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Before You

By

Jojo Moyes

2007년 어느 이른 아침, 윌 (Will Traynor)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준비를 했다. 그는 신체 건강하고 매우 활동적인 사람으로, 킬리만자로 등반이나 요세미티에서의 암벽 등반, 스카이다이빙 같은 스포츠와 시드니, 아이슬랜드, 중국, 파리 등지로의 세계 여행을 즐기고, 일에 있어서도 회사를 사고 팔면서 이익을 남기는 일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바쁘게 살고 있는 잘생긴 33살의 젊은이였다.

그는 오랫만에 함께 보내게 될 휴가를 이번엔 발리에 가서 마사지를 즐기는 것 같은, 좀 더 낭만적으로 보내면 안되느냐며 불평하고, 또 주중에 저녁을 같이 먹자는 그에게 만나는 중에도 항상 블랙베리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며, 꼭 보이지 않는 제 3자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불평하는 여자친구 리사 (Lissa, Alice의 별칭)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평소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탈 수가 없었다. 그는 입고 나왔던 가죽 자켓을 벗어 오토바이 짐칸에 넣은 다음, 택시를 잡기 위해 아파트 건물을 나섰다.

어둡고 소음으로 가득찬 센트럴 런던은 겨우 7시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차들이 빽빽하여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는 셔츠 칼라를 세우고 항상 택시를 잡는 교차로 쪽으로 갔다. 커브 가장자리에 서있는 양복 차림의 다른 직장인들을 보면서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일찍 움직였나 마음 속으로 불평하며, 어디에 서 있어야 제일 좋을까 살펴보고 있는데, 동료인 루퍼트 (Rupert)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에 법률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았는데, 연결상태가 좋지 않아 그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도중 건너편에 택시 한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택시를 향해 재빨리 손을 흔들었고, 길 양쪽을 살피며 목을 움츠리고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루퍼트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 막 택시 가까이에 다다랐을 때였다. 택시 기사는 이미 차 유리문을 내리고 있었는데, 그의 시야 끝에서 불분명한 뭔가가 불가능한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을 향해 몸을 돌린 찰나의 순간에 그는 그 물체가 향하는 그 길 위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곳을 벗어나기엔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놀라며 팔을 벌렸고, 그 바람에 쥐고 있던 블랙베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비명인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건 가죽장갑과 헬멧을 쓴 한 남자, 그 남자의 눈에 비친 충격에 빠진 윌 자신의 눈동자였다. 그 다음엔 모든 게 파편처럼 흩어졌고, 그리고 암흑...

그 사고로 그는 척추를 다쳐 가슴 아래 부분은 마비가 된 상태로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게 되고, 2년 후, 2009년, 그는 루 (Louisa Clark) 라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스물 여섯인 루는 6년 동안 일했던 카페가 문을 닫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게 되기 전까지, 그날이 그날인 매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아가씨였다. 그녀는 그렇게 그럭 저럭 살다가 때가 되면 헬스클럽에서 개인 트레이너를 하고 있는 만난 지 6년이 넘은 남자친구 패트릭 (Patrick)과 결혼을 하고, 애들을 낳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국풍의 옷을 좋아하고, 키가 좀 작다는 것을 제외하면, 거리에 지나가는 두번 돌아보지 않을 그저 그런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지독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스톨폴드 성 (Stortfold Castle)으로 유명한 한 작은 소도시에서, 자신이 쓰는 벽장을 개조한 골방을 포함, 방이 네 개이고 한쪽 벽이 다른 집과 붙어있는 집(semi-detached)에서 뇌졸증으로 한번 쓰러진 외할아버지와 부모님 (Bernard and Josie Clark), 동생인 트리나(Treena, Katrina의 별칭)와 그녀가 일하는 동안 엄마가 돌봐주고 있는 5살 짜리 트리나의 아들 토마스 (Thomas)와 함께 살고 있었다. 트리나는 식구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엘 갔지만, 마지막 학년 때 토마스를 임신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카페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도 루는, 일하기 싫은 월요일이었지만, 평소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주인인 프랭크 (Frank)와 얘기를 나누며 함께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곳은 고급스러운 식당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는 것이, 관광객이나 단골손님들과 잡담을 나누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바쁜 점심 시간이 끝나고, 프랭크가 주방에서 나와 아주 편치못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아픈 아버지 때문에 호주로 돌아가게 되었고, 언덕 위의 성 역시 손을 봐야하기 때문에 한동안 문을 닫을 것 같으니, 식당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3개월치 월급을 주었다.

