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아이들   - 이 어령-

 

 

그것은 우표 딱지만한 마분지였다. 월사금을 내는 봉투나 통지표처럼 담임선생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스무 장씩 나누어 주시면서 설명하였다. 국어를 쓰지 않고 부주의로 조선말을 쓰는 친구들이 있으면 어느 때 어느 곳이든 관계없이 후다(표딱지) 라고 소리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표를 많이 빼앗은 학생에게는 상을 줄 것이고 표를 다 빼앗긴 학생에겐 벌을 줄 것이라 했다. 물론 국어는 일본말이다.

 

그날부터 우리들은 재미난 장난거리 하나가 더 는 셈이다. 숨바꼭질이나 딱지로 놀이를 하듯 표를 많이 빼앗는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나는 과목 중에서도 국어가 제일 좋다. 형제가 많아서 학년이 높지 않은데도 국어로 말하기란 떡 먹는 일이다. 그런데도 힘이 든다. 표를 나누어 가진 후부턴 누구나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무심코 조선말을 지껄이는 학생이 드물다.

 

전 날에는 다섯장이나 빼앗았다.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도 나도 한 장을 빼앗기고 말았다. 새끼 호주머니에 스물넉 장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당나귀처럼 귀를 곤두세우고 다녔다.

어느 놈이든 조선말을 써야 표를 빼앗을 수 있을 텐데……

줄곧 관심은 그런 데로만 쏠린다. 영 표는 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씩 표검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일등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꾀를 써서 빼앗을 궁리를 한다. 오랜 연구 끝에 나는 아주 신기한 비법을 하나 창안해 냈다. 애들은 완벽할 정도로 고쿠고죠요(국어상용)를 하고 있었다. 욕도 국어로 고쳐서 말했다. 욕만은 조선말로들 했지만 표 뺏기 경쟁을 하고부터는 나쁜 자식이 와루이 야쯔로 변하고 뒈져버려라는 걸쭉한 욕이 신데시마에란 맥빠진 말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위급할 때만은 자동으로 조선말이 튀어나온다. 아이구 죽겠다라든가 아이구 어머니 같은 말은 아무리 조심해도 숨을 쉬듯 부지불식간에 입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표를 한 장 빼앗겼던 것도 책상머리에 넘어져 다리를 찧었을 때 아이고 어머니라고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후다,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같은 책상에 앉아있는 내 짝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파서 그랬는지 분해서 그랬는지 나는 눈물이 글썽한 채로 표를 내주었다.

 

여기에서 나는 힌트를 얻었다. 무심코 놀고 있는 아이들 등을 기습하면 백발백중 아야 하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순간 후다, 하고 소리친다. 아야도 조센고냐? 고 대들지만 나는 아주 아카데믹한 해석으로 위압해 버린다. 이타이라고 해야 고쿠고지. 아야는 아이고 아파의 뜻이니까. 표를 내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수법으로 참 많은 표를 빼앗았다. 벌써 50장이 넘는다.

 

그러나 곧 이 방법이 유행되어 하루가 지나니까 소용이 없다. 딴 애들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평소에 나는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섭고 싫다. 뒷간의 달걀귀신 이야기가 영 개운치 않다. 화장실에 갈 때는 항상 긴장된다. 그때도 역시 그런 기분으로 화장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카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놀랐던지 나는 아이구 어머니라는 말을 또 쓰고 말았다. 지능적인 역습을 받은 것이다. 변소 뒤에 숨은 특공대들에 의해 나는 몇 장의 표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 후다 전쟁은 시시각각으로 신전법과 신무기를 낳았다. 애들은 집에 돌아가면 그의 부모하고는 으례조선고를 썼다. 이것을 노리는 것이다. 마을 친구들 집 담 밑에 숨어 있다가 일본말을 모르는 그 부모들과 조건고를 쓰는 학생을 잡아 표를 빼앗기란 확률이 거의 100퍼센트였다.

 

이 게릴라전술 때문에 애들은 집에 가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한 애는 어머니가 묻는 말에도 끝내 대답을 하지 않다가 굉장히 매를 맞은 일이 있다. 담너머로 표를 노리는 적들이 넘겨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말을 모르는 그의 어머니는 표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태운 불쌍한 식민지의 아이들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만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식민지애들이 겪어야 했던 그 자신의 비극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반에는 말 없는 아이가 있었다. 가네실이라는 산골에서 살고 있는 아이였다. 천품이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본말이 서툴렀기 때문에 날로 말하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었다. 애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데 그 애는 혼자서 교사담에 기대어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제 차례도 아닌데 자진해서 교실 당번을 바꿔주었다. 그리하여 노는 시간에도 텅빈 교실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일이 많았다. 후다 제도가 있고부터 그 애는 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들이 죽 따라다녔다. 언제나 주말이 되면 선생님한테 벌을 선다. 언제나 한 장도 없이 표를 빼앗기고 만 탓이다.

