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나를 하다가…

완경이 되니 내 머리칼은 정말 쭉정이가 되었다. 단백질이 쏘~옥 빠져나가서 바람 없이도 풀풀 날리고, 정수리는 휑하고, 스타일은 아예 출가를 했다. 하필 어깨에 닿는 길이 탓도 있겠으나 얇고 힘이 없어서 자꾸 목에 감겨 들어, 날도 더운데 불쾌감이 만발했다. 빡빡 밀면 어떨까,란 유혹을 물리치고 한데 모아 묶어보지만 오래 두면 두피가 아프고 머리카락이 더 빠지니, 짧게 자르는 것만이 답일라나 생각 중에 헤나를 떠올렸다.

화학적인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는 언제부턴가 헤나를 했다. 점점 얇아진다고 느끼던 검은 머리칼과 두세 개씩 솟던 흰머리가 각성되던 시절, 한국에 오니 헤나 전문점이 있어서 그 앞을 지나다가 다짜고짜 했다. 미국 살 때, 비트물을 섞어서 헤나 염색을 했다는 인도 이웃과, 딸들이 친구네에서 가끔씩 손에 문신했던 것을 봐온 지라 낯 설 것이 없었다.

헤나를 하면 늘 뜨거운 내 머리통이 잠시 식는 쾌감이 있고, 며칠 동안 탈모도 줄고, 코팅으로 인해 힘이 생기는 느낌과 붉스그레한 변색이 기분전환을 시켜줘서 좋다. 숍에서 한번 한 이후로는 집에서 한다. 유기농 헤나에 달걀, 플레인 요거트, 커피 등을 섞어서 2,3시간 발효시킨 후 바르면 된다. 처음엔 FM대로 그랬는데 나중에는 반죽을 만들었다가 고 사이 귀찮아져서 냉장고에 넣고 2,3일 지나 하기가 일수였다(효과는 그 편이 더 좋았다). 어떨 땐 한달도 넘게 냉장고에서 묵혔다(요건 효과가 별로다). 그만큼 헤나 바르기는 내게 하염없이 귀찮은 일이었다.

귀찮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척박한 땅에 방치된 볏짚 같은 머리칼을 위해 스스로를 달래며 반죽을 만들기로 했다. 방학이라 집에 와있는 막내는 신이 나서 반죽 젓기를 도왔다. 바르기도 해주겠단다. 막내는 이런 일이 재미있는 것이다. 숍에서 하기에는 가성비가 좋지 않고, 스스로 하기엔 팔과 등허리 상태가 좋지 않으니, 막내가 해주면 땡큐,여야 하는데 오 노우! 가 튀어나온다. 예전에도 두 시간은 족히 벌을 서는 통에 종국엔 짜증을 냈던 것이다. 아무리 대충하라고 말해도 대충 하는 것이야 말로 넘사벽 스킬인 양 대충하지 못해서 막내는 해주고도 욕을 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전히 그랬다. 한시간이 넘어가자 윗등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만트라를 외쳤다. 고마운 막내, 고마운 막내… 그러다가 문득 미국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가족의 전담 미용사였던 시절, 남편을 비롯해서 두 아이는 목에 가운을 두르고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일수였다. 졸면 깨우고 깨우면서 ‘위험해. 거의 다 했어. 쫌만 참아’를 얼마나 외쳐댔는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서툰 가위질을 오랫동안 했는데 그때 그들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잠의 세계에 빠져 기울어진 상체가 된 막내를 그 상태에서 자른 후 일으켜 보면 비뚤어서 또 자르고 또 자르다가 종국엔 도라처럼 짧은 머리를 만들었지만 막내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 나도 참아야지 했는데, 1시간 30분이 지나니 등이 너무 아파서 갱년기 짜증이 올라왔다. 올라온 짜증 틈바구니에 고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자라서 엄마 머리에 헤나를 발라주고 있는가… 란 감상도 함께 여서 나는 그런 막내가 기특하기도, 그 시절이 그리워져서 짜증을 사그라뜨리고 많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막내가 화알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