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keness

By

Tana French

주인공 캐시 매덕스 (Cassie: Cassandra Maddox)는 현재 아일랜드 더블린 경찰서 가정폭력계 형사로 일하고 있다. 처음 TTC (Templemore Training College)를 졸업한 직후엔 교통정리 일을 하다가 언더커버 팀에서 일을 했고, 임무 수행 중 부상을 당해 강력계로 옮긴 다음 아이들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Operation Vestal'이라는 이름의 작전을 수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녀의 당시 파트너 (Rob Ryan)의 잘못으로 더블린 강력계가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문책으로 그 파트너는 시골로, 그녀는 지금의 부서로 오게 되었다 ('Operation Vestal'에 관한 이야기가 같은 작가의 첫번째 작품인 In the Woods 이다-마가렛의 주). 이젠 언더커버와도 강력계와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강력계 동료이며 그녀의 남자친구인 샘 오닐 (Sam O'Neill)의 연락을 받고 살인 사건 현장에 가게 됐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언더커버 팀의 프랭크 맥키 (Frank Mackey)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가 처음 언더커버 일을 하게 된 것은 언더커버 팀에서 UCD (University College Dublin) 안의 마약조직에 침투하기 위해 일반 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는 젊은 사람을 필요로 했고, Trinity의 심리학과를 3년 다녔던 그녀가 그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신분 위장을 위해 프랭크와 함께 알렉산드라 매디슨 (Alexandra Madison) 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냈고, 캐시는 렉시 (Lexie: 알렉산드라의 축소 이름)가 되어 그 조직에 침투하게 되었다.

프랭크는 그쪽 분야에서 거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30대인데도 언더커버 작전을 계속 수행하고 있었다. 처음 그 일에 지원하고 프랭크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는 그렇게 유명한 프랭크를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 흥분된 일이었지만, 오직 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고, 청바지와 색바랜 푸른 색 티셔츠를 입은 그가 책상 모서리에 앉아 그녀의 파일을 넘기며 살펴보고 있었다. 사무실은 작고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주로 창고로 쓰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책상 위는 비어있었고 심지어 가족 사진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27살이냐고 물어서 그녀는 26살이라고 대답했는데, 그는 그녀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찬찬히 살펴 보더니 21살짜리 역할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학교 등에 대해서, 왜 대학을 그만뒀는지에 대해서 묻다가 창밖을 보고 지나가는 남녀 한쌍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다. 나중에 그녀는 그것이 언더커버의 직관력에 대한 테스트라는 걸 알았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분석하는 것, 하지만 그 일은 본인이 그것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 전에 이루어져야 했다. 뭔가를 말하거나 뭔가를 하려면 최대한 빨리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 만약 스스로를 예측할 수 없으면 공격을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나중에 작전 중 몇초의 주저함으로 인해 공격을 당했다).

그에게서 언더커버를 하는 동안 알아두어야 할 일, 주의해야 할 일 등등에 대해서 들은 후, 둘은 바로 그날 커피를 마시며 알렉산드라 매디슨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성을 매디슨이라고 한 이유는 그녀의 성인 매덕스와 비슷해 누군가 그녀를 부르면 뒤를 돌아다 볼 수 있는 그런 이름이었기 때문이라고 프랭크가 말했다. 또한 렉시라는 이름은 그녀가 어렸을 적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여자 동생의 이름이었다.

프랭크는 그녀에게 자신들이 만들어낸 렉시 매디슨에 관한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며 대답할 때마다 더 빨리를 요구했다. 한참 후 그들은 밝고 교양있으며 착하지만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사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한 렉시 매디슨을 만들어냈다. 프랭크는 그녀는 미끼이며, 마약거래자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바로 그런 미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들이 위협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정도로 순진해야 하며, 그들에게 이용가치가 있다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녀가 왜 게임을 하려고 하는지 그들이 궁금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반항심이 가득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 작업이 끝났을 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프랭크는 잘했다고 말하며 타임라인을 접어 그녀에게 건내 주었다. 그리고 열흘 후에 시작하는 경찰 훈련 과정에 참석한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한동안 그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UCD가 10월에 개강을 하면 그녀는 그곳에 투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후 그녀는 렉시 매디슨이 되어 일하다가 UCD의 마약 두목이 그녀를 찔렀고, 근무 중 부상으로 강력계로 옮겼다가 나와 가정폭력계에서 일하게 되었다.

