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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냉장고 파먹는 기술과 요상한 섭생 사이클 Yunah Kim (kyeonah) 2020-10-16  07:34:22



냉장고 파먹는 기술과 요상한 섭생 사이클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우리집에서 가장 한가해진 존재는 자동차고, 겁나 바빠진 기구는 냉장고와 가스레인지다. 일상에서 막내의 통학이 사라지자 차는 아파트 건물처럼 땅에 붙박혀 먼지를 뒤집어 쓰다가 비가 오면 설렁설렁 목욕을 한다. 걷어내기가 무섭게 다시 군집을 이루던 여름날의 거미줄도 비 올땐 힘을 잃고 축 늘어졌지. 가을이 되자 그 위로 낙엽이 내려앉는다. 자동차는 2, 3주에 한번씩 식재료를 운반하는 거대한 전동 카트가 되었고, 냉장고는 2,3주 주기로 배를 빵빵하게 채웠다 홀쭉해 지기를 반복하고, 가스 레인지는 여름엔 눈을 흘겼다가 온기가 그리운 요즘은 애정하는 님처럼 곁에 두고 픈 존재가 되었다.

 

주부가 된 이후 처녀 때는 무관하게 살았던 이런 저런 삶을 체험하며 여러가지에 달인이 되었는데 이번 해엔 냉장고 파먹기에 달인도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은 재료를 조합해 아무 음식을 만드는 달인이 되었다. 별식이며 예기치 않은 메뉴가 탄생되기에 막내는 냉장고 파먹기가 시작되면 침을 삼키고 눈을 반짝인다.

 

마늘과 찬밥과 chicken broth와 당근, 샐러리가 있으면 근사한 닭죽이 탄생되고, 먹다 남은 grilled chicken은 다시마 우린 물에 간을 맞춰 감자, 호박, 양파, 당근, 당면 등을 넣고 안성 찜닭으로 변신시킨다. 호박과 가지만 있어도 쓱싹쓱싹 볶아 파스타 소스를 넣고 치즈를 뿌려 영양만점의 파스타를 만들고, 너구리와 생면 칼국수라면을 섞어 호박과 시금치를 넣으니 세상 맛난 중국식 누들이 탄생되고, 쌀종이와 냉동새우와 파인애플 캔이 있으면 아무 야채와 달걀지단을 더해 베트남쌈을 만들고, 명란젓갈과 버터만 있어도 고소한 명란젓 파스타가 되고, (검은)콩과 국수가 있으면 콩국수를 해먹고, 잘게 썬 신김치를 볶아 되직한 콩국물을 붓고 비지찌개를 만든다. 팬트리와 냉장고 안을 눈으로 스캔하며 남아있는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시킬지 생각해내는 것이 냉장고 파먹기 달인의 첫걸음이다. (참고, 겉면이 노란색 호박과 봉지 시금치를 사면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팬데믹 초기, 마스크와 손세정제와 휴지가 품절되던 시절,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던 그 때, 냉장고에 찬바람만 들어찰 지경까지 파먹으며 4주를 버틴 적도 있다. 그러다가 장을 보니 400불 어치를 한꺼번에 사는 지경을 맞았다. 세 칸 짜리 외짝문 작은 냉장고에 400불 어치 식품을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사실이다(물론 일부는 펜트리에도 들어갔지만^^). 생각없이 마트에 갔다가 출입문 밖에서, 카운터 앞에서 오래 줄을 서는 일을 몇 번 겪은 후 나는 인터벌이 긴 패턴으로 장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 3주 주기로 식생활에서 요상한 섭생 사이클이 시작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장을 본 초기엔 임금님 수라상으로 섭생하다가 점점 일반인 밥상이 되고 장보기 전 즈음엔 5대 영양소중 한 두가지 빠진 식사를 한다. 초기에 사온 생고기, 생닭, 생선을 냉동칸에 넣지 않고 신선한 야채와 함께 먹으려니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 냉동실은 냉동실대로 나중에 먹을 식재료로 가득 차 공간이 부족하므로 생(fresh) 것은 생 것인 상태에서 요리하게 되는데 그래서 임금님 수라상 섭생 시기에는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이 탄생된다. 

 

코로나가 변화시킨 부엌 풍경…, 냉장고 파먹기를 즐기면 별식은 탄생하고 오래 묵혀 버려지는 식재료는 사라지므로 낭비가 사멸한다. 일거양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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