 갖고 있는 여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 등 이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젠틀먼은 사람들에게 수의 머리 손질을 하게 했고, 수로 하여금 데인티의 머리를 아가씨의 머리처럼 손질하게 시켰다. 그리고 그녀의 옷시중 드는 방법 등 하녀로서 해야할 일을 모두 가르치고 연습시켰다. 또한 수의 이름을 바꾸는데, 젠틀먼은 너무 그럴싸한 이름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으므로 그녀를 감출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고 하면서, 지금 자기들이 하려고 하는 일은 생과 사의 기로에 서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수의 이름은 수잔 스미스 (Susan Smith)가 되었는데, 젠틀먼은 손으로 도둑을 의미하는 그들만의 암호를 표시하며, 수가 이미 어느 정도는 'smith' (기술자)이지 않느냐며 그 이름을 만족스러워 했다.

그런데, 나중에 젠틀먼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곳에는 노인과 조카, 그녀의 하녀 외에도 웨이 씨 (Mr. Way)라는 집사와 스타일스 부인 (Mrs Stiles)이라는 가정부, 그리고 정원사와 부엌에서 일을 돕는 사람들 등 일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을 모두 속이기 위해서는 이 모든 걸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완벽하게 몸에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 사실을 이제사 알게 된 수는 몹시 놀랐지만, 이미 모든 걸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젠틀먼은 다음 날도 수를 호되게 연습 시켰으며, 그 다음 날 릴리 양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거기에는 인사말과 함께 그녀를 돌보던 하녀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건강이 너무 안좋아져서 코크 (Cork)로 보내려 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언급했던 그 소녀 (수)를 만나보겠다며, 그녀를 당장 자신에게 보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떠나기 전, 랜트 거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저녁을 먹으면서 수는 슬픈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식사 후 입스 씨의 휘파람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수는 입스 씨의 누이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겠다며 그곳을 빠져 나와 그녀의 방문 앞에 음식 쟁반을 두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수는 그곳에서 엄마가 교수형을 당했던 곳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석스비 부인이 수를 찾으러 왔다. 둘은 잠자코 있다가, 수는 지금까지 랜트 거리에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석스비 부인에게 물었다. 교수형에 처해질 때 많이 아플 것 같냐고. 그러자 석스비 부인은 그저 잠깐 꺼끌꺼끌한 촉감만을 느낄 뿐일 거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석스비 부인은 처형하는 방식 중에서 빨리 그리고 깔끔하게 죽게하는 방법이 최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윽고, 다음 날, 수는 수잔 스미스가 되어 모드 릴리의 집으로 가, 밤에 봤을 때보다 밝을 때 보니 오히려 더욱 기괴한 그들의 집과, 서재에 있는 동안 조카 외에 다른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근처에도 못오게 하고, 조카를 절대로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며 항상 그의 곁에서 책 읽는 일만을 하기를 원하는 몹시 괴팍스런 노인과, 부드러운 흰 피부의 손에 항상 흰색의 실크 장갑을 끼고 있으며, 가끔 자신의 엄마의 무덤에 가 눈물에 젖은 손수건으로 엄마의 이름이 쓰인 묘비를 닦곤 하는, 밤이면 나쁜 꿈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수와 한 침대에서 자기를 원하는 모드와의 생활이 시작되고, 수는 대인티에게 배운 대로 모드에게 옷을 입히고 벗기는 일을 잘 해나간다. 그리고, 수가 그곳에 온 2주 정도 후, 마침내 젠틀먼이 도착한다.

그가 온 날, 모드는 수에게 왜 옷을 갈아입지 않고 며칠째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느냐고 묻고, 옷이 한 벌밖에 없다는 수에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전에 모시던 숙녀가 옷을 한 벌도 주지 않았느냐며 자신의 옷을 주며 입어보라고 한다. 그녀의 옷을 입은 수를 보며 자신과 너무 많이 닮았다고 웃는 도중 다른 하녀가 젠틀먼이 돌아왔다걸 알리러 왔다가 수의 모습을 보고 모드와 너무나 닮았다며 깜짝 놀란다.