렉시 매디슨은 이제 그 목적이 다해 더 이상 존재치 않게 되었지만 캐시는 항상 렉시 매디슨으로 살았던 것에 대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렉시가 언젠가 그녀를 다시 찾아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4년 후...

4월 어느 이른 아침, 캐시는 도심부 지하에 있는 경찰 전용 사격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꼭 사격연습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고, 다음 사격 테스트는 아직 멀었지만, 일을 하러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에 잠이 깼다든지,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 있다든지 할 경우 사격 연습이 그것들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의사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UCD에서 칼에 찔린 경험이 그녀를 크게 괴롭히진 않았다. 또한 강력계에서의 끔찍한 살인 사건 같은 것도 그다지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강력계에서의 마지막 사건이었던 어린 여자 아이의 죽은 모습이 그녀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녀는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시도 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남자 친구인 샘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많은 다른 경찰들처럼 술을 진탕 마셔볼까도 생각했지만, 혹시 새벽 3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 괴롭힐까봐 그만두었다. 그리고 찾아낸 방법이 바로 사격 연습이었다.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고, 타겟을 향해 그녀의 모든 분노를 쏟아낼 수 있어서 그녀가 겪는 모든 괴로움을 무디게 만들어주었다.

막 연습을 끝내고 라커 룸에서 총을 닦으며 다른 남자 경찰 두명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창에는 샘의 이름이 찍혀 있었고, 놓친 전화 표시가 한쪽 구석에 떠 있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아 인사를 하자 샘은 다짜고짜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네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왜 받지 않았느냐며 화를 냈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아 누군가를 그녀의 집에 보낼려고 했다고 했다.

캐시는 그가 평소의 그답지 않은 것에 어리둥절했다. 그는 그녀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그녀가 사격 연습장에 있었고, 지금 라커 룸에 있다고 하자 샘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샘은 지금 사건이 있어서 밖에 나가 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캐시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혹시 누군가 자신이 아는 사람이 변을 당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녀가 누구냐고 묻자 샘은 아니라고, 자신들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그쪽으로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캐시는 더듬거리는 샘의 태도에 다시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물었다. 샘은 그저 그쪽으로 올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곳은 글렌스케이 (Glenskehy) 외곽에 있는 윅로 (Wicklow)라는 곳이라고 했다.

캐시는 한 시간 이내에 일을 하러 가야 하며, 만약 살인사건이라면 자신이 강력계에서 일하고 있지 않으니 그곳에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하자, 샘은 자신이 가정폭력계에 연락해 그녀가 필요하다고 말하겠다고 했지만, 캐시는 거절했다. 그런데 만약 희생자가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주 나쁜 인물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샘의 목소리가 그걸 증명했다. 누군가가 샘을 불러 통화가 잠시 중단됐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희미해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귀에 익은 듯했다.

아일랜드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대부분 약쟁이들의 싸움이나 도둑질 하다가 잘못된 경우, 배우자가 배우자를 죽이는 경우 등등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악몽들, 즉 연쇄살인범, 휘황찬란한 고문 도구, 가을에 쌓인 낙엽만큼 두껍게 시체들이 즐비한 지하실 같은 그런 사건들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이제 변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경제 호황이 모든 상황을 바꿔놓고 있었고, 조만간 누군가 첫번째 호러 사건을 맡게 될 것이 불보듯 훤했다.

