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자마자 한 일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2024년이 가기 직전, 막내와 나는 각각 포도 알갱이 열 두 개를 준비해서 테이블 밑에 쭈그리고 앉았다. 2025년 0시 01초가 되는 순간부터 포도를 씹어 먹으면서 한 알 당 한 개의 소원을 빌기 위해서 였다. 그런 풍습이 남미의 어느 지역에 있다나,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무슨 간절한 바람이 있는 것인지 막내가 부지런히 낯선 소원 빌기 의식을 준비할 때 나도 같이 하고 싶어졌다. 나름대로 새해 맞이를 위해 집을 정리하고 몸을 씻고 마음을 정갈하게 했어도… . 이런 ‘의식’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인간인데, 2,3년 전부터 나는 조금 달라졌다. 해서 나쁠 것도 없거니와 최근 들어 간곡히 바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나이 탓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탓’이라는 말은 ‘나이를 먹으면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많아지고 경험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나쁜 것도 있는데 좋은 것 보다는 나쁜 것에 더 강한 타격을 받는 것이 사람의 뇌인지성향일 터이고…

젊은 시절, 아둔할 만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늘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도 나이 들면서 직,간접적으로 실패나 죽음, 속임 등 나쁜 체험이 쌓이고, 사회적으로도 설마 하며 믿지 않았던 사실들이 뉴스에서 진실로 밝혀지면서(요즈음 최악이다!) 우리는 의심을 배워간다. 여기서 의심이란 인간의 삶이 마냥 정의롭고, 무사 안일 하고, 공평하고, 장밋빛일 거라는 낙관론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 의구심 안에서 갖가지 희망을 부여잡고 싶어 사람들은 ‘의식’ 을 행할 것이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불당과 모스크에서 절을 하고, 일출을 보며 두 손을 모으고, 테이블 밑에서 포도를 씹으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2025년 새해를 맞아 내 몸에 넣은 첫 먹거리, 포도알은 희망을 뜻했고 나는 희망을 열 두 개나 집어먹었다. 가족의 건강과 삶의 평온과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소원하며 천천히,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 중에 예년과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그간에 내버려 두어 빛을 잃은 ‘나’ 라는 놋그릇을 성실히 닦아 빛을 내고 싶다는 욕망 어린 소원이 그랬다.

남편과 아이들이 제 이름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당신도 이름을 찾고 싶지 않으세요? 이대로 나이 탓만 하기엔 우린 아직 청춘일 지 몰라요. 2025년에는 당신도 꼭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그걸 향한 걸음을 떼보는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