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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횡단여행 - 가장 중요한 준비물 Yunah Kim (kyeonah) 2021-9-15  14:03:12



횡단 여행 - 가장 중요한 준비물


 

 

살면서 무언가를 계획하는 목적은, 예를 들어 그것이 공부던 이직이던 파티던 여행이던,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실행 후에 얻어지는 결실일 것이다. 정신적 위안이나 물질적 대가, 우리는 그것을 위해 계획을 세운다. (건설적인)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는 사람은 매우 멋지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결과에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게 된다. 그런 원리가 여행이라고 비껴가진 않을 것이다.

 

무슨 일에서든 마찬가지지만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데 성격에 따라서 여행의 준비라는 것에 천양지차가 있다. 여행지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는 물론 세심한 의()와 식()의 마련, 숙소예약, 분단위로 세운 계획표를 가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우리처럼 대충 경로를 정하고 가볍게 짐을 싸서 입던 옷 입고 다음 호텔예약을 전 행선지에서 하고(holiday가 끼었을 때는 미리 한다) 현지 음식을 즐기며 현장에서의 서프라이즈를 극대화 시키는 타입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큰아이한테 줄 이삿짐을 빼면 마찬가지였는데 이렇게 하니 상황에 맞게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어서 장기 여행이지만 무리가 덜 갔다. 우리가 재촉했던 경로는 사전예약이 필수인 캠프사이트 뿐이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를 잘 해결하는 것은 여행의 만족도를 높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앞서는 중요한 준비물이 있다. 바로 사람이다.

 

새롭게 멋진 풍광과 문물을 접하고 감동을 받으면 신체에서 다이돌핀이 생성되는데 이는 엔도르핀의 4000배의 행복감을 선사하며 나는 이것이 여행의 궁극적 결실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행복감을 극대화 혹은 극소화 시키는 존재가 동행자다. 특히 횡단여행의 경우 차라는 좁은 공간안에서 오랜 시간 함께 머물러야 할 사람과 마음이 맞지 않으면 여행은 여행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고행이 된다. 그러므로 횡단여행은 잘 맞는 사람과 하는 것이 좋다.

 

여행을 하다보면 단지 동행자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여행중에 좋은 사람을 만나면 한층 더 아름다운 추억이 새겨지고 악인을 만나면 쓴 추억이 남는다. 이번에 나는 오묘하게도 두 부류의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났지 뭔가.

 

남편과 교대해 풍광을 즐기며 운전을 하던 중, 연료계기판 바늘이 바닥을 향해 있는 걸 알았다. 하필 적당한 장소를 막 지나친 후에 발견한 사실이었다. 중부였고 타운이 드물게 형성되어 있던 고로 이후 한동안 주유소와 숙박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 생각이 났다.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가스를 향하는 중에 주유 경고등이 켜졌는데 가도가도 주유소가 나오지 않아서 20여분이 두 시간처럼 느껴졌던 경험. 빨간 경고등이 켜진 후 적어도 30여분은 괜찮을 테지만 차에 짐이 많아서 평시보다 연료소비가 많은 걸 감안하면 서둘러 주입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리하여 멀리 작은 타운이 보였을 때 나는 Exit을 빠져나갔다. 동네주유소에 다다라 잠을 자는 남편이 깨지 않게 조심해서 차밖으로 나왔다. 연료주입구에 막 주유기 호스를 끼웠을 때다. 깔끔하고 선명한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번뜩이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다가왔다. 인상이 좀 과장됐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남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을 걸었다. 혹시 휴대폰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 급히 연락할 곳이 있는데 방전이 되서요나는 흔쾌히 물론이라고 말하며 차 앞을 돌아 내 가방을 놓아 둔 조수석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건너편에서 주유를 하고 있던 다른 남자가 나를 보면서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분명 어떤 신호였다. 나는 다시 쳐다봤고 남자는 다시 한번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내 동작은 급작스레 느려졌고 잠시 헝클어진 머릿속에선 그 신호의 코드를 위험이라고 해석했다. 미안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가까이 다가온 남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백주 대낮인데다 주위에 차들도 있어서인지 아무 말없이 돌아섰다. 그때 남편이 차에서 나오자 남자는 흘끔 쳐다보곤 더 멀리 걸어갔다. 내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던 건 식구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휴대폰을 빌려줘서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질 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흔쾌히 빌려주려 했던 이유는 8여년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공항에 공중전화기가 사라져 연락할 방법이 묘연해서 타인의 휴대전화기를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받았던 한결 같은 불쾌한 인상 때문이었다. 사실 그 전에 미국에서도 가끔 빌리곤 했는데 사람들이 매우 흔쾌히 응해주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경험이 더욱 유별스럽게 다가와 나는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빌려줘야지 했던 것이다. 주유를 마치고 떠나는 선한 남자를 향해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막내에게서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신종사기에 대한 경고). 악인과 선인을 한번에 만나 결국 해피엔딩?이 되서 다행이었던 추억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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