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연아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국에서 살겠냐고 묻는다면 ; 큰아이 이야기 Yunah Kim (kyeonah) 2020-11-16  05:06: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국에서 살겠냐고 묻는다면   큰아이 이야기


                             

 

두 살 때 미국에 와서 11학년 때 한국학교로 전학 가 전교 꼴찌를 맴돌던 큰아이의 꿈은 좋은 의사였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보여오다 9학년 때 병원봉사를 경험 한 이래 한번도 그 꿈을 져버린 적은 없다. 단지 같은 꿈을 꾸며 한 길로 열심히 달리는 친구들보다 훨씬 다양한 삶을 살아왔기에 과연 그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란 의구심을 갖게 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이번에 큰아이는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의대 합격소식을 전할 때, 기쁨의 표현이겠지만, 23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노력을 보상받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속으로만^^) 그만큼 행복하다는 표시리라 여기고 슬몃 웃었다. 열심히,라는 기준이 애매하여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열공해서 보기에 안쓰럽기 그지 없다고 말하는 수많은 어머님들과 다르게 나는 한 몸으로 저리 많은 활동을 하면서 과연?… 이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해왔기 때문이다. 세상은 공평하므로 그런 친구들은 훨씬 좋은 점수를 받고 상위권 의대에 입학할 터이며 그래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세상을 체험한만큼 조금 폭넓은 사람이 된 것은 또다른 의미에서 열심히 살아온 결과 맞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7여년 전, 11학년인 아이를 한국 일반고등학교로 전학시킬 때, 우리의 장기계획 안엔 의대진학이 들어있었다. 그 프로젝트를 위한 첫 출발은 미국시민권 획득이었다. 나는 주변의 권고로 귀국 전에 미국시민권을 취득해 아이에게 건넸다. 수험생을 이끌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며 최대의 선물이란 생각에 내 고국의 시민권을 버리는 슬픔 즈음은 감내해야 했지. 그 일이 아니라면 나는 국적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큰애는 마음 놓고 2년동안 한국생활을 했다. 그 시기의 목표는 한국 문화체험이었기에 여행도 많이 다녔고 친구를 사귀고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교 꼴등인 성적을 달게 받았다. 덕분에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으니 충분한 보상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확인해 줄 수 없었고 나로서도 확신할 수 없던 대학입시는 예상대로 진행된 셈이다. 미국대학(상위권)은 성적으로 일렬을 세워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여러 요소를 참조하여 학생의 기량과 잠재력과 미래의 성공을 예측해 자교가 원하는 인재상을 합격시키는 시스템인 것이다. 비록 한국에선 꼴찌를 맴돌았지만 2년간 미국 고등학교에서 거둔 성과와, 한국에서의 여러 활동 등으로 아이의 잠재력을 평가해줄 거란 예측은 들어맞았다. 큰아이는 유수한 LAC에서 받아준 덕에 넉넉한 재정보조를 받고 바라던 캠퍼스 생활을 기껍게 시작했다. 입학후에도 많은 서포트를 해주고 믿어준 학교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동문으로서 결초보은은 계속될 것이다.

 

대학에서 의대를 가려면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프리 메드라고 한다. 프리 메드 필수과목에는 수학, 화학, 물리, 생물, 영어가 있고 GPA에서도 이 과목의 합계가 좋으면 유리하다. 필수과목 중엔 한 차례의 스크리닝처럼 갈림길에 서게 만드는 악명 높은 과목이 있는데 유기화학과 생화학이 그것이다. 그 과목들을 수강하면서 많은 프리 메드 과정의 학생이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큰아이는 11학년과 12학년 때 기초를 다졌어야 할 AP화학을 전혀 익히지 않고 대학을 들어간 셈으로 당연한 듯 고전을 겪었다. 그래서 또 깨닫았지만 인생사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2년 동안 한국문화체험을 얻은 대신 화학을 잃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택을 하라면 우린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큰아이가 한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고 정체성을 확고히 해준 값어치는 절대치로도 훨씬 크게 얻은 보물이니까.

 

큰아이는 자라면서 의학에 특별한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개구리나 돼지 등을 해부한 날엔 친구들 것 까지 대신 해주며 그 유별나게 느꼈던 재미를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 했고, 생물선생님이 내민 암환자의 간을 주저없이 쓰다듬었다. 해부학에선 인체의 내부를 3D로 훤히 들여다 보아 교수의 탄복을 사고, 포크와 나이프로 새우살의 손상 없이 껍질을 벗기는 묘기를 부리고, 수백 마리 쥐의 배를 신속히 갈라 장기에 수술을 한 후 건강하게 꿰맸다. 봉사를 좋아하고 닥터 셰도잉을 하면서 확신과 적성을 재확인하기도 했지만 큰아이에겐 무엇보다 마음이 있었다. 생명의 숭고함을 인식하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돈이 없거나 신분이 불법체류자여도 똑 같이 존중되고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당당히 밝혔다. 이런 철학을 지닌 큰아이의 꿈은 의사가 아니다. 좋은 의사다.

 


 

별첨

1)    저희 가족이 입시생인 큰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간 이후, 정말 많은 쪽지를 받았어요. 그때 저희처럼 고민하시는 가족이 의외로 많구나생각했지요. 지금도 그렇겠구요.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큰아이가 어떤 행로를 거쳐 목표를 지향해 갔는지 간략하게 보여드렸습니다. 미국 입시체제는 우리가 상상한 외로 논리와 깊이를 가지고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든 열심히 살면 조금 돌더라도 노력한 대가를 선물 받으리라 생각해요.

 

삶에 있어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땐, 여러가지 중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셔요, 분명 가장 무겁게 추가 내려가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것을 선택해 과감히 걸어 가세요. 이후 당면하는 부수적인 문제들은 또 살아가면서 해결책을 찾으면 됩니다. 인생은 어차피 그런 일들의 연속이거든요,

 

2)    큰아이도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의학의 길을 선택할 때요, 그 지향점과 기준은 이 아닙니다. 돈을 잘 벌 목적이라면 다른 길을 택하는게 나을 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의사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오랜 기간 학업과 수련을 하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가끔 보면 미씨에서 그런 이슈로 언쟁이 벌어지더군요. 게다가 의대생이 학비 때문에 빚을 지는 동안 다른 직업으로 돈을 축적한 몫까지 계산하면 결국 손해라는 등그런 계산이 뜨악하기도 하지만 다수가 불행해지는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별첨을 씁니다. 첫째, 사람에게 직업이란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하고요(걸맞은 페이 포함), 둘째, 본인이 잘 할 수 있고 적성에 맞으면서도 일터에(사회나 타인에) 도움이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셋째, 개인의 만족도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존중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 가치를 에만 두고 비교평가 하면서 타인의 행복을 함부로 저해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불행해지는 사고방식이라는 논리입니다. 만약 의사가 환자를 으로 생각하고 과잉진료에 과잉수술을 추구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하고 불신으로 만연한 사회가 될까요. 몸이 아파서 괴로운데 의사를 못 믿어 방황한다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우리는 최고의 가치를 에 두지 않아야 합니다. 인생의 참가치는 행복에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의사는 사명감을 가지는 직업입니다. 그리고 어떤 직업 안에서도 그런 사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부로 살아온 저에게도 사명감이 있었지요. 우리 모두의 인식에 그런 가치가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