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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떨어져 살던 부부가 모인 집 Yunah Kim (kyeonah) 2020-8-16  06:28:14


떨어져 살던 부부가 모인 집

 


(1)

 

지구촌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던 네 식구가 모였다. 식탁의자에 빈자리가 없어졌고 국그릇, 접시, 수저가 두 배로 는 식탁은 양도 질도 풍성해졌다. 에어컨 온도를 낮춰 실내를 시원하게 만들 때도, 평시처럼 켜 놓은 전깃불도, 같은 코스로 빨래를 돌릴 때도 가성비 좋게 돌아가는 느낌은 충만함으로 이어졌다^^ 말해 무엇 하겠나,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식사하고 웃고 떠들고 때로는 투닥대는 결핍 없는 시간이 주는 이 행복을

 

그런데 기쁘고 완전체가 된 하나의 느낌은 닷새쯤 되니 슬슬 투 톤으로 바뀌었다(남편이 온 시기로부터는 2). 생뚱맞게도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선인의 말이 실감되기 시작하면서입술 안쪽이 온통 쓰라리면서요거이 단출했던 두 식구의 집밥을 네 식구분으로 늘려서 벌어진 현상이 아니고, 내 생활리듬이 휘리릭 바뀐 때문만도 아니고, 코로나 때문에 생긴 특수한 상황이려니 여기다가 결국 나는 마음 한쪽에서 지속적으로 꾸물대는 이물질 같은 느낌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가족을 대상으로 처음 경험하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마음을 초래한 원인, 그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다. 가족인데 4개월동안 따로 살다 모여, 한 사람은 3, 한 사람은 1주란 제한된 시간으로 함께 하게 된 일정이 내 마음가짐을 다르게 했다. 나는 남편과 큰 딸이 집에 머무는 동안 귀빈처럼 잘 해줘야지란 사전각오를 했다. 속 깊은 호스트 노릇을 가족에게 하겠다는 결심, 그것이 처음이어서 가도 반갑겠다는 생경한 마음이 생겨버린 모양이다.


가족은 그냥 원래대로 가족처럼 편하게 대해야 진심으로 완전체가 되나보다. 잠시 머무는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려다 보니 처음엔 몸이 고달프고 나중엔 슬슬 마음이 고달파지는 체험을 했다. 아는 선배가 주말이나 연휴동안 찾아온 출가한 자식네를 정성껏 대접하고는 몸져 눕기를 거듭하면서 가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을 때 나는 의아했다. 차라리 조금 덜 정성껏 대접하고 반가운 마음만 가득하면 안 되는 걸까? 자식들 마음이 다 같지는 않겠지만 꼭 매끼 손수 지은 어머니 밥을 먹거나 애를 맡기고 쉬기 위해 부모님을 찾아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그런 이기적인 자식을 위해 녹초가 되는 일은 더욱 슬프다). 오히려 함께 있는 동안 서로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 편안함, 정겨움을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할텐데그런데 이번에 난 그 선배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고 같은 체험을 하고 말았다.

 

사실은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라기 보다 나 후회없이 잘 해주고 싶었고, 약간 서먹해지고 각자의 삶 속에서 조금은 달라진 모습과 관계를, 그 벌어진 틈새를 가장 덜 어색한 척 하면서 정당하게 회복시킬 방법으로 귀한 손님대접을 자처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막내를 넘치게 사랑하지만 늘 함께 있는 막내는 이것저것 부려먹는 것만 봐도 사랑과 귀빈대접과는 상관관계가 비례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진짜 가족이란 느낌을 가지려면 내 마음에서 손님이라는 의식을 빼야 할 듯 싶었다. 내 마음에서는 그랬다.

 

헤어질 때, 큰 딸은 방실방실 웃으며 멋진 일주일에 대해 감사했고, 남편은 3주 동안 정말 고마웠다는 말을 진심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로 했지만 나는 조금 찔렸다. 이별이 섭하기만 해야 할 마음에 약간의 불순물이 끼어 있어서그래서 결심했다. 다음 번에 이런 표리부동은 없다고마음이 백프로 진짜여야지 대접만 융숭히 하면 뭐하나

 

 


(2)

 

3주간 머물렀던 남편을 보내고 난 날, 약간의 몸살기가 올라왔다. 이유는 잠까지 설친 탓이었다. 남편은 떠나기 전전날부터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자꾸 뒤척대는 기척에 눈꺼풀을 올렸다 감으면서 저 사람 마음이 평안하지 않구나, 직감했다. 가방은 가기 전날에 주섬주섬 꾸리는데 그제서야 알았다, 올 적에 2주 전부터 짐가방을 쌌던 마음을갱년기가 되더니 준비성이 늘었네, 했거늘나는 어쩌다가 이리 둔감 해졌는지??

 

자가격리 14일을 계산해서 더욱이 짧게 체류하게 된 남편의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고 아쉬워 보였다. 떠나기도 전에 다시 올 날을 헤아렸다. 혼자 잘 지내는 내 모습이 남편에게는 다행이면서도 밉상이고, 편하기도 하다면서 버티고 있다는 말을 하는 남편의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지 아리송한 나는 아직 권태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갱년기 아내다. 성숙해져서 오겠다고 약속해 놓고 성숙은 커녕 틀만 더 단단해진 애 같아져 온 남편어느 순간 남편과 철학적이거나 깊이 있는 사안에 대해 논하는 일을 그만하겠다고 결심하자 내 마음속 갈등과 둘 사이의 다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문과생, 남편은 공대생. 남편에게 단순함 너머에 존재하는 깊고 복잡한 세계의 이해는 무리한 요구일지 모르는데 나는 어떻게든 남편이 그런 말벗이 되 주길 바라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그냥 단순한 이야기를 하며 살련다. 그간에 쌓인 사랑과 정으로 힘 빠진 서로에게 따뜻한 등을 내밀어 의지할 수 있는 것만도 생판 다른 피를 가진 두 사람이 이루어낸 값진 삶이려니이젠 찰떡같은 합치나 열정적인 마음 같은 거 말고 순한 동반을 기원하며 살아야 할 때란 생각이 든다. 근데 난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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