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살게 된 연유

집이라는 건 두 얼굴의 속성을 지닌다. 머물고 싶지만 떠나고 싶은…!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하고 싶어하고, 여행지에서 지치면 집 생각이 간절해진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어느 날 생각해 봤다.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방법은 없을까. 주중에 바빴던 남편을 위해 주말에 집에 머물면서 집을 떠나는 방법은 없을까? 에어비앤비도 있겠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이것은 무늬가 집인 경우일 뿐, 집의 속성은 없다.

그래서 또 생각하니 예전에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 있었다. 세컨홈. 한국에서는 별장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별장은 부자의 상징이었지만, 사실 부자가 아니라도 세컨홈을 가질 수 있다. 소유의 욕구를 버리면 된다, 월세라는 게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발로가 우리가 강남에 살게 된 연유다.

처음에는 자연풍광이 멋진 시골에서 주말주택을 꿈꿨지만 오랜 시간 연이 안 닿았다. 그러다가 우연챦게 강남의 세쿼이아 길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양재천 카페거리에 연접해 있고 양쪽에 세쿼이아 나무가 길게 늘어선 이 차선 도로이며 위쪽으로는 트레일이 있는지 사람들이 걸어다녔다. 온통 초록인데 세련되고 고아했다. 우와… 도시 한복판에 뭐 이런 멋진 곳이 있나,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발견한 보물 때문에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며 감탄을 뿜어댔다. 양재천은 과천부터 탄천까지 흐르다 한강으로 이어지는 지류이고 멋진 트레일이 조성되어 있는, 내가 한국에서 본 중 가장 스케일이 큰 산책로였다(남산과 양대산맥!!). 서울은 정말 보물 같은 곳이란 생각에, 그렇지 않아도 내 고향 서울이 그리웠는데 이곳에 주말주택을 마련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 될 터였다. 그래서 열심히 발품을 팔았고 원룸에 월세지만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강북의 주변부에서만 살아봤던 남편과 내게 강남은 새로운 여행지였다. 걷거나 버스를 타고 아날로그 감성을 여행하고, 동네 갤러리를 기웃거리며 한국 현대 화가의 작품세계를 여행하고, 고목이 터를 잡은 동네 공원을 여행하고, 비싼 땅덩이에서 오랫동안 식당이나 카페를 한다는 것은 수요가 충족된다는 의미라 웬만한 곳은 맛이 있어서 맛집 여행도 하고… . 식당은 가격이 비싼 곳은 질이 높고 싼 곳은 늘 사람들로 북적댔다. 깨끗하고 트렌디한 곳도 많고 사람들의 매너도 좋고… .

허나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단점도 있었다.

비슷한 돈으로 지방은 방 두세개 있는 아파트에서 거주할 수 있는데 강남은 원룸에서 살고

백화점에 갔다가 명품만 있어서 헛걸음 치는 경우도 생기고, 부자 아파트 주변 마트에서는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파는 경우도 있어서 가성비가 중요한 나에게는 매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 있고, 여행을 하면서 편안한 내 집에 머무는 최장점의 효과는 틀림없이 누렸다.

같은 돈으로 몰빵을 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도 있겠고, 자녀가 커서 학군이 상관없다면 조금 싼 지역의 집으로 옮겨서 두 개의 거주지를 마련하는 방법, 이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삶의 방식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