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쌍의 부부가 모인 날

두 쌍의 부부가 모였다. 2년 전에 우리집 렌트 계약때문에 한번 만난 사이인데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낯이 설었다. 그러고보니 그때는 코로나때문에 눈들만 마주했다. 본디 마스크 속의 얼굴은 상상하고 다른 법이다. 어쨌거나 코로나시대가 끝나서 더 좋은 날이었다.

이번에는 식사를 위해 만났다. 조금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입장이 밥을 먹는 사이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 그랬다.

집주인과 세입자간 역할에 대해서는 50여 년 전 엄마의 지난한 체험에서 배웠다. 계량기가 분리되지 않은 까닭에 수도와 전기 절약에 관해 집요하게 강압을 넣고 시끄럽다고 천사 같은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마음껏 뛰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집주인 역할이었다. 숨죽이고 사는데도 난사 되는 갑질을 견디다 못해 무리한 대출을 끼고라도 내 집 마련 꿈을 꾸는 것은 세입자 역할이었다. 둘 사이는 물과 기름이고 도끼와 나무였다. 설움의 축복으로 엄마는 세입자 역할을 싱겁게 끝냈다. 집을 쉽게 살 수 있던 시대였고 환경과 여건이 받쳐 준 덕이었다.

내 경우는 달랐다. 미국아파트 메니지먼트 오피스를 포함해 28년 동안 열 다섯 번이나 다른 집주인을 만났다. 나와 남편은 한국과 미국을 오갔을 뿐 아니라 미 동서남부를 다 살아보느라 정착할 틈이 없던 것이 하나, 그 동안 집값이 스키 슬로프처럼 비탈길이 된 또 하나의 이유로 세입자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했다. 슬로프를 쉽게 오르려면 리프트가 필요하다. 리프트가 없을 땐 낮은 코스를 찾아서 옆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옮겨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낮고 짧은 슬로프를 찾아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발 아래 멋진 풍경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내 집이 있는 삶은 없는 삶과 달랐다.

그럴 줄 몰랐는데 열 번 째까지 나는 집주인 복이 지지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 어딘가 반드시 좋은 집주인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더니 다행히 열 한 번째 주인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열 다섯 번째에는 진정한 호인을 만났다. 베풀면 반드시 복으로 되돌아 온다고 믿는 열 다섯 번째 집주인은 세상을 참말 잘 사는 사람이었다.

열 세번째 주인을 만난 후 우리는 한국에서 집을 샀다. 그리고 안식년 때 미국에 가면서 우리집 렌트가 시작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좋은 집주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좋은 집주인의 역할은 별 건 아니다. 세입자의 행복을 기원해주면 된다(세입자가 우리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게 요구사항을 잘 들어준다). 반면 좋은 세입자는 집세를 잘 내면서 타인의 집을 내 집처럼 여기며 살면 된다. 지금은 좋은 집주인이기도 하면서 좋은 세입자로서 살려고 노력 중이다. 

단순화시켜 본다. 좋은 집주인과 좋은 세입자의 매칭 확률은 25%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낮은 확률이 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관련된 관계는 한 쪽이 나쁘면 다른 한 쪽이 곧바로 나쁘게 전락되는 메커니즘을 가진다. 원래는 좋은 사람이라도 돈을 떼이거나 사기를 당하면 화를 내며 추궁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시몬느 베이유처럼 선행이 선행을 부른다는 진리를 믿지만,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당연한 진리조차 돈 앞에서 많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좋은 집주인과 좋은 세입자에 대한 인정은 상대가 하는 것이다. 본인만의 착각은 소용이 없다. 그런고로 집주인과 세입자가 같이 밥을 먹는 상황은 꽤 감격스러운 이벤트다. 그 어려운 인정과 매치가 성공했다는 증빙이라서… 돈 보다 우선한 소중한 것을 서로 잘 지켰다는 의미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