그녀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식구들이 재정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경기로 인해 아버지가 일하는 가구 공장에서는 사장이 몇달 전서부터 정리해고에 대해 말하고 있었고, 트리나는 아무 이익이 나지 않은 꽃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할아버지를 돌봐야하는 엄마는 일을 할 수가 없었고, 할아버지의 연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 차는 2년 전 한 무보험 운전자에 의해 사고가 나 거의 폐차 직전까지 갔고, 그 일은 부모님의 재정을 무너뜨리고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 토대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녀의 많지도 적지도 않은 임금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기반으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녀는 먼저 직업 안내 센터 (Job Center)에 가서 구직자 수당을 청구하고, 여기 저기 인터뷰를 다녔고, 시예드 (Syed)라는 담당 어드바이저의 조언대로 이것 저것 일에 필요한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그후로도 페스트 푸드 체인점 등 모두 일시적인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고, 심지어 클럽의 봉춤 댄서 자리를 추천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시예드를 만나 네번째 상담을 하던 날, 이제 막 게시판에 올라온 일자리 하나를 소개 받는데, 그것은 한 사지마비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일이었다. 낮 시간 동안 먹여주고 도와주는 일로, 최저임금도 다른 곳보다 훨씬 높았다. 뇌졸증으로 쓰러진 할아버지와의 별로 좋지 못한 관계, 그리고 할아버지를 돌보는 엄마를 보면서, 그 일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루는 성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 그랜타 하우스 (Granta House)라는 그 집에 인터뷰를 하러 간다.

그 집 앞에서 그녀의 아버지 한달 임금은 될듯한 비싼 정장 바지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손질을 한 카밀라 (Camilla Traynor)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는 루에게 사지마비에 대해서, 그리고 간병인 일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루가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말하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간병인 일은 해본적이 없다고 대답하자, 카밀라는 다리를 아예 못쓰고, 손과 팔을 움직이는 것도 아주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확신이 서지 않는 루에게 카밀라는 루가 돌봐야할 사람이 그녀의 아들이라고 말했으며, 이름은 윌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6개월 동안의 일자리이며, 자신이 최근 다시 일을 시작했고 (그녀는 치안판사였다), 그녀의 아들을 낮시간 동안 돌봐주어야 할 간병인이 필요한데, 기한을 두는 건 최적의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먹고 마시는 걸 도와주고, 무엇보다도 그가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책임감을 잘 인식하는 사람이 그의 아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루는 자신이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막 가방을 챙겨 일어서려고 하는데, 카밀라가 믿을 수 없게도 일을 가능하면 빨리 시작해달라고 했다. 루가 의료계 종사 경험이 필요치 않느냐고 묻자 카밀라는 자신의 아들은 모든 의료 혜택을 받고 있으며,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활기차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임금은 주당 지불하겠으며, 일하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라고. 덧붙여 그녀는 현재 아들의 육체적인 안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다음 날부터 일해달라고 해서 루는 윌을 한번 만나고 싶었지만, 카밀라는 그가 오늘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루는 일을 하게 됐다는 기쁨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둘이 무슨 얘기를 할까? 그가 머리를 기댄 채 하루종일 그저 그녀를 바라 보고만 있으면 어떡하지?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식물이나 애완동물 같은, 뭔가를 돌보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데 어쩌지? 등등. 또한 그 사람의 엄마는 얼마나 자주 주변을 얼쩡거릴 것인지. 누군가에게 내내 감시 당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하기싫었다.