잠시 후 샘이 다시 돌아와 그녀에게 선글래스를 끼고 후드있는 옷이나 모자를 쓰고 그곳으로 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방탄 조끼를 벗으려던 캐시가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자 샘이 제발 부탁한다고 말했고, 그의 목소리는 아주 절박하게 들렸다. 샘의 전화를 받고 그녀는 그저 항상 있었던 범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경험 많은 형사인 샘의 목소리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한 가지 그녀의 신경을 자극한 건 샘과의 통화 시 샘을 부를 때 들렸던 희미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알기론 샘은 강력계에서 파트너 없이 일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혼자 여기 저기를 날라다녔고, 매 사건을 새로운 팀과 일하는 걸 좋아했다. 샘은 어느 누구하고도 잘 어울렸으며 완벽한 백업이었다. 그녀는 이번엔 그가 그녀와 일했던 사람들 중 누구의 백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샘이 알려주었던 곳에 도착하니 두 남자가 언덕 꼭대기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놀랍게도 프랭크였던 것이다. 4년만이었다. 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둘은 인사를 나누었고, 언더커버에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그녀의 복장에 대해서 프랭크가 이런 저런 농담을 했다. 샘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잠시 후 프랭크가 선글래스를 건네며 그녀에게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게 맘에 들지 않으면 그녀가 쓰고 왔던 헬멧을 쓰라고 했다. 샘의 표정은 많이 안좋았고, 프랭크 역시 그녀가 사건 현장을 보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언더커버의 누군가가 살해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범죄 현장을 표시하는 테입을 들어올려 현장으로 들어가자 마치 고향엘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샘이 사건 설명을 시작했다. 그날 오전 6시 15분쯤, 그 지역에 사는 리차드 도일 (Richard Doyle)이라는 남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던 중, 그의 개가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그 폐가엘 들어가더니 나오질 않더라는 것이다. 결국 도일이 개를 찾으러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의 개가 어떤 여자의 시체 근처에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일은 개를 붙잡고 그곳을 나와 경찰에 신고했다.

그 얘기를 들은 캐시는 약간 안도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아는 언더커버 중에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런데 왜 자신이 그곳에 왔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혹시 강력계로 이동해 왔는데, 그녀에게 아무도 얘기를 안해준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프랭크가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라고 말하며 걸었다. 그의 뒤를 따라 가며 슬쩍 어깨 너머로 샘을 보자 그는 조용히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말없이 걷다가 프랭크가 다 왔다고 말했다. 그 집은 도로에서 30-40 야드 떨어진 곳에 있었고, 대기근 이후 아직 아일랜드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폐가 중 하나였다. 그녀는 여러 명의 경찰들이 제각각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대신 두명의 지역 경찰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샘이 다른 사람들은 좀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해가 가지 않은 캐시가 가장 먼저 증거를 수집하는 법의학 팀이 와 있어야 할 곳에 아무도 보이지 않은 것을 이상해 하자 프랭크가 경찰들이 우루루 몰려오기 전에 잠시 그곳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캐시는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은 샘의 사건이지 프랭크의 사건이 아니었다. 증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누구에게 언제 연락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사람은 샘이어야 했다. 그 오두막에 뭐가 있든지 샘이 크게 동요되어 프랭크로 하여금 모든 일을 밀고 나가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샘과 눈을 마주치려고 애를 썼지만, 그는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집으로 다가가 프랭크가 그녀를 지역 경찰에게 소개했다. 그중 한 경찰에게 악수를 하려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그의 눈알이 튕겨져 나왔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고, 다른 경찰은 그녀의 손이 뜨겁다는 듯 얼른 손을 놨다.