젠틀먼이 오고 난 후에도 예전처럼 그들의 사적인 만남은 허용되지 않고, 저녁 식사 시간에 노인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미술 공부는 다시 시작되어, 그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림지도를 핑계로 그녀의 손을 잡기도 하고, 그녀에게 런던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그녀를 초대하고 싶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살짝 고개를 돌려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수에게 윙크를 하며 사악한 미소를 짓다가 모드가 쳐다보면 얼른 다시 부드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또한 어느 날은 그녀에게 밖의 자연을 그리는 게 좋겠다며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았고,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심장이 들썩들썩 하는 걸 두려워했고, 그 역시 진도를 너무 빠르게 나가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고, 그저 그녀가 그의 팔에 기대게끔 만들었으며, 그림을 그릴 때 그녀의 손을 잡는 게 다였다. 그는 그녀가 색칠을 할 때 몸을 숙여 그녀 가까이 갔고, 그럴 때면 그들의 호흡이 하나가 되고, 그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것과 함께 섞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그녀는 움찔했다. 또한 장갑도 여전히 끼고 있었다.

그 집에서 수와 젠틀먼이 사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모드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녀는 창 너머로 젠틀먼이 바지 호주머니를 더듬으며 담배에 불을 붙힐 성냥을 찾다가 못찾는 것을 보고 수에게 성냥 갖다 주라고 해 그집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둘이 만났다. 젠틀먼은 수에게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냐고 묻고, 수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녀가 수를 믿느냐고 물었고, 수는 그래야 한다고,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으니까,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녀는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가 모드로 하여금 젠틀먼에게 관심을 갖도록 살짝살짝씩 힌트를, 예를 들어, 그가 얼마나 친절하고 잘생겼는지, 그녀의 삼촌이 얼마나 그를 좋아하는지, 만약 여자가 결혼을 해야 한다면 젠틀먼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등의 힌트를 주며 그녀의 마음을 열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는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3월이 되고 4월이 되었지만 일은 전혀 진전이 되지 않았다. 5월까지 릴리씨의 그림이 모두 정리되면 젠틀먼은 떠나야 했다. 하지만 모드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고, 젠틀먼은 혹시 잘못 밀어부치면 그녀를 놀라게 할까봐 물러서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들의 기다림이 보상을 받는 날이 왔다. 모드가 그의 키스를 허락한 것이다. 입술이 아닌, 항상 끼고 있던 장갑을 벗기고 그녀의 손에다 하도록 말이다. 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러 야외로 나갔는데, 수가 잠깐 잠이 든 사이, 둘이 한적한 곳에서 벌이는 그 광경을 수가 보고 말았다. 모드의 치마가 올라가 스타킹의 윗부분이 보였고, 더 나아가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보였다. 그때 수는 그가 드디어 그녀를 손에 넣은 걸 알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달은 수는 기뻐해야 마땅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모드의 매끄러운 하얀 손가락과 그날 아침 자신이 잘라준 부드러운 손톱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준 것도. 그녀를 깔끔하게 보이도록 그녀의 외모를 돌보아주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수의 눈에 모드는 그의 어두운 색 자켓과 머리와 대비되어, 너무나 갸냘프고, 너무나 창백해 보여 곧 부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가 그녀를 집어 삼켜버리거나 멍이 들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는 몸을 돌려 살짜기 그림이 놓여져 있는 곳으로 갔다. 잠시 후 천둥소리가 들리고 모드와 젠틀먼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가 그녀의 장갑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날 밤, 수는 모드가 자신에게 뭔가 얘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둘은 모드의 엄마 무덤에 갔다가 다시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작운 예배당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그때 모드가 말했다. 리버스 씨 (젠틀먼)가 청혼했다고. 그녀는 그 말을 몹시 무거운 톤으로 말했고, 수 역시 그 말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그녀처럼 무겁게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드가 정말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의 청혼에 예스라고 대답하지 못했는데, 삼촌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21살이 될려면 아직 4년이나 남았는데, 리버스씨에게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달라고 하겠느냐면서.

