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갱년기

국민학교 6학년 말에 시작했던 초경이 이제 슬슬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는 지 서너 달 째 소식이 없다. 주기가 화장실 타일처럼 균일해서 당황할 일 없었던 긴 여정. 임신했을 때를 빼고는 수유를 하는데도 불현듯 존재를 드러내더니 꼬박꼬박 달마다 인사를 했지. 이젠 여성의 몸으로 살았던 오랜 시간과 헤어져 여자라기 보다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시기를 맞는다.

자궁내막증에 난소에 혹이 있어서 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증세가 오랫동안 있었지만 등이 뜨거워지고 열이 불을 뿜듯 솟구치는 증상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표출됐다. 내 갱년기증상 중 특이할 점은 참을성이 없어진 현상이다. 감정 컨트롤을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이제 정 반대의 노선을 달리려는가?? (지랄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앞으로 장난이 아닐 것 같다~~). 화가 났을 때 화를 내면 괜찮은데 마음에 담아두면 가슴에 돌덩이가 올라앉는 느낌이다. 예전엔 워워~ 하면서 역지사지를 하면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서 가슴이 가벼워졌는데 이젠 거기까지 도달하기가 도저히 버겁다.

화가 나면 가슴이 조이는 느낌을 받으니 이거 참 낯설지만, 참다가는 화병이 생길 것 같아서 병이 나면 아니되므로 화를 내기로 하는데 나의 특장점은 화가 난 이유를 잘 설명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상대에게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는다는 생각은 안 들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더라도 아드레날린은 인간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드므로 평시보다 잘 설명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뒤따른다. 게다가 상대 역시 고유의 생각이 있는지라 격앙된 분위기에서 열 내며 설명하는 자의 논리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면 관계가 어그러진다. 에스트로겐의 풍성함도 쪼그라 들었는데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여러 현상 때문에 갱년기는 스트레스 만땅이 된다.

살면서 참을성을 요하는 치명적인 순간은 바로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휙휙 바뀌는 디지털문화도 징한 인내를 요하지만 익숙해지면 서서히 해소되는 마력이 있다. 허나 인간의 성격은 웬만해서는 불변의 원칙이 작용하므로 쉽게 안 바뀐다. 안 바뀌는데 시간이 지난다고 해소될 리는 없다. 그래서 갱년기는 예전부터 안 맞았던 사람과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시간이다. 사춘기 자녀와 갱년기 엄마가 대결하면 갱년기 엄마가 이긴다는 풍문도 갱년기의 특성을 잘 짚어낸 명언이라 생각한다.

나는 묘책으로서 인간세상에 나서기보다 나와 잘 맞는 존재랑 관계하며 증상완화를 도모하기로 한다. 해결책은 자연! 바라만 보는 자연으론 부족해서 자연 품은 땅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나만의 오두막을 짓고 해가 뜨면 땅을 일구어 씨를 심고 그 씨에 물을 주다가 해가 지면 별바라기를 하는 일상을 현실화 시키자 했다. 내 처방전이다.

그리하여 몇 달 전부터 내 땅이 될 땅을 찾아 삼만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은 조물주가 내어준 땅 곳곳에 자신의 영역표시를 해 둔 발 빠른 사람들 천지였고 그들은 시대에 발맞춰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자연에 파묻힌, 소로우의 것처럼 미니멀리즘의 진수인 오두막도 요원한 꿈이런가… 좋고 평당가 싼 땅들은 덩치가 컸고, 땅이 작을수록 좋기가 어렵고 평당가가 높았다. 명당에다 가성비 좋은 작은 땅은 순식간에 거래된다(부동산중개업자가 산다는 소문이…). 한국은 지금 오도이촌(도시 5일 시골 2일 사는 삶)이 유행이라 자연바라기인 갱년기 여인 뿐 아니라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자연에서 풀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서도 그리 되었다. 그래서 몇 달 째 발품을 팔고 다니지만 다른 것엔 무기력증이 일어도 임장(부동산을 직접 보러 다니는 행위)만은 의욕 충만이니 나중에 연이 닿던 아니던 현재는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갱년기 무기력증에 빠졌다면 지루한 일상에서 탈피해 생각만 있고 지금껏 미뤄두었던 무언가를 찾아내 되던 안 되던 전진하는 태도는 참 좋은 시도인 것 같다. 욕심만 버린다면 과정만으로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충족감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