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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같은 출산 다른 삶-한국과 미국의 출산기 (1) Yunah Kim (kyeonah) 2020-12-2  07:45:49



같은 출산 다른 삶-한국과 미국의 출산기 (1)


 

 

나는 큰아이는 한국에서 둘째는 미국에서 분만했다. 두 번 다, 예를 들면 남편과 함께 호흡법을 훈련하고 출산을 하는 라마즈분만이라던가, 수중분만, 가정분만 등이 아닌 병원에서 정상분만방식으로 아기를 낳았다.

 

한국에서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초진부터 분만까지 마쳤다. 즉 매번 그 병원에 가서 같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출산도 그곳에서 하리라는 안정감이 있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산모와 태아가 건강하고 정상 상태이므로 혹 다른 의사가 분만을 집도해도 되겠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나는 본래의 담당의(특진 의사)가 끝까지 책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 모르지만 지금껏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지켜보지 않은 의사가 별안간 분만을 집도하는 것이 안전할까란 생각과, 과정보다는 출산이 더 빅딜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내 의견과 상관없이 다른 의사가 분만을 도왔다. 게다가 의사가 늦게 오는 바람에 12시간여 진통 끝에 겨우 아기가 나오려는 순간, 한계에 다다른 그 순간에 힘을 주지 말고 참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세상에산도에서 머리가 보인 상태로 6시간 동안 쉼 없는 통증이 이어질 땐 상체를 들고 배꼽을 쳐다보라 해서 안구가 튀어나오도록 시키는 대로 했더니 이번엔 나오려는 아기를 나오지 못 하게 힘을 빼라니뭐 거꾸로 한계를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고분만실에 우글구글(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모여 있던 인턴들의 차가운 수다를 들으며 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의 무례를 감지하고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FM대로 통증이 5? 간격으로 규칙적이 될 때까지 집에서 버티다가 병원에 갔고, 옷을 다 벗고 가운만 입은 채 사람들이 마구 드나드는 어떤 밝은 공간의 간이 침대에 누워서 관장을 했고, 잦아든 진통에 몸부림을 칠 땐 가운이 풀어져 알몸이 드러났고, 잠시 휴지기가 오면 비로소 정상인 여자가 되어 옷을 추스려 몸을 덮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황당하게 바로 건너편에서 서류를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양복입은 한 남자의 시선을 받았다. 그 사람은 내가 몸부림칠 때 출산모태의 고통을 두려움과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흘끔거리기도 했는데 진통이 조금 잦아들 땐 수치감을 느끼다가 진통이 찾아오면 don’t care 상태가 되고 말았다. 머리가 보이는데 왜 더 진행이 안 되지? 라는 소리를 연거푸 들으며(알고 보니 대두여서 그랬다~~) 한계를 느낄 땐 정말 다 그만 두고 싶었는데 그 순간에 특히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혼자라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참 그리웠다. 요즈음 코비드 병동에 누워 고립감을 호소하는 환자의 마음을 그래서 나는 너무 공감할 수 있다. 코로나에 걸려 격리된 상태에서 서로를 그리워 하다 1분 차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노부부의 사연이 이토록 가슴 저미는 이유도...


그런 마음이 통했을까, 거듭 체크를 하던 한 레지던트가 안되 보였던지 아니면 배운 바 대로 실천하는 건지 한동안 곁에 있어줬다. 힘내라는 위로와 함께 관장 시 튄 분비물이 남아있었는지 알코올 솜으로 닦아주었는데 그 병원에서 겪은 분만과정 중 유일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알몸이든 어쩌든 레지던트가 남자든 어쩌든 상관이 없을 만큼 극심한 진통상태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고통을 느끼며 아픈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건 인간의 따스한 말과 손길이라는 사실!그래서 나는 집에서 가족과 강아지에게 아플 때 가장 다정하고 극진한 태도를 보여준다.

 

분만실에 드디어 의사가 왔다. 인턴들의 수다소리가 그쳤고 교수님께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고분만이 시작됐다. 의사의 지시대로 힘을 주자 아기가 쑤욱 빠져나왔다. 순식간이었다. , 이상하고 통쾌하고 시원하고 성취감이 느껴지던 그 느낌의사는 또 태아가 있는 동안 그토록 조심스럽게 보존해 왔던 내 복부에 자신의 팔을 대고 힘껏 힘을 주어 아래로 훑어 내렸는데 이후 주르륵하며 액체가 쏟아졌다. 두번째는 확실히 약했다. 그렇게 무언가 잘 마무리 되었다는 느낌에 안도를 한 순간, 어떤 철없는 여자애 목소리가 들렸다. 이 애기가 왜 이래? 왜 안 울어? 더 세게 때려봐

…… .

에고이 글을 쓰는 지금도 노엽다. 내 아기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분노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처자는, 새생명에 대한 존중과 경이를 가지지 않고 기계 다루듯이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은 그대로 의사가 되면 안 되는데게다가 자신의 기술부족으로 호흡을 못 시키는 무안함을 아기 탓으로 돌리는 마인드라지금은 철이 들었으려나? 나는 지금 같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그냥 모두에게 수고하셨어요, 라는 인사를 했을 뿐이다. 아주 바보 같았다!!

 

의사는 누군가에게 나를 꿰매는 임무를 맡기고 떠났고 그 일이 끝나자 모두 분만실을 우르르 빠져 나갔다. 혼자 덩그마니 남겨졌다. 누군가 곧 올거라거나 잠시만 혼자 있으라는 안내도 없었기에 이제 뭘 어째야 하지?란 생각을 한 것 같다. 상식선에서 누군가 곧 오겠지란 생각을 하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5월 중순의 실내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얇은 가운 하나를 입은 몸이 추워졌을 때 문득 에어컨 바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더 길게 느껴졌겠지만 꽤 시간이 경과한 후 아주머니 두서넛이 들어오셨고 세상에학생들이 아직 어려서 뭘 모르고 에어컨을 이렇게 틀어놓고 갔네하는 소리와 함께 실내공기가 적당 해졌다. 아주머니는 서둘러 내 몸을 천을 덮어 여몄다. , 20년도 훌쩍 지난 일이 왜 이렇게 생생한지?

 

이후 3일 동안 입원해 있던 병실에서는 같은 급의 사연이 전개된다. 입원실에 함께 있던 환자는 산모가 아니었다. 나는 함께 병실을 쓰면서 원치 않는 그녀의 사생활을 흘려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너무 행복하지 않았다. 첫날 병문안 온 친구에게 속닥대는 그녀 이야기는 온통 불륜에 관한 것이었다. 불륜을 남편에게 들켰는데 자신도 과거에 바람을 피웠기 때문인지 모르는 척 한다, 자기는 이혼을 하고 싶다, 친정 어머님도 아신다그것 뿐이 아니다, 나는 좋은 생각과 아기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야 할 그 시간에 딸의 불륜사실을 아는 친정 어머님도 뵈야 했고 처의 바람을 모르는 척 하는 남편을 봐야 했고그녀의 불륜을 모르는 척 하며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원치 않는 막장드라마를 목격해야 했다. 지금 같으면 제발 병실 좀 옮겨 달라 말이라도 해 볼 텐데그땐 왜 그리 쑥맥이었는지

 

 

-계속-




참고:현재 한국 병원은 의료진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어 환자에 대한 대우나 환경이 20 여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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