그녀의 그런 걱정은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그 집에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식구들 모두 이런 저런 걱정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보수가 좋고, 닭공장에서 밤에 근무하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라는 패트릭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다음 날, 출근한 루에게 카밀라는 윌을 데리고 밖에 나갈 때 쓰는 자동차 열쇠를 주고, 집안 여기 저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간병인이 그녀의 차를 고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윌이 스스로를 헤쳤다고 말했다. 물론 루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야 하므로 15분 가량은 괜찮지만, 혹시 더 긴 휴식이나 휴가가 필요하면 인터컴으로 성을 관리하고 있는 자신의 남편 스티븐 (Steven)에게 말하거나 자신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말하며, 대체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 가능하면 빨리 알려달라고 말했다. 루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영혼이 없는 잘 연습된 연설문을 낭독하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카밀라에 따르면, 윌은 영화보는 걸 좋아하고, 가끔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라디오나 그런 디지털 기계들을 그의 손 옆에 놓아두면 혼자서 작동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뭔가를 쥘 수는 없다고. 그녀는 윌이 루를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닌 친구처럼 생각하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루는 그가 음악과 영화를 좋아한다면 둘 사이의 공통 관심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웃는 윌과 그녀 자신, 또 윌이 음악을 듣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잘 될 거야. 친구처럼 잘 지내게 되겠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카밀라를 따라 윌을 만나러 그가 머무는 별채로 갔다. 카밀라가 문을 두드리며 루를 소개하겠다고 하자, 잠시 후 윌의 물리적인 면을 담당하는 뉴질랜드 엑센트를 가진 나단 (Nathan)이 그의 기분이 괜찮다고 말했다. 그의 방은 전형적인 스칸디나비아 풍의 독신자 방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방 한가운데 휠체어가 놓여져 있었고, 칼라없는 흰색 간호복을 입은 나단이 윌을 그곳에 앉히고 그의 발을 발판에 맞게 조정하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가자, 휠체어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이 덥수룩하고 헝클어진 머리 아래 가려진 눈을 들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잠깐 후, 그는 등골이 오싹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런 다음 입술이 뒤틀리고, 그는 또 다시 섬뜩한 소리를 냈다. 그의 엄마가 긴장하며 그만두라고 소리쳤지만, 그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가슴께에서 또 다른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소리였다.

루는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머리를 어깨쪽으로 기울여 기대고 얼굴을 찌푸리며 인상을 쓴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괴기스럽게 보였고, 약간 화가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손의 마디가 하얗게 변하도록 가방을 꽉 쥐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엄마가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다시 그에게 그만두라고 말했다. 루는 속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아직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뭔가를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이 루이자이고, 줄여서 루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가 얼굴을 펴더니 고개를 반듯하게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찬찬히 쳐다보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그녀가 자신의 최신 경호원이라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발을 조정하고 있던 나단이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흐느적거리듯 흔들었다. 나단은 차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는 방금 윌이 한 것이 크리스티 브라운 (Christy Brown: 뇌성마비로 한쪽 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면서 화가, My Left Foot의 실제 주인공- 마가렛의 주) 흉내 내기 였다며, 곧 그에게 익숙해질 거라고 말했다.

그의 엄마는 초조해하며 목에 걸린 십자가를 잡고 줄을 따라 앞 뒤로 움직였다.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는 서로에 대해 알아보도록 두 사람에게 시간을 주겠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인터컴으로 연락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나단이 윌의 일상과 그가 사용하는 장비들을 모두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과 얘기를 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바닥에서 십피트 정도 떨어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나가고, 윌에게 음악을 틀어주고, 나단과 루는 부엌으로 갔다. 나단이 지시사항이 적혀 있는 폴더를 루에게 주며 읽어보라고 했고, 약이 가득 들어 있는 캐비넷을 열고 응급약품 등 이것 저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열쇠를 하나 주면서 캐비넷을 열기 위한 여분의 열쇠이니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나 윌에게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나단은 윌을 돌보지 않은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루가 혹시 윌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자신은 그를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하자, 나단은 그런 건 자신이 다 처리한다며, 그녀는 그런 육체적인 것들 때문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묻자, 그를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어서 그는 약간 괴퍅하다고 했다. 나단은 좀전에 보여준 그의 행동은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려고 한 행동이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니까 망설일 필요없으며, 나단 자신은 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단이 가고 난 후, 두 사람만이 남겨지자 그녀는 그 어색한 침묵을 어찌해야할 지 몰랐다. 그에게 차를 타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청소를 하다가 윌이 과거에 번지점핑을 하는 사진, 금발의 여자와 스키를 타는 사진,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있는 사진 등을 보고 있는데, 소리없이 윌이 휠체어를 타고 다가와 그녀에게 저렇게 살다가 불구로 사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궁금해하고 있냐며, 다른 사진들은 맨밑 서랍에 들어 있으니 궁금증을 해소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거의 화가 나 그런 게 아니라고 대답하고, 그는 휠체어를 타고 사라져 버린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 나단이 다시 오고, 그녀는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하소연을 하고자 트리나에게 전화를 했지만, 트리나는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루에게 물론 그는 지금 비참할 것이고, 휠체어에 매달려 있어서, 그녀가 별 쓸모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그와 직접 얘기를 해서 그를 좀 더 알아보라고 충고한다. 그런다고 더 나쁜 일이 벌어지겠느냐고. 그러면서 6개월 동안만 참고 그 일을 해서 경력을 쌓으면 다음엔 좀 더 괜찮은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루는 트리나의 충고대로 윌을 알아보기 위해 이것 저것 노력을 해보지만, 윌은 그녀가 제시한 모든 일에 의의를 제기하며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루에게 트리나는 자신이 다시 학교로 돌아갈 계획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것은 이제는 트리나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그래서 엄마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 더 나아가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트리나는 루에게 자신과 토마스를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라며, 루에게 제발 부탁한다고 애원한다. 그런 트리나를 보며 루는 고개를 끄덕인다.

