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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내 남자사람친구 Yunah Kim (kyeonah) 2021-6-23  08:31:25



내 남자사람친구

 

 



잠깐 동안이지만 눈시울을 붉히며 친구는 아무 말을 못했다. 손에는 나와 막내에게 줄 선물을 들고 있었다. 선물은 내가 먼저 건넸는데 동봉한 카드를 읽고 감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물큰 전해졌다. 나는 짧지만 여느 친구에게 하듯 마음이 담긴 작별인사를 건넸고 친구는 자신의 주소를 여러 번 읊조리며 꼭 카드를 보내라고 당부했다. 나처럼 아날로그파인 그는 우리 윗윗집에 사는 이웃이고 어느새 내 마음속에 친구란 이름으로 자리한 백인 아저씨다.

 

오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면 하염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아서 하루는 선 채로 두 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서로 멀찌감치 서서 마스크 위로 눈만 보며 표정을 읽으면서 말이다. 한 번 그런 일이 있자 이후로는 마주쳤다 하면 1시간 넘기기가 일상처럼 되어서 어떨 땐 집밖을 나가는 게 주저되기도 했다. 딱 마주칠까 두려운 때문이다. 친구는 참 아는 것이 많고 달변가라 수다를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도 애매해질 뿐 아니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재미있어서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므로 신이 나서 이야기를 더더더 길게 이어간다. 그래서 뒤 스케줄이 딜레이 되기 일수였다. 우리의 수다는 대부분 그의 인생사에 관한 이야기고 그래서 나는 친구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혼남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그러자 약간 마음에 부담이 되어서 나는 남편이 한국에 있고 방학 때면 미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착한 남편이라는 팩트를 강조해 말했다. 서로 친구가 되기에 성이 다르다는 점에는 이런 불편함이 존재했다. 만약 같은 성이었다면 집에도 초대하고 음식도 나누며 더 정겨운 만남을 쌓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에게는 아내가 없고 나는 남편이  멀리 있던 애매한 환경에서는 제한된 영역이 필요해서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화가 늘 주차장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이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다.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이래저래 부담스러워져서 나는 점점 친구가 출근해 없을 시간을 틈타 집밖 출입을 했다. 하지만 은근히 생활이 불편해져서 불만이 생겼다. 그런 식으로 나는 그에게 벽을 쌓아갔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내 차에 소복히 쌓인 눈을 치우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봤는데 모른 척 하기도 그래서 창문을 열고, 이름을 불렀다. 친구는 깜짝 놀라서 팔을 휘저었다. 몰래 하려고 했다가 들킨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로 한동안 못 만나다가 처음 맞닥뜨린 날,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애써 변명을 말했다. 심심한데다 눈 치우는 것을 재미있어 하고 몸이 불편한 다른 이웃의 차도 치워주곤 했다거나뭐 그런 사연들문득 친구가 내 마음을 잘못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행동을 색안경 끼고 보지 않았다. 프라이버시 침해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몰래 하려다 들켜서 당황한 모습을 보면 생색을 낼 의도도 없었을 테고 그때 내가 보지 않았다면 누가 치웠는지 알 턱도 없는 일의 결론에서 나는 다만 인정 있고 다감한 이웃의 심성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눈을 싫어한다고, 그래서 보스톤으로 가지 않고 메릴랜드로 왔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친구는 새로 이사 온 우리에게 늘 사려 깊게 주변의 정보를 알려주려 했으며,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의 지난 시간은 온통 친구의 인간적인 면모로 채워져 있었다.

 

메릴랜드를 떠나며, 오래오래 이웃해 살기를 원했던 친구의 바람을 떠올리며, 나는 내 심성 따스한 이웃을 친구라는 자리에 올려놓았다. 사실 나는 아무나 친구의 반열에 올리지 않는, 허나 올리면 영원해지는 좀 까다로운 친구다. 그래서 기념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편지를 하겠다고 카드에 썼다. 그리고서 울먹거리는 그로부터 예쁜 선물을 답례로 받았다.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나는 늘 진심과 따스함이라고 생각한다. 외적인 모든 조건이 서로 달랐지만 그 두 가지를 나눠주었던 친구에게 나는 크리스마스에 예쁜 카드를 보낼 것이다.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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