수가 삼촌이 정말 그럴 거 같느냐고 묻자 모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읽어 줘야 하고, 노트를 해야할 책이 남아 있는 한 그는 절대로 자신을 놔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수가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 하자 모드는 수에게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 리버스 씨가 야반도주를 해서 비밀 결혼을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면 삼촌이 그녀를 돌려달라고 해도 이미 아내가 된 그녀를 어찌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고 말했다. 수가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하자 모드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수가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그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모드는 눈을 감고 손을 한 데 모으더니 어제 젠틀먼이 키스한 곳을 쓰다듬었다. 나중에 수는 알아차렸다. 모드는 그곳을 쓰다듬은 것이 아니라 그곳을 문질렀다는 걸. 그녀는 젠틀먼의 키스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입술을 화상 처럼, 가려움처럼, 가시처럼 느꼈다는 걸. 그래서 그것에 대한 기억을 없애버리려고 애를 썼다는 걸.

그녀는 그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고,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는 그녀에게 노라고 말하라고 했다. 놀란 모드는 그럼 리버스 씨는 떠나야 하고, 자신은 다시 어두운 삼촌의 서재에 갇혀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리버스 씨가 떠난 후, 다른 사람이 다시 그곳을 방문해서 그가 했던 것 반 만큼이라도 자신을 원하는 일이 일어나겠느냐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입스 씨와 석스비 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받게 될 3000 파운드도. 잠시 후 그녀는 숨을 들이쉬며 모드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와 결혼하라고. 삼촌의 허락같은 건 기다리지 말고. 리버스 씨는 그녀를 사랑하고, 시간이 되면 그를 좋아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그때까지 몰래 그와 함께 가서 그가 말한 대로 하라고.

모드는 수의 얘기를 듣고 표정이 밝아지면서 그러겠다고, 하지만 혼자는 가지 않겠다고, 수와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에게 꼭 그러겠다고 대답하라며, 새로운 런던 생활에서도 자신의 하녀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젠틀먼이 거짓으로 그녀에게 약속한 집이나 런던의 패션에 대해 얘기를 했고, 수에게 멋진 옷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녀를 하녀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겠으며 수에게도 하녀를 구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자신이 결혼하면 아주 부자가 된다고.

그날 오후, 모드의 거실로 젠틀먼이 다가왔다. 그는 수에게 자리를 피해달라고 했지만, 수는 젠틀먼이 마치 자신이 귀족이라도 된 양 행동하는 것이 못마땅해 릴리 씨가 그걸 원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젠틀먼은 수를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수는 창문 가에서 바느질을 하며 두 사람이 방해받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그녀는 젠틀먼이 속삭이는 소리, 웃으면서 내는 숨찬 소리 등을 다 들었지만, 모드는 조용했다. 그가 떠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입술에 대었을 때 모드는 심하게 몸을 떨었다. 수는 그것이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은 덫을 놓는 데 성공했다. 젠틀먼은 4월말까지만 릴리 씨의 비서로 고용됐고, 그는 그달 마지막날 그 집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대신, 그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한밤중에 다시 돌아와 수와 모드를 데려가기로 했다. 그는 그녀를 훔치되 잡히지 않고 그녀와 반드시 결혼을 해야했다. 가능한 한 빨리, 그녀의 삼촌이 그 소리를 듣고 그녀를 찾아 다시 집으로 데려가기 전에. 그는 정문 관리실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말과 마차에 태워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보트를 가져와 강을 따라 그녀를 데리고 그녀가 릴리 씨의 조카인 줄 모르는 작은 벽지 교회까지 가겠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 교회에서 결혼을 하든지 15일 동안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 문제도 해결책을 내놨다. 모드가 결혼 약속을 하고 난 며칠 후 그는 핑계를 대고 메이든헤드 로 가 특별 결혼 증명서를 받았다. 그렇게 하면 결혼 공고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다음 시골 근처로 가 작고 완전 망가진, 이름 없는 교회를 찾았다. 목사는 알콜중독자라고 했다. 그 교회와 아주 가까운 곳에 한 과부가 살고 있는 오두막이 있는데, 주인 여자는 2 파운드에 그에게 방을 하나 내주고 그가 한달 동안 그곳에 살았다고 말해줄 거라고 했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돌아온 날 밤, 그는 전보다 훨씬 더 잘 생겨 보였고, 모드의 거실로 와 수와 모드를 앉혀놓고 그가 한 모든 일들을 조용히 그들에게 설명했다. 그의 얘기가 끝나자 모드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먹는 걸 중단하고 점점 야위어 갔다. 남은 시간은 3주였다. 그 시간은 단순히 그곳을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 그를 원하게끔 노력해야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는 동안 수는 모드에게 자매 같은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을 느끼게 되고, 모드가 첫날 밤에 대해서 묻는 걸 대답해주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키스까지 하게 되지만, 모드는 다음 날 그것이 자신의 꿈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고, 수 역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감춘다. 또한 수는 모드를 다그치는 젠틀먼과 갈등을 빚고 그에게 반항해보지만, 젠틀먼은 수에게 모욕적인 말과 일이 잘못되면 한푼도 못받고 렌트 거리로 돌아가 그곳 사람들과 다시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며 수를 협박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떠나기로 한 4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모든 건 아무런 방해 없이 그들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모드와 젠틀먼의 결혼식까지도. 결혼식이 끝나고 모드가 빨리 런던으로 가자고 보챘지만, 그곳에서 1주일을 더 보내야 했다. 얼마 후 젠틀먼이 모드에게는 런던에 사는 두명의 화가 친구들이라고 소개했지만, 수에게는 이미 말했던 정신병원의 의사 두명, 닥터 그래이브스 (Graves)와 닥터 크리스티 (Christie)가 그들을 찾아왔다. 그들은 모드를 만나기 전 수를 인터뷰 해야 한다고 했다. 수는 진정 모드를 이 음모에서 끌어내고 싶었지만, 3000 파운드와 석스비 부인 등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 잡고 눈물을 머금으며 그들에게 리버스 부인이 결혼 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진술했다.