프랭크가 그들에게 그녀에게 사체를 보여주려 한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샘이 그녀에게 준비됐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긴장이 오히려 더 못견딜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죽은 사람들은 그저 혼자였지만, 살해된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을 죽인 범인과 함께였다. 그들은 범인에 관한 것을 가능한한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간 캐시가 느낀 첫 인상은 범인이 남긴 표시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캐시는 자신이 보고싶어 하지 않은 그런 장면들, 즉 나체로 사지가 펼쳐진 체, 잔인한 상처는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을 정도이며, 신체 조직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그런 장면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달랐다.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마지막 시간과 장소를 정한 듯, 스스로 조심스럽게 바닥에 누워 마지막 숨을 고르고 길게 내뿜은 것 같았다. 그녀는 벽난로 앞의 몇몇 그늘진 곳 중의 한 곳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발을 모으고 팔은 양옆에 가지런히 내려져 있었다. 그녀는 더블 버튼의 감색 짧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앞이 벌어져 있었다.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지퍼는 완전히 채워져 있었다. 조깅화를 신고 있었으며, 위에는 앞쪽에 검은 별 무늬가 그려져 있는 푸른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별 특징이 없는 모습에서 단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그녀가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랭크와 샘이 캐시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녀는 이해가 안간다는 눈빛으로 뭐가 문제야 싶어 프랭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죽은 여자는 중간 키였고, 모습은 캐시와 비슷하게 탄탄하고 사내같았다. 그녀의 고개가 다른 쪽으로 돌려져 있어서 희미한 빛으로 그저 그녀의 곱슬거리는 머리와 흰 얼굴의 한쪽 면만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프랭크가 다가와 작은 플래쉬를 들고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본 순간, 캐시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 얼굴은 그녀가 아는 얼굴이었고, 지금까지 수백만 번도 더 본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발짝 앞으로 다가가 그것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았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되고 얼어버린듯 했다.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그곳에서 오직 그녀의 얼굴만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코의 기울기, 넓은 눈썹 등 모든 가장 작은 곡선과 각도가 얼음처럼 명료했다. 그 여자는 바로 캐시 그녀였던 것이다.

프랭크가 그녀를 본 적 있느냐고 물으며, 엄마와 아버지 중 어느 쪽을 더 닮았는지 물었고, 샘은 캐시에게 혹시 입양된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들의 모든 질문에 아니, 라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엄마나 아버지에게 다른 자식이 있다는 얘기나 자신이 쌍동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다섯살 때 모두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의 사진상에서 보면 그녀는 정말 엄마를 빼닮았고, 다른 누구와는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고모의 집에서 12년 반 동안 살면서 어느 누구와의 관계가 아닌, 그저 그녀 자신인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죽은 그 여자는 난데없이 나타나 캐시를 꾸짖으며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뼛속까지 파고들 정도로 조이며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캐시가 혹시 그녀가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프랭크가 그녀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트리니티 칼리지의 것으로, 이름은 알렉산드라 매디슨, 캐시와 프랭크가 언더커버로 만들어낸, 그들이 조직 하나, 세포 하나까지 부여한 바로 그 렉시였다.

프랭크에 따르면, 그녀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백인 여자로, 가슴에 단 한 차례 칼로 찔린 상처가 있었다. 지난 밤에 내렸던 비가 많은 것을 지워버려서 발자국도 핏자국도 발견하지 못했다. 프랭크와 샘은 각각 그 현장을 보고 추리할 수 있는 것들을 말했다. 프랭크는 그곳이 원래의 범행 현장이 아니라고 했다. 현장에서 수거한 그녀의 지갑은 피묻은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 있었음에도 너무 깨끗했고, 손전등과 열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방울의 피도 묻어 있지 않았다. 캐시가 그걸 지적하자 프랭크가 맞다며 범인은 굉장히 세심한 놈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성폭행 당한 흔적이 있느냐고 묻자 프랭크가 동료인 쿠퍼 (Cooper)가 검시를 해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지만, 예비 단계에서는 그것에 대한 어느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칼로 찌른 사람은 많은 경우 스스로 상처를 내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운이 좋으면 렉시의 몸에서 그녀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피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자신은 DNA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범인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투명 인간이라는 캐시의 첫 인상이 틀리지 않았다. 강력계에서 몇달 일을 한 경험으로 그런 사건들 중의 하나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캐시가 두 사람에게 그녀가 트리니티를 다녔고, 가짜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거 말고 다른 정보는 없느냐고 묻자 지역 경찰이 그녀가 그곳에서 반마일 정도 떨어진 화이트손 하우스 (Whitethorn House)라는 집에서 다른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누워 있는 렉시의 시체는 마치 음소거를 한 TV에서 가늘게 들려오는 쉬익 소리처럼 그곳의 공기 중에 뭔가 재미있는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캐시는 똑바로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 그들에게 나가자고 말했다. 문을 막 나서기 전 캐시는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캐시가 그녀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걸 깨닫지 못했지만, 그 10분 동안이 아주 명료하게 그녀의 인생에 각인되었으며, 그때가 그녀와 둘이 함께 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곳을 나오면서, 그녀의 얼굴을 하고 그녀의 옛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캐시의 감정은 어느 날 집에 갔는데 다른 여자애가 자신의 제일 편안한 옷을 입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CD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부엌에서 차분하게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기가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서둘러 그 일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으니 다시 가정폭력계로 일을 하러 가겠다고 하자 프랭크가 그곳 일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그리고 죽은 그녀의 신분을 확인했고, 또 캐시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대며 전화를 해대는데도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했다. 프랭크의 말이 맞았다. 그녀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자 마자 캐시를 렉시로 알았던 사람들, 죽은 그녀를 렉시로 알았던 사람들, 캐시를 캐시로 알고 있던 사람들, 그들 모두 누가 죽었는지, 그들 두 사람 모두 렉시가 아니라면 그 두 사람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 뻔했다. 그녀는 그 일이 그저 자신과는 상관없다며 돌아서 가버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샘에게 그녀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걸 하루나 이틀 정도 지연시켜 달라고 말했다.