윌의 간병인으로 일한지 2주일, 루는 이제 제법 윌의 일상에 적응해나갔다. 시간 맞춰 그에게 약을 주고, 밥을 먹여주었다. 항상 할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 큰 어른에게 밥을 먹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이 많이 안좋았다. 그리고 틈틈히 윌의 엄마가 와서, 'yes'라는 대답 외에는 듣지 않겠다는 듯 모든 게 괜찮냐고 물었고, 통통하게 살이 찐, 부드러워 보이는 그의 아버지가 그녀가 일을 마치고 나서는 시간에 돌아와, 윌과 TV를 시청했다.

그녀는 그 첫 2주 동안 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기로 작정을 한듯이 보였고, 항상 지치고 불편해 보이는 그의 회색 눈은 그 주변의 세상에서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 사람의 텅빈 표정이었다. 때때로 그녀는 그것이 그의 방어체계가 아닌지, 자신의 힘든 삶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자신이 아닌듯 가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의 그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가장 슬프게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그의 상황이 비단 그가 휠체어에 갇혀 있다는 것이나, 육체적 자유를 잃었다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욕적인 상황과 건강 문제, 위험과 통증이라는 걸 깨닫고, 자신이 만약 윌이라면 자신 역시 몹시 비참할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아주 못되게 굴었다. 그녀가 뭐라고 말만 하면 굉장히 날카롭게 대답했고, 따뜻하냐고 물어보면, 만약 자신이 담요가 더 필요하면 그녀에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 이밖에도 음식을 주면 너무 뜨겁다느니, 너무 차갑다느니, 아직 입 안에 음식이 남아 있는데 또 준다느니 하면서, 그녀가 하는 모든 것에 트집을 잡거나, 그녀를 바보처럼 느끼게 했다.

그 2주 동안, 아무 표정 없이 그를 대하고, 가능하면 다른 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며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그를 싫어하기 시작했고, 분명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프랭크가, 그리고 고요하고 정적인 묘지 같은 비싼 이집 보다 사람들이 들고나던 이전에 일했던 식당이 그리웠다.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녀는 6개월만, 하고 되뇌이며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런데 어느 목요일, 윌을 찾아온 두 사람의 방문객이 있었다. 한 사람은 그의 동료 루퍼트였고, 한 사람은 윌의 여자친구였던 리사였다. 리사가 윌에게 주저하며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됐다고 말했고, 루퍼트는 이 일을 직접 와서 얘기한 이유는 자신들이 윌의 입장을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소식을 듣게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윌 역시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얘기를 들은 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들이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하라고 하자, 그저 축하한다, 둘이 분명 잘 살거야, 라고 말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리사가 루에게 자신이 사고 후 몇달 동안 윌을 도우려고 애를 썼지만, 그는 그저 자신을 밀어내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루가 그녀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자, 리사는 도움도 받을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나 베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간 루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윌이 보이지 않자, 순간 자신이 15분 이상 자리를 비웠다는 생각에 공포가 엄습하며, 제발 그가 스스로를 헤치지 말았기를, 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윌의 침실에서 와장창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듯이 그곳으로 뛰어가서 보니, 윌이 방 한가운데에서, 휠체어에 똑바로 앉아 있었는데, 막대기 하나가 마치 중세 마상창시합용처럼 양쪽 팔걸이를 가로질러 놓여져 있었고, 긴 선반 위에 있던 사진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무릎은 유리파편들과 나무 액자 조각들로 덮여 있었다. 윌이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자 가픈 호흡이 좀 수그러들었다. 윌은 그가 무슨 일을 하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듯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루는 바닥과 그의 주변의 것들을 보다가 그와 리사가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 담긴 구부러진 실버 액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몇초간의 순간이 일생에서 가장 긴 시간 같았다. 그녀가 휠체어가 혹시 구멍이 나지 않았는지, 그 녀석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자, 윌의 눈이 커지며,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어렸다. 그리고 움직이지 말라며, 청소기를 갖고 오겠다고 나가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것 같았다.

