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온 딸내미와 울 엄마

방학이라 미국서 온 딸내미는 연일 끓이고 볶고 자르느라 부엌에서 분주하다. 결과물은 근사하다. 잡채, 연어 스테이크, 배추 된장국, 고구마 밥… 한번은 콩나물과 시금치 무침, 양파버섯당근볶음 등을 얹어 비빔밥을 만들었는데 제법 맛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장인의 솜씨였다. 전주 맛집에서 비빔밥을 먹었을 때만큼 감탄이 나왔다. 케이크도 하나를 구웠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또 굽고 구워서 총 세가지 맛이 등장했다.

아이들이 학기 중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방학 때 돌아오면 조금씩 변해있다. 혼자 사는 동안, 제 편한 방식을 취하고, 친구들 영향도 받고… 이번에 울 막내는 장금이 수련을 하고 온 모양이다. 똥손인 줄 알았는데 금손이 되어 왔으니 지난 학기 동안 부엌에서 꽤 시간을 보낸 결과겠지.

한국 사는 이 엄마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는 대신 맛집을 찾아 간다. 물가가 올라 그 값이 그 값인 면도 있지만 이젠 꾀가 나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으므로 굳이 요리하기를 사양한다. 미국 사는 딸내미는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제 손으로 만들지 않으면 먹을 방법이 없으니 레시피 익혀서 해먹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거이 언뜻 보면 환경의 차이란 생각이 들지만 한국에서 열심히 요리하고, 미국에서 간편하게 투고나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이것은 취향의 문제다. 우리 막내는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식구들 먹이기 위한 방편으로 하기 싫어?하는 요리하기를 오랫동안 해왔기에 한국에 살면서는 안 하는 혜택을 최대한으로 누린다.

지금 이 시간, 울 막내는 두부를 으깨고 숙주를 삶고 김치를 다지고 당면을 삶는다. 만두소를 준비한다. 엄마인 나는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이 풍경에는 기시감이 많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울 엄마가 육계장을 끓이고 마요네즈를 만들고 카스테라를 굽고 경단을 굴릴 때 나는 냄새를 맡거나 휘핑치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엄마의 소문난 닭볶음을 침 닦아가며 먹었지만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팥과 밤과 대추를 넣고 소금간을 해서 한 솥 찐 찰밥은 밥이 맛있을 수 있는 최대치의 경지를 뽐내지만 엄마의 레시피를 나는 모른다. 가끔 묻기는 한다. 엄마, 그거 어떻게 만들어요? 그럼 엄마는 대충 설명을 하는데 전라도 음식은 프로세싱이 많다는 결론만 머리에 남을 뿐이다.

전라도 음식이 맛있는 건, 재료를 음식화하는 과정에 단계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김치만두를 만들겠다고 준비하는 막내를 보다가(내가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기에) 이 글을 구상하고 랩탑을 열었는데, 기발한 결론이 생각났다. 막내가 할머니 레시피를 물려받는 것!! 울 엄마 레시피는 대가 끊기기엔 너무 아까운 보물이다. 요리하기 좋아하는 두 사람이 벙긋대며 부엌에서 분주하게 볶고 무치고 삶는 시간을 상상만 해도 이것 참, 행복한 풍경이다. 요리에 관심 없는 딸을 대신해 손녀가 비법을 전수 받는다면 울 엄마 행복하시지 않을까. 

P.S.

참고로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하고 싶지만 못 하는 분들은 영상 통화로 계획해 보셔도 좋을 듯 해요^^

그리고 

2025년 새해, 딸이면서 엄마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인 당신도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고 애써온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걸 위해 애쓰는 한 해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