잠시 후 프랭크가 들판 구석에 쌓아져 있는 이끼가 가득 낀 바위들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빛이 뭔가 할말이 있는듯 했다. 그는 자신들이 다시 오지 않을 특별한 기회를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샘과 캐시가 놀라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묻자, 프랭크는 자신들이 안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기회를, 숙련된 언더커버 형사를 피해자의 삶 한가운데 정통으로 배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그것을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캐시가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자 프랭크는 이렇게 말했다. 캐시가 렉시 매디슨이었으므로 다시 한번 더 렉시가 되라고. 그녀가 죽지 않고 상처만 입었다면, 곧바로 그녀의 삶 속으로 다시 돌아가 그녀가 멈췄던 지점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캐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화가 나 이것이 경찰도 오지 않고 검시하는 사람들도 오지 않은 이유이며, 그녀에게 죽은 렉시와 비슷하게 옷을 입고 오라고 한 이유냐고 따졌다. 그것은 프랭크가 그 사건 현장에 오자마자 생각해 낸 계획임이 틀림없었다. 그의 말을 듣던 샘이 그녀를 미끼로 사용하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프랭크가 그렇지 않다고 하자, 샘은 범인이 그 일을 마무리 하러 돌아오게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며 그러면 미끼가 맞다고 하면서 자신이 그 사건의 담당자로서 어림없다고 반대했다.

캐시 역시 자신이 그녀와 약간 닮았지만, 만약 그녀가 푸른 눈을 갖고 있다면, 만약 그녀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테니스를 친다면, 만약 그녀가 왼손잡이라면 어떡할 거냐고 그녀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하며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에게도 가족이 있을텐데, 그것은 쿠퍼가 그녀의 가슴을 열고 칼을 대고 있는 동안, 가족들에게는 살아 있다고, 그저 몇 바늘 꿰매기만 하면 되는 상처라고 거짓을 말해야 하는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프랭크는 그녀가 거짓 신분으로 살아 왔는데, 진정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이 가족들을 찾아 내는 동안 이미 그 일은 마무리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시가 그녀가 다른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들은 어떡할 것이며, 만약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면 또 어떡할 거냐고 하자 프랭크는 그녀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가 그녀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어 할 거라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것이 언더커버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희생되면 못할 짓이 없었다. 프랭크가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진심이었다. 만약 그의 아이가 살해됐고, 누군가 범인을 잡기 위해 그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한 마디 불평없이 그것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정사정도 없고, 경계도 없었다. 강한 성품, 상대방을 압도하기 충분할 정도의 강인함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점이 캐시가 언더커버를 떠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후로도 캐시는 안되는 이유를, 프랭크는 그런 그녀를 설득하기가 계속됐다. 그는 3일의 시간을 원했다. 3일 동안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고 그 후에는 캐시는 다시 가정폭력계의 일을 계속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캐시는 그 과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프랭크는 처음엔 아주 사소한 단계부터 일을 진행하는데, 각각의 단계는 완벽히 안전하게 보이고 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을 때 뭔가의 한 중간에 정통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버렸다.