다음 날, 어제의 일로 조금 마음을 놓고 그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윌은 아예 그녀를 무시했다. 나단이 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잠시 후 그녀가 부서진 액자중 고쳐서 쓸 수 있는 게 있는지 보려고 살펴보고 있는데, 윌의 휠체어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에게 자신이 어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아느냐며, 사람들은 다 그가 뭘 원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고가 아니라, 자신이 그것들을 진정으로 보고싶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저지른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빌어먹을 잡지나 읽으라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그런 그를 보며 화가 난 루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그렇게 멍청이처럼 굴 필요 없지 않느냐고 말하며, 자신은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의 삶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을 들은 윌이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잠시 가만 있다가 자신이 그녀가 오는 걸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루는 자신은 그가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엄마가 고용한 사람이므로, 만약 그녀가 원치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신은 계속 머무르겠다고 말한다. 이유는 자신이 특별히 그를 돌봐주고 싶어서도, 이 바보같은 일자리를 원해서도, 혹은 그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빌어먹을 돈이 필요해서라고 말한다.

윌의 표정은 드러나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듯 놀라워하는 게 보였다. 루가 정말 상황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윌이 사진들을 전부 맨 아래 서랍에 넣어두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어느 날, 음식에 들어 있는 당근을 갖고 윌과 옥신각신 하다가 그의 방에서 나왔는데, 잠시 후 나단이 그녀에게 윌이 요며칠 기분이 괜찮다고, 말수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루에게 까다롭게 구는 윌의 엄마가 그에게 루가 잘하고 있는지 물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어제는 루와 윌이 웃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유가 뭐든, 윌이 뭔가에 대해서 웃었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그의 엄마가 많이 놀라워하고 있다고.

시간이 흐르고, 이제 루와 윌은 서로의 곁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윌이 무례하게 얘기하면 루도 똑같이 되받아쳤고, 윌이 그녀가 그에게 좋지 않은 방식으로 뭔가를 했다고 말하면, 루는 만약 그것이 거슬렸으면 좀 더 나이스하게 요구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때로 그는 자신에게 대놓고 무례하게 말하고,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걸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윌을 자동적으로 공손하게 대하고,그의 날카로운 말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장갑차량 같은 나단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고 이후 그의 주변에서 너무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윌이 더 이상 그녀에게 전처럼 자주 혼자 내버려두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두어번 오후에 함께 영화를 보자고 요청을 한 거였다. 그런데 윌이 보자고 한 영화는 자막이 필요한 프랑스 영화였고, 그녀는 처음엔 자막을 읽어야하는 외국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윌의 약먹을 시간도 잊을 정도로 영화에 빠져들어 곱사등이 주인공이 죽을 때는 눈물까지 흘렸다. 휴지로 눈물을 닦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그녀가 퇴근 후 무엇을 하는지, 그녀에 대해서 알고싶다고 했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다가 윌이 루에게 인생에서 뭘 원하느냐고 묻고,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그것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어느 날, 윌의 6개월마다 한번씩 하는 병원 첵업 날이었다. 루는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대부분의 보도블럭이 얽힌 자국 같은 구멍이 파여있거나 고르지 못해서, 휠체어가 지나갈 때마다 들썩거리며 극심한 고통을 준다는 것,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너무나 무분별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도의 경사진 컷아웃에 주차를 하거나, 혹은 서로 너무 가까이에 주차를 해서 휠체어가 길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루는 몇번이나 차의 와이퍼에다 쪽지를 써서 끼워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단이나 윌은 그런 것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적당한 곳을 찾아 무사히 길을 건넜다.

