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집은 27층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오래 머무르는 운명이다. 매일 사각형의 공간 안에서 이런저런 사람을 본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 휴대폰에 고개를 박고 들어선 그 자세로 있다가 나가는 사람, 까맣고 둥그런 헬멧을 쓰고 빼꼼이 눈만 내놓아 공포심을 유발하지만 결국에는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 꿀을 뚝뚝 떨어뜨리는 신혼부부… 아이들도 꽤 있는데 그 중 제일 말을 안 듣는 한 아이를 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많아도 큰소리로 떠들어서 엄마아빠가 땀을 삐질대며 주의를 주지만 안하무인인… 아이의 엄마아빠는 엘리베이터에 타면 눈길을 아래로 향하거나 휴대폰을 응시한다. 아이가 없을 때도 그렇다. 그 가족은 28층에 산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계단으로 올라가 윗집을 살폈다. 맞다, 아이가 있는 집인지 확인하려고 그랬다. 복도에 세발 자전거와 아이 용품이 나와있었다. 마침 문이 열리고 그 집 엄마가 물건을 정리하려고 나왔다. 나는 인사를 하면서 살기 어떻냐고 말문을 텄다. 그때는 웃는 얼굴이 괜찮다고 답했다. 이후에 아이가 있는 것 같은데 몇 살이냐고 물었다. 갑자기 사나운 목소리와 표정이 왜요? 했다. 나는 어줍쟎은 미소를 짓고 물러났다. 그리고 우리 집을 후보군에서 뺐다. 방을 하나 터서 거실을 크게 만든 레이아웃을 원했고 그런 집이 귀했기에 아쉬웠지만 무섭고 시끄러운 윗집일 수도 있는 50%의 확률을 제거하고 싶었다.

경험상 ‘집은 인연’이라는 말이 맞다. 결국 이 집으로 이사를 왔고 나는 처음부터 각오를 했다. 전망이 좋은 대신 창문을 조금만 열면 대로의 시끄러운 소리가 밀려와서 어차피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듣는 집이길 포기했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했다. 이만하면 살기 괜찮다고 자족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조금씩 밖에 소리와 구분되는 윗집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가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여러 사람이 타고 올라가는 중이었고 부모가 계속 주의를 주었지만 아랑곳 안 했다. 사람들이 내리고 나만 남았다. 천진난만한 모습이 귀여워서 웃으며 쳐다봤다. 그랬더니 아이 엄마가 “어른들이 싫어하셔, 노래 그만 해” 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괜찮아요, 노래 잘 하네”, 칭찬했고 아이는 기뻐했다. 부모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았기에 이후에 만날 때도, 아이가 있는데 집이 조용하다고 몇 차례 인사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수였다.

문제가, 그들은 꼭대기층에 산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정도 소음이 들릴 수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처지다. 그들은 나의 배려도 가늠할 수 없었다. 이후에 소음이 나날이 더해갔다. 남편이 짜증을 냈다. 그런데 나는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내가 그리 만든 탓이었다. 조용하다니 조용한 줄 알고 편히 지내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수 없이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남편이 힘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당장에 소음이 줄어들었다.

어른만 지내는 집과는 차별화된 소리가 들리지만 내 인내를 이끌어 내는 부분을 들여다보니 이유가 있었다. 매너를 가르치려는 부모의 역할이 중심에 있었다. 첫날 아이아빠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미안하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와 동거하며 부모는 최선을 다해 공동주택 입주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할 만큼 하는 자에게 어떻게 더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살다가 지난 5월에 집밖에 놓인 맛있는 쿠키와 감사 편지를 발견했다. 윗집이었다. 의외이기도 했고 의외가 아니기도 했다. 왜냐하면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별 말없이 지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을 섞었다가는 불평이 터져나올지 모른다는 걱정을 품고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 역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또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침묵이 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책,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말했다. “말이란 원래 오해의 근본이라고.” 어린 왕자는 말했다.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다”고…

“왜요?”는 말이고, 선물과 카드는 행동이다. 나는 처음에 들었던 무서운 “왜요?”를 영원히 잊기로 했다. 어제는 아이스바를 사오던 중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을 마주쳤다. 몇 개를 선물했다. 내가 했던 “아이가 몇 살이냐”는 질문은 잊고 우리가 떠나도 아이스바만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