캐시는 그에게 왜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프랭크는 자신들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역사상 그런 기회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그게 보이지 않느냐고, 무엇이 문제냐며 화를 냈다. 그러다가 잠시 후 미안하다며, 다른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그녀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아 흥분했었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달래고 있으며, 그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를 하나 하나 모두 나열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옳았기 때문이다. 5년 전, 아니 1년 전만 해도 그녀는 그와 함께 더할 나위 없는 이 모험에 뛰어 들어 벌써 죽은 그녀의 귀를 살피며 그것을 뚫었는지, 그녀가 가르마는 어떤 쪽으로 타는지 살펴보았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들판을 바라보며 아주 분명하고 초연하게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냐고.

마침내 그녀는 언론에 발표하는 것은 둘이 알아서 하라고, 자신은 주말 동안 떨어져서 생각해 보갰다고 말했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하지만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겠으며, 샘이 누구를 찾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노라고, 그것이 그 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프랭크는 그녀의 대답에 만족해 했지만, 샘의 표정을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혼자 조용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샘이 아직 자신은 어떻게 할 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고, 캐시가 결정되면 알려 달라고 말하며 그날 밤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말에 프랭크가 놀란 표시를 했다. 언더커버들은 자신들만의 정보원이 있어서 여러 소문을 듣고 있지만, 일반적인 소문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그녀와 샘 역시 아주 은밀히 행동했었다.

샘과 캐시는 그녀가 강력계로 옮긴 후 만난 사이로, 그녀가 'Operation Vestal' 때 부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부터 가까워졌다. 프랭크가 자리를 떠나고 둘은 걸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고, 캐시는 렉시를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샘이 몸으로 그걸 막는 듯했고, 뒤에서 프랭크의 시선이 느껴져 그만두었다. 조금 더 걷다가 도로에서 벗어나 나무와 산울타리가 벽을 쳐주자 샘이 그녀를 꼭 안으며 낮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죽은 렉시가 그녀인 줄 알았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후 3일 동안 캐시는 그저 소파에 앉아 바보같이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대신 집안 일을 하며 몸을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이 시점까지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혹시 하는 마음에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찾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몸무게, 성별과 함께 출생의 유형에는 당연히 'single' 이라고 쓰여 있었다.

토요일 오후 프랭크가 마켓 봉지를 들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그가 온 목적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죽은 렉시에 대해 물었다. 프랭크에 의하면 그녀는 2002년 2월에 그곳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알렉산드라 매디슨의 출생증명서를 갖고 은행 어카운트를 열었다. 그녀는 UCD에서 렉시의 기록을 얻기 위해 출생증명서와 은행 입출금 내역서, 그리고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트리니티의 영문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두 사람 모두 그녀가 굉장히 체계적이고 창의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결코 실업수당을 청해 사인을 한 적이 없었고, 그저 시내의 한 카페에서 여름에 풀타임으로 일했으며, 10월에 트리니티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른 네 명의 대학원생 친구들을 사귀었고, 거의 그들하고만 다녔다. 그중 한명이 지난 9월 증조부에게서 집 한 채를 유산으로 물려받아 그들 모두 그 집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그곳이 화이트손 하우스였다. 수요일밤 그녀는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머지 네명은 서로의 알리바이를 대주었다.