병원에서 윌이 의사를 만나는 동안, 루는 나단에게 그들이 무엇을 하는 거냐고, 윌이 좀 더 나아졌는지를 살펴보는 거냐고 묻자, 나단은 윌은 척수를 다쳤기 때문에 좋아지거나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루가 물리치료 같은 건 나단이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나단은 그건 단지 윌의 상황을 더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 즉 근육 위축이나 뼈의 탈염화, 다리에 물이 괴는 것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하는 것일 뿐, 윌 같은 환자가 좋아져서 다시 걸을 수 있는 건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실현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고, 어느 정도이든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윌 자신은 이미 재활 훈련같은 건 별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했다. 루가 윌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나단은 솔직히 말하면 윌은 가슴 아래 부분은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C5-6 환자이고, 아직 척수 부상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느 눈이 많이 내린 날, 윌이 오전 내내 높은 열로 심하게 앓았다. 그날은 나단이 오프인 날이었지만, 루는 그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는데, 윌의 아버지가 그에게 연락해서 나단이 긴급 도착하여 치료를 하고 돌아갔고, 퇴근 무렵 윌의 엄마가 눈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며 루에게 그날 밤 윌의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느냐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루는 그렇게 하기로 한다.

루는 이일 저일 하며 시간을 보내다 윌의 방으로 들어가 그와 얘기를 나누다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묻고, 윌은 교통사고였다고 말한다. 방이 점점 어두워져 가고,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달라는 윌의 요구에 루는 그의 곁에서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자신이 악몽을 꾸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뭔가에 놀랬을 때 자신의 아버지가 불러줬던 노래가 있다며 주저하다가 그것을 윌에게 불러준다. 노래가 끝나자 윌은 루가 노래를 못한다고 놀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루는 윌이 뭐라고 코멘트를 할 때마다 하루종일 느꼈던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지는 걸 느낀다.

방안이 온통 어둠에 싸이고 둘은 좀 더 얘기를 나누다 윌이 잠이 든다. 그녀는 일어려다가 한참을 그대로 잠든 그의 얼굴을 보았다. 11시 경에 다시 윌의 열이 올라 해열제를 먹이고 땀에 젖은 시트와 배게 커버를 바꿔주고, 잠든 그의 곁 1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를 지켜보다가 그녀 역시 잠이 든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온 카밀라는 윌의 곁에서 잠든 루를 깨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묻고, 어젯밤 윌이 많이 아팠다는 루의 말에 카밀라는 그가 아픈데 자신의 남편이나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루를 질책한다. 루는 지난 밤 나단이 윌의 아버지는 아내가 집에 못오는 날이면 밖에서 밤을 지새운다고, 윌이 아픈 걸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카밀라에게 별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때 외박을 한 윌의 아버지가 신문을 들고 들어오며 자기가 잠시 신문을 가질러 나갔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루는 카밀라가 그가 어제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걸 알아차렸을까 궁금했다.

사실, 스티브는 아내가 아닌 델라 (Della)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언젠가 시내에 나갔다가 둘이 있는 걸 루가 보게 되지만,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루와 윌 사이는 윌의 기분에 따라서, 더 중요하게는 그가 얼마나 통증을 느끼느냐에 따라서 달라졌다. 윌을 고통스럽게 하는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은 많았다. 나단의 전문적인 물리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육의 손실로 인한 통증, 소화 장애로 인한 복통, 어깨 통증, 방광 감염으로 인한 통증 등등 수도 없이 많았다. 그중 가장 힘든 통증은 그의 손과 발에 찾아오는 작열감이었다. 그것은 뭔가 뽀족한 것이 손과 발을 찌르는듯한 통증이었다. 그럴 때마다 두 손과 발을 찬물에 담그거나 찬물에 적신 붕대를 그의 손에 감아주거나 해야했다.

