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부부는 잘 산다

선배 부부가 제주도에 가는데 11박 일정을 이렇게 짰다. 이틀 캠핑, 이틀 호텔, 이틀 캠핑, 이틀 호텔, 이틀 캠핑, 하루 호텔. 이후 깨끗이 씻은 가벼운 몸으로 집으로 복귀한다.

화양연화라는 영화가 있다. 두 주인공인 장만옥과 양조위는 유부녀와 유부남이고 같은 층에 집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된다. 이사하는 날이 같아서 두 집의 물건이 뒤섞이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이 발단부에는 복선이 깔려 있다. 결국 두 가정은 물건 뿐 아니라 사람의 관계도 뒤섞여 버리고 만다. 나는 장만옥과 양조위가 불륜에 빠질 것을 예상했으나 오히려 두 사람의 배우자들이 불륜관계로 맺어진다.

장만옥과 양조위는 사실을 확인 후 절망감에 휩싸이는데 그런 만큼 서로를 마음으로부터 위로하고 그 힘으로 자신을 지탱하며 살아가기 시작한다. 동병상련의 힘도 크겠지만 두 사람은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마음이 끌리고 서로를 챙기게 되나 지극한 도덕성과 이성의 힘으로 육체적, 사회적 결합을 포기한다. 이 영화에서 메인 스트림은 선남선녀의 아름다운 플라토닉 러브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시선은 불공평한 부부관계도 파고들었다.

이기적으로 신의를 져버린 배우자와 양심과 사회적 압박을 거스르지 못한 채 스스로의 상처를 더욱 짓이기는 희생자 사이에는 불공평이 자리한다. 이에는 이,라는 무정한 칼을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자신의 목을 찢고 소금물을 들이붓는 무모한 인내는 사양해야 한다. 특히 장만옥은 남편의 배신 때문에 결혼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피어나는 새 꽃봉우리를 억지스럽게 꺾어버린다. 하나의 배신도 아픈데 하나의 사랑을 억눌러야 하는 심장은 대체 얼마나 난장일 것인가. 양조위는 장만옥에게 묻는다. 결혼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요? 장만옥이 대답한다. 아마 행복했겠죠. …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혼자라면 혼자만 잘 하면 되지만 둘이 같이 살면 혼자 잘하는 거론 부족해요.

원초적 태생과 자라온 환경이 상이한 두 사람의 결합이 온전한 하나가 되기란 애초부터 꿈이다. 유전자부터 낯선 개체인데다 뇌구조가 다른 반대의 성(性)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세상 부부를 보면 신기하게도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가정이 있지만 따로국밥으로 지탱해가는 형태도 존재한다. 어찌되던 잘 지내면 문제는 없다. 적어도 스스로 만족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마음이 힘이 들 때다. 결혼생활을 지속하자니 속이 곪고, 내치자니 걸리는 것이 많다. 참는 건 내 마음이요, 여로모로 걸리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다, 자식, 부모의 한숨이나 체면, 사회적 시선, 경제적인 압박… 그 모든 것을 계산하면서 마음을 포기한다. 기존의 관습이 이랬다면 요즈음은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은 더 중요한 것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을 소지하며 살아간다.

사실 부부란 신비한 관계다. 애인과는 다르게 부부는 겉이 사라지고 속이 남는 관계다.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거듭 보면 첫 감동이 사라지듯이 겉은 언젠가는 무감각해지는 약한 자산이다. 부부가 되었을 때 배우자의 외모는 내면이 이뻐야 어여삐 보인다. 보통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단 ‘남편’은 마음과 솜씨가 예쁜 아내를 좋아한다. 보통 ‘여자’들은 키 크고 멋진 남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는 경제력 있고 성실하며 나를 위해주는 남편이 멋지다. 부부란 진정한 관계의 결정체, 고귀한 보석과 같다. 그래서 짝퉁은 가치가 없다. 함께 해서 힘든 부부는 짝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형편없어지는 짝퉁을 남의 눈이나 외부적 조건 때문에 보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결혼의 목적은 (싱글로 살때보다) 더 나은 행복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라면, 이란 바람을 가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행복하다.

무늬가 같은 부부는 갈등이 적다. 마음이 맞아 함께 도둑질을 하는 부부는 이혼을 꿈꾸지 않는다. 한쪽은 공자인데 한쪽이 사기꾼이면 공자의 속은 문들어 진다. 한쪽은 성실한데 한쪽이 불성실하면 성실한 쪽은 매 하루가 힘들다. 한쪽은 절약가인데 한쪽은 낭비벽이 심하면 절약가는 생의 허무를 느낀다. 이런 대립적 관계에서 한쪽이 참으며 살 수 있지만 이것은 불공평의 아이콘이다. 적어도 결혼생활에서는 양조위 말처럼 혼자일 땐 하고싶은 대로 하지만 결혼하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음을 인지하는 사람이 되어 그런 사람과 살아야 한다.

캠핑을 싫어하지만 남편을 위해 이틀씩 견디겠다는 아내와 유럽에서 한달간 캠핑족을 꿈꿀 만큼 캠핑 광팬이지만 포상으로 받은 휴가조차 아내를 위해 절반은 호텔에서 머물 수 있는 남편. 더할 나위없이 조화롭고 아름답고 공평한 부부의 초상이어서 보름달을 보며 나는 그들을 찬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