캐시가 그런 얘기라면 전화로 해도 됐는데 왜 찾아 왔냐고 하자, 프랭크는 그러면 이것들을 보여줄 수가 없다며 뭔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놓았다. 그것은 죽은 렉시가 함께 살았다는 네 명의 룸메이트들의 사진이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로, 프랭크는 그들을 'the Fantastic Four'라고 불렀다. 그것들 중 하나를 보며 캐시는 '내가 언제...?'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프랭크는 그들의 이름은 대니얼 마치 (Daniel March), 저스틴 매너링 (Justin Mannering), 라파엘 하일랜드 (Raphael Hyland) 그리고 애비게일 스톤 (Abigail Stone)이라고 말하며, 그들 각각에 대한 정보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의 사진을 본 후 캐시가 느낀 점은 그들이 조금 특별한 무리라는 거였다. 그들은 다른 세기의 사람들 같은 뭔가 동떨어지고 엄청난 기분이 들게 했다. 프랭크 역시 다른 영문과 사람들의 말을 빌어 그들이 기묘한 무리라고 말했다. 그들 넷은 거의 7년 전 대학에 들어온 첫 해에 만나서 지금까지 함께 붙어다닌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에 따르면 그들은 과에서 특별히 인기가 있는 애들도 아니었고, 그저 자신들끼리만도 충분한 애들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렉시가 트리니티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들 무리에 합류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와 친하게 지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저 그 네명과 어울리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캐시가 프랭크에게 렉시의 상황에 대해 그 네 룸메이트들에게 어떻게 설명했느냐고 묻자, 그는 렉시가 오두막에 도착하자 정신을 잃었고, 쇼크와 추위로 저체온증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그로 인해 심장박동수가 느려져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그녀가 죽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쿠퍼는 그것이 의학적으로 터무니없는 이론이라고 말했지만, 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한 얘기였고, 아직 그들 중 아무도 거기에 대해 의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그녀가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이지만 곧 회복 될 거라고 말했다. 캐시가 그들이 렉시를 보고싶어 하면 어떡하냐고 묻자 프랭크가 그렇지 않아도 그들이 보고 싶어 했지만, 안전 문제로 지금은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잠시 후 캐시가 사진을 쓸어 모으며 프랭크에게 자신에게 그것들을 보여 준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혹시 그녀가 그들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한 프랭크는 진심으로 그녀가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건지 확인을 하고 싶어 했다.