하지만, 이 모든 통증에도 불구하고 윌은 내색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는 그가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수 주가 걸렸다. 그는 혼자서 참고 있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면 아무렇지 않게 찬물이 필요하다든지, 진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때로 그는 너무나 심한 통증으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때가 가장 최악의 날들이었다.

어느 이른 봄날, 그날은 윌이 통증에서 자유로운 날이었다. 카밀라가 청소부를 불러 별채를 청소한다고 해서 두 사람은 가든으로 나와, 윌을 설득해 면도를 해주고 머리를 잘라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호주에 사는, 루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여동생 조지나 (Georgina)가 와 무슨 일 때문인지 그에게 그건 오빠답지 않은 결정이라고 소리치며 흐느꼈다. 잠시 후, 루는 우연히 카밀라와 조지나가 얘기하는 걸 듣게 되는데, 윌이 작년 겨울 자살을 시도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목에 있던 흉터가 그것의 결과이고, 카밀라가 그의 곁을 한시도 떠나서는 안된다고 했던 말의 뜻을. 자신은 그저 그가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지켜보게 고용됐으며, 그래서 그런 루를 그가 그토록 싫어했다는 것을. 그런데, 그곳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더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되는데, 조지나가 카밀라에게 어떻게 윌의 죽음에 동의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소리, 카밀라가 윌이 6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밀라의 고백.

윌이 처음 그의 생각을 말했을 때,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두번 말해야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살고싶지 않다고. 이런 삶은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회복된다는 가능성이 없으므로,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이 생을 끝마치게 해달라고. 그건 정말 이성적인 요구라고. 그가 원하는 건 <디그니타스> (Dignitas: 스위스에 있는 안락사 병원-마가렛 주)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그후 그의 말을 못들은 걸로 하고 지내고 있었는데, 1월 어느 날, 그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한 날, 스티브가 정신을 잃고 있는 윌을, 휠체어 주변에 고여있는 검고 끈적거리는 피를 발견했다. 윌은 뒷쪽 로비에서 미처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나무판자 위에 반 인치 정도 나온 못에다 휠체어를 앞뒤로 움직여 손목의 살이 갈기갈기 될 때까지 반복해서 눌러댔던 것이다. 의사는 20분 정도 더 지났으면 그는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것은 도와달라는 외침이 아니었다. 윌이 살아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정성들여 가꾼 가든으로 가서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 커다란 브랜디 병을 식물들을 향해 던지며 거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움직이고, 구부리고, 자라고, 재생산할 수 있는데, 자신의 활기차고, 카리스마 있고, 아름다운 아들은 움직일 수 없고, 시들어가는, 피투성인 채 고통받는 한낱 '물건' (thing)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고 또 지르며 욕을 해댔다. 남편이 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서서 그녀가 다시 조용해질 거라는 걸 확인할 때까지.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윌이 다시 시도할 거라는 걸. 자신들의 삶이 끊임없는 경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다음을, 윌이 자신을 헤쳐 보여줄 공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은 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즉 그가 그 빌어먹을 오토바이 운전자가 그를 향해 시작한 그 일을 끝내고자 찾는 잠재적인 독극물과 날카로운 물건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낼 발명품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제 자신들의 삶은 그 한가지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잠재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는 이 상황에 대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생각을 할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2주 후, 그녀는 윌에게 'yes'라고 말했다. 그 대답말고 도대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된 루는 자신이 윌의 곁에서 야채를 먹이는 행위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자신은 카밀라와 윌이 계획하고 있는 그 일의 한 부분이 되고 싶지 않아 두달 만에 일을 그만두고 나오고, 카밀라가 찾아와 돌아와 달라고 사정하지만, 루는 그녀가 조지나와 나눈 얘기를 들었다며 거절한다. 그러자 카밀라는 자신은 진정으로 아들이 마음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날 밤, 루는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사정을 트리나에게 모두 얘기하고, 트리나는 그 집은 돈 문제는 걱정없으니, 앞으로 남은 4개월여 동안 그가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제 남은 117일 동안, 이미 죽을 날을 예약해 놓은 윌이 마음을 바꾸고 살고자하는 이유를 찾게 하려는 루의 힘겨운 노력이 시작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