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재빨리 남편에게 이른다. ‘여보, 그냥 성큼성큼 들어가. 두리번 거리면 아니 되오.’

남편은 움찔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곳은 포도호텔이었다. 포도호텔은 신라호텔과 달랐다. 규모도 작았지만 붐비기는 커녕 주차장에 차도 몇 대 없었다. 더 위기의식을 느꼈던 건 로비라운지에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신라호텔은 중문색달해수욕장을 어슬렁 거리다가 모래밭 한가운데에서 연결된 계단을 오르니 닿았던 곳, 예상치 못한 목적지에 휘파람이 나왔다. 그곳은 뭐랄까, 깔끔하게 멋을 냈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휘감은 모습같달까? 나는 해변에서 주운 조가비 껍질을 움켜쥐어 꿉꿉해진 손도 씻고 볼 일도 볼 겸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면서 관광을 연장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제주 신라호텔 화장실은 이렇게 생겼네…

화장실에서 나와 로비며 야외수영장 등을 돌아다녀도 럭셔리한 호캉스를 즐기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과 응대로 바쁜 직원들이 굳이 나에게 관심 둘 일은 없었다. 반면 나는 젊은 커플들이 하도 많아서 사람들을 눈으로 좇았다. 웹사이트에서 성인 2인을 넣고 알아본 숙박비가 하루 60여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금수저일 수도, 신혼여행객일수도 있지만 뭔가 다른 이유도 있을 거 같아서, 궁금한 걸 못 참는 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묻는다. 죄송한데 하루 숙박비로 얼마 지불하셨어요? 한 팀은 프로모션으로 삼십 만원 중반대, 한 팀은 블루클럽 멤버쉽(약 60여만원)을 가입하면 여러 혜택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친절하게 답을 주었다. 내겐 조금 먼 세상이지만(호캉스 보다 자연 만나기를 선호하는 내게 그곳은 가성비가 엄청 나쁘지만) 그곳 역시 제주의 흥을 잔뜩 품은 매력적인 곳임에 틀림없었다.

포도호텔은 방주교회와 수풍석 박물관의 건축가 이타미 준(제일교포 유동룡)이 설계한 또 하나의 실용예술작품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포도송이처럼 생겼다는 연유로 포도호텔이 되었다. 물위에 떠있는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한 방주교회가 마음이 마냥 푸근해지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은사를 왕창 받을 것 같은 느낌을 주듯이, 포도호텔에는 머무는 행위만으로 힐링과 안식을 선물 받을 것 같이 그곳은 아늑했다. 출입문의 위치로 객실의 크기를 예상할 수 있었지만 웅장하기 보다 지극히 안온했다. 주변 오름의 완만한 능선과 조화를 이루고 제주의 전통가옥을 모티프로 설계한 포도호텔은 이타미 준이 설계단계에서 제주의 강한 바람을 의식하고 돌쌓기 등 풍부한 제주의 자연풍토에 집중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본태박물관, 유민미술관, 글라스하우스를 설계한 안도 다다오에 앞서 일본의 건축양식을 한국에 들여왔으며 제주를 통해 한국에 ‘풍토건축’이라는 개념을 도입시킨 건축가이기도 하다(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 웹사이트 참조). 외관은 제주풍토를 의식한 설계에 공감하나, 실내공용공간 인테리어는 제일교포인 그의 고향집도 모티프가 되었을 듯한 인상이 나로선 강했다. 알고 보니 초기에 그러한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조도 낮은 조명에 휩싸인 곳곳은 호텔이라기 보다 정적을 품은 미술관이었다.

출입문을 열려는 순간 내비친 호텔은 텅 비었고, 26실 규모답게 매우 프라이빗한 가옥 같았고, 오른쪽으로 카운터와 라운지가 보였으나 호텔 안을 좀 구경해도 되겠냐고 물어보기란, 까딱하다가는 보안문제로 거절당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속삭이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타미 준의 팬이 된 나는 제주 7대 건축물로 뽑힌 그의 포도호텔을 결곱게 찬찬히 훑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당한 루트가 아니었으므로 이 자리를 빌어 사과한다. 나중에서야 호텔건축예술가이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기회가 되면 이용해 봐야겠다. 맛있다고 소문난 왕새우 우동도 먹어보고 말이다.

각 객실의 통창을 한껏 메운 멋진 뷰를 음미하고, 한실 객실의 히노끼 욕조에서 아리고나이트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포도호텔이라면 호캉스를 해도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아! 거대한 예술작품 안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근사한가! 그리하여 나는 틈틈이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