솔직히 캐시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몇달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프랭크에겐 말하지 않겠지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월요일날 다시 가정폭력계로 출근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프랭크가 그녀에게 가정폭력계에서 일하는 게 정말로 행복하냐고 물었고, 캐시는 그것이 이번 일과 무슨 상관 있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프랭크는 그저 자신이 아는 캐시 매덕스는 정시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그런 아주 안전한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일 뿐이라고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프랭크가 깊은 생각에 잠겨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와인잔을 바라보며 그녀가 아직 'no'라고 대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그녀가 그럼 자기가 'yes'라고 할만한 대답을 한 적 있느냐고 말하자, 프랭크가 얼른 이제사 생각난 듯 내일 저녁 이번 사건에 관한 미팅이 있으니 와보는 건 어떻냐고, 그것이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그것 이었다. 온갖 부드러운 얘기 중간에 낚아채기. 쵸콜렛 비스킷과 사람들의 소식 그리고 그녀의 정신 건강에 관한 걱정, 이런 온갖 것들 뒤의 진짜 용건. 그는 너무나 분명히 속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며 그런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고 말하면 웃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월요일부터 그 건에 대해 일을 시작하므로 내일 미팅에는 그저 자신과 캐시, 그리고 샘뿐일 거라고 말하며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얘기를 나눌 것이라고,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녀 역시 궁금했다. 프랭크가 전해준 모든 정보 중에서 그녀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죽은 렉시가 어떤 여자였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녀는 프랭크에게 정말로 이 사건을 자신들이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프랭크는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보통의 경우 아마도 안될 거라고 말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번 경우는 보통의 경우가 아니며, 두 가지 자신들이 유리한 걸 갖고 있는데, 한 가지는, 사실상 그녀는 3년 동안만 존재했었고, 그것은 긴 생애의 역사를 모두 다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부모나 형제, 어린시절의 친구 등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3년 동안 그녀의 삶은 꽤나 단순히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한 작은 도시에서 살았고, 한 작은 대학의 과에서 공부를 했으며, 일자리도 유일한 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캐시는 그녀가 영문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다며, 자신은 문학에 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프랭크는 렉시 역시 그것을 하려고 애를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들에게 유리하게도 그녀는 비디오 폰을 갖고 있어서 그것을 다섯 명의 그룹 캠코더로 사용한 것 같다고 했다. 화질이 매우 우수하지는 않지만 아주 큰 용량의 메모리 속에는 그녀가 친구들과 밤외출이나, 나들이 갔을 때 등등 온갖 것들이 다 들어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캐시는 그녀의 목소리며 몸동작, 매너들, 그들과의 관계 등등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캐시는 아주 유능한 언더커버라고. 모든 걸 종합해 볼 때, 자신들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난 뒤 그는 마시던 마지막 와인잔을 내려 놓고 내일 미팅 건에 대해 결정이 되면 자기에게 연락해 달라고 말하고 그녀의 집을 떠났다. 그는 항상 떠날 때를 정확히 아는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그가 떠난 후 캐시는 와인 한잔을 더 마시려고 일어섰다가 그가 남겨놓고 간 사진을 발견했다. 그것은 렉시가 다른 네 명의 룸메이트들과 화이트손 하우스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캐시는 그것을 재떨이에 넣고 불을 붙이고 싶었지만, 대신 그것을 들고 창틀에 앉아 어두워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프랭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미팅 시간은 몇시냐고. 10초도 되지 않아 7시 정각이라고, 미팅 때 보자는 그의 답이 왔다. 그는 그녀가 'yes'라고 하기를 기다리며 손에 전화기를 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샘이었다. 그날 밤 그녀를 찾아온 샘은 캐시가 내일 미팅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어떻게 살라는 거냐며 절대로 안된다고, 이번 일은 그녀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캐시는 그에게 렉시는 자신의 복제품으로, 자신의 얼굴을 하고 돌아다녔는데, 어떻게 상관없을 수가 있겠냐며 반박했고, 둘은 만난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싸웠다. 그는 캐시를 위험한 곳에 집어 넣으려는 프랭크가 몹시 맘에 들지 않는다며, 범인을 자신이 잡겠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캐시의 뜻을 꺾지 못했다.

캐시는 렉시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그 미팅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은 '죽은 렉시 매디슨은 누구인가' 였다. 그녀는 왜 렉시 매디슨으로 살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녀는 캐시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음 날 미팅에 참가했는데, 프랭크의 말과는 달리 그곳에는 다른 주요 인물들 몇 사람도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캐시는 이 사건의 작전명이 'Operation Mirror' 라는 것과, 렉시가 거의 날마다 밤에 혼자 산책을 했다는 것, 글렌스케이로 이사온 후 처음 룸메이트들과 산책을 하다가 그 오두막을 발견했을 때 그녀가 몹시 맘에 들어 했다는 것 등등에 관해서 알게 되었고, 또한 놀랍게도 그녀가 임신 초기였다는 사실을 쿠퍼에게서 듣게 된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정보들을 얻게 되지만 사건의 동기나 범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이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캐시는 렉시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나 룸메이트 중의 하나, 혹은 둘 다에 해당하는 사람의 손에 살해됐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렉시가 그녀를 렉시 매디슨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살해됐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모든 가능성이 제시된 가운데, 밖에서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할 땐 범죄 현장 안으로 들어가 수사를 하기 위해 언더커버가 있는 거라는 프랭크의 말에 따라 먼저 룸메이트들을 살펴보기 위해 캐시는 렉시 매디슨이 되어 화이트손 하우스로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그 다음 주, 그녀와 프랭크는 렉시에 관한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주변에는 렉시가 살아 있으며 곧 돌아올 거라고 소문을 낸다.

그리고 일요일 밤, 열흘 만에 드디어 그녀는 화이트손 하우스로 향하고, 얼마 후 그녀, 즉 살아 돌아온 렉시 메디슨을 환영하기 위해 집 앞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네 명의 룸메이트를 대면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