다음 날, 모드는 진흙이 묻은 옷을 그대로 입었다. 그녀는 수가 옷을 갈아입히려 하자 거부했다. 수는 전에 모드가 주었던 옷을 입었다. 그녀는 모드의 물건 등을 가방에 넣고, 남아 있던 모드의 어린 시절 장갑 한짝을 그녀의 옷 안 깊숙히 심장 가까이에 숨겼다. 마차가 도착해 그들은 떠날 채비를 했다. 모드는 베일을 쓰고 있었다.

얼마 동안 마차를 타고 가다가 젠틀먼이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마차가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몇번 바꾼 후 도착한 곳엔 이전 날 왔던 닥터 그래이브스와 닥터 크리스티가 와 있었는데, 그들 옆에는 몸집이 거대한 여자가 팔을 걷어부치고 정육점 앞치마 같은 걸 걸치고 서 있었다. 닥터 크리스티가 나서서 먼저 젠틀먼에게 인사를 하고, 수와 모드를 보면서 '리버스 부인, 스미스 양',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수를 보며 '리버스 부인 절 기억하시죠?' 하며 손을 내밀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리버스 부인?' 하고 말했다. 그때 젠틀먼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처음에 수는 그가 자신을 자리에 다시 앉히려고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가 자신을 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닥터가 그녀의 다른 팔을 잡았다. 그들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신발이 디딤판 위에 걸렸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닥터가 저항하지 말라며 자신들이 그녀를 돌보아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가 손짓을 하자 닥터 그레이브스와 몸집 큰 여자가 다가왔다.

수는 당신들이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자신은 리버스 부인이 아니라 수잔 스미스라며, 젠틀먼에게 빨리 그들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결국 젠틀먼의 농간으로 수는 모드 대신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게 되고, 그 와중에 수는 마차에서 딱딱하고 사나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몹시 말랐고, 머리는 손질을 하지 않아 헝크러져 있었으며, 하녀의 옷처럼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모드를 보며 비둘기처럼 연약하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사실은 처음부터 이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드는 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불쌍한 아가씨, 내 가슴이 몹시 아프군요.' 라고. 지금까지의 그녀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로.

그리고, 계속해서, 엄마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동안 태어났고, 엄마가 죽은 후에도 10살까지 그곳에서 자라다가, 11살 되던 해 어느 날, 그녀를 데릴러 온 삼촌의 요구로 그의 집에서 살게 된 모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