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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분노의 아파트 Yunah Kim (kyeonah) 2020-6-15  07:26:06



분노의 아파트



 

 

존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에서 조아드 가의 둘째 아들 탐이 말한다.

보이는 곳 천지가 식당이네. 안에는 다 커피가 있겠지. 저기 24시간 여는 레스토랑을 봐, 커피가 10갤런은 있을 듯, 뜨거운 커피가 말이지…”

경제 대공황시절, 일할 곳을 찾아 전 가족이 오클라호마에서 꿈의 땅 캘리포니아로 이동했지만 처음 도착한 곳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고물 트럭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조금 있다가 탐은 또 말한다.

저기 핫도그 스탠드 좀 봐. 핫도그가 백 개는 되보여.”

 

그 부분을 읽는데 목이 메였다. 탐을 동정한 탓은 아니다. 살면서 커피 한 잔이나 핫도그 사 먹을 돈이 없어 본 적은 없지만, 입 닥치라고 퉁박을 주는 탐의 동생이나 자신에게 비상금 1달러가 있는데 그걸 쓸 만큼 커피가 마시고 싶냐고 가시 돋힌 말을 내뱉는 엄마와는 달리 나는 탐이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 오래된 독자분은 아시겠지만^^) MA에 살던 시절, 밑의 집 아자씨의 횡포와 모함으로 아파트에서 퇴거명령(eviction letter)을 받은 다음 날, 차를 몰고 나갔다가 그제껏 정말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낯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동네엔 집이 천지인데 우리가 살 집은 없는 것이다. 큰 집, 작은 집, 새 집, 세월 품은 집 할 것 없이 저 집도 좋아 보이고 건너편 집도 좋아 보이고그런데 그 안엔 다 누군가 살고 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좋은 집에서 사는 걸까, 대체 어쩌다 우리는 맘 편히 살 집 하나 없는가참 고독했고 무지막지하게 쓸쓸했다. 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길가에 널린 게 식당이고 그 안에선 뜨거운 커피가 넘쳐나는데 왜 자신에겐 한 잔의 커피도 허락되지 않는가스탠드에 백 개는 되 보이는 핫도그가 쌓여 있는데 자신의 배는 왜 굶주림에 허덕이는가

 

이 고독한 사색 뒤 탐에게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아직 조금 남았다) 우리의 경우 거짓이 밝혀져 오히려 밑의 집 아자씨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결말을 맞았으나 어쨌거나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집을 사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하늘이 내려주신 것만 같은 집 한 채가 한국에 있다. 겨울엔 벽까지 타고 올라간 햇살이 서릿발 성성한 날에도 집안을 노곤노곤 하게 만드는데, 그 햇살이 여름엔 창턱 밑까지 쑤욱 빠지는 요술을 부린다. 창문을 열면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리고 한 여름철 솟았다 떨어지는 집 앞 분수대 물소리는 공기마저 휘저어 찐득한 권태를 쫓아낸다. 통창 너머로는 산자락과 하늘이 비율 좋게 걸려있으며 여름엔 신록이 가을엔 단풍이 겨울엔 설경이 아침, 저녁, 오늘, 내일을 조금씩 바꾸어 놓아 보는 맛과 함께 자연의 신비에 가슴을 숙연하게 만든다. 강남 같으면 지하방이나 얻을 만한 돈으로 이 집을 마련했을 때 이거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면 무언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중얼거렸지

 

인생은 가끔씩 얻어지는 이런 행운으로 살만한 거지, 에브리 싱글데이가 즐거움으로 꽉꽉 차는 건 아닐 게다. 오늘 힘든 당신에게도 내일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다. 안 그럴 수는 없다. 단 내가 행운으로 느껴야 그것이 행운이 되므로 그 노력은 내 몫이다. 우리집도 누군가에겐 별로일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므로 내게는 행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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