 

교장선생님한테까지 불려가 비국민이라고 야단을 맞았다. 다시 한번 그 표를 모두 빼앗기면 퇴학을 시키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던 모양이다.

 

주말이었다. 표검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많이 딴 표 딱지들이 몽땅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누가 훔쳐가고 만 것이다.

선생님은 그 애를 의심했다. 늘 표를 빼앗기기만 했던 그 애가 40장 가까운 표 딱지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애한테서 표를 빼앗긴 사람 손들어 봐요.

성난 목소리로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지만 손을 든 학생은 없었다.

그러면 이 애에게서 표를 빼앗은 사람!

거의 스무 명 가까운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 애는 끌려가서 혹독한 매를 맞았다.

길게 흐느끼는 소리가 복도 저편 직원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그 애의 울음소리가 내 마음속에서 자꾸 크게 울려왔다. 어둑한 교실에서 혹은 학교 뒤뜰 아무도 가지 않는 실습지의 가지밭 둑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던 산골아이, 입을 열기를 거부한 그 침묵속에서 들려왔던 흐느끼는 소리. 집으로 돌아가자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자리에서 상품을 내보였다.

 

어머니 또 탔어요. 내가 제일 많이 후다를 땄거든요. 그런데 하마터면 상을 타지 못 할 뻔했어요. 내 후다를 훔쳐간 애가 있었어요.

그 애는 어떻게 되었니?

아버지는 웬일인지 성나신 목소리로 꾸짖듯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난처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무어라고 눈짓을 하시는 것 같았다. 웬일인지 후다를 많이 빼앗아 상을 타고 돌아오기만 하면 어머니나 아버지는 기뻐하지 않으셨다. 웅변대회에서 상을 타오거나 우등상은 말할 것도 없고 시시한 개근상을 타와도 좋아하셨지만 웬일인지 고쿠고죠요쇼(국어상용상)에는 어두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성을 내셨는지 어머니가 왜 또 그렇게 당황하셨는지 식민지 아이는 모르고 있었다. 아침마다 천황이 있는 동방을 향해 절을 하고 나는 고코쿠의 신민이라고 몇 번이고 고래고래 선서를 외워야 했던 식민지 아이는 자기가 식민지의 아이라는 그 사실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일본은 우리나라고 일본말은 국어라고 모두들 그렇게 가르쳐준 것이다. 아버지는 무엇을 참고 계신 듯했다. 사실은… 이렇게 똑 같은 말을 몇 번인가 되풀이하고 있는 아버지 입을 틀어막으시고 어머니는 나보고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분명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눈치였다. 국어점수를 많이 딴 것인 것 웬일일까? 칭찬을 받을 줄 알았던 내 마음도 언짢았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2, 3 년이 지났을 때였을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울에 가 계시는 동안 외할머니가 우리를 돌보아 주실 때 일이다.

겨울 밤, 밖에는 눈이 오고 있었고 나는 어머니 생각을 하느라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머니 나 옛날 이야기 한자루만!

이불속에서 나는 할머니를 보고 졸라댔다.

할머니는 거북선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순신장군이 일본배를 쳐부순 신기한 거북선 이야기를.

나는 얼마나 놀랐었던가.

어떻게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가 싸움을 해요? 일본은 우리나라 아니예요?

외할머니는 덕수 이씨의 집안, 바로 이순신의 후예였던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임금님을 죽이고 제 땅으로 만든 거지. 어디 일본땅이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순사에게 잡혀가니까 너희들에게 모두 쉬쉬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야. 나야 늙었으니까 저희들이 어쩌겠니……, 그래도 너 혼자만 알아야 한다.

나는 할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많이 늙으셔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학교와 소방서와 가게와 이 집들은 내 나라 것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커서 군인이 된다. 희노마루를 들고 사람들은 군대에 나가는 사람에게 만세를 불러주지 않았던가? 저희 나라가 아니데 어떻게 쌈싸우러 나갈 수 있겠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일본이 우리 땅을 빼앗았다면 왜 어른들은 가만히 있는 거야?     

 

씨름판에서 황소를 끌어가는 힘센 장사들이 많은데 왜들 가만히 있는 거냐… 나는 할머니가 순사에게 붙잡혀갈까봐 아무에게도 일본이 정말 우리나라가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식민지의 아이는 할머니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처음으로 내 표를 훔쳤다가 매를 맞았던 산골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잠수함 같은 거북선을 몰고 일본배를 쳐부쉈다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가끔 꿈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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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압사를 당한 젊은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들의 목숨을 누가 지켜주어야 했는지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식민지의 아이들이 사회의 농간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현상처럼 아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안전불감증에 노출되어 참사를 당한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는 안전에 대해 너무 안이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겠지요. 아프게 배웠어요...... 제 자식 또래의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가슴이 너무 너무 에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