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당했다

나는 등기우편이 싫다!! 

부재중에 미송달 등기우편 알림장이 붙어있는 경우, 다음 날 우체부 아저씨가 방문하기 전까지 찜찜한 기운은 그날 밤 행복을 갉아먹는다. 몇 주 전에도 그랬다. 역시나 알림장이 경고했던 우편물은 법원송달 소장이었다. 아! 지구와 인간을,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부부에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지…

2년여 전에는 기러기시절 남편이 혼자 살던 집의 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주어 법에 호소를 하던 중, 애초부터 신탁회사가 개입된 물건으로서 사기계약을 맺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신탁회사에서 우리의 권리주장이 부당하다는 고소장을 보냈고(법은 참 야속하다) 그래서 남편은 법원을 들락날락 해야 했었다. 그 과정에서 등기우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필 그때 더더 등기우편을 받게 한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당시 우리집 세입자였다. 우리에게 준 보증금을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그 사실을 내용증명으로서 대부업체가 알려줬다. 계약이 만료되면 제할 것 제하고 남은 보증금을 세입자가 아닌 대부회사로 보내라는 지시였다. 우리집 세입자는 월세를 밀리는 중이기도 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 나이를 의식하게 했다. 반 백 년 넘어 사니 별 일을 다 겪는구려… 뭐 이런 감상을 일으켰다.

우리가 집을 세주고 세를 사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구입시에는 안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 입지가 좋아진 우리집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더 작고 싼 집을 빌려 살면서 차익을 애들 학비에 보태는 식이다. 세입자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비싼 거주비를 내고 우리집에 사는 일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 조율해서 나가게 되었다. 그때 고민 끝에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법을 만만하게 본 태만도 있지만 앞서 고려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다. 코로나 기간이라 생업인 여행업이 얼마나 타격을 입었을 지, 그 돈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할 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 댁은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었다). 몫 돈이 생기면 이자가 24%나 되는 대부업체에서 빌린 부채를 일부 갚고 생활비에도 활용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등기우편으로 날아온 경고를 무시하고 세입자를 도왔다. 하지만 법은 이런 우리 생각을 인지상정이라 여기지 않고 범법으로 취급한다.

대부업체는 재판을 하던 지, 어차피 갚게 될 돈을 순순히 갚던 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도로 소장을 보냈다. 재판을 해봤자 정해진 룰을 따르지 않은 우리는 그냥 죄인이다.

전 세입자와 연락도 안 되고 구제방법도 없으니 돈을 갚을 밖에… 이 와중에 한가지만 바라기로 했다. 한때 우리집과 연이 닿았던 그들이 법을 알고 우리의 마음을 이용한 것은 아니고 단지 지금도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랬노라고… 그게 아니라면 나는 마음이 너무 쓰라린 것이다.

사실 바로 아래에 쓴 글, ‘두 쌍의 부부가 모인 날’은 이 일과 관련하여 진심으로 내 소회를 드러낸 고백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세입자를 잘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복이란 사실을 절절히 느꼈다. 나쁜 일과 좋은 일이 뒤섞여 무늬를 만드는 것이 인생이지만 사기는 참 씁쓸한 이벤트다. 상대도 상대지만 바보 같았던 자신을 탓하게 되므로… 사기는 가스라이팅처럼 악날하게 사악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힘든 입장을 좀 헤아렸다는 사실이 잘못일까? 두 자간에 이루어진 계약에 대해 단지 통보를 받았다는 이유가 잘못인가? 그 이유만으로 제 3자가 이런 피해를 입게 하는 것이 법인가? 사람한테도 사기를 당했지만 법한테도 사기를 당한 느낌때문에 나는 억울한 것이다.

두 자간에 이루어진 계약에 대해 집주인이 알게 되었을 때, 보증금을 꼭꼭 금융기관에 주어야 하는 것이 법이란다! 그런 법을 교과서에서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악법도 법이라지만 이런 악법을 따르고 싶지 않은 인간의 마음은 그다지도 가치가 없는가? 없어서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24%라는 이자를 떼는(현재는 20%) 대부업체한테 돈을 넘겨주기가 너무너무 싫었다고!!

나는 평시라면 사기를 치느니, 당하는 입장이 열 배 낫다고 위로하며 푸는데… 나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법한테 배신당한 느낌은 다른 차원이다. 특히나 금융법은 강자에게 유리한 악법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악법은 따를 게 아니라 수정되어야 하고 선량한 사람은 절대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언지 생각해 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