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3주살이 - 차 가지고 갔지

부산에서 바로 제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제주도에 수소충전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 온 수소차는 공기를 빨아들여 흡입된 산소와 주입된 수소가 연료전지에서 만나 전기화학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인데 결국은 전기차처럼 전기의 힘으로 달리면서 공기청정기 역할도 하므로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는 한반도에 더없이 고마운 발명품이건만, 아직은 인프라 때문에 제주에서 사용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제주에 있는 수많은 렌터카가 다 수소차로 바뀐다면… 아, 상상만으로도 그 하늘과 바다는 더 때깔 곱게 푸르렀다.

차를 바꿔 진도로 갔다. 배를 타는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가장 짧았기 때문이다. 차량선적비용은 국산차와 외제차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평일, 주말 차이도 있어서 다양하다. (참고로 우리는 왕복 30여만원 지불했다). 애견은 케이지 규격이 비행기 보다 느슨하고 대형견은 차에 머무르면 된다. 우리 배는 애견요금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선박마다 규정이 각각이다.

제주도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깔끔하거나 이른바 감성 숙소에서는 애견을 거부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길가다 우연히 부부가 운영하는 이국적인 리조트를 발견했는데 플로리다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곳이라 머물고 싶어졌다. 애견동반 투숙이 가능한지 묻자 남편주인 왈, “다른 손님이 꺼려해서 안 될 것 같아요. 예민한 손님들이 계시거든요. 아무리 청소를 해도 예민한 사람들은 단번에 알더라구요.” 사실 매번 듣는 멘트라 새삼스럽지 않았고 대신 늘 묻고 싶던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저희 강아지는 자기 침대에서 자고 짖지도 않아요. 그런데요, 그 예민한 손님도 손님이고 저희도 손님인데 왜 그 손님만 존중을 받아야 하나요?” 난감한 표정이 된 남편주인은 할말을 잃었다. 그러자 부인이 나섰다. “저희도 강아지를 키우지만 숙소에서는 안 되요. 저희가 애견을 안 받는 거예요. 손님 때문이 아니라요.” 아, 네… 그러게요… 그렇겠지요… 에둘러 말하던 그 모든 숙소의 주인들은 그랬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각각의 사정으로 한 곳에서 3주살이를 하려던 애초의 예정에서 벗어나 네 군데의 숙소에서 짐을 풀었다가 또 싸면서 떠돌이 여행을 하게 된다.

남편은 첫 집을 좋아하지 않았다. 숙소 옆에 카페가 있는데 커피향이 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페는 승마장과 연결됐고 2월의 제주는 제주 답게 바람이 엄청 불어서 커피향이 말똥?냄새로 덮여버렸다. 축농증 환자였던 남편이 말똥냄새 운운하는 것에 반가운 마음(후각 회복)도 들었지만 남편은 진주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실 남편은 세상사 뭘 잘 모른다.

그 집은 깔끔했다. 청결하고 침구와 욕실이 좋았는데 욕실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와서 곰팡이가 전무했다. 수압도 셌다. 게다가 펜션답지 않게 매일 휴지통과 수건을 갈아주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 주었다. 양호한 식기와 양념도 갖췄다. 창을 열면 먼 바다 앞으로 잔디가 깔려 있고 예쁜 정원수도 있었고 말도 보였다. 인테리어가 촌스러웠지만 하루 6만원이라는 가격은 그런 것쯤 포용할 수 있었다. 말똥냄새는 집안에서는 나지 않았으며 나는 오히려 더 제주스럽다고 느꼈다. 이런 보물을 알아볼 사람은 알아본다. 2월은 비수기인데도 방이 모두 예약되었으며 딱 한 방이 3일만 비어 있어서 우리는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숙소를 몇 군데 찍어 놓고 직접 보러 다니는 과정이 ‘이쁜 제주’니까 다 여행 아니겠어? 라고 명랑한 소리를 했지만 실은 맹랑한 소리였다. 제주라고 온 천지가 이쁘진 않고, 특히 서귀포시의 서쪽지역은 굳이 경험할 필요가 없는 곳. 숙소가 정해진 후와 촉박하게 정해야 하는 때는 심장의 질감에 차이가 생긴다. 땡땡할 때 말고 느슨한 심장일 때 여행의 묘미는 돋는다.

2월의 제주는 춥다. 바람 때문이다. 겨울엔 늠름한 한라산이 북풍을 막아주는 서귀포에서 머무는 게 좋다. 3월 말에서 4월에 걸친 제주를 추천한다. 날씨가 온화할 뿐 아니라 유채꽃과 벚꽃의 향연이 끝내준다! 나로서는 로우지만 아니라면 우리의 3주살이는 서귀포에서 푸른 하늘에 흰구름을 우러러보며 내륙의 미세먼지와 추위를 피신한 기쁨이 행복으로 승화했을 텐데… 란 생각이 때때로 불뚝거렸고 그럴 때 은근 우리랑만 붙어 있으려는 로우지가 괘씸했다. 펜션주인들은 겨우 잠만 허락했을 뿐 외출시 데리고 나가길 종용했고 무엇보다 로우지가 불안해서 스트레스 받을까봐 늘 함께 다니다 보니 이것은 로우지를 위한 로우지에 의한 로우지의 관광이라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차안에 두고 내렸지만 이것을 눈치 채서 차의 스피드가 느려지면 돼지의 생멱 따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저도 함께 데리고 나가라는 것이다. 세상에… 서귀포에서 적당한 애견숙소를 못 구한 탓에 바람이 그토록 불어 제끼는 지역에서 따귀처럼 얻어맞아 푸석, 꾀죄죄, 얼얼하기까지 한 얼굴로 기진맥진이 되기 일수니 이건 뭐, 힐링하러 왔는지 스트레스를 받으러 왔는지…

그런데 말이다. 참 이상도 하지, 그래도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즐거웠다. 눈을 뜨면 며칠째 반복되는 로우지 and 바람의 테러는 싹 잊혀지고 제주에 있다는 사실이 힐링이 됐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제주를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