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달살기 - 혼자 여행한다고 하면

김민석이라는 작가가 나이 서른 다섯이 되도록 못 해본 것 중에 해외여행이 있었다. 그래서 서른여섯이 되기 전에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끊었다. 인생은 가끔 우연을 가장해서 사람을 시험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출국일에 아이의 수술날짜가 잡히게 되었다. 환불을 하려니 돌려받는 액수가 너무 미미해서 차라리 누군가에게 비행기표를 선물하면 어떨까, 궁리를 시작했다. 분명 돌려받을 액수보다 훨씬 큰 행복을 맛볼 것 같았다. 여행사에 양도할 수 있는지 묻자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 이름이 김민석이고, 2) 영문 이름 스펠이 같아야 하고, 3) 대한민국 국적인 성인남자. 김민석작가는 SNS에 공지를 했고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동명의 지인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문이 틀리거나 그 날짜에 출근해야 하는 등 비행기표를 인도받기에 녹록치 않은 경우가 다였다. 김민석씨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여행경비를 대겠다는 사람, 통신비를 충당하겠다는 통신사대표 등등 서포터는 늘어갔다. 혹시 경제사정이 안 좋더라도 마음만 있으면 떠날 수 있도록 말이다. 출국날짜를 닷새 앞둔 날, 드디어 김민석씨가 나타났다. 김민석씨는 다니는 회사 대표에게 이런 일이 있더라, 이야기했는데 대표가 선뜻 당신이 다녀오라고 추천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김민석씨는 여행을 하게 되었고 김민석 작가는 바람대로 더 큰 행복을 얻었다.

그때 김민석씨는 마음에 한가지 의문을 품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조건 없는 선심을 쓰는가… 김민석씨는 서포터들에게 직접 질문을 했고 놀랍게도 한결같은 대답을 들었다. 자신이 건네는 선행이 받는 사람을 통해 세상에 흩뿌려져 꽃피우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후 김민석씨는 자신에게 집중해서 살던 초점을 세상과 사람에게 돌려 살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여행하는 동안 나도 서포터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혼자 있어서인지 꼭 혼자냐고 묻는다~~) 자신이 밟아온 삶의 궤적과 가치관에 따라 내 사정을 상상하고 그래서 외롭지 않을까, 연민을 가지는 듯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어떤 할머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올레길을 함께 돌자는 깜짝 제안을 했고, 목적지 방향을 물었을 뿐인데 차를 태워주겠다고 여러 차례 강권을 하던 초로의 남자분은 장소로 데려다 주면서 전화번호를 건네며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깜짝 놀라자 제주도에 와준 여행객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그 분의 차를 탔던 이유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매우 강조한 탓에, 차를 안 타면 나쁜 사람으로 여긴다는 의미 같아서 끝내 사절하지 못했지만 그 날 내 스케줄이 끝나면 저녁을 사주겠다는 제안은 정말 의외였다. 산책길에 표지판을 들여다보고 돌아서자 주민 한 분이 여행객이냐고 물었다. 혼자 뚜벅이 여행중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엔 주변의 여러 정보를 알려주며 차 없이 가기 힘든 가시리 유채꽃밭 축제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외에도 일면식도 없는 내게 선심을 베풀어 주려 한 제주도민이 여럿 있었다. 

때때로 마음 한구석에서 김민석씨가 가졌던 의문이 조금 꾸물댔으나 결국 내 마음에 닿은 그들의 진심은 배려와 선함이었다. 나는 타인의 말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버릇은 참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그대로 잘 귀담아 듣는다. 그러면 세상을 너무 겁 없이 이상적으로만 보는 거 아니냐는 핀잔이 돌아오지만 내겐 촉이란 게 있다. 촉은 눈빛을 감지하는 데서 기능을 발휘한다. 입은 거짓을 말하기도 하지만 눈은 진심을 말한다. 눈이 안 웃는데 입만 웃으면 웃는 건지 아닌 지 아리송하나 입은 안 웃어도 눈이 웃으면 웃는 얼굴이 된다. 눈은 입보다 강력하고 진실되다. 눈은 마음의 창, 맞다. 그래서 나는 눈빛을 신뢰한다. 입과 눈이 함께 같은 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 사람을 믿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주도에서 만난 서포터들은 그런 분들이었다.

그리고 서포터들은 우리 아버지가 보낸 천사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