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한 백화점에 갔다가...

한국 백화점 지하에는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딱히 식욕이 일지 않을 때 한 바퀴 돌면서 음식 쇼핑을 하면 그중에 한두 가지는 먹고 싶은 것이 나타난다. 강남의 그 백화점에서 함흥면옥을 발견한 건 그런 행보 치고는 행운이었다. 너무 맛났다. 결혼 전, 부모님과 자주 갔던 동네 냉면 집 맛이랑 똑 닮아서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비빔 냉면을 먹는 중이었다.

바로 앞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점원이 카운터 밖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컵 바닐라 시키신 분’ 호명이 여러 번 반복되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지팡이에 의지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점원이 카운터 밖으로 나오는 것까지 봤는데 할아버지께 컵을 전달했는지, 자리에까지 가져다 드렸는지는 미처 보지 못했다. 나는 냉면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맛난 냉면이 식욕을 부추긴 탓인지 그때부터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다 먹고 싶어져서 남편을 꼬드겨 팥죽도 나눠 먹고 아이스크림도 나눠 먹느라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자리 옆이 통로여서 곁으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오시는 것이 보였다. 할아버지는 차림이 세련되고 멋졌다. 노란 시쓰루 줄무늬 셔츠와 칠부 청바지 같은 걸 입으셨고, 그곳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그 집 아이스크림을 즐기며 사시던. 강남 부자 할아버지라는 건 의심할 나위 없었다. 아이스크림 다 드시고 가시나 보다, 생각한 순간 할아버지 바짓가랑이 젖은 것이 시계 안에 들어왔다. 무안하실까봐 얼른 고개를 돌리고 혹시나 물이라도 흘리셨을까,했지만 지독한 냄새가 그 진청색의 정체를 명백하게 알려줬다. 내 뒤에 있던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일행 뒤로 숨으며 역한 냄새에 대해 불평했다. 그럴 만도 했다. 냄새가 정말 지독했다.

비빔 냉면을 먹으면서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린 때문일 것이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니 우리 아버지 기저귀 생각이 났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 아버지 용변에서는 별로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사고로 하반신마비가 되어 스스로 용변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기저귀가 화장실이 됐는데 나는 우리 아버지 대소변이 더럽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마치 내 딸들의 것과같이 노란색이면 반갑고 녹색이나 검은 변은 요주의로 구분되는 그런 대상이었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개코다. 나는 미세먼지로 오염된 공기 냄새도 맡는다. 비위도 약해서 후각뿐 아니라 시각으로 더러운 것을 보면 잔상이 오래 남아서 식욕을 저해한다. 그런 나라서 아버지는 미안해 하셨지만 정말 나는 아버지 용변에서 불결한 냄새를 맡지 못했다. 어쩌면 실제로 냄새가 안 났을 수도 있고, 내 뇌가 냄새를 더럽다고 인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식사 때 TV 화면에서 불결한 피사체를 보면 밥맛이 떨어지지만, 밥 먹다 내 아기가 똥을 싸면 똥을 치울 뿐 아니라 똥 색깔을 살피고서도 입맛을 잃지 않는 것, 굴러다니는 개똥은 더러운 느낌이 들지만 우리 로우지의 따끈한 똥은 서슴없이 손으로 집는 것과 같은 원리겠지만 그것은 내게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내가 얼만큼인지 모르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용량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는 이후로 아버지께 그에 합당한 태도를 보이는 딸이 되었다. 그것이 돌아가시고 난 지금, 내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당혹과 허망으로 얼룩진 할아버지는 가시다 쉬고 가시다 쉬었다. 처음에 불편한 거동을 무릅쓰고 혼자서 하고 싶은 것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바지에 실수한 걸 보고 문득, 치매이신가? 란 의문을 가졌지만 백화점에 혼자 오셔서 값을 지불하고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당당히 사드시는 노인이 치매라는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 할아버지를 백화점 측에 일임하고 방관했지만, 바지에 용변을 본 것은 치매가 아닌 한, 누구보다 본인에게 더 당혹스럽고 창피할 일이므로, 주위에서나 가족들이 너무 탓하고 몰아세우지 않으면 좋겠다는 상념이 몰려왔다. 나이 든다는 것, 그때 나에게 벌어질 일들, 그건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메커니즘의 원리 그대로다. 나도 훗날 그와 같은 실수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이 그 할아버지가 타인으로부터 무안한 핀잔과 비판을 받지 않길 바랐다. 우리 아버지도 당신께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 아버지 기저귀를 갈던 시간, 아버지가 팔뚝으로 눈을 가리고 한탄했다. “아이고... 내가 빨리 죽어야지...” 그 한마디로 아버지가 어떤 기분일지 알게 된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은 듯 척척 갈았다. 딸들의 기저귀를 많이 갈아보아서 그런 거 선수였다. 냄새도 안 났다. 아버지께 어떤 말씀도 드리지 않았지만 내 손길에서 아버지는 느꼈으리라. 빨리 안 돌아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딸의 마음...

나는 그 할아버지도 그날,  가족에게 그런 위안을 받으셨으면 하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